자립준비청년, ‘건강들하십니까’ [의료사각지대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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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준비청년, ‘건강들하십니까’ [의료사각지대①]
  • 유채리 기자
  • 승인 2023.01.30 1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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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권’,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자립준비청년
건강·민영보험 진입장벽…여유없어 후순위로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유채리 기자]

자립준비청년 지원 정책으로 논의되는 것은 주로 경제교육 부족과 주거지원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의료 지원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지 않다. 의료 지원 역시 언제든 필요한 상황이 올 수 있다. 개선과 보완 등이 이뤄지기 위해 이들이 겪는 어려움과 어떠한 지원책이 마련되면 좋을지 당사자와 시설, 관련활동을 하는 이들을 찾아 얘기를 들어봤다. ⓒ 그래픽=시사오늘 김유종 기자
자립준비청년 지원 정책으로 논의되는 것은 주로 경제교육 부족과 주거지원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의료 지원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지 않다. 의료 지원 역시 언제든 필요한 상황이 올 수 있다. 개선과 보완 등이 이뤄지기 위해 이들이 겪는 어려움과 어떠한 지원책이 마련되면 좋을지 당사자와 시설, 관련활동을 하는 이들을 찾아 얘기를 들어봤다. ⓒ 그래픽=시사오늘 김유종 기자

건강불평등 세상 속 자립준비청년

지난해 8월 광주 자립준비청년들의 잇단 극단 선택이 사회적으로 알려지며 이들에 대한 지원·정책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주로 논의 되는 것은 경제교육 부족과 주거지원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의료 지원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지 않다. 물론, 경제와 주거는 자립준비청년의 ‘생존’과 관련된다.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생활이 가능하고 학대 피해 아동이 원가정에서 분리되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의료 지원 역시 언제든 필요한 상황이 올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아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플 걸 미리 예상할 수 없다. 아픈 상황에서 충분한 치료를, 적정한 시기에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건강보험과 민영보험이 생겨났다. 그런데 자립준비청년은 제도적 안전망에서 충분한 보호를 받고 있을까.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가정 외 보호 퇴소청소년의 건강관련 경험에 관해 연구한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소속 이정애, 정익중은 5명의 연구 참여자를 심층 면접한 결과, ‘미래의 건강을 당겨 현재의 삶을 소진하는 가불인생’이라는 종합 주제를 도출했다. 지금 당장은 건강하기 때문에 인스턴트식품, 불규칙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는 등 미래의 건강을 관리하며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소진하는 방식으로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립준비청년 당사자 백윤하 씨도 의료와 관련한 취재 요청에 “건강이 중요한데 당장 처리해야할 부분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들이 건강을 관리하는데 시간과 에너지, 비용 등을 들이기에는 어려운 요인들이 많다. 당장의 자립과 더불어 미래의 진로·취업 등도 동시에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청소년의 사회적 자본이 주관적 건강에 미치는 종단적 영향’(박성준, 2018) 논문에 따르면 건강은 오롯이 개인이 관리하고 책임져야 할 부분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건강격차’, ‘건강 불평등’이라는 단어처럼 건강도 사회·환경적 요인이 크다. 또 청소년기의 건강은 신체적인 발달뿐 아니라 심리·인지적인 발달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청소년기 동안 건강하지 못한 상태가 누적될 경우, 성인기의 건강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202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보호종료아동 자립실태 및 욕구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보호종료아동의 35.8%가 최근 1년간 질병을 앓았던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 중 시설을 나올 때까지 치료를 받았거나 치료를 받고 있는 경우는 43.3%로 질병 경험이 있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이 전혀 또는 완전한 치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로 ‘치료비가 없어서’가 37.7%로 가장 높았다.

UC 버클리 Corburn 교수는 건강 불평등이란 개인 또는 집단 간 불필요하고(unnecessary), 예방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avoidable), 불공평하고(unfair), 부당한(unjust) 건강에 있어서의 차이로 정의했다.

‘건강권’은 기본권 중 하나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지닌다’고 명시돼있다. 또 헌법 제34조 2항은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지닌다’고 국가의 의무를 기록해 놨다.

국가는 불평등한 부분을 개선해 모든 국민이 자신의 건강권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자립준비청년의 의료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 개선과 보완 등이 이뤄지기 위해 자립준비청년들이 겪는 어려움과 어떠한 지원책이 마련되면 좋을지 당사자와 시설, 관련 활동을 하는 이들을 찾아 얘기를 들어봤다.

 

몰라서, 돈이 없어서, 어려워서…가깝고도 먼 건강·민영보험


“병원 갈 일이 없다고 생각해서 (건강) 보험료를 내지 않는다. 그러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보험료가 누적돼있다”

자립준비청년을 위해 행정·법률적 지원은 물론, 의료 지원 연계도 돕는 고아권익연대의 신인성 사무국장의 말이다. 자립준비청년들은 지금 병원에 가지 않으면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고 건강보험의 존재 자체를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이 발표한 ‘보호종료아동 자립실태 및 욕구조사’(2020)에 따르면 전체 보호종료아동 응답자의 9.7%가 건강보험료 체납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 체납 경험 여부를 ‘모른다’고 답한 경우도 39%로 나타났는데 건강보험 제도 자체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건강보험의 존재에 대해 모르는 것은 보험료 미납으로 이어진다. 미납된 보험료는 누적되고 빚이 되곤 한다. 자립준비청년에게는 이를 한 번에 납입하는 건 큰 부담이다. 그러다보면 아파서 병원에 가려해도 그간 쌓인 보험료를 납입해야 한다는 부담에 병원에 가지 않는 경우도 생긴다. 제도에 대해 알지 못해 미납된 보험료가 병원 이용을 가로막고 이로 인해 병의 증세나 심각성이 커질 수 있는데 미납된 보험료가 불어나 병원 이용이 어려워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건강보험은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가입이 너무 당연하다 보니 오히려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 한 자립준비청년 당사자는 “국민보험이나 연금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지난 11일부터 15일까지 구글 설문지 폼을 이용해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A씨는 “1년 전부터 고등학생 때 충치치료를 해놓은 이가 다시 아프기 시작했는데 치료비가 많이 나올까봐 안 가고 버텼다가 결국 임플란트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그는 “다행히 보육원에서 퇴소 아동을 대상으로 치과 지원을 해줬지만 그게 아니었으면 큰 돈이 들었거나 더 안가고 지내다가 큰일이 났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가정외보호 퇴소청소년의 무업자 생활 경험’(장혜림 외, 2017) 논문에 따르면 무업자 생활을 하는 진로유예 퇴소청소년들은 혹시라도 아플까봐 평소에도 불안하다고 했다. 병원비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필요한 상황에 도움될 실질적인 교육이 마련돼야 한다. 설문 응답자들은 ‘의료, 건강, 복지 등과 관련해 이뤄졌으면 하는 교육’에 대한 물음에 ‘개별교육’, ‘새로 나온 복지 정책, 개인별 맞춤형 정보 교육’,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는 교육’이 이뤄지면 좋겠다고 답했다. 건강보험, 국민연금, 민영보험 체계, 병원 체계 등 기본적인 사항도 세심하게 짚어줄 필요가 있다.

또 개인의 건강상태와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맞춤형 정보가 필요해 보인다. 이에 더해 일회성·주입식 교육이라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시설에서 이뤄지는 교육의 문제점으로 주로 꼽히는 만큼 보다 쉽고 흥미를 가질 수 있게끔 교육을 구성해야 한다.

민영보험 교육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실손의료보험은 ‘제2의 건강보험’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사람이 가입하고 있다. 하지만 자립준비청년은 민영보험에 대해 잘 모를뿐더러 미래의 위험에 대비해 비용을 투입하기에는 금전적인 어려움도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재단에서 ‘열여덟 어른’ 캠페인에 자립준비청년 당사자로서 캠페인을 진행하는 신선 캠페이너. 신선 캠페이너가 자립준비청년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발언 중이다. ⓒ사진제공 =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 재단에서 ‘열여덟 어른’ 캠페인에 자립준비청년 당사자로서 캠페인을 진행하는 신선 캠페이너. 신선 캠페이너가 자립준비청년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발언 중이다. ⓒ사진제공 =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재단에서 자립준비청년 당사자로 캠페인을 진행하는 신선 캠페이너(이하 신선 캠페이너)는 “시설에서는 경제적 여유가 없어 생각하지 못했다. 자립 후인 지금도 돈이 많지 않다. 당장 생계에 신경쓰다보면 보험, 자산 이런 건 제일 뒤로 가게 된다.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박강빈 ‘열여덟 어른’ 캠페이너(이하 박강빈 캠페이너) 역시 “장기적인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면 보험료가 아깝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오늘을 사는데 바쁘고 빠듯하면 (보험료를 납입하는 게) 아까울 듯하다”고 말했다.

보험은 기본적으로 위험 발생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다 보니 지금 당장 필요성을 느끼기 어려울 수 있다.

아동 보호 시설 관계자는 “실비는 꼭 들라고 이야기하지만 (아이들이)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말했다. 설문에 참여한 B씨는 “보험이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고 응답했다. C씨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을 못했고 정보도 없어서"라고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이유를 전했다.

복잡한 보험 용어나 어떠한 상품을 알아보고 가입해야 할지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점도 문턱을 높이는 요인이다. 물론 자립준비청년이 아닌 청년‧사회생활을 오래한 성인에게도 보험은 어렵다. 그렇지만 자립준비청년들에게는 보험 가입 문턱을 낮추는 데 도움 줄 주변인이 없다는 것이 진입장벽을 한층 높게 만든다.

신선 캠페이너는 “모두에게 어렵지만 (부모 등 주변 사람과) 함께 시작했냐, 아니냐의 차이”라며 “모르면 배우고 이러면 되는데 이런 게 다 낯선 상황이다. 용어도 낯설고”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재단에서  ‘열여덟 어른’ 캠페인에 자립준비청년 당사자로서 캠페인을 진행하는 박강빈 캠페이너.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  ‘열여덟 어른 TV’에 출연한 모습이다. ⓒ사진제공 =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 재단에서 ‘열여덟 어른’ 캠페인에 자립준비청년 당사자로서 캠페인을 진행하는 박강빈 캠페이너.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 ‘열여덟 어른 TV’에 출연한 모습이다. ⓒ사진제공 = 아름다운재단

박강빈 캠페이너는 “어떤 항목을, 어느 정도 금액으로, 어떤 상품군에 들어야 하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보험이 필요한 이유, 기본적인 지식, 용어 등에 대한 교육·안내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

주변 권유 등으로 가입하고 나서도 필요성을 체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 주변에서 실손 보험은 필수라고 해서 가입했다는 C씨는 “꼭 들어야 한다고 해서 들긴 했는데 든 게 잘한 건지는 모르겠다”며 “간편 보험이랑 일반 실손 보험이 보장 내용에서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고 싶은데 봐도 모르겠어서 그냥 들었다”고 말했다. 이 경우, 경제적 여건 등 상황 변화에 따라 가입했던 보험을 해지할 가능성이 있다. 민영보험의 경우, 중간에 해지하면 가입 유형에 따라 환급금을 못 받거나 줄어들 수 있으며 재가입 거절 우려도 있다.

필요성 교육에 더불어 기초적인 제도 지원이 확충돼야 한다. 아동 보호 시설 관계자는 “보조금이라든지 지원을 해서 실비보험을 재원 중에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했으면 좋겠다”라며 “퇴소해서는 보험료만 내면 되니까”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주거지가 고정돼야 복지 제도를 누릴 수 있는 정책에도 보완이 필요하다. 주거지가 없거나 고정적인 주거지가 없다면 정책 지원을 신청하기 어렵고 장기간 거주불명 상태가 이어질 경우, 거주불명등록자가 돼 건강보험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건강보험에 대해 잘 모르는 자립준비청년의 경우, 자신이 건강보험 자격을 상실했다는 것도, 자격을 다시 취득할 수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할 수 있다.

자립준비청년 D씨(29)는 집이 안정적으로 확보되지 않아 의료보험료를 내지 못해 거주지불분명이 됐다. 행정적 절차를 거쳐 수급 신청을 하는 등의 절차를 거친 후에야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17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자립준비청년 지원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차관이 대책에 대해 관련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는 지난해 11월 17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자립준비청년 지원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차관이 대책에 대해 관련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1월 17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자립준비청년 지원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해당 대책에는 2023년 하반기 의료비 지원사업을 신설해 취업 이후 건강보험에 가입돼 의료급여 대상에서 제외된 자립준비청년에게 의료급여 2종 수준의 지원을 통해 본인부담금을 경감하고, 기초생활보장제도, 소득 재산 공제 수준을 확대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러나 이 경우,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주거지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 그러지 못하는 경우,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보건복지부와 아동권리보장원의 ‘2018 아동자립지원 통계현황보고서’에 따르면 보호 종료 1~5년차 자립준비청년의 11.9%가 친인척 집, 고시원, 친구 집 등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의 주거 형태는 전입신고를 할 수 없거나 상황적으로 전입신고를 하기 곤란할 수 있다. 이들 외에 조사 대상에 포함되기 어려운 연락이 단절된 자립준비청년들까지 포함된다면 그 수가 더 많아질 수 있다. 장기간 거주지 등록이 되지 않으면 거주지 불명자가 될 수 있다.

물론, 법적으로 전입신고가 되지 않는 주거형태에 살아도 이를 해소하고 건강보험 가입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신분증 등을 지참해 건강보험공단에 방문하면 된다. 그러나 건강보험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세부적인 것까지 알고 신청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주거지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도 의료 지원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보완이 마련돼야 한다. <계속>

담당업무 : 경제부 기자입니다. (보험·저축은행 담당)
좌우명 : 타인의 신발 신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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