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동영상까지 멀고 험한 의료지원…전문적 심리 연구·지원 필요 [의료사각지대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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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동영상까지 멀고 험한 의료지원…전문적 심리 연구·지원 필요 [의료사각지대②]
  • 유채리 기자
  • 승인 2023.01.30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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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지원·연계 ‘운’에 달려…골든타임 날릴 수도
마음이 아파 몸이 아프다…맞춤형 상담사·기관 필요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유채리 기자]

의료 지원이 필요해 퇴소한 시설이나 관련 단체에 연락해도 지원을 받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 수 있다. 일일이 정보를 찾아 지원하고 답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다보면 치료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 시사오늘 유채리

선의·호의에 기대게 되는 의료지원…골든타임 놓칠 수도

자립준비청년이 의료 지원을 요청했을 때, 지원해주는 시설·관련 단체 입장에서도 어려움이 있다. 의료 재단이나 후원 기관 등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의 정보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인터뷰를 진행한 한 아동보호시설은 의료 지원에 대해 묻자 뇌성마비 아동이 들어왔을 때를 이야기해주었다. 의료 지원을 받기 위해 병원, 재단 등 사회 사업실에 무작위로 편지를 돌렸다고 한다.

신인성 고아권익연대 사무국장도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의료 지원을 요청한 자립준비청년을 돕기 위해 의료비 지원 기관을 찾아 일일이 연락을 돌렸다고 한다. 다행히 해당 청년은 인천에 거주하던 자립준비청년으로 인천 셀트리온 재단과 연계가 돼 지원을 받게 됐다.

문제는 지역마다 의료 지원 사업을 해주는 기관에 양적·질적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서울 등 수도권‧광역시는 비교적 대형 병원, 의료재단 등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지역마다 재단이 있는 건 아니기에 재단이 없는 지역은 의료 지원 연결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지원·후원해주는 사람의 선의·호의에 기대서 의료 지원이 이뤄지는 부분도 문제다. 명확한 기준이나 객관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는 ‘운’에 달렸다고 말할 수 있다. 안정적으로 의료적인 도움을 받기 어려운 것이다.

고아권익연대에 의료지원을 요청한 E씨의 경우, 치아가 없는 상태였다. 치아가 없어 임플란트도 못해 틀니를 지원하려고 했으나 지원 받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당시 의료지원을 위해 신 사무국장은 편지, 공문 등은 물론, 동영상까지 만들어 돌렸다고 한다.

의료지원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지원해주는 곳을 찾고 답이 올 때까지 기다리다보면 치료 효과가 가장 좋을 수 있고 필요한 시기인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시설을 퇴소하고 나서도 안정적으로 의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연속성도 필요하다. 정익중 교수의 연구 참여자는 “퇴소 직전인 고3때 뇌수막염과 뇌염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하였는데, 이때 시설수급과 여러 도움으로 병원비를 해결했지만, 퇴소 후 아팠다고 생각하면 너무도 아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보호종료아동 자립실태 및 욕구조사’(2020)의 연구 결과 보호종료 연차가 늘어날수록 최근 2년 이내 건강검진을 받지 않는 비중이 커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호종료 연차 1년차는 최근 2년 이내 건강검진을 받았다고 응답한 비율이 57.7%, 받은 적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42.3%였다. 반면 2년차가 되면서부터 최근 2년 이내 건강검진을 받았다고 응답한 비율보다 받은 적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아졌다.

시설을 퇴소하고도 지속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 등 의료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이나 안내 등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

 

마음이 아파 몸이 아프다…전문적 심리 연구·지원 필요


“우리의 아픔엔 서사가 있다”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인 아서 클라이인먼의 책 제목이자 책 속 글귀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질병엔 그만의 의미가, 삶의 서사가 숨겨져 있다. 우리의 몸은 오롯이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를 표현하는 정당한 수단이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호소를 몸이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몸이 아닌 우리의 삶이다”

삶에서의 경험, 이야기가 질병으로써 몸에 모습을 나타낸다는 의미다. 이는 심리학 용어로 ‘신체화’라고 말한다.

자립준비청년의 심리적 의료 지원이 중요한 이유다. 한 개인의 심리적 상태는 마음뿐만 아니라 몸에도 영향을 미친다. 정부는 심리적 지원을 중요하게 생각해 여러 제도를 마련·보완했지만, 수정 등이 이뤄져야 할 부분도 있다.

보건복지부와 아동권리보장원이 발간한 ‘2023 같이 서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 자립정보북’에 따르면 자립준비청년이 받을 수 있는 심리적 지원에는 △자살예방지원 △정신건강복지센터를 통한 상담 및 정신건강진료 연계, 검사 비용 보조 △청소년치료재활센터(국립중앙청소년디딤센터)를 통한 거주형 치료·재활 프로그램 △청년 마음건강지원사업(바우처) △성폭력·성매매 피해 지원(해바라기센터, 디지털성범죄피해지원센터) 등이 있다.

문제는 ‘자립준비청년’이라는 특수성이 고려된 별도의 지원제도가 없다는 점이다.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지원대상은 ‘전 연령 누구나’이고 청소년치료재활센터의 지원대상은 ‘정서·행동에 어려움이 있는 청소년 등’, 청년 마음건강지원사업(바우처)는 ‘만 19세 이상 34세 이하 청년’, 성폭력·성매매 피해 지원은 ‘여성폭력피해자’가 대상이다.

자립준비청년의 경우, 아동보호시설에서 단체생활을 하게 된다. 이러한 환경적 특수성을 고려한 심리지원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

신선 캠페이너는 “상담을 2회 정도 받았는데 상담하는 선생님이 자립준비청년인지 몰랐던 것 같다”며 “성인이 돼서 (과거 이야기를) 다시 꺼내기가 어렵다. (겪은) 편견이나 가족관계 등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이 잘 안 난다”고 말했다.

이들이 실질적으로 상담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려면 자립준비청년의 특성에 맞는 상담 프로그램이 마련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자립준비청년은 원가정에서의 분리, 새로운 가정 외 보호 체계 적응, 보호종료로 인한 의무적 자립이라는 복합적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에 더해 진학이나 취업에 대한 스트레스, 자립에 대한 부담감 등도 있다. 또 어린 시절 가정에서의 경험이나 시설에서의 경험 등도 상담이 필요할 수 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상담, 건강 등 맞춤형 상담사 양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시사오늘 유채리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상담, 건강 등 맞춤형 상담사 양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시사오늘 유채리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성폭력이나 가정학대와 같은 부분에서는 전문적인 상담사를 양성한다. 자립준비청년에 대해서도 이들에 대한 이해와 역량을 가진 상담사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며 “슈퍼비전이나 전문성 강화 프로그램도 함께 준비돼야 한다”고 말했다.

심리적 의료 지원 체계 확충을 위한 보다 전문적인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정신건강전문요원은 “심리적 지원을 목표로 할 경우, 보다 전문적 측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자립준비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심리적 지원은 일반적인 상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심리에 관한 설문이나 연구 역시 우울감, 불안감, 자살사고 등에 초점 맞춰져 있으며 기초 조사에 그친 측면이 있다. 미국의 보호아동 및 보호종료아동 자립지원 서비스 실태조사인 NYPD(National Youth Transitional Database)의 경우, 술·약물 관련 상담 혹은 진단을 받은 경험 여부도 묻는다. 이정애 외(2020) 논문의 연구 참여자 역시 ‘음주와 흡연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다보니, 과도한 경우가 많았으며, 건강에 이상이 오기 전까지는 음주와 흡연을 통제하기 어려웠다’는 경험을 이야기한 바 있다.

심리 지원 전담 부서를 구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현재는 자립지원전담기관에서 자립준비청년의 사례를 관리하고 심리지원 사업과 연계 등을 돕고 있기는 하나 심리 특화 기구나 부서는 없다.

워싱턴 D.C의 아동 및 가족서비스기관(CFSA·Child and Family Service Agency) 내에는 임상전문가 대표 사무국(Office of the Deputy Director for Clincial Parctice)이 설치돼있다. 해당 사무국은 심리치료사뿐만 아니라 소아과 의사, 약물전문가, 교육전문가 등 관련 분야 전문가로 구성돼 있다(김혜영, 2014).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호종료아동 자립실태 및 욕구조사’에 따르면 자립준비청년의 심리행동문제 수준은 5점 만점 중 2.5점으로 보호종료예정아동(2.3점)보다 높게 나타났다. 이들 2명 중 한명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다고 했으며 자살사고가 들 때 대처한 방법으로는 ‘특별히 대처하지 않았다’가 37.4%였다. 심리적 개입이 적시에 적절한 방법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는 셈이다.

자립준비청년을 대상으로 상담에 대한 인식 전환, 개선도 병행돼야 한다. 한 자립준비청년 당사자는 “상담을 받지 않았다. 상담을 받으면 ‘내가 문제있구나’ 인정받는 기분이여서”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 당사자는 자립준비청년의 마음건강바우처 신청률이 한 자릿수로 매우 저조하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계속>

담당업무 : 경제부 기자입니다. (보험·저축은행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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