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효과 보이는데 왜 축소시키려 드나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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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효과 보이는데 왜 축소시키려 드나 [기자수첩]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3.01.30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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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처벌등에관한법률)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해당 법은 사업장 내에서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했거나 안전보건관리가 부실해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 또는 안전보건 관련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주된 내용으로,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됐다. 경영자 입장에선 반대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 입장에선 찬성할 수밖에 없는 성격을 띤 만큼, 빛을 보기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말과 탈은 법 시행 후에도 무성하다. 시행 전부터 거세게 반발했던 경영계는 처벌 수위를 낮추는 방향으로 수정·보완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노동계도 마찬가지다.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규정이 대폭 완화됐으니 이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현장 불확실성을 줄이고, 중대재해 예방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법률 개정을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며 산업안전보건법과의 일원화 또는 형사처벌 규정 삭제를 건의했다. 반대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법의 엄정 집행과 중대재해 감축을 위한 근본적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며 법 적용을 보다 확대·강화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처럼 입장이 첨예하게 갈려 있음에도 양측 모두 공감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중대재해의 예방·감축'이다. 경영계는 보다 효과적으로 중대재해를 예방하려면 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노동계는 중대재해를 줄이려면 동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로 펼치는 논리와 주장이 다를 뿐, 중대재해 예방·감축이라는 지향점은 같다. 이 같은 지향점에 우리 사회가 다가가는 데에 기여했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동법의 입법 취지는 예방이다. 원청업체와 사업주·경영책임자, 법인 또는 기관 등은 자신들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장 내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보건상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고, 사고 발생 시 응당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그게 이뤄지지 않았으니 중대재해 책임을 위에서도 함께 지도록 명문화해 실효적 예방 효과를 거두자는 게 중대재해처벌법의 핵심이다. 쉽게 말하면 '예전에는 윗대가리들 책임을 안 물으니까 안전보건에 노력을 게을리했지? 이젠 윗대가리도 처벌할 거야. 사고 터지기 전에 미리 안전보건에 집중 투자해'라는 얘기를 법을 통해 한 셈이다. 징벌적이면서 선언적인, 묘한 법이다.

실제로 법 시행을 전후로 '윗대가리'들이 움직였다. 안전보건 관련 조직을 신설·확대했고, CSO(최고안전책임자)라는 직책을 만들었다. 작업중지권 전면 도입 등 사업장 내 제도·관행 개선에 나서는 등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투자하고, 노력하는 행보들을 지속했다. 설사 그것이 오너일가, 전문경영인 등을 중대재해처벌법으로부터 보호하고자 실시한 조치였다고 해도, 안전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효과를 거둔 건 분명했다. 눈에 보이는 성과도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본격 공론화되자 산업재해 사망자가 줄어든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 현황분석 자료에 따르면 전체 업무상 사고사망자는 2020년 882명에서 2021년 828명으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사고사망만인율(노동자 1만 명당 사고사망자 수)도 2020년 0.46‱에서 2021년 0.43‱로 떨어졌다. 이는 역대 최저 수준이다. 또한 노동부의 '2022년 산업재해 현황 부가통계-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통계 산정법 변경)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 사망사고는 611건, 이로 인해 644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년 대비 54건이 줄었고, 39명이 감소했다. 이중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5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광주 아이파크 붕괴사고 등 대형사고에 따라 산재 사망자가 전년보다 8명 늘었으나, 사망사고 건수는 4건 줄었다.

물론, 괄목할 만한 변화나 성과로 보기 어렵다고 평가도 존재한다. 당장 노동부조차 앞선 자료를 발표하면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법 적용 대상인 50인 이상 규모에서 사망사고가 늘었다. 처벌과 규제 중심에서 자기규율 예방과 엄중 처벌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고 부연했다. 국민의힘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내년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서도 법이 적용된다. 문제점을 면밀히 검토해 법 체계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 모두 중대재해처벌법 축소·완화를 시사한 셈이다. 주요 언론들도 이들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인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사망자가 더 발생한 점을 감안했을 때 실효성이 없다'는 논리다. 과연 실효성은 정말 없는 걸까.

2021년 산재 사망자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건 전체 산업에서 가장 많은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건설업에서 사망자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었다. 통상적으로 건설업 산재 사망자는 날씨가 덥거나 추운 혹서기 또는 혹한기에 많이 나온다. 2021년에도 1월과 6월(46명)에 사고사망자가 많았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그해 12월 건설업 사망자가 17명으로 가장 적었다는 것이다. 다음해 초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기업들이 경각심을 느꼈다고 해석할 만한 대목이다.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측은 최근 발간한 건설동향브리핑에서 "2021년 12월 낮은 사고사망자 수는 중대재해처벌법 영향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비록 2022년엔 법 적용 대상인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전년보다 더 많은 사망자가 나왔지만 사망사고 건수 자체는 줄었고,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범위를 넓히면 사망자 수와 사망사고 건수가 현저히 감소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사회 전반에 안전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줬다고 해석하기 충분해 보인다. 더욱이 중대재해처벌법이 없었다면 '윗대가리'들이 과연 안전보건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했을까.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판단된다면 이를 보완·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합리적이라는 생각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17년 故 노회찬 전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었다. 거대양당은 이를 3년이 넘도록 외면했다. 그러던 중 21대 총선에서 참패한 국민의힘이 외연 확장을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에 동조했고, 재보궐선거와 대선을 앞두고 여론전에서 밀릴까 우려한 더불어민주당이 여기에 합류하면서 법안 처리는 급물살을 탔다. 정치공학적으로 발의·상정된 법안이 온전할 리 만무했다. 법 통과 과정에서 거대양당과 경영계, 노동계의 입김이 작용하면서 누더기가 됐다. 처벌 수위가 축소됐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빛바랬다. 노동계가 불만을 품을 만했다. 중대재해 책임자가 모호해 졌고, 관계당국조차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못했다. 경영계가 불만을 품을 만했다.

이미 퇴보한 채 세상에 나온 중대재해처벌법, 더 이상의 퇴보는 있어선 안 된다. 안전불감증과 책임 회피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자기규율'이라니, 애초에 가당키나 한 일인지 의문이다. 더욱이 최근 경기 침체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각 기업들은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 돈이 되지 않는 안전보건 관련 인적·물적자원의 감축을 꾀할 가능성이 높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섣불리 축소시켰다가 더 많은 국민들이 목숨을 잃는다면, 정부여당은 여론의 화살을 받게 될 것이다. 22대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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