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밭’ 아파트는 사라지지 않는다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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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밭’ 아파트는 사라지지 않는다 [기자수첩]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3.02.02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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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해서 싸는 건 막아도 열받아서 싸는 건 못 막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최근 신축 아파트에서 인분이 발견되는 사건이 속출해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다. 인분 파문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 건 화장실 부족이었다. 노동자 수에 비해 건설현장 내 화장실이 적게 설치된 실정인 데다, 화장실이 마련된 층이나 지상으로 이동하기 불편하다 보니, 노동자들이 어쩔 수 없이 '급해서 싼다'는 것이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현장 노동자 수에 따라 화장실을 추가 설치하는 의무를 사업자에게 부과하는 내용이 담긴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노동부 측은 "건설 근로자의 근무 환경이 개선되고, 신축 아파트 인분 문제 등 건설 관련 사회적 문제 예방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자평했다. 주요 언론들은 '인분 아파트 사라진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과연 인분 아파트는 줄거나 사라지게 될까. 단언컨대 어렵다고 본다. 건설현장에 화장실을 늘리는 건 '급해서 싸는' 경우는 예방 가능해도, '열받아서 싸는' 일은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건설현장 곳곳에서 인분과 똥봉투가 목격되는 건 흔한 일이었다. 노동부의 분석대로 화장실이 부족해서다. 다만, 이전에는 입주자 등 소비자들에게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용변을 해결하고, 사전점검이나 입주 일정에 앞서 현장 관리자와 노동자들이 치운 것이다. 불가피하게 쌀 순 있다. 싸고서 깨끗하게 치우고 청소하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최근 논란이 불거진 몇몇 인분 아파트 현장에선 보란듯이 쌌다는 공통점이 보인다. 눈에 잘 띄는 곳에서 용변을 해결했고, 치우려 했던 흔적도 없었다. 심지어 미장질을 하듯 인분을 벽과 바닥에 꼼꼼히 바르는 사례까지 있었다. 인분 아파트로 부족해 '똥밭 아파트'라는 표현이 나왔다. 때문에 업계 내에선 원청에 불만을 품은 하청업체 또는 하청에 불만을 가진 재하도급사 일부 관계자들, 처우가 열악한 일부 현장 노동자들이 의도적으로 인분 사태를 야기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열받아서 쌌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축 아파트 인분 논란이 확대되기 시작한 시기는 미국발(發) 기준금리 인상이 본격화된 지난해 하반기께다. 원자재 가격 급등에 금융 비용 부담까지 겹치면서, 안 그래도 심각한 수준이었던 하도급대금 미지급 피해가 더욱 심화됐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따르면 2020년 1월~2022년 9월까지 접수된 건설 하도급 분쟁 조정 신청사건 중 70% 이상이 대금 미지급 관련 분쟁이다. 또한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내놓은 '2022년 건설하도급 공정거래 체감도 조사' 보고서를 살펴보면 지난해 건설하도급 불공정거래 체감도 점수는 전년 대비 4.4점 하락, 70점대 밑으로 주저앉아 68.8점을 기록했다. △하도급대금 조정(63.9점) △하도급대금 지급(64.4점) △부당특약(66.8점) △부당 하도급대금 결정(68.1점) 등이 평균보다 낮은 불공정행위로 꼽혔다.

대금이 제대로 조정·지급되지 않으면 당연히 건설현장 협력사들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 건설산업 내 불법 다단계 하도급과 노동자 불법 파견이라는 잘못된 관행이 만연해 있는 실정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다단계 공사구조에서 가장 밑에 있는 재하청·재재하청업체, 파견 노동자들의 원성이 높아졌을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열받아서 싼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열받아서 쓴 것'처럼 보이는 사례도 얼마 전 있었다. 충북 충주 호암동에 위치한 한 공공지원 민간임대 아파트 사업장에서 한 입주민이 벽지 누락 하자보수를 요구하자 누군가 그 벽에 '그냥 사세요'라는 문구를 적은 것이다. 대금이나 처우에 불만을 품은 현장 관계자가 썼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열받아서 싼 걸 두둔하려는 의도는 없다. 열받았다고 여기저기 싸대고 똥칠을 해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건 분명 범죄다. 그런데 그 행위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고, 인분 아파트라는 사회적 문제를 예방하려면 노동자 편의를 위해 화장실을 추가 설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똥을 쌀 결심을 할 만큼 열받게 만드는 관행들을 척결하는 작업도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 노동부 등 관계당국이 이를 염두에 둬야 한다.

아울러 시공자, 감리자 등은 인분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보다 현장 관리 역량을 제고해야 할 것이다. 최근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유입되고, 내국인 숙련공이 줄어 현장 관리에 애로사항이 늘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똑같은 건설사와 똑같은 협력사가 짓고 똑같은 노동자들이 투입돼도 현장마다 품질은 상이하며, 그 차이는 관리자의 능력에 달렸다. 건축물 품질을 가르는 건 브랜드가 아니라 현장소장이라는 말이 있는 이유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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