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건설이 문제인가, 메리츠가 문제인가 [시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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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건설이 문제인가, 메리츠가 문제인가 [시사텔링]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3.02.13 1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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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리스크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모그룹의 전폭적 지원으로 롯데건설이 기사회생하고, 범정부 차원의 응원에 힘입어 둔촌주공 일반분양이 비교적 순항하면서 일단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이번엔 대우건설발(發) 브릿지론 사태가 터진 겁니다. 최근 대우건설은 브릿지론 후순위 연대보증을 섰던 울산 동구 주상복합아파트 현장에서 철수했습니다.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브릿지론에서 본PF 대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책임준공확약 대신 약 400억 원 규모 후순위채권을 자체 자금으로 상환하고 시공권을 포기한 것이죠. 원자재 가격 급등에 고금리 속 부동산 시장 침체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고, 특히 울산 지역의 경우 미분양 물량이 급격히 확대된 실정인 만큼, 해당 사업을 계속 끌고 갈 시 향후 더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이뤄진 결정으로 풀이됩니다.

이를 두고 주요 언론에선 '1군 건설사인 대우건설의 브릿지론 디폴트로 건설업계에 대한 투자자 신뢰에 금이 갔다', '대우건설 때문에 PF 시장 위기가 확산될 전망이다' 등 비판적 보도를 내고 있는데요. 일리가 있는 비판으로 여겨집니다. 대우건설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5대 건설사 중 하나입니다. 대형 업체라면 그 규모에 걸맞게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과 같이 경제 불투명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죠. 흔들리고 있는 국민경제가 더 흔들리지 않도록 버팀목이 돼 주는 것, 대기업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의 일종입니다. 이번 사례로 인해 금융사들은 건설업 관련 투자에서 발을 뺄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에 따라 중견·중소 개발·건설업체들은 자금 조달에 보다 어려움을 겪을 공산이 커 보입니다. 비슷한 경우가 계속 나오면 상대적으로 자본이 부족한 중견·중소 금융사들도 힘겨운 시기를 보낼 전망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반대로 가정해 봅시다. 만약 대우건설이 해당 사업에서 본PF 전환에 나서는 결정을 했다면 그건 과연 박수만 마냥 받을 일이었을까요. 대우건설은 KDB산업은행 치하에서 수많은 혈세가 투입된 건설사이고, 여러 주인들을 거치는 과정에서 개미투자자들이 대거 유입된 회사입니다. 대우건설의 소액주주 수는 공시된 사업보고서상 5대 건설사 중 가장 많은 것으로 파악됩니다. 대규모 손실이 확실히 발생할 사업장이라고 판단했음에도 사업을 추진하는 건 오히려 배임 소지가 있고, 수십만 명의 소액 투자자 신뢰를 훼손하게 되는 꼴이 됩니다. PF 시장 내 위기감이 되레 확대되는 결과를 초래할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여느 국내 건설사들과 마찬가지로 대우건설도 최근 영업활동현금흐름 등 유동성 지표가 악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책임준공확약을 강행하고 본PF로 들어갔다가 해당 사업에서 부실이 발생하면 대우건설의 우발채무가 불어날 것이고, 고금리 흐름이 유지된다면 이에 따른 부담은 급격히 커지게 됩니다. 얼마 전 비상장 10대 건설사인 롯데건설의 휘청임에도 시장 불안감이 상당했는데, 상장 5대 건설사가 휘청인다면 어느 정도 후폭풍이 불까요.

물론, 그럴 경우를 대비해 윤석열 정부가 적극 권장한 해법이 있긴 합니다. 지난달 금융위원회는 공공·민간 금융사 관계자들과 함께 부동산 PF 시장 관련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금융당국은 롯데건설이 메리츠증권과 1조5000억 원 규모 투자협약을 체결해 유동성을 확보하고 PF 위기에서 벗어난 걸 모범 사례처럼 제시했다고 합니다. 당시 롯데건설은 PF 우발부채 이슈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고, 이에 롯데그룹이 직접 나서서 메리츠금융그룹과 앞선 협약을 맺고 롯데건설에 자금을 긴급 수혈해준 겁니다. 문제는 금리입니다. 롯데건설이 메리츠증권으로부터 조달한 자금에 대한 이자율은 수수료 포함 13% 가량에 이릅니다. PF 차환이라는 급한 불은 껐지만 금융 부담은 여전한, 아니 최근 부동산 시장 분위기를 감안하면 금융 부담은 더 확대됐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때문에 관련 업계에선 '금융당국이 이자 장사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우리나라 PF 시장 수준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으로 돌아가게 되는 셈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시행사·시공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익성이 낮은 사업 추진을 강행하고, 금융사들은 높은 금리를 매겨 대출 이자 장사나 하는 방식으로 부실 부동산 PF를 처리하던, 정부는 경제 위기를 명분으로 내세워 그들에게 공적자금을 마구 퍼주며 면죄부를 주던 그때 그 시절로 말이죠.

대우건설의 이번 판단이 우리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지, 아니면 긍정적인 영향을 줄 지는 현 시점에서 평가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이해관계자에 따라 분석과 전망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요. 다만, 한 가지 분명해 보이는 건 대우건설은 400억 원 가량의 손해를 감수하고 사전에 부실화를 예방할 수 있는 결정을 내렸다는 겁니다. 독자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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