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증오’ 부추기는 사람들 [金亨錫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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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증오’ 부추기는 사람들 [金亨錫 시론]  
  • 김형석 논설위원
  • 승인 2023.02.19 1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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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불황으로 노인 증오 심해져"
"불순한 목적으로 극단적 발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형석 논설위원)

8일 지하철 종로5가역에서 한 노인이 계단을 오르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8일 지하철 종로5가역에서 한 노인이 계단을 오르고 있다. ⓒ 연합뉴스

노인 폄하나 ‘노인 버리기’는 그 역사가 깊다. 사냥 능력이 떨어진 수사자가 쓸쓸하게 최후를 맞듯 인간 사회에서도 ‘쓸모없는’ 노인들은 종종 처리 대상이 됐다. 그러나 동물과 달리 인간들은 자신의 미래 모습인 노인을 돌봄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노인들 역시 이런저런 기여를 통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해왔다. 최근 이런 전통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가 이달 초 보도한 한 젊은 일본인 교수의 노인들에 대한 시각은 충격적이다 못해 끔찍하기까지 하다. “노인들은 집단 자살, 또는 집단 할복해야”. 도쿄대 출신의 예일대 조교수인 37세 나리타 유스케(成田悠輔)의 말이란다. 또 일본의 한 영화감독은 작년에 정부가 안락사를 은퇴 노인들에게 지원하도록 하는 가상의 영화 ‘플랜 75’를 내놓았다고 한다. 총리를 역임했던 아소 다로(82) 현 자민당 부총재는 이미 10년 전인 재무상 시절에 “노인들은 서둘러서 죽어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노인을 인위적으로 죽음으로까지 내몰려 하는 이런 분위기는 비단 일본만의 일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에서도 한참 전부터 그런 분위기가 지속돼왔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코로나로 인한 세계적인 불황이 지속되면서 ‘필요 없는 노인들’ 내치기 분위기는 전염병처럼 젊은이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노인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노인들과 온전히 함께 사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 필요한 때다.

그들의 불순한 의도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얘기는, 노인들은 사회에 부담을 줄 뿐이니 사회를 위해 사라져줘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경제난 등으로 어려움이 커지면서 그런 주장이 자연스럽게 힘을 얻고 있다. 나리타 유스케의 발언을 보도한 뉴욕타임스는 “그는 일본 트위터에서 57만 명의 팔로워를 갖고 있으며, 특히 일본 경제의 침체가 고령화 사회 탓이라고 믿는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다”라고 전했다.

나리타는 파장이 커지자 은유적 표현이었다며 일본의 정계·재계를 쥐고 있는 고령의 기득권 세력을 겨냥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 해명조차도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최근까지도 고령층에 대한 복지 혜택이 경제에 부담이 된다며 고령인구가 사라져야 한다는 발언을 지속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안락사에 관해서, 미래에는 이를 의무화하는 걸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고도 한다. 요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해있는 일본에서 ‘쓸데없는 많은 노인들’을 죽음으로 내몰아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당신이 말해선 안 된다고 하는 것들이 대개는 진실”이라는 일본의 경구를 모토로 삼는단다. 진실에 대한 편협한 이해를 담은 그 경구와 그것을 모토로 삼는다는 이 젊은 교수의 경박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한데 정작 문제는 그에 부화뇌동하는 많은 이들과 또 무기력하게 방치하는 사회의 분위기다.

도쿄대 출신으로 예일대에서 조교수를 하는 엘리트의 사고의 깊이가 과연 그런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일까? 아닌 것 같다. 젊은 팔로워들로부터 지속적인 인기를 얻기 위해 무리한 주장을 계속하는 게 아닌가 싶다.

곧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주장과 파장은 지속돼왔다. 나리타 정도는 아니지만 노골적으로 노인들을 사회 밖으로 내몰려 하거나, 심지어 일정 나이 이상은 살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는 위험한 주장이 공공연히 제기되기도 했다.

17대 총선 시즌이었던 2004년 3월 26일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은 한 인터뷰를 통해 “60대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다. 그분들은 곧 무대에서 퇴장할 분들이니까 집에서 쉬셔도 되고…”라고 말했었다. 야당 등의 공격을 받고 즉각 사과 했지만 이제 정 전 의장 자신도 60대를 거쳐 70대에 접어든 내내 그 발언으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측 법률대리인 정철승 변호사는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김형석 전 연세대 명예교수를 향해 “이래서 오래 사는 것이 위험하다는 옛말이 생겨났다”라고 막말을 하며 80세를 “노쇠가 몸과 정신을 허물어뜨리는 한도의 나이”라고 건강 연령에 관한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리기도 했었다.

정 전의장이나 정 변호사 모두 나리타처럼 불순한 의도에서 노인 폄하 발언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노인 증오’ 확산 방지책

나리타 교수, 정 전의장, 정 변호사 모두 엘리트 군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생각이 짧거나 판단력이 떨어져서 그런 극단적인 발언을 했을 리는 없다. 앞서 지적한 대로 불순한 의도에서 파장을 예상하면서도 '노인 죽이기'에 나섰던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인 추론이다.  

정작 문제는 그런 주장에 놀아나는 철부지들과 그렇게 해서 조성되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다. 제2, 제3의 노인 증오 환자 또는 증오를 선동하는 불순한 사람들의 출현을 차단하기 위한 선제적 대책이 마련돼야 하는 이유다.

나리타 교수나 정 변호사 모두 팔로워를 늘려 자기의 ‘학문 장사’나 ‘변호사 장사’에서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이다. 혹은 정계 진출 등을 목적으로 하는 지도 모른다.

정 변호사는 김형석 교수 폄하 발언 이후 대미지를 입기는커녕 하루 사이에 팔로워만 300명 늘었다고 자랑했다. 당사자인 김형석 교수 측에서 명예훼손이나 사실관계 왜곡(지난 정권 등에서의 정권 비판 전력 등을 들어)을 바로잡는 작업을 통해 정 변호사에게 반박할 수도 있었겠으나 정작 김 교수 측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해왔다. 오히려 정 변호사에게 아버지의 억울함을 글로 호소한 둘째 딸을 김 교수가 나무랐다고도 전해진다. 김 교수 측의 그런 태도는 개인적으로는 훌륭한 덕목이겠으나 젊은이의 잘못을 깨우쳐줘야 하는 사회 지도자로서의 책임 있는 행동은 아니었던 것으로 지적될 만하다.

정 변호사의 막말 잔치에 대해 노인단체 등도 공식적인 사과를 요청했을 뿐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우는 데에는 미흡한 상태다. 혹시 정 변호사가 정치권 진입을 노린다면 막강한 노인단체 등의 정치권에 대한 압력이 거세질 수도 있겠다.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노인들을 강제로 내몰려 하는 일당들에 대해서는 이해 당사자들과 언론의 지속적인 질타가 긴요하다. 귀중한 생명들이자 엄연한 사회 구성원들인 노인을 부정하는 일은 자칫 다른 많은 구성원들까지 부정하는 일로 번져나갈 수도 있다. 결국은 멀지 않은 미래의 자신들까지 부정하는 것이 된다는 점을 일깨워줘야 한다.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그런 점을 모르고 철부지 같은 망언을 되풀이할 사람들이 아니다. 일단 그들이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해서라도 더 이상 그런 끔찍한 주장이 확산되는 것부터 막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그들에게 2천 년 전의 경구를…

영원히 젊음에 머물러있을 것으로 착각하는 그들에게 화살같이 빠른 세월을 실감케 해주고 싶다. 곧 60대, 70대가 될 그들에게 뒷감당하지 못할 일을 벌이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 

과거 기록이 즉시 즉시 찾아지는 이 인터넷 시대에서, 젊은이들이 늙어버린 그들에게 “당신은 왜 할복자살하지 않느냐. 당신은 왜 존엄사하지 않고 여든 살 넘겨까지 살고 있느냐?”라고 힐난하면 뭐라고 둘러댈 텐가.

서유석의 ‘너 늙어봤냐’ 노래를 들어보게 하는 건 어떨까. 아니면 2천 년 전 로마 개선장군의 뒤에 서서 계속 장군의 오만함을 잠재워주던 하인의 경구를 들려주는 건 어떨까.

“메멘토 모리!” → “너도 (늙어서) 언젠간 죽어!”.

김형석(金亨錫) 논설위원은…

연합뉴스 지방1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산업부, 전국부, 뉴미디어실 기자를 지냈다. 생활경제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경력으로 △2007년 말 창간한 신설 언론사 아주일보(현 아주경제) 편집총괄 전무 △광고대행사 KGT 회장 △물류회사 물류혁명 수석고문 △시설안전공단 사외이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외이사 △중앙언론사 전·현직 경제분야 논설위원 모임 ‘시장경제포럼’ 창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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