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준 “학교폭력, 암수 범죄 우려…회복적 치유에 집중”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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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준 “학교폭력, 암수 범죄 우려…회복적 치유에 집중” [인터뷰]
  • 윤명철 칼럼니스트, 윤진석 기자
  • 승인 2023.03.18 20: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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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준 한국학교폭력예방연구소 소장
“법·교육·실무 경험 살려 민간 영역서 무료 학폭 상담”
“학폭 근절 예방 캠페인 주력하고 사각지대 주목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칼럼니스트, 윤진석 기자]

정재준 한국학교폭력예방연구소 소장은 학교 폭력 근절을 위해서는 회복적 치유와 예방 프로그램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정재준 한국학교폭력예방연구소 소장은 학교 폭력 근절을 위해서는 회복적 치유와 예방 프로그램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청소년들 중 가해학생은 학교폭력(학폭)을 장난이라고 하면서 축소하고 피해 학생은 과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폭 사건으로 집단따돌림을 당하고 있던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자살을 결심하고 인터넷에서 방법을 찾다가 우연히 제 연구소 카페에 들어와 상담한 사례가 있습니다. 작년 늦가을 일이었는데요. 자살을 단념하고 학폭 문제를 적극적으로 학교에 알려 해결을 한 경우가 기억에 남습니다.”

지난 10일 경기도 남양주 한국학교폭력예방연구소에서 만난 정재준 소장의 말이다. 이 순간도 학폭으로 절망에 빠진 청소년들이 있다면 정 소장이 있는 연구소의 문을 두드렸으면 좋겠다. 

“우리 연구소는 무료에요. 행정절차가 없어요.” 

보통 학폭 문제를 상담받으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친다. 소송으로 갈 경우 비용까지 감당해야 한다. 어른도 힘든 일인데 피해 청소년들은 더욱 막막할 수밖에 없다. 

이곳은 문턱이 없다. 학생이 전화하면 상담도 빠르고 해결 방법도 원스톱이다. 학교, 교육청, 경찰서 등 유관기관과 협력-조율하고 건의해 다각도로 문제 해법을 찾는다. 연구소를 찾는 청소년, 학부모들이 늘어나는 이유다. 

- 처음에 어떻게 하게 된 건가요.    

“행정고시 합격 후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에서 청소년 범죄를 담당했었고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청소년범죄연구실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청소년 범죄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국 U-C 버클리대학로스쿨에서 청소년 범죄로 형사정책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학폭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제출했고 성균관대학교 학교폭력 전담교수가 되면서 이 연구소를 설립하게 됐습니다.”

법 관련 전문가로서 강의지식과 실무 경험을 녹여 지난해 10월 문을 열게 됐다는 설명이다. 특히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민간 영역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시도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보통의 사명감이 없으면 어려운 일일 터다. 

- 힘들지 않나요.

“사회 환원, 봉사 활동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웃음).”

 

“학폭, 암수 범죄 살펴야”


정재준 한국학교폭력예방연구소 소장은 학교 폭력 근절을 위해서는 회복적 치유와 예방 프로그램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정재준 한국학교폭력예방연구소 소장은 학교 폭력 근절을 위해서는 회복적 치유와 예방 프로그램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요즘 학폭 문제가 사회적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송혜교 주연의 넷플릭스 드라마 <더글로리>가 큰 화제를 낳고 있는 것도 국민적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어떻게 봤나요.

“현실에서는 더 극단적인 것도 있어요. 그런 사례를 상담해봤고 듣기도 많이 했고….”

- 현황은 어느 정도인가요. 

“학폭의 세계적 추이와 비교해 본다면 OECD 국가 중에서 높은 편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한국의 학폭 비율이 낮다고 보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청소년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인데 주된 이유가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청소년 자살률을 본다면, 실제 음지에서 일어나는 ‘암수 범죄’를 생각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수면 아래의 학폭 위험 수준 역시 과거보다 더 높아져 가고 있는 거지요.”

- 전에 비해 더 심각해져 가는 이유는 뭔지요. 

“보편화와 은밀화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인식되지 않았던 것들이 학폭의 정의에 들어와 있습니다. 친구끼리 임마! 새끼! 등 일부 학생 간에 일상적으로 사용했던 용어가 지금은 학폭 사건으로 처리돼 ‘학교폭력심의대상’에 해당됩니다. 학폭으로 인식되지 않았던 것들이 처리되면서 트라우마로 남고 이것이 다시 형사, 민사 소송 등 부모들의 분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은밀화란 집단 따돌림이라든가 인터넷 왕따 등을 통해 특정 학생을 비난하고 외면시키는 현상을 말합니다. 과거에는 인터넷이 활성화돼 있지 않았고 휴대폰도 전면적으로 보급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다양한 메신저로 의사소통하며 외부 노출을 제한한 채 은밀히 특정 학생을 고통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사회 전체가 책임지는 분위기로”


왜 이런 현상들이 나타날까. 근본 원인이 궁금했다. 

“사회 축소판이 학교잖아요. 우리나라는 짧은 시간 동안 급격한 발전을 했습니다. 서로 경쟁해서 좋은 대학 가고 직장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들이 컸습니다. 학교가 우정을 쌓는 곳이 아니라 이기고 물리쳐야 하는 공간이 돼갔던 겁니다. 그런 혼탁함이 학교 안에서 반영돼 갈등을 증폭시킨 요인이 됐다고 봅니다.”
    
- 중요한 것은 학폭 근절입니다. 관련 법규 및 정부 정책, 제도적 수준은 잘 돼 있다고 보는지 궁금합니다. 

“학폭 근절을 위한 법규는 학폭법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방정책이라 할 수 있는 것은 학폭법 제15조에서 규정한 한 학기 즉 6개월에 1회 이상 교육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형사절차로 가기 전에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를 통해 하는 일종의 경고이지요. 학폭법이 없을 때보다 진보된 면은 있지만 사전 예방에는 미흡한 것이 사실입니다.”

학폭 예방과 정책 기구들이 작든 크든 마련돼 있지만 자칫 유명무실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연구소장으로서 학폭 근절 대책을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제언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도 들어봤다. 

“학폭의 원인을 사회 전체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부터 전제하고 싶습니다. 학폭 근절을 위해 사회 전체가 책임지는 분위기로 환기돼야 할 것입니다.”

 

“학폭 근절 캠페인의 활성화-구체화-지속화”


정재준 한국학교폭력예방연구소 소장은 학교 폭력 근절을 위해서는 회복적 치유와 예방 프로그램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정재준 한국학교폭력예방연구소 소장은 학교 폭력 근절을 위해서는 회복적 치유와 예방 프로그램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정 소장은 세 가지 방법론을 제시했다. 

“우선 학폭 근절 캠페인의 활성화-구체화-지속화를 이뤄야 합니다. 관련해서는 연구소에서 준비 중인 복안들이 있는데 차후 발표할 예정입니다.

다음으로 학폭법의 미흡한 점을 개정해야 합니다. 가해학생 2호 처분이 접촉과 보복 금지인데 인터넷 접촉도 접촉인지 명문화가 필요합니다. 처분 이후에도 학부모 카톡방에서 다양한 분쟁이 가-피해자간 일어나고 있고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명확화가 필요합니다. 피해학생 분리 조치의 강화도 중요합니다. 학폭법 제16조는 가피해학생에 대한 분리 조치 용어만을 언급하고 있고 무엇이 분리 조치이고 다양한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학폭 예방 교육의 강화입니다. 한 학기 한 번의 예방교육을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통해 재발을 방지하고 화해를 도모해 곪은 부분을 도려내고 원칙적 근절을 향한 회복적 프로그램에 집중해야 한다”고 정 소장은 피력했다. 

 

“소외된 청소년들에 힘을”


그는 이를 위해 학폭법 관련 출판 준비부터 매뉴얼 대응의 체계화, 해외 사례 수집을 통한 정책적 지원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개선 제언, 인성교육 강화 프로그램 개발 등에 적극 나설 방침이다. 자신이 세운 민간 영역의 연구소가 전국적으로 설립돼 보다 많은 학폭 피해 학생들을 도울 수 있는 방안도 연구 중이다. 

“보통은 ‘청소년이 대한민국의 미래다’, 이렇게 보고 있기 때문에 유능하고 성공적인 어른으로 길러내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것보다 저는 상처받고 소외받은 청소년들을 평범한 어른으로 길러내는 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큰 트라우마, 특히 학폭에 관한 상처는 평생을 따라다니고 가정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소외된 청소년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길을 만드는 데 노력하고 싶습니다.” 

인터뷰 말미 이 같은 점을 강조한 정 소장은 얼마 전 도마에 올랐던 ‘정순신 아들 학폭 논란’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본인 아들이 학폭 사건에 연루됐을 때 검사 또는 인권감독관 등의 신분이었던 것으로 압니다. 피해자 편에 있어야 할 위치인데 아들의 입장에 섰던 것이 국민적 공분으로 촉발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공직자 모두 책임의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한편, 정 소장은 현행 학폭법의 사각지대 해소 방안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현 학폭법은 초중고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할뿐 유치원생과 대학생, 자퇴한 학생들은 예방 법률에서 제외하고 있습니다. 틈새에서 발생할 수 있는 우려스러운 지점들에 대해 향후 민간영역으로서 보완할 수 있는 방편들을 고민해보고 싶습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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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수 2023-03-20 09:16:26
잘 읽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