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회담 해부(解剖) [이병도의 時代架橋]
스크롤 이동 상태바
한일 정상회담 해부(解剖) [이병도의 時代架橋]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3.03.25 09: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언론 보도 파행과 정쟁 격화
시대정신…새 이정표 협력속도 높혀라
국제질서 직시하고 국익만 바라보며
쪼개진 국론…미래·과거 접점 찾을 때
반일 극렬 선동…野, 속셈 뭔가
후속조치로 한·일 불안요인 해소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연합뉴스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확대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한일 정상회담 결과를 놓고 논란이 거세다. 정쟁이 격화일로다. 야권에선 ‘친일 매국노 이완용’에 빗대어 윤석열 대통령을 공격하고, 여권에선 이에맞서 ‘한일 새 시대의 개막’을 강조한다.

가장 큰 문제는 중심을 잡아야 할 한국 언론의 상당수가 잘못 흐르고 있다는데 있다. 여야를 형평적 시각에서 양시양비론으로 다루기 일쑤다. 무책임 하다. 그 결과는 여야간에 더욱 극심한 정치쟁투를 부를 뿐이다. 국론 분열만 악화시킨다. 이른바 ‘평면적 균형보도’가 아니라, 나라의 장래를 위해 무엇이 진실인지, 분명하고도 희생적인 선택을 결단할 줄 알아야 한다. 언론은 정파적 눈치를 봐선 결코 안 된다. 그것이 바로 언론의 참된 파수견(watchdog)적 소명이다.

외교적 사안, 특히 민감한 난제가 많은 한일 관계에서 어느 한쪽의 이익이 100% 관철될 수는 없다. 비판을 해도 국익에 바탕을 두고 선후를 가려 다뤄야 한다. 철저한 사실과 논리에 따라 측정되고 보도돼야 한다.

그 해법의 방향은 무엇인가. 이번 정상회담의 경우 논리의 측정에는 분명한 선후가 있다. 크게는 시대정신이고, 작게는 사안별 문제점을 중심으로한 후속조치다. 무엇이 우선인지 제대로 읽어야 한다. 1,2위 순서와 비중을 뒤바꾸어 작은 문제를 빌미로 회담 자체를 ‘친일 매국’으로 비난 호도하면, 자칫 국민적 가치체계에 혼란이 오고, 그야말로 더욱 심한 국론분열의 도화선이 된다. 여론이 오도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새 매국(賣國)으로 이어지고 만다. 물론 일부 언론의 경우 잘하는 곳도 없지는 않지만, 국가진로에 언론의 역기능은 그렇게 결정적이다. 언론은 제4부다. 그럼, 한일 정상외교 자체를 따져보자.

한·일 협력 새 도약대

이번 한일 정상외교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한 시대는 갔다. 이제는 세계화며 경제 안보다. 안보와 경제 분야 성과는 실로 괄목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회담을 통해 한일 관계 갈등을 협력으로 돌려놓는 물꼬를 텄다. 새로운 치적의 탑을 기록했다. 오죽하면 미·일 정상이 각각 윤 대통령을 겨냥, “한일협력의 새 장을 열었다”, “경의를 표한다”는 취지의 공개 지지발언을 직접 냈겠는가. 그것은 명백한 세계화 전략의 진전을 증거한다.

윤 대통령 방일의 큰 성과는 실질적으로 한일 경제·안보 협력의 토대를 마련한 점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해제, 한국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취하에 이어 양국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과 화이트리스트(수출 간소화) 복원을 서두르고 있다. 비정상의 정상화다. 동시에 한일 정부와 재계가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 공급망 안정과 디지털 등 신성장 산업으로 협력을 넓혀 가기로 했다.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공유하는 양국이 시너지를 낼 단초를 찾았다. 한일 정부는 협력 속도를 높여 세계적 경제위기를 더욱 슬기롭게 극복해야 할 것이다.

핵심 현안인 강제징용문제 해결을 위해 한일 재계가 ‘미래 파트너십 기금’을 조성키로 한 대목도 주목할만하다. 징용 해법에 대한 일본의 더욱 적극적 호응이 부족한 점은 있었지만 이 역시 시작일 뿐이다. 오랜 기간 꽉 막혔던 관계가 한번의 만남으로 일시에 해결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차차 풀어갈 수 있게 됐다.

논란중인 미완의 못다한 과제들은 그 다음 수순이다. 이 사안들은 한일 ‘새시대 정신’ 합의에 따라 역사 여진의 차원에서 개별적으로 하나 하나씩 열과 성을 다해 후속조치를 밟아가면 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대의(大義)에 충실하되, 후속조치들은 개별적으로 철저히 따져 나가면 된다. 사실 각론으로 보면, 후속조치들도 거의 모두 초석은 일단 확보했다. 전반적으로 회담은 역시 대성공이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보자. 한일 관계 ‘잃어버린 10년’은 과거사에 묶인 정체의 시간이었다. 2011년 헌법재판소의 위안부 무작위 위헌 판결로 일본과의 협상에 나섰던 이명박 정부는 노다 정권의 몰이해에 부딪혀 독도 방문을 택했고 양국 간 파열음이 커졌다. 이후 박근혜 정권이 위안부 합의를 일궈 냈지만 문재인 정부가 파기에 가까운 조치를 취하면서 빙하기를 맞았다.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 이후 문 정권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내세워 외교적 해결을 방치한 채 정권을 넘겼다.

이번은 완전히 다르다. 윤 대통령의 정상회담에 대해 미국은 “한·일 협력의 새 장을 열었다”며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환영 성명을 냈다. 한·미·일 공조체제가 굳건해지면 가장 뼈아픈 나라는 북한과 중국이다. 한일관계정상화는 북핵도발을 억제하고 중국의 위협을 저지할 수 있다. 더욱이 복합위기에 빠진 양국 경제에 활력을 줄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시대정신 회담성과 호도 유린

이런 데도, 후속조치의 완급을 이유로 시대정신의 회담 성과를 통채로 호도 유린하는 민주당과 일부 언론의 어처구니 없는 정치행위는 反역사에 다름아니다. 논리의 본말을 뒤집는 무차별적 정쟁과 공격은 나라 운영의 근본틀을 흔들 수 있다. 그것은 국가의 진실과 역사정의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좌·우익을 망라, 국민과 시대사앞에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제 실용주의는 우리 모두를 관통하는 최대의 화두다. 이념위주가 아니다. 막연한 감성적 한(恨)을 전체인양 호도해선 안 된다. 당리당략에 이끌려 극악한 정치논쟁을 야기할 ‘시대’가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야당은 오로지 현 정부를 겨냥, 섣부른 친일 딱지 붙이는 일에 혈안이다. 총선을 앞둔 정치공학적 프레임 짜기가 아닌지 우려된다. 이념으로 지역으로 갈라치기한 것도 모자라 이제 국민을 친일·반일로 갈라 놓을 셈인가. 당리당략에만 치우친채 비이성적 선동으로 국익을 저해하는 민주당의 행보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 민주당은 이번 한일 정상외교에 대한 가차없는 폄하와 무차별적 공격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국가의 온전한 기틀을 흔들어선 안 된다. 이대로 가다가는 민주당은 다음 총선에서 철저한 완패가 틀림없다.

민주당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결단했다. 대미 관계에서 자주성을 강조했던 노 전 대통령이었지만 국익을 위해 지지층으로부터 욕먹는 선택을 기꺼이 했고 결과는 좋았다. 100점짜리 외교는 없다. 그러나 이번에 윤 대통령은 국익을 바라보고 세계질서를 고려하며 최선의 결정을 했다. 시대정신은 후속조치들 보다 더 큰 명제다. 민주당은 그것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소통과 협력 기반으로 미래의 문 열어

자세히 점검해보자. 이번 정상외교는 얽힌 실타래를 풀기 위한 출발점에 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단초는 강제징용 피해 배상금 제3자 변제라는 양보안을 마련한 한국 정부가 제공했다. 그랬기에 기시다 총리가 “어려운 결단을 내린 윤 대통령에게 마음으로부터 경의를 표한다”고 말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방문,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의 정상회담은 한일이 불통과 갈등으로 대립해 온 10여년을 청산하고 소통과 협력을 기반으로 한 미래의 문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미국의 외교전문가들의 반응도 주목된다. 일본의 추가적인 호응이 양국의 선순환적 관계 형성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 학계의 흐름도 진취적이다. 과거사가 미래를 향한 협력을 가로막지 않도록 일본 정부가 추가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여론에 일본 정부는 답해야 한다. 성숙한 자세로 행동에 옮겨야 한다.

특히, 북핵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지소미아 정상화는 시의적절한 조치다. 북한은 또 탄도미사일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올 들어서만 7번째 탄도미사일 발사다. 사흘 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쏜 만큼 북한은 7차 핵실험을 위한 명분 쌓기 수순을 밟을 것이다. 북핵에 대응한 확장억제 실효성을 높여가기 위해선 한·미·일 협력이 필수적인데, 이는 한·일 관계 정상화 없이는 기대하기 어렵다.

추가 호응조치 반드시 이끌어 내야

다음은 후속조치를 상세히 보자. 다음 달 윤 대통령의 방미와 5월 일본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에서의 한·미·일 정상 연쇄회담은 또 다른 외교 시험대라 할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라도 한일 정상회담에서 불거진 논란을 해소하려는 양국 정부의 관계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강제징용 해법과 관련, 전경련과 일본경제단체연합회는 ‘한일·일한 미래 파트너십 기금’을 창설해 양국 교류를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다음 달 한미 정상회담, 5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 초청, 여름 기시다 총리 답방 등 주요 외교 일정을 통해 일본의 추가 호응조치를 반드시 이끌어 내야 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제3자 변제 배상안에 반대하는 징용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을 윤 대통령이 직접 이행하는 정성을 보일 필요가 있다.

이번 회담에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해법에 대한 일본의 자세에는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한 ‘제3자 대위변제’ 방식에 전범기업인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 등이 참여하지 않은 것은 실망스럽다. “역사인식은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고 하면서도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사죄하지 않은 건 우리 입장에선 아쉬운 일이다. 그렇다고 해도 안보·경제 부문에서 거둔 상당한 성과까지 폄훼할 일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무릅쓴 결단이 아니었다면 얻을 수 없던 것들이다.

독도 애매한 태도…일부 사안 씁쓸한 뒷맛

독도는 타협할 수 없는 영토 문제다. 이런 사안을 실무 방문 형식으로 마련된 정상회담에서 사전 준비 없이 거론하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다.

그런데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의 착실한 이행과 함께 독도 문제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전했다고 보도했고, 기하라 세이지 관방 부장관마저 기자들에게 정상회담에서 독도 문제가 포함됐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우리 대통령실이 즉각 부인했고,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에 이어 박진 외교부 장관까지 나서 보도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발표했지만 일본 정부는 분명한 입장을 밝히는 대신 애매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상대국이 공식적으로 문제를 삼기 곤란하도록 언론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예민한 양국의 현안을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제3자 변제안에 대한 국내 반발은 증폭되고 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중 일부는 이를 거부하고 피고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의 한국 내 자산을 추심하겠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결과에 따라 큰 파장이 이어질 수 있다.

너무 신중했던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언행도 여러 측면에서 아쉽다. 기시다 총리는 “어려운 결단과 행동을 취한 윤 대통령에게 경의를 표한다”면서도 정작 자신은 호응 조치에 인색했다. 윤 대통령은 마지막 쟁점인 구상권 행사에 대해서까지 “상정하지 않고 있다”며 전향적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는 끝내 ‘반성’ ‘유감’ 등 직접적인 표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기시다 총리는 2015년 외무상으로 한·일 위안부 협정을 총괄했던 만큼 한국 내 ‘죽창가 세력’의 존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전경련과 게이단렌이 주최한 14년 만의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행사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점도 실망스럽다. 윤 대통령은 물론이고 전경련 회원사가 아닌 국내 4대 그룹 총수까지 총출동했지만 기시다 총리는 정상 참석 관례를 깨고 불참했다. 일본제철 등 징용배상 소송 피고 기업의 불참 역시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정상회담을 “한·일 관계 정상화를 향한 큰 발걸음”으로 평가하고 환대한 그의 호의를 아직은 믿고 싶다. 4월 지방선거, 7~9월로 예상되는 방한 등의 정치적 일정을 고려한 일본 측의 후속조치를 기대한다.

민주당 허상…‘김대중 친일의 수괴’ 자가당착 빠져

여야는 “일본 하수인의 길을 선택했다”(이재명 민주당 대표), “수구꼴통 같은 반일 선동질에 매달린다”(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등 격한 표현을 써가며 다퉜다. 엄중한 안보 위기를 타개할 ‘대승적 결단’이란 정부의 호소가 무색하게 이번 회담이 심각한 국론 분열의 진앙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민주당은 지난 5년간 한·일 관계를 최악의 구렁텅이로 만든 것에 대한 반성 없이 또 ‘죽창가’를 부르고 있다. 무엇이 국익을 위한 길인지 생각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의 행태를 보면 향후 수권 정당이 될 국제정치 안목을 과연 갖추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 이재명 대표는 “일본에 조공을 바치고 화해를 간청하는, 항복식 같은 참담한 모습이었다” “영업사원이 결국 나라를 판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전혀 틀린 것 같지 않다”고 폄하했다. 거리의 민주당 현수막에는 ‘이완용의 부활’이라는 표현도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 귀국 다음 날인 그제 서울 도심에선 이번 회담을 ‘조공외교’에 빗댄 대규모 비판 집회가 열렸다. 강제징용 배상을 비롯한 현안 전반에서 일본에 일방적 양보만 했다는 것이다.

진보 진영 시민단체들이 주말 서울시청 광장 일대에서 주최한 범국민 규탄대회에는 당 소속 의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박홍근 원내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 등 야당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굴욕 외교를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급기에 한일관계를 ‘김대중·오부치’ 시대로 복원하고 계승하려는 윤 대통령의 결단을 ‘굴종’이라고 매도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친일의 수괴’로 모는 자가당착에 빠졌다.

일본 측의 사과나 반성에 집중 했어야

안타까운 것은 한일 정상회담을 굴욕 외교라고 비난하는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의 행태다. 이재명 대표는 자위대 군홧발이란 원색적 표현까지 비난에 동원했다. 사법 리스크로 처지가 옹색해졌기로서니 말의 품격까지 잃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이 어제도 미사일을 쐈다. 민주당은 북핵 위협 속에 한미일, 한일 협력을 비판하는 것이 북한 주장과 다름이 없다는 사실을 되새겨 막말을 자제하길 바란다.

북한의 도발이나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한일 관계 개선을 통한 한미 동맹 강화가 아닌 다른 대안이 있다면 이를 내놓아야 한다. 정부의 부실한 대일 외교를 지적하는 것과 비례해 일본 측의 사과나 반성을 강력히 촉구했어야 한다.

민주당과 이 대표의 주장 가운데 확실한 팩트는 일본 총리가 진심 어린 사과나 반성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로 유감이고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거대 야당 대표가 대통령의 해외 정상외교 와중에 ‘항복식’·‘숭일(崇日)’ 등의 표현을 쓰면서까지 비난해야 했는지, 이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론 분열

외교가에선 “한일관계의 90%는 국내 정치”라고 말한다. 윤 대통령이 아무리 “우리 국익은 (한일) 공동 국익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그게 중장기적으로 옳은 진단이라 해도, 당장의 국내 정치적 파고를 넘지 못하면 이번 정상 간 합의도 사상누각이기 쉽다.

불똥은 이미 국회로 튀어 17일 국방위원회 전체 회의가 결국 파행됐다. 그렇지 않아도 대립각이 첨예한 상황인데, 한·일 정상회담 이슈까지 더해지면서 국론 분열만 더 가중되는 모양새다.

문제는 국민 사이에도 적잖은 견해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이를 완화하고 접점을 찾는 게 정치의 역할인데, 지금은 앞장서서 그 분열에 올라타는 꼴이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금의 국론 분열이 오래가서는 안 된다. 국제정치·경제 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이다. 그러려면 회담을 준비한 정부의 향후 움직임이 매우 중요하다. 정부는 더 적극적으로 국민의 눈높이와 감정에 맞는 후속조치를 일본 측에 계속 요구해야 한다. 앞으로 일본 총리의 답방도 예상되는 만큼 그런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

국가 내부의 적(敵) 한치도 없어야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룬 가장 큰 성과는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강제징용 등 다시 불거진 과거사 때문에 망가진 관계를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공식적으로 천명했다는 점이다.

반도체 수출 규제 해결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완전 정상화가 그 예다. 북한의 핵 위협, 미중 대립 등 동북아를 둘러싼 긴장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미·일간 협력이 필요하다. 기시다 총리는 일본 언론이 지적한 바 대로 과거사에 대한 성의 있는 사과,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야 마땅하다.

과거사에 얽매여 언제까지 한·일 관계가 제자리걸음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기술패권을 둘러싼 미·중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 여파는 여야가 힘을 합쳐도 헤쳐 나가기 쉽지 않다. 여야와 한국 정부는 역시 모처럼 생긴 기회를 살려 나가야 할 것이다. 나라의 장래와 국익(國益) 앞에 발목을 잡는 국가 내부의 적(敵)이 한치도 없어야 한다. 역사적 기회는 살려내야 한다. 대각성을 요구한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하였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하였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YS 대권전쟁>,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