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방’과 12만 원짜리 빙수 [金亨錫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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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방’과 12만 원짜리 빙수 [金亨錫 시론]
  • 김형석 논설위원
  • 승인 2023.04.30 1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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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물가 억누르기는 한계”
“왜곡된 고물가, 잡아나갈 주체는?”
“건전한 젊은이 모임에 기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형석 논설위원)

사진은 한국은행이 지난 27일 공개한 서울 중구에 준공된 한국은행 신축 통합별관 로비에 걸린 물가안정 현판 모습. ⓒ 연합뉴스
김형석 논설위원은 “한국의 시장경제를 이끌어갈 젊은이들, 물가 왜곡을 막고 물가 안정을 지켜낼 ‘거지방’에 정부와 시민의 응원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30일 전했다. 사진은 한국은행이 지난 27일 공개한 서울 중구에 준공된 한국은행 신축 통합별관 로비에 걸린 물가안정 현판 모습. ⓒ 연합뉴스

카카오톡에서 ‘거지방’을 검색하면 수백 개의 단체 채팅방이 뜬다는 기사가 지난달 한 언론 보도에 나왔다. “설마…”하고 들어가 보니 정말 수많은 채팅방이 개설돼 있었다. 내용은 거지들의 대화가 아니라 지독하게 돈을 절약하는 건전한 내용들이다. 주머니 사정이 얄팍한 젊은이들이 극단적인 절약 모드로 들어가며 서로를 채찍질, 거지방이 양산되고 있는 중이다.   

반면 비슷한 시기 한 호텔의 빙수 값이 12만 원을 넘고 골프장 그늘집의 탕수육 값이 14만 원이나 한다는 기사가 같은 신문에 나왔다. 골퍼들에게 어느 골프장이냐고 물어봤더니 확인할 필요도 없이 요즘 골프장 그늘집의 음식값이 상상을 초월한다고 귀띔해 줬다. 하긴 고급 골프장과 5성급 이상 관광호텔의 ‘물가’는 이미 한참 전부터 시중 물가와는 동떨어지게 형성돼 왔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 시중 물가가 그 뒤를 따라가는 형국이 이어져 왔다.   

‘거지방’과 한 그릇에 14만 원하는 탕수육. 이를 두고 단순히 빈부격차가 심화하는 현상이라고 말하기엔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상류층 대상 물가와 빈곤층의 살림살이가 이렇게 심하게 차이 날 때 시장의 전반적인 물가는 주로 어느 쪽에 의해 견인되는 것일까?

정부 개입의 한계

정부는 지난달 외식업계 관계자들에게 음식값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부탁했다. 형식은 물가 안정 간담회이고, 표현은 부탁 내지 호소이지만 업계는 당연히 단순한 부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스타벅스 롯데리아 등 언제든지 당국의 각종 행정조사와 세무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큰 기업들이 정부의 요청을 단순한 부탁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어찌됐든 정부가 경영 부담을 덜어준다고 하고 실제 외식 물가 상승률이 지난해 9월에 무려 9.0%에 달했던 점을 감안, 업계가 당분간 가격 인상을 자제할 것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가격 인상 자제가 정부의 의지와 업계의 노력만으로 지속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주요 원자재 가격과 생산자 물가가 진정되지 않는 한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소비자물가의 선행지표인 생산자 물가가 오름세를 멈추지 않고 환율 상승, 게다가 여타 소비자 물가 상승의 고공행진이 멈추지 않는데 어떻게 가격을 계속 묶어둘 수 있을 건가. 결국 물가 안정도 행정지도보다는 시장의 기능에 맡기는 게 원안일 텐데 그 시장경제의 흐름을 어느 세력이 주도하느냐가 관심의 대상이 되는 셈이다. 

그런 이유 등으로 인해 이제까지 물가 상승을 주로 견인해 온 상류층 내지 부유층보다는 새롭게 조직화한 서민층, 젊은 층들의 ‘반란’에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물가 인상(引上)’을 막는다

‘물가 인상’이란 말은 어색하기도 하고 쓰기에 적합하지도 않은, 잘못된 표현이다. 물가를 끌어올린다는 게 정상적이지 않은 행태이기 때문이다. 봉급 인상이나 가격 인상 같은 데나 쓸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알게 모르게 물가 인상을 주도한 세력이 있어온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인 게 업계의 가격 담합행위고, 앞에서 예시한 고급 골프장, 고급 관광호텔 등 ‘왕초 업소들’의 가격 인상 주도 행위다. 

미국 같은 큰 나라, 큰 부자와 고급 소비처가 많고 시장경제 체제가 확고히 자리잡은 나라에서는 부자들의 소비 행태가 웬만해서는 서민 물가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이미 시장이 확연하게 구분돼 왔고 시민들도 굳이 ‘황새를 따라갈’ 생각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골프장의 14만 원짜리 탕수육이 시중 중국식당 측에도 영향을 미쳐 슬금슬금 가격을 올리게끔 부채질한다. 10만 원짜리 돈가스도 소문을 타고 시장통의  돈가스 식당에까지 알려져 시장 식당도 결국 몇천 원 올린 메뉴판을 새로 쓰게 만든다. 

소비자들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평등 의식’은 소비 패턴에서도 우리 서민들을 부자들과 동일해지고 싶게 한다. 특히 가정의 달인 이번 5월에 있을 가족모임에서는 소문 듣고 조르는 손자들에게 몇만 원대 빙수도 한껏 기분 내며 사주는 가난뱅이 할아버지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정부가 암만 막아도 한국에서 부유층과 고급 업소들이 ‘물가 인상’을 얼마간 주도한다고 얘기할 수 있는 거다.  이걸 막을 세력이 나타났대서 기대를 걸어본다. 앞서 ‘거지방’으로 예시한 젊은이들이다. 

‘거지방’이 새로운 트렌드가 되기를!

기성세대는 허세가 심했다. 압축성장 과정에서 아끼기만 하며 못 살아온 데 대한 반작용일 수도 있다. 남녀 공히 명품을 탐하고 과시욕이 컸다. 이른바 MZ 세대로 불리는 젊은이들은 그런 콤플렉스에서 거의 해방된 듯하다. 자연스러운 세대 흐름의 결과고, 그래서 이들은 ‘없이도 잘 사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모습이다. 

거지방에 올라온 리얼한 표현들이 그런 점들을 짐작게 해준다. 5000원짜리 아이스 카페라테를 사 먹었다는 대학생에게 “미쳤다” “그건 생일에나 마시는 거다”라는 질타가 쏟아졌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 사진을 올려도 방 식구들에게 야단맞는다. 만 원짜리 외식하지 말고 구내식당 이용하기. 도시락 싸오기. 한 달에 30만 원 이내 소비하기. 시험 기간에도 노트북 갖고 커피숍 가지 말기 등. 이곳에선 커피가 기호품보다는 사치품으로 인식돼 가는 분위기다. 그래서 ‘절약방’으로도 불린단다.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지한 분위기다. 

시장경제는 원래 이런 자연스럽고 소탈한 서민 시장이 모태가 돼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으로 자리 잡았다. 대기업이나 부유층이 중심은 아니었다. 새 한국의 시장경제를 이끌어갈 젊은이들, 물가 왜곡을 막고 물가 안정을 지켜낼 ‘거지방’에 정부와 시민의 큰 응원이 있기를 기대한다. 

김형석(金亨錫)은…

연합뉴스 지방1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산업부, 전국부, 뉴미디어실 기자를 지냈다. 생활경제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경력으로 △2007년 말 창간한 신설 언론사 아주일보(현 아주경제)편집총괄 전무 △광고대행사 KGT 회장 △물류회사 물류혁명 수석고문 △시설안전공단 사외이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외이사 △ 중앙언론사 전·현직 경제분야 논설위원 모임 ‘시장경제포럼’ 창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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