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났다고 끝난 게 아니다’…오세훈·박진, 화려한 복귀 [옛날신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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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다고 끝난 게 아니다’…오세훈·박진, 화려한 복귀 [옛날신문 보기]
  • 김자영 기자
  • 승인 2023.05.06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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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 재선 후 10년 간 험로…4·7 재보궐서 부활
박진, 종로 3선 불구 8년 공백…화려 스펙 강남권 어필, 원내 복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자영 기자]

ⓒ 시사오늘 (그래픽 = 김유종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진 외교부 장관은 8~10년 정도의 공백기를 가진 뒤 성공적으로 정치권에 귀환한 케이스다. ⓒ 시사오늘 (그래픽 = 김유종 기자)

정치는 한 번 쉬면 나락으로 빠진다고 하지만, 한 차례 공백기를 가진 뒤 승승장구하는 케이스도 드물게 존재합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40대 중반의 나이에 서울시장이 되지만,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고 10년 뒤에 부활했습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19대~20대 국회가 들어섰던 8년간 정치적 공백기를 가졌지만, 이후 4선 국회의원에 이어 외교부 장관까지 역임했습니다. 

오 시장은 최초의 4선 서울시장입니다. 40세에 16대 국회 입성, 2006년·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연이어 당선됐습니다.  그러던 중 2011년 무상급식 논란이 불거집니다. 그의 정치 인생을 크게 바꿔놓은 사건입니다. 

오 시장은 직을 걸고 주민투표를 실시했으나 저조한 투표율로 개표조차 하지 못하고 사퇴하게 됩니다. 한때 유력 대선주자로 거론됐던 오 시장의 존재감은 점점 약화됐습니다. 10년 후 2021년 4·7 재보궐 선거가 열리기 전까지 말입니다. 

오 시장은 故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공석으로 열린 재보궐에서 당선됩니다. 5년 사이 국민의힘은 국정농단 사태, 당 내부 극우화, 7회 지선·21대 총선의 연이은 패배로 위기에 처했습니다. ‘중도 보수’ 성향의 오 시장은 그러한 당 쇄신에 기여할 인물로 호출됐습니다. 보수 진영은 4·7 재보궐을 기점으로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정권교체 후 열린 8회 지방선거에서 오 시 장이 2위 후보와 20% 가까운 득표율 차이를 벌리며 승리하기도 하죠. 이후 그는 여권 차기 대선 주자로 재부상했습니다. 

오 시장 측 측근으로 분류되는 한 관계자는 3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오세훈 시장은 국회의원, 서울 시장을 연이어서 하며 젊은 나이에 승승장구한 케이스다. 뼈 아픈 시기지만, 공백기가 오히려 세계 흐름이나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을 연구하고 깊이 성찰하는 시간이 됐다. 서민의 삶을 깊이 생각해 보게 됐고, ‘약자와의 동행’ 슬로건도 그 시간을 거쳐 나온 것”이라며 “젊어서 탄탄대로의 길만 갔다면 깊이 있는 고민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외교통’으로 꼽히는 박진 외교부 장관은 경기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외무고시에 합격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았습니다. 문민정부 대통령비서실 해외담당 공보비서관를 지냈고, 2001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 공보특보로 정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정치 1번지로 꼽히던 종로에서 무려 3선을 역임했습니다. 

하지만 2008년 총선에서 지역구 주민 행사에 참여해 지지를 호소하는 사전선거운동을 벌인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차명 기부액을 수수한 혐의로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벌금 100만 원 미만으로 의원직은 유지했으나 타격을 입어 이후 8년간 험로를 걷게 됩니다.

19대 총선 불출마, 20대 총선서 당 내부 경선 패배. 박 장관은 공백기 동안 대학 교수, 연구원 이사장직 등을 지냈는데요. 측근 전언에 따르면 정계 은퇴나 해외에서 공부할 것을 고려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21대 총선 과정에서 통합당의 강남구 을 후보자가 논란에 휩싸이자, 당은 박 장관을 불러들입니다. 강남은 전통적인 보수 강세 지역이지만, 20대 국회에선 민주당 소속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강남을 현역 의원이었습니다. 박 장관은 12년 만에 출마한 선거에서 과반 득표율(50.94%)을 얻고 4선 의원이 됐습니다. 

박 장관의 한 측근은 3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박진 장관은 기본적으로 정치력이 있다.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 행정학 석사, 옥스퍼드대 정치학 박사 학위 취득, 여러 외국어 구사 등 스펙이 뛰어나다. 이 점이 강남 유권자들에게 어필됐다”고 전하며 “또한 대화나 회의를 해도 상대방의 이야기를 우선 들어주고 편하게 해주는 성품을 지녔다. 급히 21대 총선에 출마했을 때, 전에 함께한 보좌진들이 도왔다. 사람을 잘 쓰는 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더 과거의 사례를 살펴보면, 김중권 전 김대중 대통령(DJ) 비서실장의 경우도 있습니다. 김중권은 전두환·노태우의 민정당에서 TK 지역 (경북 울진) 3선, 노태우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 비서관까지 맡은 인물이었기에,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것은 당시 파격 인사로 거론됐습니다. 그는 정치자금을 전달한 연으로 DJ를 만나게 됐다고 합니다. 

14대 총선 낙선,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고 다른 정당 후보로 출마한 결과 낙선. 연이은 패배를 맛봅니다. 하지만 15대 대선을 앞두고 DJ 지지를 선언하며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해 전과 다른 길을 걷습니다.  

 

- 1998년 1월 13일 자 <경향신문> ‘새정부 이사람 (2) 김중권 당선자 비서실장 TK허물 벗고 ‘DJ 그림자’로’ 기사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캡처본

흔히들 ‘권력은 거리’라고 한다. 권력자에 가까울 수록 힘이 센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장인 김중권 전 의원이야말로 실세 중의 실세라고 할 것이다. (중략) 

김 실장이 김 당선자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2년 14대 대선 직전, 정무수석으로 처음 김 당선자를 만났다. 그는 “김 당선자의 집 서가에서 손 때묻은 전문서적을 보고 인식을 바꾸게 됐다”고 회고했다. ‘20억+α설’은 이 때 이야기다. (중략) DJ는 김 실장이 여권의 집요한 ‘20억+α설’ 정치공세에도 불구하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데 감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 1998년 1월 13일 자 <경향신문> ‘새정부 이사람 (2) 김중권 당선자 비서실장 TK허물 벗고 ‘DJ 그림자’로’ 인터뷰 기사 

김중권은 비서실장 이후 새천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 역임까지. 기존과 정반대 되는 노선을 택했지만, 국민의 정부에서 실세로 불릴 정도로 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생각대신 행동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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