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광 “국정원은 탈법의 영역…대공수사 멈출 수 없다” [윤진석의 명사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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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광 “국정원은 탈법의 영역…대공수사 멈출 수 없다” [윤진석의 명사의 철학]
  • 윤진석 기자
  • 승인 2023.05.05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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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 시대 역행”
“드러나지 않은 잠복간첩 도처 암약”
“국정원 대공수사권 멈출 수 없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우리 시대는 잘 가고 있을까?
사회 각계 전문가나
저명한 인사들을 만나 
국가 어젠다에 필요한
방향성을 제시해 본다.

  • 국가 안보 방향성

​​​​​​“국정원 간첩수사는 탈법의 영역에서 바라봐야
…회색지대의 대공수사권 멈춰선 안 돼”

국가정보기관 베테랑 ‖ 장석광 

 

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동국대 교수)은 국정원에서 28년간 몸담으면서 대공수사 분야의 베테랑으로 정평이 나있다.ⓒ시사오늘 윤진석 기자
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동국대 교수)은 국정원에서 28년간 몸담으면서 대공수사 분야의 베테랑으로 정평이 나있다.ⓒ시사오늘 윤진석 기자

 

1987년 11월 28일 오후 11시 27분.

‘슝----’

대한항공(KAL)기가 긴 꼬리표를 남기듯 굉음을 내며 바그다드공항을 이륙했다. 이윽고 구름 사이를 가로질렀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귀가 먹먹해져 왔다. 비행기 안에는 110여 명 남짓의 승객이 앉아 있었다. 중동에서 일하다 한국으로 귀국하는 근로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항공기는 다음날 오전 5시 5분 방콕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 공항에 도착했다. 

‘짹각짹각’ 

어느 좌석 위 선반에 누구의 것인지 모를 비닐쇼핑백이 올려 있었다. 바삐 움직이는 승무원과 들뜬 분위기의 승객들 모두 이 쇼핑백 존재에 관심을 두는 이들은 없었다. 머지않아 고국 땅을 밟을 생각에 소풍 가는 아이처럼 상기된 얼굴들이 군데군데 보일 뿐이었다. 

알고 보면 비닐쇼핑백 안에는 폭파용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술로 위장한 액체폭약이 들어있었다. 정확히 9시간 후 폭발물이 작동되게 설치됐지만, 누구도 이를 알지 못했다. 

아부다비 공항에서부터 비닐쇼핑백을 남겨둔 채 유유히 자리를 이탈해 비행기를 빠져나간 두 사람 외에는. 

이들이 두고 내린 쇼핑백 안에는 시한폭탄이 들어있었다.

‘짹깍째깍’

9시간 후 ‘1987년 11월 29일 바그다드에서 서울로 가던 칼기 858편 보잉 707기, 미얀마 부근에서 공중폭파….’ 라는 속보가 세계 전역에 보도됐다.  

다름 아닌 칼(KAL)기 폭파 테러범 북한 공작원 김현희와 김승일의 소행이었다.  

 

시대별 간첩 사례


칼기 폭파 사건.

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동국대 교수)이 1980년대 대표적 간첩 사례로 들려준 얘기다. 

시대별 간첩 상황을 물을 때였다. 그와는 지난 4월, 2월, 작년에 걸쳐 서울 중구와 강남 등에서 세 번 만날 기회가 있었다. 

“김현희가 북한 간첩인 것이 들통 난 건 의외의 부분에서였어요.”

이 말을 시작으로 장 총장은 자신이 예전 한 매체에 기고한 글을 보여줬다.
 

“1987년 12월 초순, TV에서 대통령 선거 유세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방송을 보던 한 남자가 옆의 여자에게 일본말로 ‘당신 집 텔레비전 브랜드는 뭐요?’라고 물었다. 뜬금없는 질문에 여자가 얼떨결에 "쯔쯔지"(つつじ, 진달래)라고 답했다. 남자가 이번에는 한국말로 "이 사람아! 진달래는 북한 텔레비전이잖아"라며 싱긋 웃었다. 순간 여자는 숨이 막혀 오는 걸 느꼈다. 남자는 안기부 수사관이었고, 여자는 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였다.”
-장석광, 2022년 12월 <자유일보> 칼럼 중- 

 

칼기 폭파 사건은 북한 간첩 의해 벌어진 것으로 붙잡힌 김현희를 둘러싼 기사가 한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있다. 신문은 1988년 1월 16일 조선일보 기사 중.ⓒ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캡처
칼기 폭파 사건은 북한 간첩 의해 벌어진 것으로 붙잡힌 김현희를 둘러싼 기사가 한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있다. 신문은 1988년 1월 16일 조선일보 기사 중.ⓒ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캡처

“또 어떤 사례가 있나요.”

이 말에 그는 1995년 부여 무장간첩 김동식 사건을 비롯해 2006년 9년 간 중국을 오가며 간첩 활동을 벌이다 붙잡힌 일심회 사건 등을 열거했다. 

28년간 국가정보원(국정원)에서 몸담은 장 총장은 대공수사 분야에서만큼은 저명한 인사다. 국정원 수사처장과 국가정보대학원 수사학과 교수를 지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더불어민주당이 대공수사권을 폐지하는 법안을 발의했을 때 이를 막고자 동분서주한 인물이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2020년 8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넘기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국정원 출신들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퇴직 대공수사관들 모임인 덕우회 회원들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에 관한 부당성을 성토했다. 장 총장은 이들의 생생한 육성을 취합해 법안을 대표발의한 민주당 의원한테 전달했다. 

해당 자료에서 덕우회 회원들은 한목소리로 대공수사권은 폐지돼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주무관청의 수사권은 수많은 간첩사건을 적발해 국가안보에 공헌해 왔으며 개혁이란 이름으로 폐지돼야 하는 대상이 아니고 잘못된 점은 계속 보강돼야 한다.”

좀 더 소개하면 이렇다. 
 

“80년 내란음모 혐의로 본인이 직접 고초를 겪고 사형판결까지 받았던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수사권 폐지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일심회 사건으로 청와대와 마찰을 빚었던 노무현 대통령 당시에도 주무관청의 대공수사권은 폐지되지 않았다. 두 분 대통령 밑에서 원장을 지낸 이종찬-김승규-김만복 전 원장들도 ‘대공수사를 경찰에 맡기는 것은 30~40년 전 콘셉트다. 시대조류에 역행하는 것이다’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라며 반대하고 있다. 심지어 현 정부 직전 원장이었던 서훈 원장도 청문회에서 ‘대공수사를 가장 잘 하는 기관은 주무관청이다’라고 말했다. 누구보다도 주무관청을 잘 알고 아끼는 김병기 의원이 ‘주무관청 대공수사권 폐지’에 왜 총대를 메는지 모르겠다. 서 원장은 ‘정권은 유한해도 국가정보기관은 영원하다’고도 했다. 역사는 돌고 돈다’

- 2022년 장 교수가 취합한 국정원 퇴직자(1) 글 중-

“국정원에 수사권이 없어진다면 제일 좋아하는 집단은 북한일 것이다. 항간에 대통령을 간첩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전직 대공 수사관들은 할 말이 없어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런 때에 간첩 잡는 것을 최고의 업무로 생각하는 주무관청에 간첩 수사권을 폐지한다면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나?”

- 2022년 장 교수가 취합한 국정원 퇴직자(2) 글 중-


하지만 이들의 외침은 수포로 돌아갔다. 

지난 2020년 12월 13일 민주당은 단독처리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 결과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은 3년의 유예 기간을 거친 뒤인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폐지되고 만다. 

국정원이 갖고 있던 대공수사권이 통째로 경찰에 넘어가는 것이다. 

- 심정이 어떻습니까.

“참담하죠.”

이 말부터 한 장 총장은 “전 세계 정보기관들은 해외 정보와 국내 보안 기능을 통합하려는 추세인데 국정원의 수사권 폐지는 거꾸로 가고 있다”고 일갈했다. 

“경찰만 단독으로 국가안보 수사권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세네갈, 이탈리아, 파나마, 에콰도르,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네팔, 필리핀, 캄보디아 등밖에 없어요. 1961년 국정원이 생긴 이래 60년간 대공수사권을 지켜오며 세계에서도 인정받은 우리나라건만, 앞서 열거한 나라들의 정보기관과 비슷한 수준으로 가려하고 있는 겁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은 2024년부터 경찰로 이관되게 된다. 장 총장은 국정원의 전 분야가 간첩 수사에 특화돼 있어 경찰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연합뉴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은 2024년부터 경찰로 이관되게 된다. 장 총장은 국정원의 전 분야가 간첩 수사에 특화돼 있어 경찰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연합뉴스

장 총장은 올해 12월 31일 자정을 기해 사라질 법안을 생각하면 무력감마저 든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아닙니까. 1953년 휴전 이후 2004명의 간첩이 검거됐습니다. 최대 60개로 추정되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집단과 70여 년간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거지요.”

- 내년부터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이 폐지되는 건데 현실적으로 방법이 없지 않나요.  

“맞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적으로 국정원법 개정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요.”

-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래서 나는 경찰이 먼저 나서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을 연기해 줄 것을 요청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 경찰은 대공수사권 역량이 안 된다고 보는 건가요. 

“단 한 번이라도 대공수사 현장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경찰의 단독 대공수사권에 공감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예요.”

- 왜죠?

“역으로 이 점을 물어보겠습니다.”

침을 삼켰다. 

“간첩 수사를 전담할 전문 인력과 장비, 예산을 확보하고 있습니까. 김정은 직할 체제 당·정·군의 모든 북한 대남공작조직들을 대적할 수 있는 조직을 구축해뒀습니까. 초대형 대공수사권이나 북한 급변사태 발생 시 국가 역량을 할 수 있는 법·제도적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까. 외국 정보기관의 정보협력 및 해외 정보망은 구축돼 있습니까.”

차례대로 짚어나간 그는 “경찰 중 간첩 수사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은 없지만 북한의 간첩들은 최대 엘리트”라고 했다. 

- 그들은 어떻게 다른가요. 

“북한의 간첩들은 최소한 10~15년 정도 훈련받은 사람들이에요. 북한은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서 대공수사범인 간첩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5년의 교육을 마치면 다시 전문 대남공작부서에 배치되고 폭파, 암살 등 특기 교육을 받게 됩니다. 침투 직전까지 수개월 동안 해외 현지와 적응 교육까지 거치고요.” 

또한, 이들은 “죽음을 불사하는 자들이 많아 확신범이라 해도 자백을 받아내기도 어렵다”고 했다. 나아가 “범행의 모의나 실행이 북한이나 제3국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 범죄 증거 수집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국가 간 공조도 힘든데다 첩보 수집에서 사법처리까지 십 수 년이 걸립니다. 그들을 조사하려면 더 많은 역량이 있는 사람들이 수사해야 합니다.”
 

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동국대 교수)은 국정원에서 28년간 몸담으면서 대공수사 분야의 베테랑으로 정평이 나있다.ⓒ시사오늘 윤진석 기자
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동국대 교수)은 국정원에서 28년간 몸담으면서 대공수사 분야의 베테랑으로 정평이 나있다.ⓒ시사오늘 윤진석 기자

- 간첩 현황을 볼 때 위험한 상황이라고 봅니까.

“그렇죠.”

실제 청주, 창원, 전주, 제주, 진주에 걸친 간첩단 사건부터 국회 내부의 간첩 침투 혐의 등이 잇따라 전해지면서 국가 안보 공백이 우려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공개된 간첩이 아니더라도 외화벌이나 정보수집만 하는 간첩도 있고 잠복 간첩까지 생각하면 그 수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했다.

- 잠복간첩은 뭔지요?

“‘5년이고 10년이고 20년이고 활동하지 말고 있어라.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가 오더 내리면 임무만 수행하면 된다.’ 그런 식의 간첩들이 수면 아래에 있다는 말입니다.”

김수현이 남파 간첩으로 분해 주연한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생각났다. 

“그들은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우리 사회가 곤란할 때, 예컨대 선거 혼란 상황이 벌어질 때 선전선동을 통해 혼란을 부추길 수 있습니다. 이런 활동까지 생각하면 실제 간첩 실태는 우리가 체감하고 알려진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다고 생각합니다.”

- 관련 사례 중 전해줄만한 게 있습니까.

“국정원 근무 당시 잠복간첩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운을 뗀 뒤 말을 이었다. 

“그는 철도고등학교를 나왔고 지하철 공사에 취업했습니다. 들어가면 지휘통제실이라는 데가 있습니다. 선로를 통제하는 등 상당히 중요한 업무가 이뤄지는 곳이죠. 만약 그런 곳에 배정됐다면 대형 참사가 날수도 있는 건데 다행히 전에 검거됐어요. 이처럼 혼란을 조성할 필요가 있을 때 북한이 간첩에 지시를 내린다면 대한민국은 한순간 엉망일 수 있는 거죠.”

생각만 해도 아찔한지 눈을 질끈 감았다. 이어 그는 “판검사나 언론인들에도 간첩이 없다는 것을 보장하지 못한다”며 과거 김일성 발언을 소개했다. 
 

# 김일성 발언 중 

“1970년 김일성이 간첩 교육하는 기관에서 강의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남한에 가서 지하당을 구축하는 것도 좋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남한의 엘리트들을 포섭하는 것이다. 남한에서는 사법고시, 행정고시라는 게 있다.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포섭해서 그들을 집중 키워라. 20~30년 지원해라.”

장 총장은 이런 과정을 통해 북한에 포섭된 인사들이 사회 각 분야에 걸쳐 퍼져 있을 것이라고 봤다. 특히 “결정적 순간 북에서 이용하기 전에는 그들 가운데 자신들이 포섭돼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지금도 여전히 암약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북의 대남선전술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은 2024년부터 경찰로 이관되게 된다. 장 총장은 국정원의 전 분야가 간첩 수사에 특화돼 있어 경찰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은 체포된 간첩단ⓒ연합뉴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은 2024년부터 경찰로 이관되게 된다. 장 총장은 국정원의 전 분야가 간첩 수사에 특화돼 있어 경찰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은 체포된 간첩단ⓒ연합뉴스

- 북의 치밀한 대남선전선동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김정일이 인터넷을 새로운 해방구라고 강조한 이후 북한은 인터넷 공간을 통한 대남 선전선동 활동을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치밀하게 전개해 오고 있어요.”

- 예를 들면요.

“선전선동과 관련해 1:10:100의 방식이란 것이 있습니다. 한 곳의 원점에서 선전선동 글을 작성하면, 원점을 추종하는 10개의 매체가 이를 퍼나르는 식으로 거의 실시간으로 확산 유포시키는 방식입니다.”

북한의 대남선전 활동에 대입하면 어떻게 될까. 장 총장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전개 방식이다. 

△북한 노동당 산하의 문화교류국이나 국가보위성 같은 대남공작부서가 선전선동 글을 만든다. 
△대한민국 정부의 정책을 비방하거나 남남갈등을 조장하는 것, 총선·대선 개입을 선동하는 글들이다. 
△선전선동 글은 중국이나 일본의 간첩망을 통해 전 세계 공작거점으로 하달된다.
△각 공작거점들은 다시 ‘우리민족끼리’ 등 400여 개의 위장 또는 친북 SNS에 선전선동 글을 유포한다. 
△북한을 추종하는 국내의 종북·이적단체들이 이를 다시 또 국내에 퍼나르는 식으로 거의 실시간대로 국내에 확산‧유포 시키고 있다.

 

탈법의 영역 


장 총장은 여기까지 설명하다 “문제는 북한의 선전선동 활동에 우리가 대응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우리는 방어력이 약합니까.

“대한민국의 현행 실정법만 놓고 볼 때 마땅히 대응할 방법이 없습니다.  소위 ‘댓글 사건’의 여파로 지난 정부 시절 적패로 매도돼 사법처리까지 받은 아픈 기억으로 인해 국정원의 적극적 대응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원을 방문했을 때 심리전을 강조했다고 하는데 국정원 직원들이 얼마나 자긍심과 열정을 가지고 심리전 활동에 임할 것인지 솔직히 나도 의문입니다.”

- 그건 왜 그런가요. 

“대공수사권 폐지만 국정원을 무력화시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군데 한 군데 꼼꼼히 살펴보면 국정원의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습니다. 북한의 국정원 무력화는 성공한 것 같습니다.”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국정원의 심리전 분야에 오랫동안 근무했던 K국장의 말을 전해왔다. 
 

# 다음은 K국장 발언. 
 

“우리가 북의 핵 도발에 대응할 방법은 그나마 심리전 밖에 없다. 현직 때 회담에 참석해 보면, 북한이 회담 때마다 요청하는 것이 대북방송 중단이었다. 우리의 심리전이 그들에겐 그만큼 뼈아프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핵 도발에 대해선 한마디도 못하면서 대북전단 살포는 법으로 금지시켰다. 대북심리전을 사실상 차단시킨 것이다. 도대체 이런 법을 만든 정부나 국회가 대한민국 정부나 국회가 맞는지…. 이런 정부나 국회에 발맞춰 심리전을 포기한 정보기관이나 군은 또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K국장은 장 총장과 국정원 입사 동기다. 그는 “K국장의 말에 100퍼센트, 1000퍼센트 공감하고 지지한다” 고 되풀이했다. 
 

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동국대 교수)은 국정원에서 28년간 몸담으면서 대공수사 분야의 베테랑으로 정평이 나있다.ⓒ시사오늘 윤진석 기자
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동국대 교수)은 국정원에서 28년간 몸담으면서 대공수사 분야의 베테랑으로 정평이 나있다.ⓒ시사오늘 윤진석 기자

 

- 근데 심리전의 약화는 자업자득 아닙니까.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에 대한 폐해가 있었습니다.

“조작 사건이라고 말하니 듣기가 편치 않네요.”

불편한 기색이 느껴졌다. 

“국정원 직원들은 대부분 자기 일만 압니다. 다른 부서에서 하는 일을 알기도 어렵고 알려고도 하지 않아요. 우린 수십 년을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나는 댓글 사건의 구체적인 법적 쟁점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아는 것은 두 가지”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하나는 전 세계 모든 정보기관이 심리전을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심리전 업무 역시 여타 정보활동처럼 반드시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 합법이 아니라면 불법의 영역이요?

“국정원의 활동은 탈법의 영역입니다.”

탈법의 영역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 댓글을 통한 심리전은 언제부터 한 건가요. 

“노무현 정부 때부터였습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줄기세포로 잘 알려진 황우석 교수 사건과 각종 시국사안에서  ‘카더라’식의 확인되지 않은 또는 왜곡된 내용들이 인터넷을 도배하자 국정원에 ‘대응 지시’를 내렸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광우병과 관련된 온갖 유언비어가 나라 전체를 혼돈의 상태로 빠뜨리자, 국정원 심리전단은 다시 방어 차원에서 팩트 대응에 나섰습니다. 시국사안을 중심으로 왜곡된 내용을 올리는 자들의 아이디(ID)를 추적하기 시작했습니다. 국외에서 조직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국정원은 보다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지요.”

- 문제는 정치에 개입했다는 거 아닌지요. 

“물론 대응과정에서 특정 정당과 특정인이 거론된 내용이 일부 없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전제하면서도 “하지만 이런 사례는 전체 대응 활동 중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분량이었다”고 반박했다. 

“그 또한 대응 활동을 하는 요원들의 개인적 성향에 따른 것이지 조직적 대응이라고 볼 순 없습니다. 굳이 드루킹 사건과 비교해 보자면, 드루킹 사건은 여론 조작이 주 목적이라면, 국정원의 경우는 방어 심리전의 일환이었다고 보는 게 타당합니다.”

뒤이어 그는 정치권을 향해 이 점을 환기했다. 

“자유민주국가에서 정보기관의 가장 큰 역할, 즉 존재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흔히들 정보기관은 국익을 위해 더러운 일 또는 회색 지대 일을 은밀하게 처리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것에 동의합니까.”

정보기관에 대한 인식을 묻고 있었다. 

앞서 합법도 불법도 아닌 탈법의 영역에 있는 것이 정보기관이라고 한 말이 다시금 떠올려졌다. 

현재, 그 탈법의 지대가 흔들리고 있다.

“내년 1월 1일부로 경찰이 간첩을 수사하거나 국정원이 간첩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게 될 거예요.”

다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 문제로 넘어왔다. 

“국정원이든 경찰이든 간첩만 잘 잡으면 된다”고 했지만 “모든 수사가 간첩 수사에 특화된 국정원과 달리 경찰은 독점적 행사를 할 수 있는 여력이 못된다”고 했다.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러나 법이 재개정되지 않는 한 뾰족한 수가 없는 눈치. 

- 윤석열 정부여당이 총선에서 이기면 좀 달라질까요?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역으로 되물어왔다. 

어딘지 쓸쓸한 답이라 생각됐다.

하지만, 이런 시각이 무색하게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거듭 밝혔다. 

“북한은 8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단 한 순간도 ‘남조선 해방을 위한 대남공작’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체제를 이어오면서 점점 더 대범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결코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됩니다.

국정원의 정보활동은 합법과 탈법의 영역을 드나들지만 국정원의 간첩수사는 철저히 합법의 영역입니다. 국정원의 간첩수사는 멈춰서는 안됩니다. 계속돼야 합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꿈은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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