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지지한 강삼재, '영욕의 정치 30년 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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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지지한 강삼재, '영욕의 정치 30년 史'
  • 정세운 기자
  • 승인 2012.12.15 19: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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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교동-상도동-무소속을 오가며 정치 재기 도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정세운 기자]

강삼재 전 의원이 문재인 민주당 후보 지지의사를 밝히면서 정치권에 주목을 받고 있다.

강삼재는 김영삼(YS) 전 대통령 직계 정치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김영삼 정부시절에는 43세의 나이로 집권여당의 최연소 사무총장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강삼재의 정치시작은 동교동계다.

그는 1985년 12대 총선에서 신당돌풍을 얻고 국회에 입성한 정치인이다. 그의 지역구는 마산이다. 그러나 그는 당초 동교동계의 김상현과 인연을 맺어 신민당에 들어왔다.

마산 중고와 경희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경남신문사에서 기자생활을 했던 강삼재는 81년 11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했다. 그러나 2만 9천여표를 얻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YS의 단식농성과 민추협발족에 이어 신민당이 창당되자 ‘신민당 공천’을 위해 그는 당시 김상현 민추협 공동의장 권한대행 집을 찾아갔다.

김상현 강삼재 공천위해, 'YS 설득'

▲ 강삼재가 14일 문재인 지지를 선언해 정치권에 주목을 받고 있다. ⓒ시사오늘
김상현과 강삼재를 연결해 준 사람은 송창달 민추협 기획조정실 부실장이다. 김상현은 당시 YS와 함께 민추협을 만들어 동교동계를 관리했다. 공천권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였다. 

김상현은 그날 강삼재를 만나보고 가능성을 인정해 공천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마산은 YS의 고향 같은 지역이다. YS가 강력히 반발할 게 뻔했다. 상도동계에 속한 현역의원인 백찬기가 있었다.

이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김상현이 강삼재에게 공천을 약속했지만, YS에게 이를 말할 처지가 못 됐다. 김상현은 신민당 총재를 맡고 있는 이민우를 찾아가 “마산은 YS 지역구 같은 곳이다. YS가 지원유세를 하면 무조건 승산이 있는 곳이다. 백찬기 뿐 아니라 한사람 더 공천해서 둘을 당선시키자”고 설득했다. 당시는 한 지역구에서 두 사람을 뽑는 중선거구제였다.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이민우가 복수공천을 약속하고 YS에게 이를 말했다. 그러자 YS가 “두 사람 다 당선시키기는 어렵다. 그러다 잘못하면 둘 다 떨어진다”고 항의했다. 우여곡절 끝에 복수 공천했다.

당시 유세 때 YS 부인 손명순 여사가 두 번이나 마산에 내려왔지만 백찬기만 찾고 강삼재는 찾지 않았다. YS는 가택연금 중이라 간접적으로 손 여사가 내려가 지지를 표명했다.

그런데 결과는 완전히 다르게 나왔다. 강삼재는 당선되고 백찬기는 낙선한 것. 특히 강삼재는 12대 총선 최연소 의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강삼재는 당선 후 계보선택을 놓고 무척 고민했다. 동교동 측 도움으로 원내에 진출했지만 YS 영향권에 있는 지역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초선의원 12명이 당내 계파를 초월해 의정활동을 하자는 목적에서 ‘정민회’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지만 결국 상동동계의 길을 걸었다.

강삼재, 최연소 여당 사무총장 맡으며 YS 직계 인사로

이후  신민당 부대변인, 통일민주당 대변인을 거쳐 YS 직계인사로 성장했다.

강삼재는 집권여당인 신한국당에서 선거자금을 총괄하는 사무총장에 올랐다. 그때가 그의 나이 43세였다.
그러나 1997년 대선에서 패한 한나라당은 야당으로 추락했다.

여당이 된 국민회의(민주당)는 1996년 15대 총선 당시 사용한 자금 출처를 물고 늘어 졌다. 안기부의 자금이 집권당의 선거자금으로 흘러들어갔다는 혐의로 강삼재는 2001년 기소됐다. 세칭 ‘안풍사건’의 주역으로 그는 2003년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침묵을 지키던 강삼재는 2005년 법정에서 그 자금이 안기부가 아니라 김영삼 당시 대통령에게 받았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그 결과 자신의 정치적 대부였던 YS를 배신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 같은 고백으로 그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2006년 이후 강삼재 정계복귀 서둘러…하지만

무죄를 받고 돌아온 강삼재는 정계복귀를 서둘렀다. 그러나 정계복귀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는 2006년 7·26 국회의원 재선거 때 마산 갑에 한나라당 공천 신청을 했다가 탈락했다.
강삼재와 한나라당과의 마지막 인연이었다.

그러나 5선의 강삼재는 쉽게 정치판을 떠날 수 없었다. 정계를 떠나기에는 너무 젊었다. 그는 아직까지 우리나이로 예순도 안 된 나이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후보의 선대위원장에 해당하는 전략기획팀장을 맡으며 정치권에 등장했다. 하지만 대선과 총선패배의 시련을 극복하지 못하고 국민의 뇌리에 사라져 갔다.

그는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지난 4월 19대 총선에서 경남 의령 합안 합천 지역구에 도전장을 냈지만 낙선했다.

그리고 19대 대선에서 강삼재는 문재인 지지를 선언하며 또다시 정치권을 노크하고 있다.

 

 

담당업무 : 정치, 사회 전 분야를 다룹니다.
좌우명 : YS정신을 계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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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neth Kang 2013-10-08 17:24:49
강삼재는 어느 강씨냐?
진주강이냐, 똘강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