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남양유업은 스스로 불법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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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남양유업은 스스로 불법임을 모른다”
  • 박시형 기자
  • 승인 2013.02.21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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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 전한다②>´강매 의혹´ 골리앗과 싸우는 그들 대리점의 ‘절규’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박시형 기자)

누구를 위해 일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는가? 각자 다 나름의 답을 가슴속에 지니고 있다. 하지만 길 위에 나선 이들의 가슴속에는 답 대신 울분이 자리하고 있다. 사측의 몇 푼짜리 회유에 검은 양심이 될 수 없다고 서로 보듬는 ‘남양유업 대리점 피해자 협의회’의 마음속에 언제쯤 따뜻한 바람이 불 수 있을까? <편집자 주>

날씨가 을씨년스럽다. 겨울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되돌아오는 듯 바람이 매서워진다. 옷깃을 여며 보지만 틈으로 새 들어오는 바람까지 잠그긴 역부족이다.

19일 오후 6시 30분,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시각 남양유업 앞에서 집회 중인 대리점주들을 만났다. 지난 2월 17일부터 새로 합류하게 된 김원영 전 응암점 점주와 현 보광 대리점 점주이자 대리점 피해자 협의회 간사인 김대형 씨를 만나 몇 마디 건넸다.

▲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일까, 시민들은 눈길을 두지도 않고 재빨리 지나쳐간다.ⓒ시사오늘

평소에는 거들떠보지 않더니…

김원영 점주는 이미 20년을 남양과 함께해 기업의 성장에 일조했다 해도 허언이 아니다. 이런 그에게 강제로 제품을 떠넘기는 이른바 ‘밀어내기’가 시작된 것은 2003년 즈음부터다. 물론 이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제품 종류가 많지 않고 신제품은 판촉을 위해 10% 정도만 이뤄졌으므로 그 정도는 감수했다.

하지만 2003년부터 밀어내는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10년째 이어지자 그는 결국 대리점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젊은 시절부터 시작한 대리점을 그만두자 남은 건 이미 나이 먹어 낡아 버린 몸과 빚 5,000만 원이 전부다.
대리점 권리금과 배달 차량 등 총 1억 2,000여만 원의 가치였던 자산들을 겨우 1/4에 해당하는 3,000만 원에 처분하고 돌아섰다. 그런데도 김씨는 “한·두 달 빨리 그만둘 걸 그랬어. 그러면 그만큼이라도 손해를 덜 보고 끝낼 수 있었잖아”라며 오히려 아쉬워했다.

김대형 씨는 “최근 남양유업이 평소에는 쳐다보지도 않던 대리점들에 인사를 하러 다닌다”고 전했다. 그리고 그들을 그렇게도 속 썩게 했던 “밀어내기도 중단된 상태이고 오히려 반품이 필요하면 말씀하시라”고 친절히 안내까지 해준다고 말한다. 이는 몇몇 대리점과 <시사오늘>과의 통화가 뒷받침해 주고 있다. 한 대리점은 “과거 밀어내기는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은 밀어내기 발주가 없는 상황이라 더 이상 취재에 응할 수 없다”고 답했다.

짧으나마 대화를 하는 사이 남양유업의 로고가 새겨진 외투를 입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몇 초나 될까? 기껏 5~6m를 지나가는 찰나지만 기자는 대리점주들을 씁쓸히 쳐다보는 직원의 눈빛을 온몸으로 직면해야 했다. 대리점주 두 분은 아무 말도 잇지 못하고 맥없는 눈빛으로 맞받아쳤다.

“강제 계약해지 당해”

지난 1월 25일 이창섭 씨 외 2명은 남양유업의 불법행위들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또 27일 피해자 협의회를 조직하고 다음 아고라 커뮤니티에 10여 편의 호소문을 작성해 여론의 참여를 부탁했다. 30일 남양유업은 이들 3명을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고발했고 다음날 이창섭 협회장은 강제로 계약해지를 당했다.

협의회는 남양유업이 △지점의 임의적인 발주를 통한 부당한 강매 △명절 떡값요구와 대리점개설비, 리베이트 등 금품요구 △유통기한 임박제품 판매 △유통업체 파견사원의 임금 떠넘기기의 부당행위를 저지르고 있다고 밝혔다.

▲ 대리점 피해자협의회는 지난달 28일부터 하루를 거르는 법 없이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시사오늘

그들이 작성한 계약서는 이미 백지 계약서, 본사에 의해 작성?
권리금 문제로 계약 해지할 수도 없어…

20일 오후 7시 20분 날씨는 한층 더 추워졌다. 이미 24일째 이어져 온 집회지만 대중의 관심조차 얼어붙을 그 길 위에는 여전히 협회원들이 서 있다. 전날 방문에 지방의 대리점에서 제보를 받고 달려가 만날 수 없었던 이창섭 협의회장과 만나 몇 가지 의문점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가장 먼저 물어본 것은 바로 계약서에 관련된 것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할 수 있는 계약서는 갑과 을이 명시되어있고 중요한 약관 등이 기재되어 있어 내용을 확인 후 인감을 찍을 수 있게 준비된다. 하지만 이들이 작성한 계약서는 일명 ‘백지 계약서’. 계약서에 이미 인감이 찍혀 있어 효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막상 내용을 들여다보면 중요한 사항마다 공란으로 표기돼 사실상 내용을 알 수가 없다.

문제는 이 공란이 본사에 의해 작성이 된다는 점이다. 심한 경우 “계약 기간마저도 공란으로 표기된다”고 말한다. 대리점주들은 재계약 시점부터 몸소 체험하지만, 혹여 계약해지가 될까 전전긍긍 유지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또 하나 생기는 의문, 계약을 해지하면 되지 않을까? 이 회장은 “권리금 문제가 가장 크다”며 망설임 없이 답했다.

또 “계약하면서 함께 들어가는 담보나 보증인에게 피해가 갈까 봐 계약해지를 정말 무서워한다”고 말했다.
계약이 해지되면 제품을 더 이상 받을 수 없어 운영이 불가능해 권리금이 사라진다. 또 냉장고, 운반차량 등 시설투자비의 회수방법도 묘연해진다. 한 순간 생계가 막막해지기 때문에 적자를 보는 걸 알면서도 대리점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불과 작년 제주 연동 대리점이 그랬고 서산 가정점이 그랬던 것처럼 전국 여러 곳의 대리점들이 겨우 한 달짜리 계약서를 앞에 두고 정신적인 고통과 모멸감을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계약해지란 명줄을 놓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눈앞의 이익만 찾다가 공멸..?

“남양유업은 스스로 하고 있는 행위 자체가 불법이라는 걸 모르는 것 같다.”

피해 점주들은 분개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밀어내기와 금품수수를 ‘허위사실 유포’ 및 ‘허위사실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며 고소할 수 있을까 반문한다.

또 “명명백백 증거가 있음에도 일단 고소부터 하고, 법의 맹점과 반박하기 힘든 논란거리를 찾아 논점을 흐린다”며 “반박에 반박을 거듭하면서 끝도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남양유업의 영업행태가 각종 매체와 지상파방송에 공개되면서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남양 제품 불매운동 조짐이 보인다. 일부 대리점주들은 “그 피해가 고스란히 대리점에게 돌아오는 것 아니겠냐”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에 이 회장은 “소비자들은 잘못된 영업행태로 판매되는 제품을 믿고 구매할 수 없다”며 “눈앞의 이익만 찾다간 본사와 대리점은 공멸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대형 씨는 “소매점에 납품하다 보면 소비자들이 기사 얘기를 하며 제품을 집었다 내려놓는 일이 있다. 처음에는 판매하는 입장이라 아쉬웠지만, 지금은 더 궁극적인 목표가 있어 이해하는 편”이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현재 공식적으로 함께 하는 회원은 전·현업 12인. 이들은 남양유업이 지금까지 해온 영업방식을 멈추길 원한다. 이 회장 역시 “잘못이라는 것을 알지도 못하는 데 무슨 말이 통하겠나?” 허탈하게 웃으며 “잘못을 뉘우치라는 게 아니다. 단지 인정하라는 것뿐이다. 그래야 협상 테이블이 마련될 수 있고 함께 잘못을 수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근본적인 부분부터 해결해 차후 재발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 남양유업은 인간존중을 바탕으로 신뢰받는 기업이 되겠다고 한다. 하지만 최측근인 대리점 마저도 회사를 믿을 수 없다 한다.ⓒ남양유업 홈페이지 캡처

 남양유업 방어집회로 방해?

협의회는 “잘못된 관행이 자연적으로 고쳐질 거라 믿고 있다면 이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고 다른 분들도 결국 똑같은 입장이 될지도 모른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다”는 당부의 말과 함께 “지금 꺾지 못한다면 나중에는 더 꺾기 힘들어질 것”이라는 협조를 구하는 말을 전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서울사무소는 협의회에서 제소한 건의 진행상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남양유업은 이미 해당 자료들을 종합해 경찰서에 제출한 상태이고 사실 진위는 경찰의 조사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일축했다.

사측은 “협회의 주장은 일부 본사에 불만이 있는 대리점들의 주장이며 액면 그대로가 사실이 아니다”는 최초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협상 여지에 관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하지만 협회가 아무런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 등 문을 닫고 있다“고 밝혔다며 스스로를 옹호했다.

남양유업 대리점 피해자 협의회는 지난달 28일부터 매일 아침저녁으로 집회를 25일째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남양유업이 3월 16일에서 20일까지 5일간 이미 ‘집회’를 신청해 놓은 상황이다. 이 기간 동안 ‘방어집회’가 될 공산이 크다. ‘방어집회’는 집회 신고만 해 놓고 실제로 열지 않는 이름뿐인 집회를 일선 경찰관들이 부르는 말이다.

경찰은 충돌을 대비해 같은 날 같은 장소에 두 종류의 집회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협회원은 5일간 전국의 대리점과 지점을 돌며 집회를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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