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곡에서 국민 애청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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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곡에서 국민 애청곡으로
  • 박지순 기자
  • 승인 2010.03.22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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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순의 음악실타래]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
 
군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노래는 뭘까? 열이면 여덟, 아홉은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꼽지 않을까 싶다.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를 얘기하는 사람도 간혹 있을 것 같다.
 
김민우의 데뷔시절 노래로 1990년 큰 인기를 끌어 군입대를 앞둔 예비장병이나 친구, 가족들이 음악 방송에 자주 신청했었다. 지금은 추억의 히트곡으로만 기억되는 듯하다.

‘이등병의 편지’는 명곡이란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노래로 시간이 흐를수록 빛을 발하며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린다. 김광석이 ‘이등병의 편지’를 발표한 시기는 1993년으로 그의 ‘다시부르기1’ 음반을 통해서다. ‘다시부르기1’ 음반은 리메이크 곡으로만 구성된 음반으로는 이례적으로 경향신문에서 선정한 ‘가요 100대 명반’에 ‘다시부르기2’와 함께 선정됐다.
 
▲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들어 있는 그의 '다시부르기1' LP.     © 시사오늘 박지순


필자가 ‘이등병의 편지’를 처음 들은 것은 군대 이등병 때다. 신병교육대(훈련소)를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은 직후인데 필자가 있던 부대에서는 신병은 최고참 병사와 2인 1조로 취침시간에 두 시간씩 불침번 근무를 섰다.
 
보통 고참은 신병에게 “노래 한 번 해봐라”고 시키거나 스스로 노래를 부르며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곤 했던 기억이 난다. “한 시간 남았네. 노래 스무 곡만 더 부르면 되겠다”고 말하던 고참도 있었다.
 
군인들 사기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한 때 금지곡 돼

교원대를 다니다 휴학하고 군대에 온 고참이 칠흑같이 어둡고 고요한 밤에 흥얼흥얼 부르던 노래가 ‘이등병의 편지’였다. 가사와 멜로디가 너무나 아름답고 감성을 자극해 고참에게 제목을 물었고 가사를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이등병의 편지’를 모르고도 네가 군인이냐? 내가 부를 테니까 받아 적어” 쪽지에 가사를 적어서 군복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외워 부르게 됐다. 특히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부분에서 가슴이 뭉클해지곤 했다.

그 고참은 ‘이등병의 편지’가 한 때 금지곡이었다고 알려줬다. 이유는 ‘이등병의 편지’를 듣는 군인마다 눈물을 흘리고 사기가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금지곡 선정의 이유로는 억지스럽지만 갓 입대한 이등병들을 다소 슬프게 만든 건 사실이다.

필자는 제대 후 ‘이등병의 편지’가 수록된 LP를 찾아 나섰다. 의외로 꽤 구하기 어려웠고 고가였다. 지금은 중고로 3만 원대에 거래되는 듯하다. 음반을 구하고 나서도 김광석이 ‘이등병의 편지’를 처음 부른 것으로 알고 있다가 ‘다시부르기1’이란 음반 타이틀이 의아스러워 알아보니 김현성 작사, 작곡의 노래를 전인권이 ‘전인권과 가야’라는 밴드를 만들어 1990년 ‘겨레의 노래1’ 음반에 처음 취입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겨레의 노래1’ 음반은 한겨레신문이 창간 2주년을 기념해 노래사업단을 구성하고 ‘아침 이슬’로 유명한 김민기가 총감독을 맡아 만든 음반이다.
 
김민기는 연변과 일본에 전해지는 노래와 구전민요를 취합하고 공모를 통해 모두 12곡을 선정, 1990년 8월 18일부터 19일까지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공연을 가졌다. 비상업적 대중음악을 지향한 이 공연에는 송창식, 서유석, 전인권, 장필순 등 유명 가수들이 대거 참여했다.

당시는 노태우 군사정권 시절로 ‘겨레의 노래1’ 공연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아마도 ‘겨레의 노래2’ 이후까지 기획했던 것 같은데 시리즈로 나오지는 못했다. 전인권은 1987년 ‘들국화’를 접고 ‘가야’를 만들어 활동하던 무렵 ‘겨레의 노래1’에 참여한 것인데 전인권의 산발 이미지와 ‘이등병의 편지’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

필자가 짐작건데 김민기와 전인권의 음악적 인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전인권의 솔로 3집에는 김민기의 곡인 ‘봉우리’가 수록돼 있다. 이 점으로 미뤄봐도 김민기와 전인권이 음악적으로 가까웠고 그래서 ‘겨레의 노래1’ 총감독을 맡은 김민기가 전인권에게 ‘이등병의 편지’를 부탁한 것 같다.
 
원곡은 ‘겨레의 노래1’ 공연에서 전인권이 불러

‘전인권과 가야’가 부른 ‘이등병의 편지’는 기차의 기적소리가 배경음으로 깔리면서 전인권의 찢어지는 듯한 보컬이 마치 끌려가듯 군대에 가는 병사의 이미지를 애절하게 묘사한다. ‘이등병의 편지’가 금지곡으로 묶인 것도 이 시절이라고 알려져 있다.
 
▲ '이등병의 편지' 원곡은 전인권이 '겨레의 노래1' 음반을 통해 발표했다.     © 시사오늘 박지순


김광석이 ‘다시부르기1’ 음반에 취입하면서 ‘이등병의 편지’는 새로운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김광석의 곡 해석 능력이 탁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는 하모니카와 기타를 손수 연주하며 전인권과는 달리 담담하고 차분하게 노래한다.
 
전인권의 곡에서 묻어나는 ‘억울함’이나 ‘처절함’이 없다. ‘이등병의 편지’가 군인들만 듣는 노래에서 가요의 명곡으로 탈바꿈한 것은 전적으로 김광석에게 의존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필자는 김광석이 육군 1사단 장병들 앞에서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는 동영상을 볼 수 있었다. 전반부는 음반 수록곡과 같이 김광석 스스로 하모니카와 기타 반주에 맞춰 부르다가 간주 부분에서 군복을 입은 병사의 베이스 연주와 사복 연주자의 드럼, 건반이 합세하면서 밴드곡을 선보인다. 김광석의 강한 흡입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연주 라인 구성이다.

‘이등병의 편지’는 김광석 사후 영화 ‘공동경비구역’에 삽입되고 모 이동통신사 광고에도 쓰이면서 국민적 애청곡이 됐다.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김현성은 “군대 가는 친구를 서울역에서 배웅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했다”고 곡에 얽힌 사연을 얘기한 적이 있다.
 
김광석이 김현성과 교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곡가의 의도에도 김광석의 목소리가 들어맞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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