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청원, YS에서 박근혜까지, 정치역정의 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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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청원, YS에서 박근혜까지, 정치역정의 끝은?
  • 윤명철 기자
  • 승인 2013.07.04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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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주목할 정치인(2)>“아직도 먼 길을 가야하는 약속이 있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 김영삼 전 대통령과 서청원 고문 ⓒ 뉴시스

친박 원로 서청원은 명문가 집안이다. 조선 후기 3대 연속 대제학을 배출한 명문가다. 7대조 할아버지 서유신은 과거 수석자로서 대제학을 지냈다. 6대조 할아버지는 서영보이다. 이 분은 조선을 대표하는 석학 다산 정약용을 누르고 과거에서 수석을 차지했다. 서영보의 아들인 서기순도 차석을 했다. 요즘 말로 엄친아 집안이다.

서청원도 조상들 못지않다. 6선의 경력으로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을 거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현재 새누리당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조언을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친박 원로 실세다.

서청원의 정치역정, YS계 직계에서 친박까지

서청원은 지난해〈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치입문 계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적이 있다. 그는 중3때부터 정치에 뜻을 뒀다. 중·고교때 학생회장을 거쳐 중앙대 정외과를 졸업했다. 6·3사태 때 감옥 가서 고생도 했다.

정치계로 직행한 것은 아니었다. 첫 시작은 언론계였다. 그는 조선일보 기자로 10여 년을 지냈다. 5공이 출범하자 11대 총선 때 야당인 민주한국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정치에 입문했다. 얼마 안 있어 YS의 상도동계 직계가 됐다. 서청원은 13대~16대 국회의원을 거치며 5선의 중진이 되는 동안 통일민주당 대변인, 신한국당 원내총무, 정무장관 및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을 역임했다. YS의 직계로 통했다.

2007년이 되자 서청원은 새 주군을 맞이한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17대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 이명박 후보와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던 박근혜 의원을 지지했다.

그는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박근혜를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그 사람 말은 신뢰가 간다. 박근혜는 부정부패는 안 할 사람이다. 박근혜 '트레이드마크'가 그거다. 그런데 그런 이미지는 억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고 단언했다. 상도동 직계인 서청원이 YS의 대척점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를 지지한 것이다.

여기서 서청원은 흥미로운 일화를 하나 털어놨다. 그는 지난 2007년 4월 당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기 직전에 YS를 만났다는 것이다. 서청원의 말을 들어보자.

"제가 YS를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 '각하 용서해주십시오. 박근혜가 저희 집에 와서 도와달라고 해서 약속했습니다. 제가 한 번도 각하 말을 거역한 적이 없었는데 여자와 한 약속을 깰 수 없습니다. 제가 생각이 부족했는지 모르겠지만 각하가 이명박을 도와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YS는 당시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 YS는 그에게 “니는 와이리 고집이 쎄노'라고 했다. 하지만 더 이상 YS는 뭐라고 하지 않았다.
결국 이명박이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MB 정권 당시 18대 총선은 그에게 단 맛과 쓴 맛을 모두 맛보게 해줬다. 이명박의 한나라당은 서청원을 외면했다. 그는 정치인생에서 큰 도박을 감행한다. 이른바 ‘친박 공천 학살’에 반발해 한나라당을 탈당한 것이다. 공천에 떨어진 친박인사들을 규합하기 시작했다.

그의 도박은 대성공이었다. 정당 역사상 유례없는 정치인의 이름을 딴 ‘친박연대’를 출범시켰다. 나중에 미래희망연대로 당명을 정했다. 당시 박근혜 의원은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며 선거 내내 지역구에 칩거했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국민들은 친박연대에 표를 던졌다.

결국 미래희망연대는 18대 총선 최대 돌풍의 주역이 됐다. 14석(지역구 6석+비례대표 8석)을 차지했다. ‘역시 서청원’이라는 말이 정치권에 회자됐다. 그도 역시 비례대표로 6선의 위업을 쌓았다.

하지만 그의 영광은 얼마가지 않았다. 검찰이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서청원은 김노식, 양정례 전 의원에게 공천 헌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결국 2009년 5월 대법원에서 1년6월의 실형이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했다. 당시 서 고문은 “검찰 수사와 대법원 판결은 부당하다. 명백한 정치적 탄압과 잔인한 보복의 결과”라며 반발했지만 수감됐다. 그에게는 꽤나 아픈 추억이다.

▲ 서청원 고문과 청산회ⓒ 뉴시스

서청원의 두 번쨰 대통령, 박근혜

그러나 서청원은 죽지 않았다. MB 정권은 2010년 8월 그를 특별 사면했다. 형기도 줄었다. 그는 다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박차를 가했다. 새로운 주군 ‘박근혜’을 위해 자신의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서청원은 조직의 달인이다. 지난 대선에서 그가 만든 청산회 멤버들의 역할은 지대했다.

서 고문은 지난해 대선 직전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주도한 청산회에 대해 "청산회는 내가 정치적으로 어려울 때 나를 따르던 후배 20여 명이 제안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내가 정치를 오래한 만큼 사람들이 많이 왔다"고 소개했다.

서청원은 청산회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다. 서 고문은 “2007년 4월에 내가 '박근혜에게 빚 갚으러 왔다'면서 지지선언을 했다.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가 패배하고 당이 어려웠는데 그 시기에 박근혜가 대표를 맡아 총선에서 121석을 건지며 한나라당을 살렸다. 그래서 전직 대표로서 박근혜에게 빚이 있다' 그런 얘기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그렇게 지지선언을 하니까 청산회 회원들이 엄청나게 불어났다. 지금도 청산회가 7만 명 정도 되는데, 제가 박 후보에 대한 지지를 하면서 유명해지고 전국적 조직이 됐다. 지금도 청산회를 통해 몇 천 명 모으는 건 어렵지 않다”고 회고했다.

마침내 서청원은 자신의 꿈을 이뤄냈다. 18대 대선에서 자신의 두 번째 대통령 ‘박근혜’를 당선시켰다. 그에게도 다시 명예회복의 기회가 온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과 서청원 고문ⓒ 뉴시스

서청원이 돌아온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70대,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청원은 올해 1월말 특별복권 됐다. 다시 공직을 맡을 수 있다. 정가에서는 서 고문이 10월 재·보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지역은 서산 태안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이 곳은 새누리당 성완종 의원 지역구다. 그런데 성완종 의원이 지난 5월13일 대전 고법에서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돼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에서 2심의 판결을 인정할 경우 성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해 10월 재·보궐선거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서고문의 고향은 바로 인근 지역인 천안이다.

하지만 서 고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정가에서는 여러 가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혹자는 “차기 당 대표로 유력한 김무성 의원을 견제하기 위해서 청와대가 서 고문의 국회입성을 지원한다”부터 “청산회 관련 루머로 공천이 어려울 것이다”는 의견까지 상반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여의도 정치권 속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서 고문이 명예회복 차원에서 나올 수는 있다. 일부 언론에서 제기한 김무성 견제론도 그럴 듯 하지만 글쎄 실현 가능성이 있을지 의문이다”며 고개를 저었다.

서청원 고문의 홈페이지에는 글귀가 적혀있다. “아직도 먼 길을 가야하는 약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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