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정세운 기자)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이 10월 재보선을 통해 원내에 진입함에 따라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각종 언론들이 서 의원의 정치역정을 그리면서 각종 오보를 쏟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작은 언론에서부터 큰 언론까지 예외가 없어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것 몇 가지만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A언론' 11월 10일자 6면 ‘물밑경쟁 서청원 김무성, YS식 대화정치 펼까’에서 “서청원 김무성 두 사람은 모두 1984년 YS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만든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에서 정치경험을 쌓았다”고 썼다.
'B언론'은 서 의원 당선 직후 10월 31일자 ‘YS 朴 대통령 만든 노정객 서청원’이란 글을 통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정계에 입문한 서청원 당선인은…”이라고 서술했다. A언론은 서청원 의원이 ‘민추협에서 경험을 쌓았다고 기술했고, B언론은 서 의원을 YS가 발탁해 정계에 입문시켰다고 설명했다. 사실일까? 서 의원의 정치시작은 11대 국회다. 전두환 정권시절인 1981년 민한당 후보로 나와 당선됐다. 1981년은 YS가 가택연금 상태였고, 정치활동을 할 수 없었던 시기다. 서 의원을 추천해 정계에 입문시킬 위치에 있지 않았다. 또, 서 의원이 민추협에서 활동한 게 사실일까? 민추협은 YS 단식1주년인 1984년 5월 18일 만들어진 단체다. 서 의원을 정계에 입문시킨 사람은 정확히 알려지진 않았지만 짐작은 할 수 있다. 당시 민한당은 집권여당이던 민정당 2중대 소리를 들었다. 공천을 관장했던 유치송 신상우 등이 야성을 강화하자며 영입했던 인물이 홍사덕 김도현 고영구 최혜성이다. 서 의원도 같은 케이스라는 것이 객관적 시각이다. 분명한 것은 서 의원은 민추협이 만들어진 1984년 초기에는 활동한 적이 없고, YS 발탁으로 정계에 입문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민추협은 이후 이를 근간으로 신민당을 만들어 1985년 12대 총선에서 돌풍을 몰고 왔다.
서 의원은 12대 총선에서 민한당 후보로 출마해 낙선했다. 민추협과 서 의원과는 무관하다고 할 수 있다.
서 의원이 YS와 관계를 맺게 된 것은 12대 총선 후다. 상도동 사람들과 친분이 있었던 게 그 이유다. YS 분신으로 불리던 김덕룡과는 6․3시위 때 옥고를 치르며 알 던 사이고, 집사로 불렸던 장학노와는 중앙대 선후배 사이다. 낙선 후 이들과 교류하던 서 의원은 홍인길을 소개받고, 시간이 흘러 ‘친구’사이로 발전했다.
서 의원은 이후 13대 국회 때 YS가 이끄는 통일민주당 간판으로 원내에 진입한 뒤 대변인과 총재 비서실장을 맡으며 상도동 핵심 직계 인사가 됐다.
YS계가 된 서 의원은 YS 사조직으로 불렸던 민주산악회에서 회보인 <자유의 종> 편집위원장으로 활약했다.
서 의원은 2012년 11월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YS와의 인연을 이렇게 기술했다.
"YS가 단식투쟁 후에 연금에서 풀려났고, 85년 2·12 총선에서 신민당이 승리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민한당에서 나갔습니다.
저는 그 때 총선에서 낙선했는데, 마침 YS를 모셨던 김덕룡 선배가 저와 6·3 시위 때 감옥에서부터 알 던 사이이고, 장학노는 제 후배인데, 이 사람을 통해서 홍인길도 만나고 했습니다.
홍인길, 장학노, 김덕룡, 서석재 등과 모두 가까웠으니 친구 따라 강남 간 것이죠. 또 제 집도 상도동에 있다 보니까…, 그렇게 민주산악회에 가입하게 된 것입니다."
좌우명 : YS정신을 계승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