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단가 실질적 제도 개선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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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품단가 실질적 제도 개선 시급”
  • 윤동관 기자
  • 승인 2010.05.1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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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 협의제 실효성 의문...‘납품단가 연동제’ 한 목소리
최근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글로벌 경기회복과 맞물려 상당 폭 오르고 있지만 납품단가는 여전히 이를 따라 잡지 못하고 있어 이에 대한 제도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납품단가 인상 시점을 놓고 원청업체와 중소 하도급업체 간 이견이 큰데다 2, 3차 납품업체로 내려갈수록 중소업체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글로벌 경기회복과 맞물려 상당 폭 오르고 있지만 납품단가는 여전히 이를 따라 잡지 못하고 있어 이에 대한 제도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 뉴시스
업계는 현재 시행 중인 ‘납품단가 조정협의 의무제’가 실효성이 없자 하도급 계약 기간 중 원자재 값이 일정 수준 이상 오를 경우 원청업체가 납품단가를 인상해 주도록 강제하는 내용의 ‘납품단가 연동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납품단가 현실화는 단순히 하도급업체뿐만 아니라 원사업자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하도급업체가 경영난에 시달려 납품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이는 곧 원사업자의 생산과 품질 수준 향상도 차질을 빚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연구원 백필규 실장은 “얼마전 도요타 자동차가 추락하게 된 원인의 하나도 납품단가 후려치기로 인한 품질 저하였다”며 “하청업체가 살아야 대기업도 살고 나라 경제도 건실해진다. 나만 잘 살겠다는 그릇된 대기업의 일방적인 고집은 글로벌 경영환경 하에서는
결국 업계 전체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만 되풀이 된다”고 말했다.

백 실장은 또 “지속적인 납품 단가 인하는 결국 R&D 투자 소홀로 귀착되는 악순환 구조라며 이를 극복하려면 정부 차원에서 대기업의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 강요를 막을 수 있는 장치를 현행 하도급법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자재가격은 상승, 납품단가는 제자리걸음

특히 유가를 비롯한 국제 원자재값 상승이 연일 오르고 있는 가운데 최근 거래된 중동산 두바이유는 84.86달러로 연중 최고를 기록했다.
 
이러한 추세라면 100달러 재 돌파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고, 구리,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도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구리 가격은 1년 전에 비해 70% 올랐고, 니켈은 120%, 알루미늄은 75%, 아연은 70%이상 상승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전국 504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곳 중 1곳이 ‘원자재 가격 상승이 감내할 만한 수준을 넘었다’는 통계를 보더라도 중소기업들의 고통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고통은 고스란히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금속을 녹여 제품을 만드는 주물(鑄物) 업계가 납품단가를 올려주지 않으면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은 지난 6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연 비상대책회의에서 오는 17일까지 납품 단가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의한 것. 

주물조합에 따르면 주물 제품의 원료인 고철 가격이 2008년 11월 1㎏당 340원에서 지난달 말 562원으로 65% 올랐고, 선철(F1A) 가격도 현재 1㎏당 550원에서 다음 달 3일부로 700원으로 대폭 인상될 예정이다.

주물조합 관계자는 “주물로 제작해 납품하는 자동차 부품의 1㎏당 평균 가격은 2008년 1천9원에서 올해 1천80원으로 7% 오르는데 그쳤고, 공작기계부품은 같은 기간 오히려 5.4% 떨어졌다”며 “대기업의 경우 지난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중소제조업계의 어려운 경영환경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납품단가 여파는 지방도 예외가 아니다. 광주· 전남 대기업 협력업체 55%는 현재의 경기상황을 위기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협력업체의 경영상태 애로 원인으로 ‘대기업의 납품물량 감소(43.9%)’가 가장 많았고 원자재 가격 상승(41.5%), 대기업의 납품단가 인하 요구(12.2%), 대금결제의 장기화(2.4%) 등의 순으로 나타났지만 대기업의 납품단가 인하요구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대기업 성장불구 중소기업 경영환경 외면 

안산 반월공단에서 중소 휴대폰 도금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K대표는 원자재 값 파동으로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도금 원료로 쓰이는 니켈의 국제 시세는 올 들어서만 40% 이상,1년 전보다는 75%가량 뛰어 생산원가가 약 30% 올랐지만 거래처인 대기업은 납품가격 인상 요구에 요지부동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중소기업을 상대로 원자재 가격 인상분이 납품가격에 제대로 반영되는지 실태조사를 벌였지만 전 업종에 걸쳐 제대로 반영된 것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골판지 업계의 경우 원료인 골심지 가격이 작년 6월 t당 30만원에서 지난 4월 46만원으로 올랐다. 생산원가는 53%가량 뛰었지만 일부 대기업은 아직도 작년 9월 납품가격을 고수하고 있다. 플라스틱 업계는 원료인 합성수지(석유화학 제품) 가격이 ‘선(先)공급-후(後)정산’ 방식으로 결정돼 원료 가격인상분을 납품가격에 반영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이런 가운데 대기업들은 납품가격 인상분을 제품가격에 전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중소기업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원료 가격은 매달 변하지만 납품가격은 분기나 연간 단위로 계약하고 있어 현실화되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는 입장이다.

이런 현실에 위기의식을 느낀 정부도 부랴부랴 대책마련에 나섰다. 최근 지식경제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 구매 담당자들과 간담회를 열어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적극 반영해줄 것을 요청하는가하면 지난 10일부터 50여 일간 공정위는 협력업체 40여개 기업을 대상으로 납품단가 부당 인하 등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직권조사에 착수했다.

과거 주로 원청업체가 조사 대상이었다면 이번 조사의 특징은 대상 업체가 원청업체가 아닌 1차 협력업체라는 점이다.

공정위 기업협력팀 관계자는 “1차 협력업체를 조사하면 이들과 거래하는 원청업체는 물론 이들로부터 일감을 수주하는 2차,3차 협력업체도 함께 조사하게 돼 파급 효과가 높다”고 설명했다.

지경부도 “납품단가 인하는 중소기업의 채산성과 투자 여력을 악화시켜 결국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악순환 구조가 고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납품단가 조정협의 신청해도 대기업은 요지부동

이번 조사 대상에는 공정위가 최근 원자재 가격 관련 불공정거래를 감시하기 위해 전담부서를 배치한 원유 니켈 철광석 유연탄 폐지(골판지) 분야 외에 다른 업종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또 최근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과 관련해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20개 대기업 임원을 불러 납품단가 현실화를 주문했다. 지난 6일부터는 서울 부산 광주 대전 대구 등 5개 지역에 '원자재 가격 관련 불공정거래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요구가 얼마만큼 현실에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실제 원자재가격 급등에 따른 수급사업자의 부담 경감을 위해, 수급사업자가 납품단가 조정협의를 신청해도 대기업이 전향적으로 대응한다는 게 요원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원자재 값 인상분을 반영하는 기준이 달라 실제 납품단가 현실화는 진척이 잘 안 된고 있다”며 “그 결과 많은 중소 하청업체들이 경영수지 악화로 곧 납품을 중단해야 할 심각한 경영위기에 처해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는 달리 일부 전문가들은 환율이나 국제 원자재 가격은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기업들이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외부 충격에 무너지지 않으려면 기업 체질을 근본적으로 강화해야 하며 원가절감 등 경영 효율화와 함께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기술개발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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