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갑, “신당창당 심각히 고려 중”
스크롤 이동 상태바
한화갑, “신당창당 심각히 고려 중”
  • 정세운 기자
  • 승인 2009.03.09 17: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로운 도전 모색에 나선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는 ‘김대중(DJ)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동교동 사단의 대표적 인물이다.

DJ의 비서로 정치권에 입문한 한 전 대표는 국민의 정부 탄생과 함께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과 더불어 ‘양갑’으로 불리는 여권 핵심실세였다. 또한 ‘리틀 DJ’로 불리며 여권의 대표적 차기 대권주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참여정부 탄생 후 그는 여권실세에서 원내교섭단체도 꾸리지 못한 야당대표로 추락한 후 지난 2007년 12월 22일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가 인정돼 의원직을 상실했다.

재기를 위해 그는 지난해 4월 18대 총선에서 광주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한 전 대표와 만나기 위해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 사무실로 가야했다. ‘4선의 관록을 지닌 대표 정치인이기 때문에 그를 ’국회‘가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난다는 게 어색할 정도였다.

▲한화갑 전 대표는 '전라도 후보가 본선에서 가능하겠느냐'는 논리때문에 동교동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시사오늘 권희정

“2002년 대선경선때 동교동 지원없어”


-‘리틀 DJ’ 또는 ‘포스트 DJ’라는 닉네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리틀DJ 또는 포스트 DJ니 하는 말은 일반사람들이 부르는 말이지 내가 그렇게 불러달라고 특허 낸 용어가 아닙니다. 진짜로 그 말이 인정을 받으려면 DJ가 이런 말을 해야 되는데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이런 말을 내가 쓴다면 일종의 도용이 됩니다. 나는 이런 말을 쓰지 않습니다.”
 
-이런 닉네임이 정치하기에 오히려 불리한 측면도 있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DJ와의 관계에 있어서 내가 손해라고 생각해 멀리하고 이익이라고 돈독히 하고 이런 것은 없습니다. 나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가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때문에 유불리를 따져 행동하지 않습니다.”
 
-한 전 대표를 ‘억울한 정치인’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2002년 경선 당시의 상황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각에 대해 자신 스스로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궁급합니다.
“나는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내 능력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DJ나 동교동 사람들이 전부 한화갑을 밀도록 유도했어야 되는데 나는 이런 것을 하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동교동 사람들한테도 도와달라는 말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당시 DJ나 동교동에서 지원이 전혀 없었습니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동교동의 지원이 없었던 이유에 대해 ‘전라도 출신 후보가 본선에서 가능하겠느냐’는 논리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내가 제주도에서 일등을 하니까 이인제 대세론이 꺾였습니다. 하지만 내가 후보가 되면 ‘또 전라도에서 대통령이 나오겠느냐, 본선이 어렵다.’는 말들이 돌았습니다. 그래서 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광주에서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습니다. 전라남도 도청을 광주에서 무안으로 내가 옮겼다는 말을 퍼트렸습니다. 도청이 옮겨져 광주경제가 망가졌다는 말만 하고 다녔습니다. 이 말이 2002년 대선 경선 때 광주전체에 퍼져있었습니다. 결국 광주시민들이 감정에 치우쳐서 누를 범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어떻게 이리 가져가라 저리 가져가라 말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그때 광주시민들이 나를 배척하고 동서화합하자고 노무현 후보를 선택했는데, 이로 인해 광주시민들이 이득 본 것이 있습니까?”
 
▲한 전 대표는 지금 민주당은 열린당의 부활체라며 신당창당도 심각히 고려 중이라고 답했다

“지금 민주당은 열린당 부활체”


-당시 경선과 관련해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아 의원직까지 상실했습니다. 이에 대해 형평성 논란이 있습니다.
“억울하죠. 나는 정치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한민국 정치사상 경선자금을 문제 삼은 것은 내가 처음입니다. 그런 것을 문제 삼는다면 노무현 대통령도 자유스러울 수 없습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SK 그룹 등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 10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사실 이 사건은 형평성 논란을 불러왔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는 노무현 이인제 정동영 등 기라성 같은 정치인이 참여했다. 경선을 앞두고 경선자금이 핵심쟁점으로 떠올랐다. 2002년은 지방선거와 대선 등 전국적인 선거가 있는 해라 국회의원이나 지구당 위원장은 평소보다 두배인 6억원까지 후원금을 쓸 수 있었다.
 
그런데 선관위는 ‘6억원 중 절반인 3억원은 지방선거가 열리는 6월 이후에 쓸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놓고 있었다.
 
민주당은 출마한 후보들에게 기탁금 2억5천만원을 요구했다. 법정자금이 3억원밖에 안되고, 그 중 2억5천만원은 기탁금으로 내야하니 남은 돈 5천만원으로 선거를 치러야 했다.

당시 후보들은 “어떻게 5천만원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느냐”며 반문했다. 경선이 가열되면서 ‘과연 5천만원으로 선거를 치르는 게 가능하냐’고 묻자 후보들은 “사실을 말하자니 법에 걸리고, 거짓말을 하자니 양심에 걸린다”고 즉답을 피했고, 김근태 후보가 ‘양심선언’을 하기도 했다.

당시 한 전 대표는 “나만 불법자금을 쓴 것도 아니고 노 대통령은 오히려 나보다 더 많이 썼다”며 형평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경선자금과 관련해 한 전 대표만 처벌 받았다.

“그때 지구당이 240여개 되는데 한지구당에 100만원만 보내도 2억4천입니다. 당시 대통령 선거에서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할 때 내가 중립을 섰습니다.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노무현 후보 측에서 ‘당선되기 전부터 없애야 된다’고 생각했는지 12월19일이 투표일인데 13일 날 저녁에 어떤 두 사람이 나를 만나자더니 ‘노무현이 당선되면 당신 쫓겨나니까 대표 그만두라’고 합디다. 심지어 동교동 사람들도 물러나야 된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노 후보 당선 후 비서실장도 오지 않는 대표실은 유배지나 다름없었습니다. 혼자 대표실을 지키고 있으려니 그 고독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직을 유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래서 대표직을 사퇴했습니다.”

-유죄판결을 받는 바람에 민주당내 역학 구도가 바뀌게 됐지요.

“결국 민주당만 없어지고 열린당만 살아난 것입니다. 이름만 민주당이지 내용은 열린당입니다.”

-지난 총선에서 당초 전남 목포 출마를 고려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떠한 이유 때문에 광주에서 출마하게 된 것입니까.

“광주에 출마한 것은 발상자체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내 선거구가 무안, 신안인데 이곳은 DJ의 둘째 아들인 김홍업 의원이 출마했습니다. 내가 DJ 덕택에 지금까지 정치를 하고 성장했는데 정치적 스승의 아들하고 경쟁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DJ하고 대립되는 인상을 주기가 싫어서 또 도리도 아니고 해서 출마를 하지 않았습니다.

연고지인 목포에서 출마하려고 했는데 ‘DJ가 박지원 의원을 보낼 테니 가지(출마) 말라’고 말했습니다. 광주 북구는 2002년 대통령 후보 경선 때 내가 억울하게 당해서 어떻게 광주를 돌파하느냐하는 생각을 늘 가졌습니다. 나는 광주민주화운동 국가유공자입니다. 죽으면 광주 망월동 묘지에 묻힙니다. 북구 갑이 망월동 지역입니다. 죽어서도 갈 고향이니 살아 있을 때 한번 공헌을 해보겠다고 생각해 출마하게 됐습니다.”

-DJ에게 서운한 감정이 있겠습니다.

“나는 DJ에게 서운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DJ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만큼 내가 노력하지 않은 것입니다. 내가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을 탄식해야지 DJ 뜻을 반박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호남지역은 DJ의 그늘이 상당하다고 봐야지요.

“상당하다고 봐야죠. 그러나 내가 승복한 것은 DJ에 대한 나의 도리 때문입니다.”
 
▲한 전 대표는 개헌과 관련해 의원내각제를 선호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지지율 정체는 지도력의 한계”


-한나라당과 MB정부에 불만이 많은데도 민주당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도력의 한계입니다. 전반적으로 국민 수준은 올라 있는데 여당, 야당의 정치력은 저하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문을 닫아놓고 ‘이것은 내 것이니까 오지마’하는 폐쇄적인 리더십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난달 말 쟁점법안에 대해 여야가 6월 표결 처리키로 했습니다. 결과가 잘 된 것입니까.

“이것은 여당의 승리입니다. 왜냐하면 민주당의 입장에서 보면 표결처리를 하기로 했는데, 표결이야 지금하나 그때하나 똑같은 방식입니다. 지금은 안 되고 그때는 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는 것입니다. 여당은 4개월 지나면 자동적으로 표결하게 돼 있으니까 못 기다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민주당의 지도부를 평가해 주십시오.

“남의 당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는 곤란합니다. 민주당은 다른 사람들은 다 받아주면서 나의 입당은 받아주지 않습니다. 내가 충고를 하면은 마치 나를 받아주지 않아 그런 식으로 말한다는 오해받을 염려가 있어서 조금 자제를 하고 때가 되면 이야기 하겠습니다.”

-최근 개헌이 정치권의 화두인데 찬성하십니까.

“나는 민주당 대표 때 개헌을 주장했었습니다. 물론 국민이 원하는 권력구조를 선택해야 되지만 개인적으로는 의원내각제를 선호합니다. 이원집정부제는 내각의 화합과 단결을 가져오는데 보탬이 안되기 때문에 반대합니다.”

-내각제를 찬성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책임질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내각제를 하게 되면 자주 정권이 바뀐다고 걱정하는데 책임을 질 일이 있으면 져야 하는 것이죠.”

당초 한 전 대표와 인터뷰를 요청을 하자, 한 전 대표 측은 ‘정치적 사안보다 정책적 사안을 많이 물어봐 달라’고 요청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화가 그쪽으로 넘어갔다.

-서울대 외교학과 출신으로서 야당때부터 외교통으로 활동해 오셨습니다. 전문가 입장에서 통일정책에 대한 견해는 무엇입니까.

“통일에 대한 나의 원칙은 ‘통일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인 것입니다. 우리민족이 세계로 뻗어나가서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통일이 돼야 더 크게, 더 빨리 갈 수 있습니다. 또 경제적 강국이 되는데도 통일이 필수 조건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수출입을 하는데 99.9%가 바다를 이용합니다. 나머지는 항로입니다. 육로는 1%로 안됩니다. 북한 때문에 육로가 막혀있기 때문입니다. 통일이 더 잘 살기위한 수단이 돼야지 목적일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나는 통일정책에 있어서 DJ의 3원칙 3단계 통일방안을 지지하고 남북문제에 있어서는 햇볕정책을 지지합니다.”

-MB정부의 복지정책에 대해서 평가해 주십시오.

“MB정부 출범이후 새로운 복지정책은 없습니다. MB 복지정책은 DJ때 터 잡아놓은 것을 노무현 대통령이 그대로 유지하고 그 제도를 흡수한 것 입니다. MB의 복지정책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박근혜와 연대는 있을 수 없어”


-재기 시점이 궁금합니다.

“솔직히 내 자신도 고심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정치라는 고달픈 역정을 마감하려고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나를 지금까지 밀어주고, 아껴주고, 북돋아줬던 지지자들, 이런 사람들이 너무 공허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시작해 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40년 가까이 정치활동을 하면서 대통령을 만드는데 일조를 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과업을 수행해 낸 사람들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면 이뤄내려고 애썼던 정책이나 비전들은 그대로 끝나버립니다. 이러한 뿌리를 이어나가서 다시 가지를 쳐서 더 좋은 나라를 만드는데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재기의 구체적인 시점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올해 여름을 기점으로 해서 결단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화갑 신당설’이나 ‘박근혜 연대설’이 나돌고 있습니다. 근거는 있는 말입니까.

“신당설은 예전부터 흘러 나왔고 또한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박근혜와의 연대설은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동서화합을 위해서는 박근혜와의 연대도 좋지만 지금까지 전라도에서 경상도하고 화합하자고해서 실천된 것은 있지만, 경상도에서 전라도하고 화합하자고 약속하고 실천된 것은 없습니다. 경상도 쪽에서는 ‘언제든지 내가 주니까 너희들은 따라와라’는 식의 동서화합이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화합이라 볼 수 없습니다.”

-요즘 검찰 수사를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들이 주로 수사대상에 오르고 있는데 이를 두고 표적수사라는 말들이 돕니다.

“결국 사람은 모든 것이 자기가 한데로 당합니다. 표적수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DJ 정권시절 YS의 주변인들이 옥살이를 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었습니까. 여하튼 정권이 바뀌면 이렇게 돼있는 것입니다. 정치권력의 생리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법을 지키고 자기양심대로 정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특히 정치자금문제에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동교동이나 상도동은 대통령을 만든 정치적 인맥입니다. 우리 정치사에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동교동과 상도동은 과거 야당을 이끌어 왔고 민주화를 주도한 양대산맥입니다. 그리고 정권을 한번씩 잡았었습니다. 계파로서는 목적달성을 한 것입니다. 다만 누가 더욱 국민과 국가에 기여했느냐. 이것은 역사가 판단하겠죠.”

그러면서 그는 지금 동교동과 상도동이 화해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은 삼갔지만 DJ와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

“동교동과 상도동이 화해가 되지 않는 것은 지도부 상부에서의 화해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어보지 못해 못한 말이 있을 듯싶습니다.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은 여당, 야당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야당일 때 반대했던 것을 여당이 돼서 추진하고 있고, 여당일 때 추진했던 것을 야당이 돼서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당운영은 당리당략의 반로이지 결코 국민을 위한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을 위해서 봉사하되 내가 여당일 때를 생각해봐야 되고, 야당일 때를 돌아봐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거기에 맞춰야 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