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과 근로자 사이, '노동 사각지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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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과 근로자 사이, '노동 사각지대' 존재
  • 홍세미 기자
  • 승인 2015.01.10 1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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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필담>"아프니까 청춘이다?" 열정페이에 멍드는 청년들의 꿈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홍세미 기자)

#1. 광주에서 거주하는 정예민(가명)씨의 꿈은 모델이다. 만 26살의 적지 않은 나이에 전공과는 무관한 진로를 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정 씨 서울에 위치한 A패션회사에서 모델을 구한다는 공고를 본 후 입사지원서를 냈다. 그러자 바로 연락이 왔다. 급여를 묻는 질문에 회사 측에서는 ‘무급 인턴’이라고 말했다. 정 씨는 당장 돈을 벌기 보단 경력을 쌓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해 근로를 시작했다.

그러나 정 씨가 하는 일은 모델일이 아닌 디자이너 ‘어씨’(assist)일이었다. 모델 일을 하러 들어온 정 씨는 왜 허드렛일만 시키느냐고 물었다. “너 아니어도 일 배우고 싶다는 사람이 깔렸다”며 “하기 싫으면 관두라”고 으름장을 놨다. 정 씨는 여기서 그만두면 경력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 참기로 결정했다.

#2. 서울에서 4년제 대학교를 나온 김민희(가명)씨는 기자가 꿈이다. 기자 준비를 하던 중 경력이 있는 사람을 원한다는 말에 인턴 공고를 찾아봤다. 소위 말하는 ‘메이저 언론사’인턴을 알아본 정 씨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1달 9시부터 6시까지 근무하는 인턴에게 50~70만원수준의 임금을 줬기 때문.

이 뿐만이 아니다. ‘마감’때가 되면 야근도 불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당은 없었다. 김 씨는 경력을 쌓기 위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회사를 알면서도 지원해야 했다.

▲ 청년유니온 2014년 청년 착취 시상식 ⓒ 뉴시스

열정페이: 무급 또는 아주 적은 월급을 주면서 취업 준비생을 착취하는 행태를 비꼬는 말.

2011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말은 악덕 업주들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쓰는 말이 됐다. 취업 준비생에게 ‘경력’을 쌓을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터무니없는 임금을 지급하는 경우가 있다. “청춘이니까 돈보다 열정으로 일해야 한다. 아픈 것은 당연하다”라며 ‘무급 인턴’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최근 청년 유니온과 패션노조는 2014년 한 해 간 제보를 통해 문제가 드러난 오너디자이너 5인을 대상으로 ‘착취 대상’을 선정했다. 총 111명이 설문에 참가한 결과 이상봉 대표가 59표를 받아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이석태 대표가 22표를, 이승희 대표가 10표를, 최범석 사장이 7표를, 고용태 사장이 4표를 기록했다. 이들은 인턴들에게 한 달 급여로 30만원가량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청년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업종은 패션업계 뿐만이 아니다. 일반기업, 언론사 등 분야에 관계없이 ‘경력’으로 인정하는 대가로 낮은 임금을 주는 기업이 있었다.

"‘인턴’은 ‘근로자’가 아니다"

인턴제도는 정규직 공채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면서 기존의 스펙보다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채용 풍토로 확산됐다.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점에 지원자들은 관심을 가졌다. 대기업의 경우, 경력을 쌓기 위해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는 인턴십에도 많은 지원자가 몰리기도 한다.

일부 기업에선 경력을 쌓기 위해 입사한 인턴들에게 최저임금조차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인턴들이 최저임금을 받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유는 인턴을 ‘근로자’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저임금법 및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임금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에 한 해 근로자로 분류된다. 하지만 채용공고에 ‘무급인턴’으로 밝히고 지원자가 응했다면, 인턴은 임금을 목적으로 한 ‘근로자’로 분류가 되지 않는다. 인턴은 회사를 체험하고 교육을 받는 성격이 짙다. 법적으로 규제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

문제는 기업이 인턴에게 정규직과 다를 바 없는 강도 높은 노동을 시킨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무급인턴 공고의 경우 인턴에게 ‘교육’이 기본이 되게 해야 한다. 하지만 몇몇의 회사는 무급 인턴들에게도 강도 높은 노동을 요구했다. 이는 ‘노동 착취’로 번질 수 있다. 

▲ 모 회사의 채용 공고. 최저임금도 안되는 임금을 지급하면서 인턴을 모집했다 ⓒ 인터넷 채용공고 캡처화면

법으로 정하기 애매한 '인턴'…노동의 '사각지대'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법으로 제정하기도 애매하다. 인턴들의 부당한 대우를 개선하기 위해 새정치민주연합 송호창 의원 등 10명의 의원들은 지난해 9월 일명 ‘인턴 보호법’이라 불리는 ‘인턴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인턴 보호법’의 주요 내용은 1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인턴계약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밖에 △산재보험 혜택을 적용 △인턴계약서 교부 △불합리한 처우 금지 등이 포함돼있다. 인턴 임금으로 재계약을 통해 계속 근로시키지 못하기 위한 장치다.

하지만 이 법도 근본적인 ‘무급 인턴’에 대한 해법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무급 인턴 계약을 해도 1년 내 범위를 지키지 않는 것을 골자로 해 사실상 무급을 인정한다는 목소리다.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실은 9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현재 송 의원을 비롯한 인턴 보호법이 발의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법은 아니다”라며 “인턴 노동 착취에 대한 법을 제정하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언급했다.

그는 “어정쩡한 ‘무료 노동’, ‘공짜 노동’은 존재하면 안된다”며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근로계약하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에 교육이나 실습으로 규정하고 노동을 착취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프랑스나 독일같은 외국에는 판례라든지, 행정부 지침으로 교육과 노동의 구별 법이 정리가 돼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경우 정규직 전환 인턴이나 체험만을 위한 인턴 등 형태가 다양하기 때문에 일반화시켜서 법으로 정하기가 어렵다”며 “그래도 부당한 노동은 없어야 하기 때문에 교육이나 실습과는 다른 ‘노동’을 규정할 수 있게 연구 중이다”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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