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들에서 존재한다"
스크롤 이동 상태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들에서 존재한다"
  • 박세욱 기자
  • 승인 2008.12.24 12: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운사 법만 주지스님 인터뷰

세상이 어수선하다. 민초들의 마음은 허공을 걷는다. 갈피 못잡는 마음 다스릴 좋은 말을 듣고자 선운사(전북 고창군) ‘법만’ 주지스님을 찾았다.

법만 스님은 “현대사회에서 한국불교는 전통에 걸맞는 재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불교 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는 사회구조적 고통을 내 고통으로 받아들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들에서 존재한다”는 이른바 불교의 연기적(緣起的) 세계관을 피력했다. 전주고를 졸업한 법만 스님은 전북대 사범대학 3학년때 출가한 뒤 선운재정국장과 포교국장, 참당암 원주를 지냈으며 현재 고창군종합사회복지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     © 시사오늘

종교는 ‘진리’다

-요즘 불교계의 목소리가 높은데 스님의 생각은 어떠신지.
“근래 불교계가 정부의 종교 차별 정책에 반대하는 가두 시위를 벌린 일이 있었죠. 정부가 특히 불교계를 업신여긴 시책 사례들을 들며 항의를 표시한 것이 었지요.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 시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서울시를 하나님에게 바친다’ 라는 발언한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있고 국민 중에는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닌 이들이 많이 있는데 고위 공직자가 자신의 신앙에 치우쳐서 독선적이고 편협한 언행을 보인다고 사회여론으로 부터 비판을 받았죠.

이후 국무총리가 나서서 불교계에 대해 사과를 했고, 앞으로 정부가 종교계를 상대로 차별 정책을 쓰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도 했습니다. 국민의 심중은 이명박 대통령이 속한 특정 종파(개신교)의 성향에 미뤄 독선적 신앙 태도를 은연중에 우려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곧 ‘진리’인 것입니다. 불교는 중생제도를 해야 하고 교회 또한 인간 구원을 위해 사회참여를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답게 사는 사람들의 세상이 되도록 이바지하는 진리의 실현 과정에 종교가 있는 것이지요. 종교는 ‘진리’의 또 다른 이름인 것입니다. 그리고 종교는 세상을 위해서 존재하죠.”
 
이웃종교와의 풀리지 않는 갈등

-현대 한국의 다원종교 사회에서 이웃종교와의 화해와 갈등 해소라는 측면에서 불교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진리는 하나지만 여기에 이르는 길은 여럿일 수 있습니다. 진리는 누가 홀로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사실 누구에게 독점될 수 있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이에 붓다는 법(法)에 대한 집착을 법집(法執)이라하며, 나에 대한 집착과 함께 버려야 할 근본 번뇌의 하나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법집은 곧 이웃 종교에 대한 미움과 갈등으로 이끌 위험이 있기 때문에 경계한 것이지요.”
 
-그러면 붓다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붓다는 외도들의 비방에 ‘비방에 분노하거나 싫어하지 마라’라고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길게 설한 경을 모아놓은 경전인 ‘디가니까야<범망경>’에는 ‘비구들이여, 남들이 나를 비방하거나 법을 비방하거나 승가를 비방한다면, 거기서 그대들은 사실이 아닌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해 주어야 한다.

이러하기 때문에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러하기 때문에 이것은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것이 없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더욱이 비방에 분노하지 말아야 하며, 칭찬에도 즐거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법의 진위 또는 우열에 대한 기준을 바깥에 두지 말라는 권고로 받아들여도 무방합니다.

다시 말해 상대방이 비방한다고 해 법(法)이 비법(非法)이 되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이 칭찬한다고 해서 비법이 법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법은 그 자체로 법입니다.”
 
-현대 다원종교 사회에서 불교의 입장은 어떤 것입니까.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불교와 유교, 불교와 전통 종교의 갈등은 거의 드러나지 않지만 기독교와 이웃 종교 간의 갈등은 많았으며, 종교 간 갈등은 흔히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지난 1994년에 있었던 ‘청와대 불상 해프닝’이나 현 정부의 종교 편향 문제는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다원주의적 종교 이해는 단순한 문화적·사회적 필요에서 뿐만 아니라 성숙한 종교인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신행을 닦는 종교인이라면 누구나 깊이 들어가 보면 모든 종교는 동일한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체험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이웃 종교 간 상호 이해와 소통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단지 추상적이고 연역적인 종교일치론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종교학자 스미스는<종교의 의미와 목적>이라는 저서에서 종교 간 갈등 문제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바로 ‘하나의 종교’라는 개념이며, 이 개념은 오늘날 비판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했습니다.”

▲     © 시사오늘

-어떻게 하면 이웃 종교간의 진리 주장이나 논쟁을 화회 할 수 있습니까?
우선은 가는 길이 각각 다르다는 분명한 인식에서부터 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다원종교 사회에서 살고 있으며, 이를 인정하는 한은 ‘다양성 속의 통일’을 하나의 대안으로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육조단경(六祖壇經)에서는 일등능제천년암 일지능멸만년우(一燈能除千年闇 一智能滅萬年愚)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새로 밝힌 등불 하나가 천년의 어두움을 몰아내고, 새로 깨친 지혜 하나가 만년의 어리석음을 없애준다’는 뜻이지요.”

법만 스님과의 인터뷰를 마치며 스님의 마지막 ‘육조단경’을 인용한 얘기는 현재 정부의 종교 편향의 불편한 심기를 간접적으로 내 비춘 듯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