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목, “이회창 본인이 나온다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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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목, “이회창 본인이 나온다고 하는데…”
  • 정세운 기자
  • 승인 2008.12.03 1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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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의 정치인 서상목 전 복건복지부 장관

18대 총선서 자유선진당 간판 달고 홍성, 예산 출마 검토
이회창 총재 본인 출마하자, 강남서 무소속 출마 강행

 
10월의 가을은 쓸쓸하다. 서상목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의 인터뷰가 있던 10월 23일 나무에서 떨어져 뒹구는 낙엽과 함께 비가 내려, 더욱 쓸쓸했다.

싸늘한 가을 날씨가 서 전 장관의 정치역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 전 장관은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세계은행(IBRD)에서 일하며 ‘타임’지 경제고문을 지냈다.

귀국해서 36세에 한국개발연구원(KDI)부원장을 맡으며 1988년 정계에 입문하기까지 경제통으로 활약했다. 

▲서상목 전 장관은 1997년 대선 전까지는 승승장구한 정치인이었다 ⓒ시사오늘 권희정

정치에 입문해서는 내리 3선의원이 됐고,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역임하며 1990년대 중반까지 그야말로 승승장구한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불행’이 다가왔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기획본부장을 맡은 게 화근이었다.

서 전 장광은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국세청을 동원, 불법 대선자금을 모았다. 검찰은 대선이 끝난 1998년 8월 이회창씨가 한나라당 총재로 선출되던 날, 서 전 장관을 출국금지하면서 수사를 시작했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 십수명의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상정됐고, 일부 의원들은 여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결국 1년 동안의 수사와 7년간의 걸친 재판 끝에 그는 1년형의 선고를 받고 복역했다. 때문에 그는 지난 10여년간 야인으로 지내야 했다.
그런 그가 명예회복을 위해 18대 총선에 출마했다. 하지만 결과는 ‘낙선’이었다.
 
강재섭 대표에게 사기당한 느낌
 
-18대 총선에서 출마했는데 낙선했습니다.
“잘 알려진 세풍사건으로 정치일선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98년에 시작해 재판을 7년을 하고 실형을 받았습니다. 갔다 와서는 정치 활동이 묶여서 지난해 8월15일이 돼서야 사면 복권돼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내 나름대로 나이도 있고 해서 정치 재기를 하게 된다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서 출마하게 됐습니다.

내 나름대로 생각하기에는 하나님이 일해 보라고 한 것으로 생각이 들었지만 낙선을 하게 되니 이것도 하나님의 뜻 이라 생각합니다.”

▲서 전 장관은 이회창 총재가 홍성에서 출마하는 바람에 무소속으로 강남에서 출마하겠다고 고백했다
-서울 강남은 한나라당 텃밭입니다. 무소속으로 출마를 했는데 당선가능성이 희박하지 않나요.

“한나라당이 아닌 무소속으로 출마하게 된 배경에는 이미 언론에도 여러 차례 언급된 바 있듯이 새로 생긴 한나라당 당규인 ‘비리 전력자의 예외 없는 전원 공천 배제’ 때문입니다.

나 같은 경우 공천을 받을 수 없는 당규인 것입니다. 이러한 한나라당 당규 신설에 대한 내막을 알아보니 보궐선거에서 공천헌금 문제가 터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공천헌금에 관련된 사람은 공천 심사를 아예 하지 않기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재섭 대표한테 전화를 해 ‘강 대표 이러한 당규가 있는데 나 같은 사람은 당사에 얼씬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냐’고 물었더니 강 대표가 말하기를 “아니다. 당을 위해서 헌신한 분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말합디다.
그 후로 강 대표가 지시를 했는지 ‘사면복권 된 사람은 예외로 한다’는 조항이 붙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한나라당 복당에)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올해 초 누군가가 나에게 이상한 당규가 생겼다고 해서 알아보니 ‘복권된 사람은 예외로 한다’는 조항이 없어져 있었습니다. 사실 그때 나는 강 대표에게 사기당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회창 비례대표로 나오길 내심 기대
 
-억울하셨겠습니다. 아무튼 당을 위해 한 일 때문에 공천을 받지 못한 것 아닙니까.
“세풍사건으로 인해 당에서 처벌받은 사람은 나 혼자입니다. 97년 대선 당시 내 직책이 기획본부장이었습니다. 기획본부장이 혼자서 대선자금을 모았다는 것은 말이 됩니까.

위에 사무총장도 있고 그런데 어떻게 나 혼자서 대선자금을 모았겠습니까. 당시 대선자금을 모은 사람이 둘이 더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대선이 끝나자마자 여당으로 갔습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으로 갔고 두 사람은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물론 경찰에 기소도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내가 다 뒤집어 쓴 것이고 이것을 내가 세간에 알리게 되면 사태가 커지기 때문에 결국 나 혼자 당을 위해 희생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당을 위해 희생한 사람을 어떻게 당에서 나몰라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서 전 장관은 이 대목에서 ‘음모론’을 제기하는 듯 보였다.
“내가 자체적으로 여론조사를 해보니 지지도가 현역의원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로 인해 내가 출마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입니다. 특히 규정과 관련해서도 강 대표로부터 “나 같은 경우는 해당이 안된다”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때문에 나는 당연히 공천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한나라당에서는 공천 심사조차 하지 않고 서류 자체를 반려 했습니다. 내가 오죽하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했겠습니까. 사면 복권이라는 것은 그 죄를 없애 주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한나라당의 지금 ‘룰’에 의하면 나 같은 경우는 영원히 공천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은 엄연한 위헌입니다. 내가 왜 감옥에 갔겠습니까. 내가 폭력배 출신으로 감옥에 간 것도 아니고, 당을 위해 희생한 나에게 당에서 보상을 못해줄 망정 공천도 안 해 주는 게 억울해서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했습니다.

서 전 장관은 ‘비리 전력자의 예외 없는 전원 공천 배제’ 라는 당규 때문에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심사 조차 할 수 없었다. 이 조항이 ‘위헌’이라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기각됐다.

-강재섭 전 대표에게 서운했겠습니다.
“처음에는 강 대표에게 서운함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강 대표는 조항에 넣었지만 나중에 심사과정에서 조항이 빠진 것입니다.”

-자유선진당으로 당적을 옮길 생각은 안해 봤습니까. 당적을 옮겨 비례대표 등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비례대표는 정치 신인들이 출마하는 것이지 나 같은 사람은 출마를 하는 게 아닙니다.”
 
DJ는 가장 치사한 정치인
 
-고향이 홍성인 것으로 압니다. 홍성, 예산에서 지역구 출마를 검토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홍성, 예산에서 이회창 총재 본인이 나온다고 하는 데 어쩔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당에서 충청도라도 확실히 잡아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나는 사실 이 총재가 비례대표로 나오길 내심 바랬습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이 총재를 지역구 출마로 몰고 갔고, 이 때문에 나는 강남으로 출마하게 됐고 자유선진당 공천을 받더라도 강남에서는 떨어지기 때문에 이 총재에게 말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게 된 것입니다.”

서 전 장관의 지난 정치역정을 뒤돌아보면 이회창 총재에게 서운할 듯도 했다. 사실 그가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한 것은 ‘이회창’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서 전 장관은 ‘이회창 탓’이 아니라 ‘한나라당’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출마한 것은 한나라당을 배신한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이 나를 배신한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 친박연대가 인지도가 높았습니다. 물론 친박연대로도 출마할 수 있었지만 내가 박근혜 대표와 깊은 친분이 있던 사람도 아니고 이 전 총재의 사람인대 친박연대로는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떨어질 바에는 그냥 무소속으로 나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회창 총재의 최측근으로 분류됩니다. 이 총재의 정계복귀나 대선 출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측근이라 함은 자주 만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내가 정치를 떠난 이후부터는 측근이 아닙니다.

사실 이번 대선에서 이 총재가 대선 출마하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내가 출마하라는 이야기도 안 했고 나한테 출마한다는 이야기도 안했다. 그래서 출마를 하고 나서 가만있으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가만두질 않았다.”

서 전 장관은 지난 대선에서 이회창 총재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복수후보론’을 주장했다.

복수후보론은 ‘후보자교체는 후보자 등록 마감 5일후까지만 가능하다’고 못박고 있는데서 기인한다. 당시 유력후보였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후보자 등록 5일 후에 유고될시 대체후보를 낼 수 없으니까, 보수진영은 대선승리를 위해 복수후보를 내야 한다는 게 ‘복수후보론’의 실체다.

“이 총재의 출마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이 총재의 출마로 인해 이명박 후보의 테러위험성이 감소한 측면도 있습니다. 또한 당시에는 BBK라는 폭탄을 안고 있었습니다.

당시 검찰은 ‘노무현 검찰’ 아닙니까. 헌법상으로 후보자격이 상실하면 후보 없이 대선을 치르도록 돼 있습니다. 이게 대통령 선거법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복수후보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이 총재의 출마를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이회창 출마가 검찰의 칼과 김정일의 칼로부터 보호한 것입니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은 이회창 총재한테 고마워해야합니다. 물론 한나라당은 당시 서운 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득이 됐다고 봅니다.”

▲서 전 장관은 권력분점을 위해 내각제로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권력분점위해 내각제로 바꿔야
 
-그렇다면 왜 신당(자유선진당)을 만들었습니까, 너무 억지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당을 만든 것은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대선 때 도와준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보수정당이 필요해서 입니다.

한나라당이 지방의회와 중앙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권을 잡았습니다. 절대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이를 견제를 해야 하기 때문에 복수보수 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승승장구 하던 정치인이었는데 이 총재와 인연을 맺음으로 써 일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총재에 대한 서운함은 없습니까.
“서운하다고 생각했으면 지금 화병이 걸려서 죽었을 것입니다. DJ가 집권하면서 이회창 사람들을 전면적으로 수사했습니다. 황낙주, 박명환, 박주천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황낙주 박주천씨가 그것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DJ이처럼 잔인한 사람이 없습니다. 야당 정치인들을 이렇게 혹독하게 탄압한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 생각하면 살 수가 없습니다. ‘팔자소관’이라고 생각해야지….”

-DJ에 대한 원한은 있겠습니다.
“DJ는 치사한 분입니다. 선거가 끝난 뒤에 대선자금을 수사한 것은 1998년이 처음입니다. 과거에 여당이 선거에서 이긴 뒤 야당 선거자금을 뒤진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여당도 깨끗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002년 대선자금 수사를 보면 압니다. 적고 많고를 떠나 모든 후보가 돈 받은 것으로 드러났잖아요. 당시 1997년 대선 때 DJ의 지지도가 높았기 때문에 들어오는 돈도 많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서 전 장관은 대선자금 문제로 옥고를 치렀습니다. 최근 ‘DJ 비자금’ 문제가 정치권의 화두로 등장했습니다. 이 문제도 수사를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DJ 대선자금을 비롯한 비자금 문제는 어느 정치인보다도 복잡합니다. 1조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실인지 아닌지 난 모르겠습니다. 만약 이러한 문제가 있다면 올바른 역사를 위해서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정치를 시작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정치를 다시 할 생각은 없습니다. 지난 총선에서 낙선하면서 이제 정치는 내가 갈 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좋은 후배들이 많이 나와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인터뷰를 마친 후 서 전 장관과 점심을 같이 하면서 ‘최근 정치권에선 개헌이 화두다. 개헌에는 찬성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찬성한다. 내각제로 권력구조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길게 부연설명까지 늘어놨다.

“대통령제는 권력집중으로인한 폐해가 심각합니다. 권력을 분산시키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봅니다. 이원집정부제나 대통령 4년중임제도 좋지만, 권력분산을 위해서는 내각제가 가장 좋은 제도라고 봅니다.”

그의 답변을 듣고 있자니, 아직도 그가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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