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구, "YS는 현철이 정치하는 것 원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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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구, "YS는 현철이 정치하는 것 원치 않는다"
  • 정세운 기자
  • 승인 2008.04.29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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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계 인사 낙천에 대한 격정토로

민주동지회는 지난 2000년 ‘김영삼(YS)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민주계 인사들이 모여 만든 친목단체다. 이들은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해, 그가 대통령이 되는데 일조했다.

하지만 김덕룡 김무성 의원을 비롯한 박종웅 전 의원 등 대부분의 민주계 인사들이 이번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했다.

이들의 낙천으로 민주계가 정치전면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를 바라보는 민주계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이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어 민주동지회장을 맡고 있는 노병구(76) 회장과 인터뷰를 하자고 청했다.

노 회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20일 경복궁 옆 ‘올리버’라는 카페에서 이뤄졌다. 노 회장은 한나라당 박진 의원 선거사무실 개소식이 있는 날이라며 그날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노병구 민주동지회장은 YS는 현철이가 정치하는 것 원치 않는다고 전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공천은 경선으로 해야 잡음 없어…”
 
-이번 한나라당 공천과 관련해 말들이 많습니다.

“원래 공천은 시끄럽고 어느 정도의 잡음은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번 공천은 문제가 아주 많은 것 같아요. 저도 정치를 쭉 해왔지만 이번 공천은 어떻게 된 게 공천심사위원 구성부터 문제가 많았습니다. 당을 잘 아는 사람이 심사위원이 돼야지, 정당을 해보지도 않은 사람들을 데려다 그 사람들에게 당 공천심사를 맡기는 것 자체가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왜 내 집 제사에 내 집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을 불러 그 사람들이 밤놔라 대추놔라 합니까.”
 
최근 YS는 한나라당 공천과 관련해 잘못된 공천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YS의 생각이 노 회장에게 그대로 녹아 있는 듯했다.
 
-결국 공천심사위원 때문에 공천이 잘못됐다는 말입니까.

“깨끗한 공천을 위해 그들을 불렀다면 그들의 검증은 누가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그야말로 검증절차도 밟지 않은 정치에 문외한인 사람들의 결정에 의해 당 운명을 맡겼으니 처음부터 한나라당 공천은 잘못되도록 자초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천과 관련해 좋은 방안이라도 있습니까.

“군사독재시절에는 독재자 한 사람의 정치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그 사람의 뜻에 따라 공천이 좌지우지 됐지요. 하지만 민주화가 된 지금은 국민의 뜻에 따라 공천을 해야 합니다. 국회의원 선거구 단위로 ‘경선’을 해서 공천자를 결정하는 게 가장 최선의 방법 아닌가요.”
 
-경선이 안되는 이유가 뭐라고 봅니까.

“정당을 이끄는 사람들의 사심 때문이라고 봅니다. 경선하면 자기 사람을 많이 심을 수가 없잖아요. 결국 욕심 때문에 공천에 대한 시시비비가 일어나는 겁니다.”

노 회장은 이번 공천에 대해 “과거에 다선의원이면 영광이었는데 나이 많고 다선의원은 부끄러운 게 됐다. 다선이 공천 물갈이 대상이 된다는 게 웃긴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왜 이렇게 됐나 한심한 생각이 듭니다. 과거에도 야당 할 때 보면, 다른 분야에 있던 깨끗하다고 평이 나 있는 사람들 데려와도 큰 성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게 하는 건지, 이재오 이방호 등이 공천에 관여 한다는 얘기들도 들립니다. 이 대통령의 생각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농간에 놀아나는 공천을 한 것이라면 이 대통령 리더십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박 전 대표가 공천과 관련해 반발하고 있는데,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박 전 대표가 계파 나눠 먹기식 공천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라면 찬성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민주계 입장에서 보면 이번 공천결과를 볼 때 서운한 점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명박 후보를 지지할 때 무슨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에 비해 차별대우를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도 사람이 하는 건데 신의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YS를 비롯한 민주계는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크게 일조했다. 전직 대통령이 드러내놓고 한 후보를 지지하는 것과 관련해 시중에는 많은 말들이 떠돌았다. 하지만 YS는 개의치 않고 ‘이명박’을 지지했다. 그 결과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데 민주계 인사들은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총선공천과 관련해 민주계 인사들이 대거 낙천했다. 노 회장은 그 섭섭함을 토로하는 듯싶었다. 특히 노 회장은 “김덕룡 의원이나 박종웅 전 의원은 공천을 줬어야 옳았다”고 말했다.
 
“김덕룡 김무성 이규택 이원복 의원 등은 실질적으로 민주동지회의 중심이고 지도자들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YS는 현철이 정치하는 것 원치 않아”

 
-YS의 상징인 박종웅 전 의원이나 차남인 현철씨가 공천을 받지 못했습니다. YS가 대단히 서운할 것 같습니다.

“현철씨에 대해 정치권이나 국민들이 전혀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YS가 현철이 국회의원 시키려고 이명박 후보를 밀었다고 해. 그 속을 내가 아나. 그래서 YS 만나러 상도동에 갔습니다. 그때가 현철씨가 한나라당 공천 받고 거제에 출마하겠다고 기자회견 했을 때야. 한나라당에서는 당규 상 과거비리가 있는 사람은 공천신청도 할 수 없다고 발표했어요.
 
김덕룡 김무성 박종웅 등 공천에 대한 얘기들이 많이 떠돌아 모두들 불안해하고 있어. 그래서 내가 YS만나 이들이 불안해하는 말을 전하며 ‘현철씨까지 이번에 공천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고 했지. 그랬더니 YS가 ‘우리가 무엇을 바라고 이명박 후보를 민 것은 아니지 않나’라고 운을 떼면서 말합디다. ‘나는 현철이가 정치를 안했으면 좋겠어, 내 자식이라도 50이 다 됐는데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어서 그냥 보고만 있는거지’라고 말을 해요.”
 
-그렇다면 YS가 현철씨가 정치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말입니까.

“맞습니다. YS는 ‘현철이는 어떻든 실정법을 위반하고 죄를 지었으니 죄인아이가, 그런 사람에게 공천을 줄 수 없다고 하면 하지 말아야지’하고 담담하게 말씀했습니다.”

YS는 이번 한나라당 공천에 대해 “대단히 잘못된 공천이다.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비난했다. 이를 두고 언론들은 YS가 자신의 차남인 현철씨가 공천을 받지 못한 항의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노 회장의 주장은 전혀 달랐다. 노 회장은 “그런 식으로 해석한다면 YS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웅 얘기는 웃기는 거야. 박종웅은 이명박 후보 선거캠프에서 선거대책 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여권의 네거티브 선거를 정면에서 맞서서 싸웠어. 이회창 대선출마를 저지하기 위해 단식 등 모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명박 캠프나 한나라당에서 선거 대책위원회 부위원장 임명장까지 줬습니다. 그런데 선거 끝나자 입당이 안된다고 공천기회까지 박탈했습니다. 정말 웃기는 거야. 그렇다면 당원도 아닌 사람한테 선대위 부위원장 임명장을 준 것 아닙니까. 정말 동서고금에 들어도 보지 못한 얘기들을 합니다.”
 
한나라당은 박 전 의원에게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한 것을 놓고 해당행위라며 공천을 주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도 노 회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박 전 의원이 공천을 못 받는 이유 중 하나가 해당행위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건 박종웅의 책임이 아니라 당과 공천심사위원회 책임입니다. 당시 박종웅에게 공천을 줬다면 당선되는 것 아닙니까. 자기들이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낙천시키고 다른 사람에게 공천을 주니, 잘못된 공천에 불복해 출마한 것 아닙니까. 그리고 박종웅이 다른 당 간판을 가지고 입후보 했으면 문제가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무소속으로 나온 것은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노 회장은 “이번 총선에서도 박 전 의원이 무소속으로 나서야 한다. 그리고 지역주민들은 잘못된 공천을 바로 고치기위해서도 박 전 의원에게 한 표를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자는 ‘강삼재 전 의원도 핵심 민주계다. 강 전 의원이 이회창 총재와 함께 자유선진당을 창당한 것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노 회장은 “강삼재…, 뭐 나는 이회창 총재부터 잘못됐다고 생각하니 강삼재도 잘못된 거지. 그렇게 안했으면 좋겠어. 차라리 무소속으로 나오는 게 옳지…”라고 말끝을 흐렸다.
 
“손학규, 도지사 되고나니 연락 끊어…섭섭”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는 질긴 인연을 가지고 계십니다. 손 대표가 종로 출마를 선언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디에 출마하든 그건 자유지만 출마하려면 자신을 키워준 광명에서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정치인의 도리 아닙니까.”

손 대표와 노 회장의 질긴 인연은 YS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부터 시작된다. 당시 14대 국회의원이었던 윤항열 의원의 급서로 광명시가 공석이 됐다. 제13대 통일민주당 광명시 지구당위원장과 민주산악회 광명시 지부장을 역임하면서 오랫동안 지역기반을 쌓았고, 민주산악회 연수원장을 역임하면서 ‘YS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노병구의 공천이 유력시 됐다.

하지만 공천은 손학규 전 지사가 받았다. 손 전 지사는 민자당 후보로 공천을 받고 나와 당선이 돼 금배지를 달았다.
 
필자는 ‘지금 생각해도 아쉽다. 엊그제 대통령에 당선된 당으로 공천을 받아 출마하는데 당선이 안되겠냐’고 말했더니 노 회장은 “국회의원이 되려면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 나야된다고 하잖아, 팔자에 없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손 대표와 관계는 어떻습니까.

“손 대표가 광명시에서 국회의원 할 때는 친했지. 손 대표를 처음에는 좋게 봤어. 당선 된 후에도 잘 웃고 인사성도 밝아. 하지만 손 대표가 도지사 되고나서는 여러 해 동안 만나질 못했습니다. 민주동지회에서 통지서도 보내도 연락이 안 되고 직접 전화를 해도 안 됩디다. 내가 한 열 번인가 전화를 해도 답신이 안와. 그래서 전화 안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연락 끊고 살았지. 그런데 그게 2005년 말이던가, 손 대표가 대권후보로 거론되던 시기야. 그때 전화가 왔어. ‘손학귭니다’라고 해서 내가 싫은 소리했지. ‘바쁜 사람이 웬일입니까. 전화 걸 시간 없잖아요’하고 말했더니 손 대표가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열심히 참석하겠습니다’고 말하더라고.”
 
-손 대표한테 많이 서운하셨던 것 같습니다.

“서운했지. 지역구도 물려주고 전적으로 밀어주고 했는데, 끝까지 믿었지. 하지만 자리를 떠나면 달라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손학규는 우리하고 상관없는 사람이다’고 생각했어. 사실 손 대표 보면 아쉬워, 간판이 아까워. 경기고에 서울대 옥스퍼드 나왔잖아요. 신언서판 얼마나 좋아. 그런데 경기도지사 되면서 정치적으로 한 단계 올라서니까 그 밑에 있던 사람은 안중에 없었던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어.”
 
노 회장은 사실 자유당 때부터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정치계의 산증인이다. 노 회장은 ‘진산계’로 본격적인 정치를 시작한 이래 ‘고흥문계’를 거쳐 ‘상도동계’로 활동했다.

그가 바라보는 향후 정치권에 대한 생각이 듣고 싶어져 필자는 ‘일생을 정치권에 계셨다. 정치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누가 차기 대권후보로 떠오를 것 같냐’며 예상을 부탁했더니, 노 회장은 “내가 점쟁이도 아니고 5년 후의 일 까지야…”라고 답했다.
 
인터뷰를 마치자 노 회장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나라당 박 진 의원 선거사무실 개소식에 가봐야 한다고 했다. 걸어 나오면서 ‘이명박 정부에 대해 평가해 달라’고 했더니, 노 회장은 “경제 살린다고 하는데 독재자들이 그런 말 해가며 얼마나 국민을 억압하고 괴롭혔습니까. 정치와 경제도 동전의 앞뒷면처럼 한 덩어리로 조화롭게 굴러가야 합니다. 정치가 잘돼야 경제도 사는 것 아닙니까”라고 반문했다. 아마도 이번 한나라당 공천의 문제점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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