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박근혜를 세 번 구하다
스크롤 이동 상태바
김무성, 박근혜를 세 번 구하다
  • 김병묵 기자
  • 승인 2016.04.15 16: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수첩>진박 무공천으로 TK서 反박근혜 바람 확산 막아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뉴시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을 구한 셈이 됐다. 물론 선거가 끝난 뒤,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선거가 새누리당의 완패로 끝나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지금보다 더욱 깊은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이를 막아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김 대표의 선거직전 벌인 ‘옥새파동’이었다.

김 대표가 막판에 ‘도장을 찍지 않으며’ 무공천 지역으로 남긴 곳은 서울 은평을과 서울 송파을, 그리고 대구 동을이었다. 대구 동을은 유승민 의원의 지역구로, ‘진박’ 이재만 전 동구청장이 나온 곳이었다. 그런데 김 대표가 이 지역에 새누리 공천자를 내지 않으면서 이 전 동구청장은 무소속으로조차 선거에 나서지 못했다.

김이 빠졌다. 유 의원이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며 사실상 무혈입성했다. 대구에 팽배하던 반(反) 진박 정서도 함께 누그러졌다. 그 결과, 유 의원은 생환했지만 영남에 나선 친유(親劉) 무소속은 전멸했다. 진박 후보들이 당선되며 청와대는 ‘최악’의 사태는 면했다.

일어나지 않은 최악의 사태란, 이 전 동구청장이 유 의원에게 참패하는 경우다. 또 반박 분위기가 대구 전체에 퍼져 진박 후보들 일부, 혹은 전부가 친유계 무소속에게 패하는 그림이다. 물론 선거조차 치러보지 못한 이 전 동구청장에겐 억울한 일일 수 있겠지만, 각종 지표는 유 의원의 승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상 시나리오의 종착역은, 청와대 책임론과 박 대통령의 급격한 레임덕이다.

그런데 김 대표의 옥새파동과 무공천으로 유 의원은 조금 ‘뻘쭘’한 상태가 됐다. 사실상 승리를 낙점한 뒤 주변 후보들의 지원에 나섰지만, 다시 반박정서에 불을 붙일 명분도, 동력도 상당부분 상실한 상태였다. 김 대표가 박 대통령을 한 차례 도운 셈이다.

김 대표가 박 대통령을 구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8대 총선, 한나라당서 벌어진 친이계와 친박계의 내전에서, 김 대표는 친박계로 분류되며 ‘공천 학살’ 대상이 된다. 친박계가 패닉에 빠진 가운데 김 대표는 당시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과 함께 계파를 추슬렀다. 친박연대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자신의 선거사무소로 초청하는 등, 주로 부산경남의 민심을 규합하는 역할을 했다. 대구경북(TK) 뿐 아니라 PK의 지지도 얻은 친박연대는 돌풍을 일으키며 결국 박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비대위원장 하에서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김 대표는 또 다시 공천에 탈락했다. 김 대표의 탈당 가능성이 점쳐졌다. 아예 분당(分黨)설까지도 불거졌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지난 18대 대선에서 다시 박 대통령을 돕기 위해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돌아왔다. 김 대표는 원외인사면서도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보수대연합을 결성하고, 민주계의 지지마저 흡수하며 박 대통령 당선에 일조했다. 이것이 두 번째 도움이다.

이번에 김 대표는 어찌됐든 박 대통령에게 세 번째로 도움을 준 셈이 됐다.

상도동계의 한 원로인사는 “김 대표가 옥새파동을 일으키지 않고 총선 전에 사퇴를 했다면, 박 대통령의 레임덕은 지금 상황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김무성 대표는 '키다리 아저씨'인 셈이 됐다.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