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군대인가" 귀 막은 기업의 '극기훈련',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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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군대인가" 귀 막은 기업의 '극기훈련', 왜?
  • 김인수 기자
  • 승인 2016.06.22 1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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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그룹·KT, 극기훈련 강제했다가 직원사망…SK네트웍스, 폭염주의보에도 해병대 입소
“단결력 일시 배양될지 모르지만 의무에 가까운 극기훈련은 불통 키울 수도” 우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인수기자)

▲ 최신원(오른쪽) SK네트웍스 회장이 해병대 캠프 체험에 참가해 극기훈련을 받고 있다.

해병대 캠프와 산행 등 극기훈련 중 사망사고를 비롯해 각종 사고가 발생하는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기업에서는 여전히 강요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기업 오너들은 정신무장과 도전정신, 사기충전 등 각종 이유를 대지만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일률적으로 강제하고 있어 비난도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논란을 부추기고 있는 기업은 SK네트웍스다. 22일 SK네트웍스는 사내 팀장급 이상 직책자 220여명을 대상으로 21일과 28일 두 차례에 걸쳐 각각 3박4일 간 포항 해병대 1사단에서 병영훈련 체험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SK네트웍스 직원들의 해병대 캠프 체험은 예견됐었다. 최신원 회장이 대표를 맡은 계열사에서는 어김없이 해병대 캠프에 입소했었다.

SK유통 대표 시절인 1998년에 처음으로 해병대 캠프에 참여한 이후 2014년까지 SKC, SK텔레시스 대표이사를 역임하며 총 7차례의 해병대 훈련에 참여했다.

최 회장은 해병대 258기이며, 외아들인 최성환 SKC상무도 해병대 1031기로 군복무를 마쳤다.

이번 해병대 병영훈련 체험은 최신원 회장의 제안에 따라 해병대 측과 프로그램 조율을 통해 이뤄졌다. 이유는 △도전정신과 패기 함양 △조직간 장벽 해소 및 리더들의 일체감 조성 △‘하면 된다’는 자신감 고취 등이다.

특히 이번 체험에는 최신원 회장과 문종훈 사장이 각각 1기와 2기에 참해 모든 일정을 구성원들과 똑같이 수행할 예정이다.

최신원 회장은 “이번 체험이 육체적으로는 힘들겠지만 정신 재무장과 자신감 고취를 통해 회사의 어려운 경영환경을 함께 극복해 나가고, 경영목표 달성과 미래성장을 이루는 계기로 만들자”고 당부했다.

문제는 상황을 고려치 않은 강행이다. SK네트웍스의 1기 해병대 캠프 입소 장소인 포항이 포함된 대구·경북 지역에 21일 폭염주의보가 발령됐다.

SK네트웍스의 해병대 캠프 중 아직까지 별다른 사고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지만 과욕을 부리다 보면 종종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대보그룹과 KT가 그 예다. 대보그룹 계열사인 대보정보통신 김 모 차장이 지난해 12월25일 회사단합 산행대회에 참가했다가 산행도중 쓰러져 사망했다. 대보정보통신은 이날 새벽 4시부터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

당시 유족과 일부 직장 동료들은 무리한 등산이 이 같은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일부 직장 동료들은 최등규 대보그룹 회장 등 경영진이 평소에도 직원들에게 산행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불참 시에는 자비라도 등산해 천왕봉 인증샷을 요구했고, 점심시간 엘리베이터 사용금지, 엘리베이터 사용 적발시 지하부터 지상 10층까지 왕복 20회, 체중 감량 지시 및 각서 제출 등을 요구했다는 것.

반면 대보그룹은 “업무나 건강상의 이유가 있다면 빠질 수 있는 행사였다”면서 “사규 차원이 아닌 건강을 독려하는 차원의 기업문화”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대보그룹의 ‘업무가 있으면 빠질 수 있었다’라는 해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김 차장은 이날 산행에 참가하기 위해 전날인 12월24일 회사 일을 마치고 저녁 8시쯤 지리산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한편 최등규 대보그룹 회장은 2014년 말 회사 돈 약 21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구속됐다가 다섯 달 뒤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KT도 지난 2005년 4월 12~13일 전남 나주연수원에서 실시한 혁신학교(C2C) 교육 중 국제망 소속 강 모 씨가 13일 오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교육은 산악도보, PT체조 등의 극기훈련이 주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3급 이상 간부들을 대상으로 실시되던 교육이 2005년부터 전 사원을 대상으로 확대됐다.

강 씨의 사망으로 KT의 교육내용이 속속 알려졌다. 교육에 포함된 극기훈련이 ‘유격훈련’을 방불케 하는 극한 훈련이었다는 문제제기가 일었던 것.

KT 측은 “유격훈련은 지나치며 실외에서 진행되는 교육인 만큼 활동적일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대한전선도 직원들을 강제로 해병대 캠프에 참가시켜 비난을 샀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진행하고 있어 뒷말이 많다. 대한전선은 올해 3월 해병대 캠프의 참가를 직원들에게 강요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비난을 샀지만 두 달 후인 5월에도 2박3일간 실미도에서 해병대 캠프를 진행했다.

대한전선은 직원들의 사기 충전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인사고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소문도 돌면서 강제성에 대한 의혹을 키웠다.

대한전선 관계자는 당시 <시사오늘>과 통화에서 “직원들 사기충전을 위해 진행되는 이번 해병대 캠프는 직원들 개개인의 인사 고과를 평가하는 실적 자료에는 포함되지 않는다”며 “단순히 회사에서 진행하는 교육을 1년에 몇 시간 이수했는지 정도만 개인 자료에 기록된다”고 설명했다.

2015년 대한전선 사령탑을 맡은 최진용 사장은 해병대 출신으로, 수시로 해병대 캠프에 직원들을 보내고 있다.

지난 5월30일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현대중공업은 계열사인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힘스, 현대이엔티 등 4개 계열사도 임원들의 해병대 입소훈련을 실시했다.

하지만 기업들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이같은 일방통행식 극기훈련이 자율적·창의적인 기업문화와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단결력이 일시적으로 배양될지 모르지만 반대급부로 대표의 방침에 따라 직원을 의무에 가깝게 내보내는 조직에서는 상명하복 문화와 조직의 불통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대한상의가 맥킨지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한국 기업들의 가장 후진적인 문제는 ‘상명하복 문화’와 ‘습관화된 야근’으로 조사됐다. 맥킨지가 매긴 한국 기업들의 조직 문화 점수는 55점으로, 글로벌 기업에 비해 최하위수준에 달했다.

맥킨지는 “임원들은 하면된다는 정신을 강요하는 반면 젊은 세대들은 삶의 질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지니고 있어 서로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인터넷에서도 기업들의 일방통행식 극기훈련에 대해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누리꾼들은 “참 한심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극기훈련이라니...회사가 군대인가?”, “사원들의 단결심을 배양하는 일이라면 연수원 같은 곳에서 공동체프로그램을 갖는다든가 해야지, 이런 원시적이고 비인간적인 짓거리가 다 뭔가”, “정말 쓸데없는 일이다. 회사에서는 단합보다는 한계를 돌파하라는 의미로 쓰인다. 도데체 뭘 느끼고 뭘 돌파하라는 건지”, “고통만을 강요하는 극기훈련은 인간 학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담당업무 : 산업2부를 맡고 있습니다.
좌우명 : 借刀殺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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