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영웅 後ⓛ]미담으로 가려진 소방관 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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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영웅 後ⓛ]미담으로 가려진 소방관 현실은?
  • 오지혜 기자
  • 승인 2016.07.23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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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재직 중 암 질환은 공상으로 인정…승인 거절시 기관이 직접 입증해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오지혜 기자) 

▲ <시사오늘>은 지난 181호 커버스토리 '작은 영웅 119'의 후속 취재를 통해 소방관의 순직·공상처리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 시사오늘

"홍제동 화재 사고 알죠? 사람들은 건물이 무너지거나 불이 나면 출구부터 찾습니다. 그 사지(死地)로 들어가는 건 소방관이 유일해요."

지난 1일 기자와 만난 경남지역의 전직 소방공무원 A의 이야기다.

홍제동 주택 화재사고는 지난 2001년 3월 4일 서울 홍제동에 위치한 연립건물이 붕괴, 소방공무원 6명이 순직하고 3명이 부상당한 참사다. 이 사고를 계기로 소방공무원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함께 살신성인의 직업정신이 주목받았다.

그러나 소방공무원 A는 수많은 미담(美談) 뒤에 가려진 현실을 살펴봐 달라고 했다.

"수 없이 위험 속으로 뛰어든 소방관이 막상 부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으면 '업무 관련성'을 직접 증명하라고 합니다. 이 나라가 안전의 최전선에 서 있는 소방관을 대하는 방식입니다."

<시사오늘>은 지난 181호 커버스토리 '작은영웅 119'의 후속 취재를 통해 소방관의 순직·공상처리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재난현장에 생활민원까지…24시간 대기조 '소방공무원', 평균 사망연령 '67세'

소방공무원은 일반 직무에 비해 그 업무 위험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최근 여러 매체를 통해 소방공무원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알려지면서 개인장비 확충과 첨단장비 보급 등 개선 움직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재난현장에서 업무 수행은 여전히 소방공무원의 몫이다.

소방공무원은 또 기존의 화재진압·구조·구급업무에 더해 말벌집 제거와 수학여행 지원 등 생활민원도 도맡고 있다. 

이처럼 24시간 불특정한 위험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교대 근무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불규칙한 수면시간과 식사패턴으로 건강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같은 근무환경의 결과는 수치로 명확히 드러난다.

▲ 지난 2014년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최근 10년간 연금수급자 평균 수명'에 따르면, 일반 공무원의 사망연령이 71세인 데 비해 소방은 67세로 훨씬 낮았다. ⓒ 시사오늘

지난 2014년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최근 10년간 연금수급자 평균 수명'에 따르면 일반 공무원의 사망연령이 71세인 데 비해 소방은 67세로 훨씬 낮았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망으로 인한 퇴직자의 비율은 일반 공무원이 1.73%에 그친 반면, 소방은 4.77%에 달했다. 공무상 사망 비율 역시 일반은 0.073%인데 비해 소방은 0.251%이나 됐다. 

공무상 '질병' 인과관계, 승인받기 어려워…대부분 신청 자체 포기

문제는 이중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는 경우는 극히 일부분이라는 점이다. 

공무상 재해는 '공무집행과 관련된 질병 및 부상'을 이르는 말로, 공무원연금공단의 '공무원연금급여심의회' 심의를 거쳐 해당 여부가 결정된다. 심의회는 법률 전문가와 의료 전문가, 전현직 공무원 등 9명으로 꾸려져 있다. 

부상의 경우 공무집행과의 인과관계가 그나마 수월하게 인정받는다.

그러나 질병은 오랜 기간 현장활동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음에도 인과관계가 불명확하다거나 의학적 발병 원인을 규명하기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공상 승인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국민안전처가 발표한 '2016년 주요 소방정책 추진계획'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공상신청 2,455건 중 307건(12.5%)이 승인받지 못 했다.

이처럼 공상 승인의 높은 벽 때문에 대부분의 소방공무원은 자비로 치료를 받고, 몇몇은 힘겨운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일 기자와 만난 전남지역 소방공무원 B는 지난해 췌장암이 발견돼 항암치료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10년간 상황실 업무를 주로 맡아왔지만, 지역의 고질적인 인력난으로 현장에 동원되는 일이 많았다. 그는 당시 현장출동 경험과 극도의 긴장감에 시달리는 근무환경 등이 발병 원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바로 접었다고 말했다.

소방공무원 B는 "공상 승인이 워낙 어려운 일인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신청 자체를 포기했다"면서도 "나야 어쩔 수 없지만, 전국의 소방공무원들이 질환에 따라 공상 승인 여부로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에 인터뷰에 응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1년간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공무원연금으로 지원받은 금액은 없다. 소방서에서 동료들이 십시일반 모은 130만 원이 유일했다. 또 투병기간에는 휴직으로 인한 생활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혈액암 등 희귀병과 소방업무의 인과관계, 승인기관이 밝혀야

공무상 질병에 대한 제한적 범위 설정으로 희귀병을 앓는 소방공무원 역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故김범석 대원은 지난 2014년 6월 혈관육종암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7개월 만에 숨을 거뒀다. 부산 남부소방서 119구조대, 중앙119구조본부 등에서 근무하며 화재·구조 현장을 누빈 지 8년 만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유족들이 제기한 유족보상금 청구는 기각됐다. 유족들의 재심의 요청도 올해 3월 기각당했다. '해당 질병의 원인이 화재현장 등에서 노출되는 유독성 물질이라는 주장은 의학적 근거가 없고, 감염경로도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 故김범석 대원은 지난 2014년 6월 혈관육종암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7개월 만에 숨을 거뒀다. 그러나 소방업무와 관련성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무상 질병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다. ⓒ 시사오늘

김 대원 유가족 측은 지난 8일 <시사오늘>과 만난 자리에서 "아들 심장에 혈관육종이 처음 발견돼 입원했을 당시 의료진이 '이런 사례는 전세계를 통틀어도 200여 개 정도고, 국내에서도 10개 이하라서 관련 연구자료도 거의 없어 속수무책'이라고 하더라"라고 밝혔다.

이어 "그러니까 공단의 입장을 반대로 이야기하면 언젠가는 의학적인 근거가 밝혀질 수 있다는 것 아니냐"며 "당장 희귀병과 인과관계를 밝힐 수 없다는 이유로 국가에 봉사해 온 생명을 이렇게 무의미하게 처리할 수 있느냐"며 성토했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의료계 관계자 지난 22일 기자와 통화에서 "혈액육종암은 희귀질환으로 대부분 발생 원인을 확인하기 어렵다"면서도 "그러나 화재현장에서 염화비닐 류 등에 노출됐을 때 직업성 암으로 볼 수 있다는 역학연구가 있다. 다른 명백한 반증의 근거가 없으면 직업성 암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 故김범석 대원이 생전에 마라톤 대회에 참여한 모습. 유가족은 "아들이 암 진단 6개월 전까지만 해도 마라톤 풀코스를 여러 번 주파할 정도로 신체가 건강했다"고 주장했다. ⓒ 시사오늘

유가족 측은 또 공무상 재해를 신청한 쪽에서 직접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현행 절차의 문제점도 짚었다. 이들은 "현장출동에서 몸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유독 물질은 신체 어느 부위든 암을 유발시킬 수 있다"며 "만약 혈관육종암이 관계없는 질환이라면 그쪽에서 증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경우, 캘리포니아 등 27개 주(州)에서 소방관으로 재직 중에 생긴 암 질환은 공무와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 공상을 인정해주고 있다. 인정을 거부할 경우에는 승인기관이 이를 증명해야 한다.

이밖에도 미연방소방국(USFA)를 비롯한 정부 기구들과 미국방화협회(NFPA) 등 다양한 연구기관들이 소방대원 안전을 연구하고 있고, 소방관 암 예방협회(The Fire Cancer Foundation)에서는 소방관의 건강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의 소방공무원 전수조사, 단순 실태 파악에 그쳐 

우리 정부 역시 소방공무원의 순직과 공상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이근면 당시 인사혁신처장은 지난해 12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백혈병·혈액암에 걸린 소방관들이 얼마나 되는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전면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아픈 소방관들이 전부 공상 인정을 못 받아 법원에 가게 만드는 현 시스템은 문제"라면서 "공상 심사과정을 보강해 억울한 소방관이 생기지 않도록 체계를 개편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시사오늘>의 취재 결과, 해당 조사는 단순한 실태 파악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 19일 기자와 통화에서 "해당 조사 결과, 13명의 소방공무원이 백혈병·혈액암 등 희귀병에 걸려 투병 중이며, 그중 3명의 소방공무원이 투병 중 사망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소방업무와 희귀병 발병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가 추진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따로 진행되고 있는 연구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김 대원의 유가족 측은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김 대원이 생전에 남긴 '최선을 다해 봉사했다. 그간 흘렸던 많은 땀에 대한 명예를 찾아주길 바란다'는 유언에 따른 것이다.

유가족 측은 "우리 아들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소방관들의 근무환경과 제도를 개선해서 업무 수행 중에 다치고 또 목숨을 잃더라도 국가가 책임진다는 믿음을 갖도록 해줘야 한다"면서 "반드시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야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本立道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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