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사태]'바뀐 피켓', “사퇴가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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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사태]'바뀐 피켓', “사퇴가 사과”
  • 오지혜 기자 정은하 기자
  • 승인 2016.08.10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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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김용일, "사립大, 비민주적 운영행태 누적…이대 사태로 분출"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오지혜 기자 정은하 기자)

▲ <시사오늘>이 10일 찾은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캠퍼스에 피켓을 손에 쥔 학생들이 한두 명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날 졸업생이 동참한 두 번째 대규모 시위에는 피켓 문구부터가 달랐다. ⓒ 시사오늘 정은하 기자

'사퇴가 사과다.'

<시사오늘>이 10일 찾은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캠퍼스에 피켓을 손에 쥔 학생들이 한두 명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날 졸업생이 동참한 두 번째 대규모 시위에는 피켓 문구부터가 달랐다.

학교 측이 당초 논란의 시발점이었던 '미래라이프 단과대학(미라대)' 설립을 철회하겠다고 밝히면서 학생들 시위의 초점은 최경희 총장의 사퇴 요구로 옮겨간 모양새였다.

앞서 학생들은 전날 오후 3시까지 최 총장이 자진 사퇴할 것을 요구했지만, 학교 측은 사실상 거부했다.

이날 시위가 예정된 오후 8시 한참 전부터 피켓을 들고 하얀 마스크를 쓴 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취재진 사이에서는 첫 번째 대규모 시위가 있었던 지난 3일에 비해 인원수가 적을 것이라는 예상이 오갔다. 일각에서 '사퇴까지는 과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5일 기자와 만난 익명의 인문대 교수는 "선생님들의 기본적인 마음은 사태가 빨리 해결되는 것"이라면서 "학생들이 초창기에 요구했던 바가 거의 수용됐으니, 농성을 푸는 것이 좋지 않겠나"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엇나갔다. 시위 예정시간이 가까워 오면서 ECC 건물 앞에서 정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졸업생과 재학생들로 가득 찼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인원은 1만여 명(주최측 추산 2만 명, 경찰 추산 3500명)에 달했다.

▲ 10일 이화여대 두 번째 대규모 시위 예정시간이 가까워 오면서 ECC 건물 앞에서 정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졸업생과 재학생들로 가득 찼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인원은 1만여 명(주최측 추산 2만 명, 경찰 추산 3500명)에 달했다. ⓒ 시사오늘

이들의 모습은 각기 각색이었다.

백팩에 캡 모자, 마스크로 무장한 학생부터 회사에서 갓 퇴근한 듯한 세미 정장 차림에 마스크와 피켓을 부산스럽게 빼는 졸업생이 ECC 건물 앞으로 모였다. 회색빛이 도는 머리에 어린 딸, 아들의 손을 꼭 쥐고 들어서는 모습도 보였다.   

이같은 진풍경에 이대 정문에 위치한 파빌리온에 중국인 관광객도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ECC벽면에 가득 찬 대자보와 포스트잇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외국인들도 보였다. 반면, 눈살을 찌푸리며 시위 시작 전에 캠퍼스를 뜨는 이들도 보였다.

그러나 오후 8시를 갓 넘은 시각, 수많은 취재진이 둘러싼 가운데 모인 학생들은 공통된 구호를 되풀이하며 캠퍼스 주변을 행진했다. 바로 '총장 사퇴'였다. 이날 시위에서는 '최 총장의 비민주적인 학사 운영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일각에서는 이번 '이대 사태'의 저변에 단순한 개인의 잘못을 넘어 구조적인 모순이 깔렸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비민주적인 학교 운영의 배경에 '사학법 재개정'에 따른 사립재단의 폐쇄적 문화와 정부의 소극적 태도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 5일 <시사오늘>의 취재에서 '현 사태는 재단 이사진의 학내 정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이때문에 해당 학교 교수협의회 공식 홈페이지에는 '궁극적으로 총장의 직선제 선출과 중간평가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글이 다수 올라와 있다.

대학총장 직선제는 지난 1987년 6월 항쟁의 성과물로, 목포대를 시작으로 전국에 확대돼 한때는 전국 83개 대학에 도입된 바 있다.  

총장 선임방식이 대학 구성원이 직접 참여하는 직선제에서 총장추천위원회가 추린 후보 중 임명하는 간선제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민주화 운동의 산물이 교수들의 파벌과 논공행상, 줄서기 등으로 바뀌면서다.

그러나 사립재단의 폐쇄적 운영에 따라 사학비리가 연이어 터지면서,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개방형 이사제와 감사제, 이사장 친족의 학교장 겸직 금지 등을 포함한 사학법 개정이 추진됐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일부 사학재단과 함께 '사학 고유의 자율성과 권리를 인정하라'며 강력 반발했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6개월간 장외투쟁을 벌이며 국회 등원을 거부, 지난 2007년 사학법 재개정을 이끌어냈다.
 
이를 시작으로 사학법 재개정을 적극 추진한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개방형 이사제 등 사학법 관련 제도가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결국 정부의 소극적인 개혁 의지에 사립재단의 비민주적인 운영 행태가 누적되면서 '이화여대 사태'로 분출됐다는 것이다.  

▲ 10일 오후 8시를 갓 넘은 시각, 수많은 취재진이 둘러싼 가운데 모인 학생들은 공통된 구호를 되풀이하며 캠퍼스 주변을 행진했다. 바로 "총장 사퇴"였다. 이날 시위에서는 '최 총장의 비민주적인 학사 운영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 시사오늘 정은하 기자

한국교육정치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수는 10일 <시사오늘>과 통화에서 "사립대학의 경우, 박근혜 정부 들어서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역할들이 아주 기형적으로 변했다. 특히, 최근 상지대와 수원대 사태는 사립대학의 비민주적인 운영 방식에 정부가 시정 의지가 없다는 시그널을 보낸 것과 같다. 이화여대 역시 그런 상황 속에서 불거진 것"이라고 밝혔다.

상지대와 수원대 사태는 각각 총장의 공금횡령과 부정혐의 등 사학 비리로 교내 분규가 장기간 이어져 오면서 교육부 등 정부의 책임있는 조치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김 교수는 "고려대와 연세대, 이화여대 등은 구성원들이 민주적인 학사운영에 대한 목소리가 큰 편인데도 이같은 사태를 겪는 이유는 사학에 대한 보수정권의 시그널이 퇴행적인 수준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학 고유의 자율성과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정반대의 의견도 존재한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지난 2009년 당시 사학법 재개정 논란이 번지자 성명을 내고 "현행 사학법은 사학의 자율성과 종교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큰 위헌적인 법"이라면서 "사립학교가 인재 양성에 전념할 수 있도록 사학진흥법 제정에 앞장서 달라"고 주장했다.
 
이재교 세종대 교수 역시 당시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사학법을 폐지하더라도 사립학교의 부정과 비리는 형법상 횡령 배임 업무방해 등으로 처벌된다"면서 "현행 사학법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후진적인 사전 규제와 통제로 설립·경영자들의 육영 의지를 꺾는 전근대적인 악법"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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