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을 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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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을 내겠다”
  • 이아람 기자
  • 승인 2009.07.13 1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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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한국전통요리 연구가 정태경

 
미국에서 <더 코리안 테이블>발간해 한국의 맛 세계에 알려

맛, 색, 멋의 삼박자가 조화를 이룬 한국 전통음식의 우수성이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각종 보양식과 건강식, 발효식품들은 맛도 좋고 영양가도 높아 한국의 식탁하면 곧 ‘건강한 밥상’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서양인들에게 한식은 조리법이 복잡하고 맛이 강하다는 인식이 강해 중식이나 일식처럼 대중화 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안타까움을 느낀 요리연구가 정태경 씨는 1992년 일본에서 요리로 인연을 맺은 미국인 데브라 사무엘스(Debra Samuels) 씨와 함께 미국 뉴욕에서 외국인들의 눈높이에 맞춰 영문으로 엮은 한국요리책 <더 코리안 테이블>, (The Korean table, 터틀사 출간)을 발간했다.
 
이 책은 美 언론과 방송에서 연일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발간한지 3개월 만에 초판 6000부가 모두 팔리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또 한국 책으로는 유일하게 미국 모마 현대미술관(MoMa Museum)의 Seoul Destination Section에 전시 됐으며 해외 유명 쉐프들이 더 많이 찾을 정도로 <더 코리안 테이블>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오는 7월 영국 버진 아일랜드에서 열리는 ‘The 2009 Winemakers Dinners’에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초청을 받아 참관하게 된 정태경씨를 만나 그녀의 요리인생을 들어봤다.

정태경 씨를 다시 만난 건 약 2개월 만이다. 강남의 한 연회장에서 처음 만난 정 씨를 보며 어디서 저런 에너지가 나올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작은 체구에 백옥같이 흰 피부와 맑은 눈이 인상적이었던 그녀는 요리 전문가답게 접시에 음식을 골고루 조금씩 담아 소스 하나 조차 놓치지 않고 음미하듯 맛을 느꼈다.
 
우리가 흔히 표현하듯 음식을 먹는다고 하기보다 음식의 맛을 본다고 하는 쪽이 더 가까웠다. 그렇게 두 시간 남짓 식사를 하며 해외에서  주로 활동하는 그녀에 대한 얘기와 새로 출간한 ‘한국인의 식탁’이란 뜻의 <더 코리안 테이블>에 대한 소개로 자리를 마무리 했다.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한 채 일본으로 떠난 정 씨는 2개월 만에 반가운 소식을 들고 한국을 찾아와 다시 재회할 수 있었다.
 
‘음식은 그 나라의 문화’
 
그녀가 요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였다.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한 후 1975년 일본으로 건너가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했던 그녀는 요리와 꽃꽂이를 배우기 시작했다.
 
정 씨는 “어린 시절부터 손님을 많이 치루는 가정에서 자라 늘 요리를 연구하시던 어머니를 도와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 중, 고등학교 시절 요리연구반으로 특별활동을 했고 이때 세계 각국 요리를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 역시 일본에서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한국의 맛을 선보였고 일본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국요리 강좌를 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요리 강좌를 받기위해 몰려드는 일본인들이 늘어나자 동경 아카사카에 ‘코리안 쿠킹 스튜디오’라는 요리학원을 오픈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정 씨의 명성이 점차 높아지자 일본의 각종 방송매체나 각 단체에서 그녀를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고 정부의 각종행사를 비롯해 레스토랑 컨설팅, 기업의 메뉴 개발, 농수산물유통공사의 동경무역관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현재 미국 프로야구구단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투수로 활약하고 있는 박찬호 선수의 처이모로도 유명한 정 씨는 박 선수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일본 집에 방문할 때마다 직접 요리를 해준다며 박 선수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묻자 “외국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해도 입맛은 쉽게 바뀌지 않듯 한국 토종음식을 가장 좋아한다.
 
특히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낙지볶음처럼 얼큰하고 매콤한 음식을 좋아해 빼놓지 않고 만들어주는 단골 메뉴”라고 대답했다.

데브라 사무엘스와의 운명적 만남

1992년 각자 남편을 따라 교환 학생으로 일본 동경에 머물던 당시 인도 쿠킹 클래스에서 처음 만나게 된 정태경 씨와 데브라 씨는 13년이 지난 2005년 운명적인 재회를 하게 된다.
 
당시 일본을 다시 방문한 데브라 씨가 한국요리를 배우기 위해 그녀를 찾은 것이다. 여기서 데브라 사무엘스에 대한 소개를 빼놓을 수 없겠다. 미국 보스턴에 기반을 둔 데브라 사무엘스는 1980년대 대대적인 성공을 이룬 케이터링 회사 ‘Eats Meets West'의 창업자로 유명하다.
 
요리 강사로 활동하면서 신문과 잡지에 칼럼을 기고하며 20여 년 동안 왕성한 활동을 펼친 그녀는 2005년 출판사인 터틀사로부터 출간 제의를 받으며 출간 소재를 한국 요리로 정한 뒤 정 씨를 찾아와 함께 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진 책이 바로 <더 코리안 테이블>인 것이다.
1년 동안의 제작 과정을 거쳐 100여 가지의 요리를 소개한 이 책은 ‘바비큐(갈비)에서 비빔밥까지’라는 부제로 외국인들이 한식을 쉽게 요리할 수 있도록 식재료 준비부터 레시피(Recipe)까지 상세하게 정리돼 있다.
 
또 요리의 기본인 소스 만드는 방법부터 에피타이저, 샐러드, 김치와 반찬, 수프와 찌개, 생선과 해물요리, 고기요리, 야채와 두부요리, 쌀과 국수요리, 그리고 디저트와 음료까지 모두 8가지 코스로 나눠 소개하고 있다.   

책을 만들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에 대해 묻자 정 씨는 “무엇보다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 선택에 가장 신경 썼다. 실제로 이 책에 나온 요리들이 전부다 현지에서 직접 구한 식재료로 만든 것이다”라며 “외국인들의 눈높이에 맞춰 가정에서 쉽게 따라 만들 수 있도록 이해하기 쉽게 구성한 책”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외국인 입맛에 맞추기 위해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입니까.
“한식 고유의 본질을 살리는 것도 좋지만 외국인들의 식성이나 기호를 배려해야 한다. 예를 들면 생선전도 만들기 쉽고 간편하도록 길게 포를 떠서 구운 후 플레이트에 담아 포크와 나이프를 제공한다. 삼계탕의 경우는 물에만 삶아내면 겉 표면이 하얗기 때문에 보기에 부담스러울 수 있어 끓인 후 오븐에 살짝 익혀 겉을 노릇하게 구워내야 한다.”
 
-자신만의 요리철학이 있다면.
“보기 좋고 맛있으면 더 좋겠지만 무엇보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자연스러운 맛을 내는 것이다. 집에서 먹는 밥처럼 전혀 낯설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게 조리해 외국인들도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한국음식을 만들고 있다.”
 
-외국에서 한식은 어떤 음식으로 인식 되는가.
“맛있고 건강한 음식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마늘향이 강하고 맵다는 인식이 더욱 강하다. 때문에 자극적인 성분만 줄인다면 한식도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음식이 될 것이다.”
 
-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한국음식은 무엇인가.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구절판과 갈비, 불고기, 각종 전 등이 있다. 특히 구절판은 손이 많이 가는 밀전병 대신 무 초절임을 사용했더니 샐러드 같다며 좋아했고, 갈비찜에 와인을 넣어 조리했더니 냄새도 나지 않고 맛있어 반응이 좋았다.”
 
-외국에서 요리를 할 때 어려웠던 점은.
“외국인들의 인식을 바꿔놓는 게 가장 어려웠다. 그들은 한식 하면 떠올리는 게 빨간 찌개, 무조건 매운 음식 등의 인식이 강하게 박혀 한국음식을 너무 무식하게 생각했다. 이에 한국 요리연구가의 사명을 걸고 한국음식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기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해왔다.”
 
-김치를 담글 때 젓갈을 구하기가 어렵다면? 
“외국에선 한국보다 젓갈을 다양하게 구하기가 쉽지는 않다. 또 냄새가 강해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 있어 생새우나 회로 먹는 사시미 등을 믹서에 갈아 사용하면 훨씬 깨끗한 맛을 낼 수가 있다.”
 
-책을 보면 한국어 표기가 눈에 띠는데.
“요리 명을 영어로도 표기하고 한국식 발음 그대로도 표기를 했다. 잡채나 떡 등과 같이 우리 고유의 이름을 알리고 싶었고 또 그들의 머릿속에 인식시키기 위해 필요했다.” 
 
-좋은 소식이 들리던데 소개를 해달라.
“오는 7월15~19일까지 영국의 버진 아일랜드에서 전 세계 내로라하는 쉐프들이 모여 요리 실력을 뽐내는 ‘The 2009 Winemakers Dinners’에 동양인으로는 내가 최초로 초청받아 참여하게 됐다. 이번에는 참관만 하고 12월에 정식 참여를 하게 되는데 이번 기회로 세계에 한국음식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맛도 좋고 영양가도 풍부한 한국음식을 전 세계인들이 모두 좋아할 수 있게 연구해서 세계화 시키는 데 일조하고 싶다. 그게 나의 사명이자 가장 큰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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