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갈비] 민한당 붕괴의 시작…‘비밀회동’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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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갈비] 민한당 붕괴의 시작…‘비밀회동’ 장소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7.12.02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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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갈비에서 민한당 의원 9人 회동
제12대 총선 ‘신민당 돌풍’ 원동력 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YS와 DJ가 힘을 합쳐 만든 신민당의 위력은 민한당을 집어삼킬 정도로 강력했다 ⓒ 시사오늘DB

1984년 12월 12일. 김현규가 故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상도동 자택을 찾았다. 김현규는 상도동계로 정치에 발을 들여 제10대 총선에서 첫 금배지를 달았지만, 1980년 민주한국당(이하 민한당) 창당 멤버로 참여하면서 YS에게 등을 돌린 인물이었다. 그러나 김현규는 민한당 총재 유치송의 노선(路線)에 반발, YS가 제12대 총선을 대비해 창당 준비 중이었던 신당 합류를 고민하고 있었다.

“김 의원, 신당에 합류해 주겠소? 군사 독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동지들의 힘이 필요하오.”

“미력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저도 참여하겠습니다. 뜻이 맞는 동지들도 한 번 모아보겠습니다.”

YS의 뜻을 확인한 김현규는 곧바로 함께 탈당을 결행할 동지들을 규합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대상은 서석재였다. 김현규와 마찬가지로, 서석재 역시 상도동계 출신으로서 1980년 민한당 창당에 참여한 인사였다. 비슷한 처지였던 만큼, 서석재의 생각도 김현규와 다르지 않았다. 서석재는 김현규의 뜻에 공감함은 물론, 스스로 동조자를 찾아 나서기도 했다. 이 시기, 이기택의 비서관 출신인 박관용도 이기택을 따라 탈당파에 합류한다.

다음은 홍사덕이었다. 김현규는 제11대 총선 공천 때 자신이 도움을 줬던 홍사덕에게 신당 합류를 권했다. 그 전까지 탈당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홍사덕은, 그 자리에서 곧바로 탈당에 동참하기로 약속한다.

“홍 의원, 우리 민한당을 떠나 YS가 만드는 신당으로 갑시다.”

“…. 좋습니다.”

홍사덕은 이 일에 대해 “나는 민주화 대열에 합류한다는 거창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단지 제11대 총선 과정에서 김현규의 도움으로 공천을 받았으니 보답한다는 차원에서 약속한 것”이라고 회고했다. 

▲ 강서갈비는 서울의 명소 중 하나인 양화교 인공폭포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 시사오늘

김현규와 서석재, 박관용, 홍사덕은 김찬우, 허경만, 고영구, 이관형, 최수환, 손정혁 등 6명을 추가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이들 역시 당내 비주류이자 유치송에게 반기를 든 인물들이었다. 다만 이들 가운데 김찬우, 최수환 등은 제12대 총선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신민당 창당과 함께 신당에 참여했다가 낙선한 의원들은 모두 13대 총선에서의 재기를 다짐 중. (중략) 최수환 의원은 지역구 포항으로 아예 내려가 동생이 맡고 있는 사업을 인수한 후 앞으로 4년간 꾸준한 표 밭갈이를 하겠다는 각오. 의사인 김찬우 의원은 다시 병원 일에 몰두하면서 지역 주민 곁에서 생활할 계획.
1985년 3월 2일 〈동아일보〉 ‘탈락 11대 의원들이 가는 길’』

18일 밤, 서울 강서구 인공폭포 근처 강서갈비. 민주한국당(이하 민한당) 의원 9명이 식탁 주위로 둘러앉았다. 탈당을 염두에 둔 10명 중 허경만은 ‘생각할 시간을 달라’며 고향으로 내려간 상태였다. 회동에 참석한 김현규, 홍사덕, 서석재, 박관용, 김찬우, 최수환, 손정혁, 고영구, 이관형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 자리를 만든 김현규가 먼저 입을 뗐다.

“신상우 부총재는 나중에 기회가 오면 2차로 합류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내일 1차 탈당을 결행할 계획입니다.”

“신 부총재가 2차로 하겠다면, 우리도 신 부총재와 함께 하겠습니다.”

고영구와 이관영이었다. 이들은 신상우와 보조를 맞추기로 하고 먼저 자리를 떴다. 강서갈비에서 민한당 탈당을 결행한 인물은 7명으로 줄었다. 결국 김현규는 7명으로부터 성명서에 서명을 받고 강서갈비를 걸어 나왔다. 

▲ 옛 강서갈비 자리에는 현재 골든서울호텔이 들어서 있었다 ⓒ 시사오늘

다음 날인 19일. 김현규, 서석재, 박관용, 홍사덕, 김찬우, 최수환, 손정혁 등 ‘강서갈비 회동’에 모였던 7명과 이날 새벽 탈당을 결심한 허경만까지 총 8명은 서울 엠파이어호텔 커피숍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한당의 김현규·허경만·서석재·박관용·홍사덕·김찬우·손정혁·최수환 의원 등 8명은 돌연 집단 탈당을 선언, 신당인 신한민주당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김형래 의원도 이날 개인적으로 탈당 성명을 내고 신한민주당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다. 한편 해금인사인 김한수·심봉섭·유제연 씨도 탈당계를 내고 신당에 입당키로 했다. (중략) 이들은 “우리의 당초 계획은 민한당과 신당이 각기 12대 총선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은 다음 그 심판을 바탕으로 진정한 집권의지를 갖는 민주세력의 통합작업을 수행하는 것이었다”고 말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이같이 결단을 내린 것은 지난 4년 동안 소속의원들의 노력으로 조금씩 축적돼 왔던 자생력과 집권의지가 12대 총선을 앞둔 전열정비 과정에서 너무나 훼손되고 있으며, 또한 민주화를 희구하는 국민들의 여망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그 활로를 한 곳으로 집결시킬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1984년 12월 19일 매일경제 ‘신한민주당에 참여 선언, 김현규 의원 등 12명 민한당 탈당』

‘강서갈비 회동’에서 비롯된 민한당 탈당 사태의 여파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전·현직 의원이 대거 탈당, 야당으로서의 존재감을 잃어버린 민한당은 제12대 총선에서 35석을 얻는 데 그친다. 반면 신민당은 67석을 획득하며 제1야당으로 부상, 군사독재 종결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 쟁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강서갈비 회동이 대한민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꿔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최근 <시사오늘>과 인터뷰를 가진 故서석재 의원의 보좌관 출신인 한국당 이종혁 최고위원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12대 총선에서 신민당이 바람을 일으켜 제1야당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민한당 의원들의 탈당이었다. 당시 신민당은 창당을 했지만 원내인사라고는 황명수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서석재 등 8명이 강서갈비에서 회동을 갖고 탈당을 결심함에 따라 신당돌풍의 근원지가 됐다."

기자는 11월 30일, ‘대한민국 민주화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 강서갈비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강서갈비는 더 이상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양화교 인공폭포 근처, 9호선 염창역 2번출구에서 도보로 5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던 이곳은 근래까지도 명맥을 유지해 왔으나, 2013년 골든서울호텔이 신축되면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려졌다. 방문 결과, 현재는 골든서울호텔의 주차장 부지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역사를 바꾼 ‘비밀 회동’이었던 장소지만, 이제는 말 그대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만 남게 된 셈이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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