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와의 전쟁] 정부, 가상화폐 '일단 후퇴'…부동산 '약진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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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와의 전쟁] 정부, 가상화폐 '일단 후퇴'…부동산 '약진 앞으로'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8.01.23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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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투기와의 전쟁에 나선 문재인 정부가 진열을 재정비하는 모양새다. 가상화폐 시장에서는 한 발 물러난 반면, 부동산 시장에 연일 강력한 대책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야 우선순위를 바로잡았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지방선거용이라는 비판이 공존하는 분위기다.

가상화폐 실명제 추진·신규 투자 허용

▲ 문재인 정부의 가상화폐 시장 규제를 공식화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악재가 아닌 호재라는 평가가 나온다 ⓒ 시사오늘

23일 금융위원회는 △가상통화 거래 실명제 △가상통화 관련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 제정·시행 등을 골자로 한 '가상통화 투기근절을 위한 특별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빗썸, 업비트 등 가상화폐 거래소에 가상계좌를 제공하고 있는 모든 은행은 은행과 거래소 간 시스템 연동 등 작업을 완료한 뒤, 오는 30일부터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서비스를 개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신규 투자도 허용된다.

해당 서비스가 개시되면 기존 가상계좌는 더 이상 가상화폐 거래에 활용되지 않는다. 또한 가상화폐 거래소에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서비스를 제공한 은행과 동일한 은행의 계좌를 보유하지 않은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가상화폐 거래소에 추가 입금을 할 수 없게 된다. 다만, 출금은 가능하다.

아울러, 금융위원회는 그간 금융감독원과 공동으로 주요 은행에 대한 현장점검을 실시한 결과를 토대로 가상통화 관련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을 제정·시행한다고 밝혔다.

해당 가이드라인이 시행되면 앞으로 은행권은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해 높은 수준의 주의의무를 이행하고, 자금세탁이 의심되는 거래를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또한 가상화폐 관련 책임을 금융사 이사회·최고경영진에 묻고, 자금세탁방지 업무에 대한 감사를 강화하는 등 내부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표면적으로는 가상화폐 시장에 대한 규제를 본격 시행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업계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사실상 가상화폐 거래를 인정한 셈이라는 게 지배적인 견해다. 제도권 안으로의 포용을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금융위원회는 이날 보도자료에서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서비스와 관련해 '은행은 자율적으로 가상통화 취급업소와 관련 계약을 체결하고 제공할 예정', '자율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명시, 자율성을 강조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발언,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살아있는 옵션 발언 등과 같은 강경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김동연 부총리는 지난 22일 자유한국당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 주최 강연을 마치고 취재진들과 만난 자리에서 "(가상화폐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방향을) 검토 중"이라고 답변했다. 세금 부과는 곧 제도권 내 정착을 의미한다.

IT업계의 한 핵심 관계자는 23일 <시사오늘>과 만난 자리에서 "정부가 스스로 논란을 키우고 반발을 야기한 만큼, 책임정치 차원에서 일단 후퇴하는 눈치"라며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지만 가상화폐 시장 내 투기세력을 선제적으로 잡고, 후(後)제도화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재건축이익환수·분양가상한제·보유세…투기세력에 십자포화

▲ 문재인 정부가 2018년 새해 부동산 시장 내 투기세력들에게 연일 강력한 경고장을 날리고 있다 ⓒ 뉴시스

반면,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시장 내 투기세력에게 다시 한 번 강력한 선전포고를 날렸다.

지난 22일 국토교통부는 서울 주요 재건축단지 초과이익환수부담금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권 조합원 1인당 부담금이 평균 4억3900만 원, 최대 8억4000만 원이 부과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또한 위헌성을 전면 부정하고 예정대로 이달부터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최근 서울 강남 지역 집값이 재건축 시장 주도 하에 큰 폭으로 치솟고 있음을 감안하고 강력한 규제를 시사한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강남 재건축 시장 내 조합원들은 아우성이다. 정부의 재건축초과이익환수부담금 시뮬레이션 결과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반면, 일각에서는 주택시장 안정화와 집값 연착륙을 위한 당연한 수순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아파트 재건축의 본디 목적은 주거권과 삶의 질 확대이며 투자수단이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아울러, 정부는 분양가상한제와 다주택자 보유세 강화를 재차 언급했다. 박선호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지난 9일 기자간담회에서 "일부 지역의 과열 양상이 시장 불안으로 이어지면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도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보유세 개편은 고가주택보유자, 다주택자 등 부동산 보유에 대한 조세부담의 형평성 등을 균형있게 고려해 추진할 사안"이라며 "고가 1주택자도 보유세 인상을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분양가상한제 확대와 보유세 인상은 부동산 시장의 실수요자 위주 개편을 의미한다. 전자를 통해 투기세력에게 돌아갔던 부동산 수익을 실거주자에게 돌려주고, 후자를 통해 투기세력의 부동산 매도를 유인하겠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이랬어야" vs. "지방선거용 쇼"

문재인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에 업계 반응은 업종과 대형사·중견사 별로 크게 엇갈리는 분위기다.

앞선 IT업계의 한 핵심 관계자는 "처음부터 이런 방향으로 가야 했다. 진짜 국민을 위협하는 투기세력은 가상화폐 시장이 아닌 부동산 시장에 있다는 걸 정부가 뒤늦게 깨달은 것 같다"며 "이제라도 우선순위를 바로잡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이날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단기적으로 봤을 때는 국내 주택시장 불투명성이 확대되는 게 분명한 만큼, 다소 충격이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분양 등 자체사업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결국 가상화폐를 통해서 은행들이 돈 놀음하겠다는 것"이라며 "투기세력을 축출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정부가 남의 자식이 키우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뺏어서 자기 자식에게 주는 것으로 밖에 안 보인다"고 토로했다.

중견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국내 주택시장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중견·중소건설사들은 당장 사업을 연기해야 할 판이다. 최근 여론 악화에 따른 지방선거용 쇼가 아닌지 의구심도 든다"며 "자본력과 그룹 먹거리를 확실하게 확보한 대형 건설사들만 이득을 볼 것"이라고 비판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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