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보며 비혼·비출산 다짐”…여성 목소리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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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보며 비혼·비출산 다짐”…여성 목소리 확산
  • 한설희 기자
  • 승인 2018.03.05 18:27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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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式 ‘미투’가 부른 30년대의 ‘정치적 레즈비어니즘’ 반추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한설희 기자)

▲ 우리는 지금의 가부장제 구조가 하루 이틀 만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침묵을 깨는 여성들의 목소리, 즉 ‘미투’도 과거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언제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었기에, 패자인 여성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쉽게 묻혔을 뿐. ⓒ뉴시스

작가 리베카 솔닛이 “여성이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은 그 자체로 이미 승리이자 반란”이라고 말했듯, 여성이 자신의 서사(敍事)를 이야기하는 것은 ‘패배의 역사’로도 불리는 여성사에서 늘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돼 왔다.

누군가 용기를 내서 한 말이 숨죽인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그들도 말할 수 있게끔 힘을 주기 때문이다. 이들의 목소리가 21세기까지 공고하게 유지해온 가부장제를 균열 내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의 가부장제 구조가 하루 이틀 만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침묵을 깨는 여성들의 목소리, 즉 ‘미투’도 과거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다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었기에, 패자인 여성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쉽게 묻혔을 뿐이다.

◇ 1930년 한국 신여성發 미투, ‘동성애 바람’

"고요한 여학교 뒷모퉁(이)에는 참말 나 혼자 보기에는 아까운 정경(情景)이 있다. 새빨간 뺨, 나려(내려)감은 눈, 가느다란 몸집. 둘이는 정답게 어깨를 겨뤘다. 말할 듯이 말할 듯이 말은 못하고 손짓발짓 애교만 피우는 어린 단발여학생, 점잔을 빼면서도 그를 어루만지는 상급생. 이들이 아마도 말 많은 동무들의 문제인물인 듯싶다."

1930년대의 한 신문에는 두 소녀가 정을 나누고 있는 삽화와 함께 다음과 같은 글귀가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그러나 신문을 읽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깜짝 놀라 뒤집어지거나 크게 항의하지 않았다. 근대 사회가 성소수자를 모두 포용하는 열린 사회였기 때문일까?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않았다. 그저 30년대의 어린 ‘신여성’들에게, 동성애가 비일비재한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90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한국만의 ‘미투’는 1920~30년대 있었던 신여성들의 ‘동성애 운동’ 형태로 발현되기도 했다.

본격적인 근대화가 시작된 1920년대 이후, 근대교육을 받은 젊은 여성들은 ‘신여성’, ‘모던걸’ 등의 이름으로 당시의 남성들에게 성적으로 대상화되곤 했다. 이때 많은 조선 내 유부남들은 봉건제도의 잔재인 조혼(早婚:강제결혼) 폐습을 비판한다는 명목으로, 미혼 여성들에게 접근하며 ‘낭만적인 자유연애’를 운운하는 악행을 일삼았다.

남성들은 미혼인 신여성을 첩으로 삼고 ‘제2부인’, ‘좌·우 부인’ 등으로 미화하는 등 고향에 아내를 두고 유학(遊學)길에 만난 신여성과 교제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실제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본처 김모 씨와 자식의 존재를 함구하고 서울에서 신여성 이모 씨와 교제 및 동거를 하기도 했다.

이러한 남성들의 행동은 남자라면 그럴 수도 있는 자연스러운 행위로 용인된 반면, 해당 여성들은 큰 비난을 받으며 사회에서 매장됐다.

▲ 1930년대 신문에 여성 간 동성애 내용의 기사가 실려 있을 정도로, 신여성들 사이에서 동성애는 비일비재한 현상이었다. 이들이 동성애에 빠져든 근본 원인은 여성혐오적 문화에 대한 반감이었고, 그 자체로 가부장제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이에 반발한 신여성들은 남성과의 교제 대신 여성끼리의 연애를 선언하기 시작했다.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한 동성연애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어졌고, 방정환이 발행한 잡지 <별건곤>에서는 황신덕 기자, 허영숙 의사(친일작가 이광수의 아내), 이덕요 여성운동가 등 저명한 여성 인사들의 동성애 경험담을 담은 기획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여학생 시절에 동성연애를 안 해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나 역시 여러 차례 경험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동정에서부터 사랑이 싹튼 것 같습니다.”

요컨대 ‘깨어 있는 척’을 하며 자신의 순결을 노리던 유부남들을 피해, 여성들끼리 연민을 느끼며 성애로 발전시켰다는 내용이다.

이는 여성들의 학문 수준이 높아지고 인권 의식이 상승되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현상 중 하나였다. 이웃나라 일본 역시 메이지 유신 이후 여성 지식인들 사이에서 동성애가 자주 목격됐고, 유럽 또는 미국 역시 사회 혁명을 겪은 직후엔 유난히 여성들 사이에서 ‘동성애 붐’이 일었다.

결국 이들이 동성애에 빠져든 근본 원인은 여성혐오적 문화에 대한 반감이었고, 그 자체로 가부장제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었다. 여성학계는 이를 정치적 레즈비어니즘(Political Lesbianism)이라고 일컫는다. 이들은 개인의 한계에 부딪혀 그가 혐오하는 가부장제 구조 자체를 깨부수진 못하지만, 이에 대한 대안으로써 동성애를 제시한다.

30년대 당시 한국 여성들의 정치적 레즈비어니즘 정서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화가 나혜석의 1934년 잡지 <삼천리>에 기고한 ‘이혼 고백서’다.

“조선 남성 심사(心思)는 참 이상합니다. 자기는 정조 관념이 없으면서 처(妻)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평소 무사할 때는 여성이 바치는 애정을 충분히 누리다가 체면이나 법률 앞에 서면 어제까지의 방자하고 즐거움을 누리던 몸을 돌이켜 오늘의 군자(君子)가 돼 점잔 빼는 비겁자요 난폭자가 아닙니까. 우리 여성은 모두 이런 남성을 증오합니다.”

이와 관련해 여성들의 정치적 레즈비어니즘 현상을 연구해 온 실라 제프리스는 그의 저서 <레즈비언의 기이한 실종>을 통해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는 성소수자로 받아들여지기보다 이성애 섹슈얼리티를 해체하고자 한다”며 “그 전략으로 레즈비어니즘을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고 장려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당시의 ‘동성애 바람’은 ‘개인적 일탈’에 그쳤다는 한계를 보인다. 여성이 당시의 견고한 혐오 구조를 전복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굳이 따지자면 ‘실패의 역사’다. 그러나 한국 여성들이 사회 구조를 향해 거의 처음으로 목소리를 낸 일을, 2018년의 우리가 기억할 필요가 있다.

◇ 2018년 도약한 미투, 이번엔 ‘비혼·비출산 다짐’으로 퍼질까

30년대의 신여성들은 남성들을 기피했지만 결국 다시 남성들의 품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여기에는 ‘결혼은 당연한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과 함께, 미혼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이 아예 불가능했던 현실적인 문제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2018년의 ‘미투’는 어디로 향할까.

이와 관련해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공동대책위원회는 “성범죄 공소시효 폐지 논의와 2차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 등 제도적 논의로 확장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성폭력 공동대책위원회에 속하는 한 여성시민단체 관계자는 5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특히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응집된 젊은 여성들의 분노가 이번 미투로 터진 것”이라며 “미투 운동은 유명인들의 가해 사실에는 파급력이 있지만, 현실 속 여성들에겐 그만한 힘이 없어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번 기회를 통해 잘못된 권력 관계를 바로 잡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 여성 누리꾼들 사이에서 “오늘도 비(非)혼·비출산을 다짐합니다”라는 말은 이제 유행을 넘어 명제가 되고 있다. ⓒ뉴시스

2015년 ‘메갈리아(미러링으로 유명해진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의 등장, 2016년 벌어진 강남역 살인사건(강남역 한 공용화장실에서 한 남성이 여성을 표적으로 자행한 살인사건)으로 파급된 여성들의 ‘정당한 분노’는 미투를 더욱 타오르게 하는 땔감이 됐다.

이제 한국 여성들은 ‘된장녀’나 ‘김여사’ 같은 여성 혐오 발언들을 관습적인 농담으로 치부하지 않고 화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공기처럼 만연한 혐오 발언과 가부장제를 전면 비판하고, ‘한남충(한국남자+벌레)’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역공격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이와 관련해 ‘혐오를 비판하는 혐오표현’ 역시 혐오이기 때문에 정당하지 않다는 의견도 존재하지만, 먼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많은 여성들이 ‘여자 일베’ 되기를 자처하면서까지 현 사회에 분노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 누리꾼들 사이에서 “오늘도 비(非)혼·비출산을 다짐합니다”라는 말은 이제 유행을 넘어 명제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젊은 여성들의 비혼·비출산 물결은 미투 사태를 겪으며 더욱 출렁이고 있다.

통계청의 2016년 인구동향조사 결과 남녀를 불문하고 ‘비혼주의자’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었지만, 남성(56.3%)보다 여성(47.5%)이 결혼의 필요성을 훨씬 덜 느끼고 있었으며 하락 속도 역시 여성이 더 빨랐다.

언뜻 30년대 신여성들의 행보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자신들을 억압해 온 가부장제를 직·간접적으로나마 응징하고자 ‘남성과 맺어지지 않는 것’을 미봉책으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며 겪는 많은 성폭력과 성차별의 배경인 가부장적 문화를 인지하고, 이에 맞서는 방법으로 ‘비혼·비출산’을 고른 것이다.

이것이 비혼과 비출산을 다짐하는 글에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오는 단어들이 ‘성매매’, ‘대리효도’, ‘독박육아’, ‘독박가사’. ‘경력단절녀’인 이유다. 즉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지 말자’는 다짐은 현재의 여성혐오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담긴 투쟁이다.

이들의 비혼 다짐이 여성을 위한 ‘지속가능한 대안’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30년대처럼 '표면적 충격'만을 가져오는 것보다, 사회에 박혀 있던 깊숙한 차별을 끄집어내는 결과가 이뤄지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결국 답은 제도다. '미투' 가해자가 빠른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또 겨우 용기를 낸 '미투' 폭로자가 역으로 처벌받지 않을 수 있도록, 강력한 도덕을 법제화하고 인식 개선을 이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분노하는 것보다 분노한 다음날이 더 중요하다”는 사회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말처럼, 분노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적 담론으로 확산돼야만 하는 이유다.

한국여성단체연합 관계자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미투 성폭력 피해는 진보·보수의 영역을 가리지 않아 ‘정치적 음모론’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며 “남성들이 이념적 잣대로 판단하는 것을 최대한 유의하고, (미투가)우리 스스로도 성폭력을 용인하는 권력구조와 피해 사실을 방조해온 것은 아닌지 성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담당업무 : 통신 및 전기전자 담당합니다.
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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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요 2018-03-20 23:17:08
기자님도 그럼 미러링으로 유명한 커뮤니티 하시나요?

2018-03-20 00:02:14
모든 생물에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개의 성이 존재하고(물론 일부 미생물 제외) 있으며 각각의 성에게는 기본적인 의무와 역할이 있습니다. 여성에게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역할은 출산이며 남성에게는 가족과 집단을 외뷔 적으로부터 보호해야하는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물론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증가하며 이런 성역할들이 하나의 차별적 요소로 다가왔고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이념하에서 이제는 여성에게 성역할을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에 저도 공감합니다만 출산이라는 생물학적 의무가 선택이 되어가는 현실은 두렵기만 하네요..

ㄴㄴ 2018-03-19 16:25:55
미투가 출산율을 높혀줄 거라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미투 운동 수준 보면서 한녀 혐오만 생기더라. 남자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텐데 왜 뇌내망상에 빠져 사는지 이해할 수가 없음

페라리 2018-03-17 00:58:03
연애하기 얼마나 귀찮은데..돈만 깨지고,
비위맞추고...그냥 결혼없이 살자. 연애하다 잘못 헤어지면 10년 20년 후에 미투당할 수 있고, 요즘 드는생각이 그냥 혼자서 즐기면서 사는게 최고...

한국남 2018-03-08 01:58:08
제발 남녀 따로 살게 만들어 주라 결혼은 미친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