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회장님들 싸움 붙인 ‘조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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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회장님들 싸움 붙인 ‘조망권’
  • 차완용 기자
  • 승인 2009.08.12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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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전에는 없지만, 헌법은 '행복추구권' 명시
법적 보호는 사안별로 달라질 수밖에 없어
재계 회장들 간 주택 조망권 분쟁이 또 터졌다. 재벌들이 많이 살아 최고 부촌으로 불리는 서울 한남동에서 최근 국내 굴지 대기업 오너들인 중견 건설 업체 부영의 이중근 회장과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이 조망권 문제로 인해  자존심 싸움을 벌인 것이다.

대기업 오너들이 소송까지 불사한 것은 다름 아닌 '한강 조망권' 때문이다. 신세계 이 회장이 부영그룹 이 회장의 2층 주택 앞에 지난해 10월 외동딸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가 살 집을 신축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일이 벌어졌다. 이중근 회장은 1994년에 땅을 구입한 후 2층 집을 지어 1995년부터 살아온 터였다.
 

 
하지만 신세계 이 회장이 짓고 있는 건물이 완공되면 이중근 회장 집에서 그동안 한눈에 들어왔던 한강이 보이지 않기 때문. 이중근 회장의 자택은 남산 고지대에 자리잡고 있어 전망이 매우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법원은 소송 대리인들을 불러 소송 경위를 확인하는 등 본격적인 심리에 들어간 상태다. 부영 관계자는 "이명희 회장 측은 대지지반을 기존지반보다 높여 건축허가를 받았다. 주택의 조망이 완전히 차단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공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신세계 측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재벌가의 주택분쟁은 처음이 아니다. 2005년에도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 측이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을 상대로 서부지법에 공사중지 소송을 냈다. 이 전 회장이 2002년 이태원동에 사들인 부지에 새집을 지으면서 생긴 소음과 조망권 피해를 주장하다 갈등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합의를 통해 소송을 취하했고, 법정공방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이처럼 가진 것이 많아 일반 서민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들 대기업 오너들이 체면치레고 뭐고 없이 조망권 분쟁에 휩싸인 배경은 뭘까. 이에 시사오늘에서는 조망권에 대한 개념과 역사 그리고 허용범위 등에 대해 살펴봤다.
 
◇‘조망권’이란 무엇인가
조망권이란 쉽게 말하면 현 위치에서 앞에 보이는 전망(경치)을 말한다. 우선적인 점유권에 후발주자가 이를 방해, 혹은 빼앗으면서 조망권 분쟁이 나타난다. 최근 불거진 부영 이 회장과 신세계 이 회장의 조망권 싸움 역시 이러한 측면에서 촉발됐다.

우리나라에서 조망권 개념이 처음 생긴 건 70년대 후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현대아파트가 들어서면서부터다. 물론 집값을 산정할 때 한강 조망권은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주택이 얼마나 튼튼하게 지어졌느냐 여부가 주변 환경보다 더욱 중요시됐기 때문이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서울과 신도시를 중심으로 아파트 단지가 많아지면서 조망권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조망권은 크게 천공조망과 경관조망 2가지로 나뉜다. 천공조망이란 주택에서 거실 창을 통해 보이는 하늘의 차폐 정도를 의미한다.

이에 비해 경관조망은 거실 창을 통해 보이는 주변경관 정도를 말한다. 거실에서 건물의 건축 전후의 경관을 비교해 조망에 대한 차폐면적을 계산한다. 건물을 신축해 기존 건물의 조망을 침해했을 경우 조망권과 관련한 손해액을 산정할 때 쓰는 방식이다.

2005년과 최근 발생한 재벌가 간 조망권 분쟁 모두 서울 한남동 소재 개인주택에 대한 ‘경관조망권’ 싸움이었다. 이들 지역은 남산을 배경으로 해 한강을 조망하는 계단식 지형으로 유수 재벌가의 고급 주택들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한남동 외에도 최근 재건축·재개발이 서울 도심 곳곳에서 진행되면서 기존 건물, 주택의 조망권·채광권 분쟁이 급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조망권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아파트 동을 서로 엇갈리게(지그재그 방식) 배치하는 등 애초 설계단계에서부터 조심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조망권을 인정받긴 쉽지 않다. 건축허가가 정상적으로 났다면 새로운 건축물의 모든 조건을 감안해 허가가 난 것이므로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조망권에 대한 법적 보호는 사안별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일조권은 법적 보호, 조망권은 어려워
조망권은 육법전서에 명기돼 있지 않다. 하지만 법전에 없다고 해서 권리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헌법은 '행복추구권'을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법률 분쟁이 일어나면 법원에 이러한 권리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인지를 판단 받게 된다.

조망권 다툼 사례는 자주 일어난다. 지난해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강남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A씨가 서울시가 동부간선도시고속도로와 올림픽대로를 연결하는 고가교량을 건설하면서 조망권이 침해되고 아파트 가격도 2억원 이상 하락했다며 소송을 냈다.
 
이 소송에서 법원은 A씨 패소판결을 내렸다. A씨가 고가교량 건설 전에 누리고 있던 한강조망권이 사회·문화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생활이익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게 판시 내용이었다.

조망권을 적극적으로 해석한 판결도 있다. 부산의 해운대 지역에서 기존의 20층 아파트와 40m 떨어진 곳에 18~37층짜리 6개 동의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설 경우 입주민들이 지금까지 누려온 해운대 해수욕장에 대한 조망권과 일조권을 심하게 침해당할 뿐 아니라 이들 건물 완공 후 드나들 수많은 사람과 차량으로 인해 심한 교통체증과 매연·소음에 시달리는 등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소송이 제기되자 법원이 이를 인정해 해당 주상복합건물 층수를 20층으로 제한하라는 판결이 그것이다.

이처럼 조망권은 사안별로 보호 여부가 가려진다. 권익이 침해되는 정도가 참을 수 있는 것인지를 정밀 판단하는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 2007년 한강조망권을 인정했던 항소심 판결을 파기환송함으로써 조망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이 당시 한강조망권을 엄격하게 해석한 것은 조망권이 권리로 인정받기에는 객관성이 떨어지고 그 침해 정도가 일반적으로 참을 수 있는 정도를 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한강조망권은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이익'이 아니라 '사실상 누리고 있는 이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조망권이 실질적으로 부동산의 가치를 결정하는 큰 요인이기 때문에 이를 감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연립주택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고층아파트가 집중적으로 건설돼 조망침해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사회적으로도 점차 조망권에 대한 수요가 증대하는 만큼 법원이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시각도 만만찮은 것이다.

반면에 법원은 일조권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일조권은 생활하는 데 있어 건강하고 쾌적한 생활을 하기 위한 조건으로 그 침해 정도와 관련해 어느 정도 객관적인 수치화가 가능하다. 일조권은 현재 동짓날을 기준으로 오전 8시~오후 4시에 4시간 이상, 그 중 오전 9시~오후 3시에 연속해서 2시간 이상 햇빛을 쬐지 못하는 경우로 객관적 침해 기준을 마련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이러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일부에서는 헌법상 보장된 행복추구권과 실제 부동산거래에서 조망권이 가격 결정 요인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차지하는 것을 감안할 때 조망권을 더욱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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