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대한민국 경제③]흔들리는 제조업
스크롤 이동 상태바
[위기의 대한민국 경제③]흔들리는 제조업
  • 장대한 기자 전기룡 기자
  • 승인 2018.07.18 16: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워라밸 추구한다더니…최저임금 인상·주52시간의 ‘역풍’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장대한 기자 전기룡 기자)

▲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 내, 비어있는 도크 전경. 사진은 본문과 무관. ⓒ시사오늘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마련된 '주 52시간 근무제'와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중소기업체들의 숨통을 옭아매는 모양새다.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부작용으로 중소기업체로의 일감 쏠림 현상이 발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건비에 대한 부담도 늘어나 당장의 운영마저 힘들다는 게 그들의 하소연이다.

"주 52시간 근로제요? 우리는 예전보다 바빠지기만 했어요. 주 52시간제는 직영 직원들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죠. 그들은 이미 5시까지 근무하고 있으니까요. 주 52시간 근무제를 차등 적용한 게 영세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당장의 부작용은 아쉬울 수 밖에 없네요."

이는 지난 12일 울산 소재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한 노동자에게서 전해들은 말이다. 일과 삶의 균형인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추구하고자 마련된 주 52시간 근무제지만, 중소기업에 있어서는 오히려 업무 과중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중소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한 데는 사업장 규모에 따라 적용 시기가 상이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300인 이상의 사업장은 지난 1일부터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이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했다. 사실상 야근과 같은 연장근무가 금지된 것이다.

반면 50~299인 사업장은 2020년 1월 1일부터, 5~49인 사업장은 2021년 7월 1일부터 해당 제도가 적용될 예정이다. 즉 300인 이상의 직영 사업장으로서는 부족해진 일손을 채우기 위해 상대적으로 연장근무에서 자유로운 중소기업체에 이전보다 많은 하청 물량을 요구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주 52시간 근무제 정책에 따른 긍정적 효과를 정작 기대하기 어렵다는 현장의 고민 만큼이나 사업주 입장에서의 우려감도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지난 5월 17일 노동시간을 단축한 300인 미만 사업장이 신규 채용을 실행할 경우, 1명당 월 100만 원씩 최대 3년간 지원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노동시간 단축 현장 안착 지원 대책’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개선할 여지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사업장의 경우 인력난으로 인해 법정시행일 전에 근로시간을 조기에 단축하기 어렵다"며 "취업기피현상이 심한 생산직 일자리를 채울 수 있는 인력공급 대책이 더욱 구체화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법제로는 중소기업에서 유연근로시간제의 활용 비중이 매우 낮은 상황"이라며 "이들의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을 위해서는 사태파악과 함께 단위기간 확대 등 제도개선 방안 마련을 보다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만약 같은 시급을 받는다면 PC방 아르바이트를 하시겠어요, 아니면 땀 흘리면서 공장에서 일하시겠어요? PC방 아르바이트에 1만 원 시급을 주면, 우리는 1만2000원을 줘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누가 공장에서 일을 하겠어요."

울산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A씨가 지난 13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털어놓은 이야기다. 당시가 2019년도 최저임금 안이 확정되기 직전이었던 만큼, 그의 말에는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불편한 속내가 녹아져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18일 최근 급속히 인상된 최저임금으로 인해 업무 숙련 및 생산성과 관계없이 근로자들의 임금이 강제로 평균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국내 최저임금이 이미 OECD 평균인 근로자 중위임금의 절반 수준을 넘겼으며, 주휴 수당을 포함할 경우 내년 최저임금이 1만 원을 초과해 소득 수준, 노동생산성, 소비자 물가 등 어떤 경제지표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데 의견을 모았다.

신정기 노동인력특별위원회 위원장은 "2019년에 적용될 최저임금에 대한 중소기업 반응 조사를 통해 업종별 영향과 피해 실태를 파악하고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부담 완화 방안 등 보완책 마련을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번 심의 과정에서 논의된 최저임금의 업종별·규모별 구분 적용을 제도화하고 근본적으로는 최저임금위원회의 구성, 결정방식은 반드시 개선해야 할 사안이다"고 전했다.

A씨 역시 동일한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현재 갓 입사한 직원에게는 시급8000원을, 이보다 좀 더 숙련된 직원에게는 시급 8500원을 책정하고 있지만 이제는 초보자와 숙련자에 대한 대우가 거의 동일해질 것"이라며 "100인 규모의 사업장이다 보니 이번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연간 1억 원 가량의 인건비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솔직히 말해 퇴직금 적립과 운영비를 제외하고는 남아나는 게 없는 수준이다 보니, 같은 원청에서 하청을 받는 업체들도 직원들의 월급을 절반가량 밖에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1맨 아워(M/H, Man hour) 기준으로 원청 부서에서 평균 2만7000원을 책정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60%로도 지급되지 않는 만큼 우리로서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따라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영세·중소기업의 경쟁력이 해를 거듭할수록 약화되고 있는 상황도 부담이다. 이들 업체들이 주를 이루는 제조업종에만 국한시켜 보더라도 생산성 저하와 부가가치 감소 등의 문제가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

산업연구원이 지난 6월 발행한 '제조업 가동률 장기 하락의 원인' 리포트에 따르면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2010년 80%에 조금 못 미쳤던 것이 2018년 1분기 71.0% 수준으로 하락,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더욱이 조선, 섬유, 자동차 등 생산 부진 업종의 경우에는 구조조정 지연 등으로 생산능력 감소가 더디게 이뤄지면서 가동률이 크게 하락한 상태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10년간 중소기업의 구조변화와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중소기업이 우리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낮은 생산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햇다.

보고서에 따르면 총매출액에 대한 부가가치 비율로 측정되는 중소기업의 부가가치율이 2000년대 이후 25% 수준에 머물러 있고, 종사자 1인당 부가가치 증가율은 2004년 9.7%에서 2014년 2.4%로 10년 새 크게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악재까지 겹칠 경우 인력 고용과 R&D 투자 심리가 얼어붙을 가능성마저 점쳐진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으로 중소기업의 경쟁력 약화와 기업의 투자축소가 우려된다"고 전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경기도 소재의 한 대학 교수는 "국내 산업계가 가뜩이나 고비용 저효율 구조로 인해 경쟁력이 뒤쳐지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신남방정책과 더불어 대기업들의 해외 투자에도 속도가 붙고 있는 만큼, 국내 중소·중견 협력업체들이 설 자리가 더욱 비좁아 질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담당업무 : 자동차, 항공, 철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좌우명 :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