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유의 지조,뚝심…“농촌전문가” 극찬. 신임 농촌공사 사장 홍문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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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유의 지조,뚝심…“농촌전문가” 극찬. 신임 농촌공사 사장 홍문표
  • 차완용 기자
  • 승인 2008.12.03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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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오 박사 권유로 정치입문. 40년간 야당 정치인으로 잔뼈
소신 지킨 ‘대쪽 같은 정치인’ ‘한국최고 농축산 전문인’ 닉네임

신임 농촌공사 수장에 취임한 홍문표 사장은 40여년동안 ‘외길정치’를 해온 주인공이다. 홍 사장의 정치 인생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특유의 ‘지조’가 배어 있다. 지난 69년 유진오 박사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한 이래 고집스런 야당 인사로 정치 일선을 지켰다.

홍 사장은 민추협 발족, ‘2?12 선거혁명’, ‘3당 합당’에서 지난 대선과 총선에 이르기까지 한국정치 풍랑의 한복판에 섰던 인물이다.

생각을 조금만 달리 먹었다면 편안한 여당 정치인으로 커올 수 있었다. 하지만 정치 시류에 흔들리기보다는 소신을 선택해 가시밭 같은 ‘野人’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통일민주당 조직부장 시절 홍문표는 민정-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이 이뤄지자 “야합에 따라갈 수는 없다”며 반기를 들었다. 그는 이기택이 이끄는 ‘꼬마 민주당’을 선택했다.

92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DJ)’과 ‘이기택’이 합당을 선언, 통합야당인 민주당의 제2부총장을 맡아 야당의 조직을 묶는데 일조했다.

95년, DJ는 지방선거를 치른 뒤 국민회의를 만들며 민주당을 둘로 쪼갰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당선’을 위해 DJ를 따라갔다. 물론 홍 사장에게도 선택의 갈림길이었다. 하지만 홍 사장은 끝까지 민주당을 지켰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17대 국회에서 첫 금배지를 달았다.

그는 국회에 입성하자 왕성한 의정활동을 시작했다. 물론 그가 활동한 영역은 농수산해양위다. 농촌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에서 농화학을 전공한 홍 사장은 농수산해양위에서 활동하며 ‘전문가’란 닉네임을 얻었다.

한마디로 농촌을 향한 홍 사장의 각별한 신념은 숱한 의정활동 성과로 나타났다. 농업용 면세유 기간을 연장해 연간 2조원의 부담을 경감시켰고, 쌀 목표가격 5년 동결과 축산발전기금을 존치시키는 성과를 냈다.

축사 등 농업기반시설부담금 면제대상 관철, 자경농지 구입 시 취?등록세 감면 등 총 16개 정책을 관철시켜 농업인의 권익 신장과 소득증대에 힘썼다는 농업계의 평을 듣고 있다.

농업인의 권익 신장과 소득 증대에 매진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입법 활동에도 열을 올렸다. 쌀소득보전법, FTA특별법 등 6개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특히 한국농촌공사 및 농지관리기금법, 농업생산기반시설 및 주변부지 활용에 대한 특별법, 농업농촌기본법 등 농촌공사와 관련한 9개 법안을 공동 발의했다.

이 같은 의정 활동은 시민단체와 언론들이 그를 최우수 국감의원으로 3년 연속 선정하도록 했다.

그러나 18대 총선에서 홍 사장은 고배를 마셨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가 그 지역 출마를 단행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홍 사장은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대한민국 최고의 농축산 전문 정치인’이라는 그의 닉네임에 걸맞게 농촌공사 사장에 당당히 선임된 것.

취임식에 참석한 농업인들은 ‘사장 홍문표’가 선진 농어촌 건설을 선도하는 일류 공기업의 수장으로서 6천여 임직원들과 어께를 같이 할 것이란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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