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샬롱 드 밍’ 대표 원장 디렉터 케이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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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샬롱 드 밍’ 대표 원장 디렉터 케이를 만나다
  • 전기룡 기자
  • 승인 2018.12.10 16: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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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전기룡 기자)

남자는 ‘이발소’, ‘여자는 ‘미용실’. 이는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 있어 자연스러운 개념이었다. 하지만 20여년전부터 미용실이 헤어샵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남성 헤어디자이너가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 헤어샵을 찾는 남성이 많아지면서 이발소 간판을 찾는 일도 힘들어졌다. 한때 금남의 영역이라 칭해졌던 미용업계의 벽이 무너진 것이다.

이 같은 격변의 시기에 미용업계에 입문, 꿈을 찾아 걸어온 젊은이가 있다. 바로 서대문구 홍제동에 위치한 ‘샬롱 드 밍’의 대표 원장 디렉터 케이(Director K) 씨가 바로 그 주인공. <시사오늘>은 지난 7일 홍제동 소재 샬롱 드 밍에서 디렉터 케이 씨를 만나 헤어디자이너라는 진로를 결정하게 된 순간부터 대표 원장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 계기까지 그의 숨겨진 이야기에 대해 들어봤다.

▲ 샬롱드밍 외부 모습. ⓒ디렉터 케이 제공

미용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17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친구가 미용이론책을 읽고 있었는데 불현듯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 길로 다니던 종합학원을 그만두고 친구와 함께 미용학원을 등록했다. 부모님께 미용을 하고 싶다고 처음 말씀 드린 것도 미용학원에 들어간 이후였다.

미용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니 이제는 학교가 문제였다. 다행히 수도권 인문계 고등학교는 2학년 때 위탁교육 방식으로 전문학교에 편입할 수 있다. 당시 담임 선생님께서 미용예술학과가 있는 아현정보학교를 추천해주셨고 친구와 함께 학교를 옮겼다. 이후에는 졸업과 동시에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맘을 굳힌 후 행동이 빨랐던 것 같다. 주위의 반대도 있었을 텐데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미용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고, 남자가 무슨 미용을 하냐는 말도 들었다. 또 부모님께서 탐탁지 않게 생각하신 나머지 대화도 많이 줄었다. 한때는 부모님께서 시골에 계신 친척분들에게 내가 미용을 한다는 사실도 숨겼다고 하더라. 그래도 지금은 날 응원해주시는 든든한 조력자시다.”

정식 디자이너가 되기 전까지 우여곡절은 없었나

“프랜차이즈 매장에는 디자이너 코스 과정이란 게 있다. 펌, 드라이, 컬러, 커트 등의 과정과 주니어 스타일리스트 과정을 수료하면 정식 디자이너가 되는 방식이다. 보통 2년6개월에서 3년 정도 걸리는 코스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사회생활을 빨리 시작하다 보니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 남자라는 이유, 군대를 가야 한다는 이유가 조금씩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나는 군대를 제대한 직후 바로 디자이너가 될 수 있도록 사전에 코스를 조금씩 수료해놨다. 그 결과 군 제대와 동시에 디자이너 자격을 획득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엔지니어로서 생활하고 있다.”

“우리도 똑 같은 직장인이에요.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실력에 자신이 생기면 생길수록 창업을 꿈꾸게 되죠.”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은 자신이 사장이 되는 것을 꿈꿀 것이다. 헤어디자이너도 마찬가지다. 압구정, 천호, 마포, 홍대 등지의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경력을 쌓아온 디렉터 케이는 자신의 슬럼프를 이겨내기 위해 막연하게 꿈꿔왔던 창업을 행동에 옮겼다고 털어놨다.

▲ 디렉터 케이 캐리커쳐. ⓒ디렉터 케이 제공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직장인들도 한 번쯤은 사장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나. 헤어디자이너도 똑같다. 헤어디자이너 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만의 매장의 차리고 싶다는 때가 온다. 나 같은 경우에는 그런 때가 이번에 찾아왔다. 너무 심하게 오다 보니 서둘러 퇴사하고 오픈 준비를 시작하게 됐다. 당시에 슬럼프도 심하게 왔었기에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창업을 했다는 게 가장 실감났던 순간이 있다면

“매장 계약 후 첫 월세를 입금하던 순간이 가장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또 사업자등록증을 처음 받았던 순간도 기억에 남는다. 첫 창업이기에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설렘이 더 컸다. 미용실에 필요한 제품들을 구매하려면 사업자등록증, 영업신고증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전에는 잘 몰랐기에 제품을 구매하는데 애를 먹었다. 이후 사업자등록증이 나오고 나서야 본격적인 오픈 막바지 준비를 시행할 수 있었다. 분명 곤란했던 상황이었지만 막연한 설렘 덕분에 잘 넘겼던 것 같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첫 월세’와 ‘첫 사업등록증’을 통해 창업을 했음을, 나만의 사업장이 생겼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창업을 결심한 이후 들었던 조언이나, 지원해준 단체·기관 등이 있다면

“미용을 같이 해온 선배가 나에게 잘 알고 자신 있는 지역을 선택하라고 조언해줬다. 나도 그 조언을 받아들였고 이후 세 곳 정도로 후보지를 추렸다. 당시 유심히 봤던 지역이 둔촌동과 신월동이었다. 마음에 드는 자리가 두 군데 정도 있었지만 월세, 인건비 등을 고려했을 때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어지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더라. 그래서 최근 상권이 살아나고 있고, 내가 감내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한 홍제동으로 매장의 위치를 결정하게 됐다.

지원 같은 경우에는 처음에 크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오픈을 준비하다 보니 조금은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 그래서 서울보증재단이란 곳을 알아보게 됐다. 미용사는 프리랜서에 속하기에 대출을 하려고 해도 신용대출 밖에 받을 수 없다. 그래서 서울보증재단에서 보증을 해주고, 은행권에서 대출을 해주는 ‘창업자금대출’을 받게 됐다. 창업일 기준 3개월 이내에 신청하면 되고, 금리도 낮아서 큰 도움이 됐다.”

홍제동의 상권이 살아나는 중이라고 말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통해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포방터시장이 바로 인근이다. 샵에서 50m 떨어진 지역에는 백종원 씨도 인정한 돈까스집이 위치해 있다. 이외에도 골목식당에 출연한 홍탁집이나 막창집, 주꾸미집도 멀지 않다. 백종원 씨가 상권을 살린 셈이다. 이외에도 서울여자간호대학교와 서울홍성교회 등도 인접해 있다. 특히 주말에는 예배를 드리러 오신 분들이 많이 들러주신다.”

오는 길에 근처 미용실 몇 군데를 봤다. 가격이 다른 미용실 대비 비싼 것 같다

“원래는 홍대 매장에서 근무할 때의 가격을 그대로 적용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홍대와 홍제동의 입지 조건이 상이하기에, 당시의 가격보다 조금 낮췄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주변 미용실보다 조금 비싼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고객들에게 가격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자신한다. 일례로 모든 고객들께 일상생활 속에서 쌓인 피로를 풀어드릴 수 있는 ‘헤드 스파’와 아로마 오일로 ‘핸드 마사지’를 해드린다. 조금은 차별화된 서비스기에 많은 고객들께서 이런 서비스까지 해주냐고 반문하시더라. 그러면 우리는 원래 해드리는 거라고 답해드린다. 주위보다 조금 높은 단가를 책정했지만 그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고 싶다.”

아직 초보 사장님이다. 초보 사장님이만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이 있다면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보다 나은, 보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창업자금대출을 받은 것도 고객들에게 헤드 스파와 같이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염색약 등의 제품들도 서대문구 내에서는 가장 좋은 제품을 들여온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울러 고객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 항상 첫 방문하신 고객분들께는 불편한 점은 없으셨는지, 좀 더 바라는 부분은 없으셨는지 메신저 등을 통해 여쭤보는 편이다. 그리고 이를 최대한 수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인터뷰 후 나눈 사담에서 디렉터 케이는 수줍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샬롱 드 밍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향후 마케팅 회사의 대표까지 하고 싶다고. 창업이라는 첫 번째 허들을 넘은 청년 사업가의 향후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이다.

담당업무 : 재계 및 게임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노력의 왕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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