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代散策] 한치만 “태극기 부대는 철학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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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代散策] 한치만 “태극기 부대는 철학이 없다”
  • 글=한치만/ 정리=김병묵 기자
  • 승인 2018.12.22 10:0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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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만 대구·경북 민주동지회장
“단식, 대의명분이 있어야 성공한다”
“친박계, 지금이라도 스스로 물러나야”
“YS 유언 ‘통합과 화합’, 文정부 새겨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글=한치만/ 정리=김병묵 기자)

역사는 다르지만 또 비슷하게 흐른다. 얼마 전 어느덧 김영삼(YS) 전 대통령 서거 3주기였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단식이 되풀이되고 택시기사들의 시위는 1984년 대구 택시기사 데모 사건을 떠올릴 정도로 극렬하다. 경북의 산간에 눈꽃이 아름답게 핀 13일, 당시에 대한 증언을 부탁하는 기자를 만나 서울역전의 한 카페에서 기억을 더듬었다.

▲ ˝단식은 불의에 맞서는 마지막 수단이다. 생명을 거는 것이니 만큼 사회를, 세상을 위한 대의명분이 있어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YS의 23일 단식이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단식으로 투쟁사를 열다

과거를 돌이키다 보니 1967년 제7대 총선인, 6·8 부정선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젠 50여년이 다 된 일이다. 나는 혈기가 넘쳤고, 또 순수하던 젊은이였다. 경북, 거기서도 영천 지역은 선거 부정이 가장 심했던 곳이다. 선거 고발로 입건된 것만 189건에 달했고, 집권여당 공화당에서 부정선거로 현역의원 5명을 제명했을 정도다. 개표 참관인이던 나는 투표함 보전 신청을 하고 밤새 투표함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리고 단식투쟁을 했다. 선배들 중엔 ‘공화당 놈들 때문에 굶을 수 없다’며 계란을 먹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래선 제대로 된 투쟁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5일간 물 말고는 입에 대지 않았다. 이후에도 1979년에 YH 사건 당시 대구도당 사무실에서 단식을 했고, 1987년에는 5월 16일부터 일주일간 교회에서 5·16에 반대하고, 5·17 긴급조치에 항의하고, 5·18을 기리는 의미에서 했다.

 단식은 불의에 맞서는 마지막 수단이다. 생명을 거는 것이니 만큼 사회를, 세상을 위한 대의명분이 있어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YS의 23일 단식이다. YS의 단식 19일째였던 것 같다. 연금돼있던 나는 정보과 형사를 따돌리고 서울로 올라갔다. 미리 차표를 사 둔 다음 대구 반월당에서 형사와 약속을 잡은 뒤. 출발 직전에 전화를 걸어 ‘미안한데 못 가게 됐다’고 말했다. 그 때 눈치를 챘던 것 같다. 어느새 서울대병원에 형사가 쫓아 와 있었다. 입원실 문을 열자 단식을 오래 하면 나는 특유의 냄새가 확 풍겼다. 아직 의식이 있던 YS가 “어, 왔나”하고 인사했던 기억이 난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의 단식을 보면 참 안타깝다. 나이 70에 하는 단식이 얼마나 힘들겠나. 손 대표가 8일 차라고 들었다. 단식은 사흘째가 가장 힘들다. 사흘을 넘기면 일주일 까지는 갈 수 있다. 나름의 정치적인 이유가 있고, 물러설 곳이 없어서 하는 단식이다. 대의명분인지 아닌지를 내가 판단할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 각오와 결기에는 예의를 갖출 만 하다.

한국 최초의 산중 민주화 운동, 경민산악회

▲ ˝죄는 강하게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고, 대승적으로, 또 미래 지향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대기업이라고 무작정 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이념이 다를 수도 있는데 적폐라고 몰아붙이지 말고, 국민들을 껴안고 가야 한다. YS가 남긴 말을 다시 생각해볼 때다. 통합과 화합이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1980년, 10월 27일 신민당이 해체됐다. 해체돼서 갈 곳이 없던 차에, 유성환 전 의원이 “우리가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산에서라도 모여서 끈을 이어나가고, 기틀을 마련합시다”라고 했다. 그래서 이대우, 이성호, 곽천순 등과 함께 모여서 딱 한달 뒤인 11월 27일에 경민산악회를 출범시켰다.

탄압이 심했다. 탄압이 너무 심하다 보니 전부 모일 수가 없었다. 3~40명이 모일 줄 알았는데, 9명만 산에 간 적도 있었다. 경찰청 경무과, 각 서의 경무과, 중앙정보부까지 모이니 우리보다 감시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우스운 꼴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경민산악회는, 당시 ‘프락치’였던 이모 씨가 유 전 의원에게 50만원을 준 것을 빌미로 유 전 의원이 구속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완벽한 함정이었는데, 경찰은 ‘경민산악회를 해체하면 유성환을 풀어주겠다’고 했다. 이대우 선배 등 나이많은 사람들은 이 타협안을 수용하자고 했고, 나를 비롯해 비교적 젊은 축은 여기서 물러서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 중재안으로 산악회에서 ‘경민’을 빼기로 했다. 이름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창립일을 딴 ‘27 산악회’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그것도 안된다는 거다. 결국 이름 없이 운영하다가 사실상 해체되는 상황을 겪었다.

 하지만 27산악회였던 시절, 1차 연금에서 풀린 YS를 초청해서 팔공산 산행을 한 적이 있다. YS가 “산에서 모이니까 너무나 좋다”고 하더라. 그리고 서울에 올라가더니, 민주산악회를 결성했다. 그리고 그 선발주자격인 경민산악회에 신경을 많이 써 줬다. 1983년 2차 연금에서 풀릴 즈음, YS가 서울로 한번 올라오라고 했다. 김덕룡(DR) 비서실장과 거의 매일 통화하다시피 했다. 당시 DR은 새벽 4시반에 일어나 업무를 시작했는데, 그래서 새벽시간에 주로 통화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서울로 가서 YS를 만나자 대뜸 “대구 어떻게 됐노, 와 산에 요즘 안가노. 대구가 잘 돼야 한데이”라고 독려를 하더라.

그래서 대구에서 정치정화법에 걸려서 풀리지 않은 사람이 넷이 모였다. 유성환 전 의원과 동교동계의 한영애, 임차문, 사회당의 박인목이 민산에서 모이기로 했다. 나는 은밀하게 개별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면서 모았다. 그리고 새벽차로 서울로 올라가 YS를 만났다. 그로부터 얼마 뒤에, 이민우 민산 회장이 내려와서 산악회기를 증정했다. 그러면서 본격적인 대구경북의 민산이 활성화됐고, 그 끈끈함은 지금도 일부나마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해마다 민주동지회 신년회에 버스를 빌려서 올라오고 있다.

YS 생전에 우리는 신년회 후 상도동에 들러서 YS를 만나고 갔다. YS는 꼭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중간에 “내가 찬송가 하나 할까”하면서 노래를 한 곡 들려줬다. 항상 같은 노래로, 찬송가 384장 ‘나의 갈길 다 가도록’이었다.

대구 택시기사 데모 사건

1984년, 5·25 사건이라고도 불리는 대구 택시기사 데모 사건이 있었다. 사납금 인하와 노조결성 방해중지 등을 요구한 일이었다. 민산 일로 서울로 가려고 하는데 시청 앞에 엄청난 숫자의 택시가 서 있던 거다. 무슨일인가 알아봐야겠다 싶어서 물어봤다. 유성환 전 의원과 우리 민산이 택시기사들을 도울 방법이 뭐가 있을까 함께 의논했다. 택시기사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대개 서민들의 직업이다. 변호사를 구할 돈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무료 변론을 해주면 어떻겠나’라고 해서 YS에게 도움을 구했다. 그래서 민산이 추천한 세 사람의 변호사가 무료 변론을 위해 내려왔다. 김명륜·박찬종·김정두 변호사였고, 대구가 지역구였던 목요상 변호사는 국회의원 자격으로 도왔다.

▲ ˝보수의 분열만 봐도 그렇다. 철학이 있는 정치인이 중심을 잡았어야 했다. 그렇지 못한 결과가 실패다. 그래도 나름 YS의 직계고, 수 개월 넘게 전국에서 대통령 후보 1순위였던 김무성이라는 인물이 있음에도 계파놀음을 하면서 스스로 궤멸됐다. 그 중심인 친박계니 진박계니, 이런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그런게 진짜 정치 아니겠나.˝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다들 최선을 다해 줬지만 특히 김정두 변호사의 고생이 기억이 난다. 그 더운날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엄청나게 바쁘게 왔다갔다 하면서, 우리 동지들이 국밥을 사주면 그렇게 고마워하고 또 미안해했었다.
 이어 YS가 곧 금일봉을 보내왔다. 이미 구속된 택시기사들이 10명이 넘었다. 그 가족들의 생활이 정말 비참했었다. 임신 6개월인 부인도 있었고, 이제 막 두 달 된 아기가 있는 집도 있었는데 남편이 구속되니 막막했던 거다. 그래서 개별적으로 비밀리에 연락해서, ‘YS가 보내는 위로금’이라면서 금일봉을 전달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택시기사들이 나중에 유성환 전 의원의 선거에서 지지를 보내면서 큰 힘이 됐다. 1985년 선거에서, 유 전 의원이 지나가기만 해도 택시기사들이 차를 멈추고 경적을 울리면서 호응했다. 가두 유세 때는 택시들이 가장 앞장섰다. 그 결과 이만섭, 한병채를 압도하면서 유 전 의원은 1위로 압승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대구는 야도였다. 자유당 시절부터 야성이 강했다. 물론 대구·경북에 박정희의 지지기반이 돈독한 편이기도 하다. 박근혜의 경우 그 후광을 좀 입었고, 또 부모가 비명에 갔으니 동정을 많이 얻었다. 하지만 민산이 활동할 당시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표가 많이 나왔었다.
 지금은 과연 정치인들이 그때의 민산만큼, 진정으로 택시기사들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하는지 모를 일이다.

철학이 있는 정치의 중요성

민산과 YS, 목표는 딱 한가지였다. 군정종식이다. 군정종식이 돼야 그 이후에 오는 모든 것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올 거라고 믿었다. 그게 YS의 철학이었고, 그는 그 목표를 위해선 욕을 먹는것도, 심지어 생명의 위협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냥 전진했고 이뤘다. 유신이 선포됐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YS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을 때의 일이다. YS는 미국에 있었는데, 유신을 듣고 귀국키로 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독재치하에서 야당 지도자들이 어떤 탄압을 받았던가.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결국 망명을 선택하지 않았나. 하지만 YS는 나가도 시원찮을 판에 오히려 돌아온다. 잡혀가도 내 나라에서 잡혀가고, 죽어도 내 나라에서 싸우다 죽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 굳건한 정치적 철학이 지금 어디 있는가.

보수의 분열만 봐도 그렇다. 철학이 있는 정치인이 중심을 잡았어야 했다. 그렇지 못한 결과가 실패다. 그래도 나름 YS의 직계고, 수 개월 넘게 전국에서 대통령 후보 1순위였던 김무성이라는 인물이 있음에도 계파놀음을 하면서 스스로 궤멸됐다.

그 중심인 친박계니 진박계니, 이런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그런게 진짜 정치 아니겠나.

우리는 반독재, 군정종식을 위해 민주화를 추구했고, 이후에는 보수로서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했었다. YS를 중심으로, 각자 투철한 신념과 철학을 가지고 싸웠고 또 정치를 했다. 그런데 지금의 태극기 부대가 정말로 보수인가. 그들은 극우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단적으로 시위의 명분을 보자. 나라를 위한, 국민들을 위한 시위가 가치있는 것이다. 그게 박근혜든 누구든, 개인을 위한 충성과 맹목적인 지지가 목적인 시위는 의미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태극기 부대에는 철학이 없다.
 뒤늦게 지금 정당들이 YS의 후계 논쟁을 한다. 하지만 이 역시도 정치적 신념, 철학 없이는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다. 

▲ ˝택시기사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대개 서민들의 직업이다. 변호사를 구할 돈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무료 변론을 해주면 어떻겠나’라고 해서 YS에게 도움을 구했다. 그래서 민산이 추천한 세 사람의 변호사가 무료 변론을 위해 내려왔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통합과 화합

기자가 지금 정치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기에, YS의 유언을 빌어서 대답했다. 통합과 화합을 받들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게 그런 측면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 지금 시대에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적폐청산은 물론 중요하다.

아무도 적폐청산을 나쁘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을 잡아 넣은 뒤에, 죄목을 스물 몇 개씩 뒤집어 씌우는게 과연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분열만 부추기고 있는 건 아닌가 우려가 된다. 죄가 있다면 큰 것으로 몇 개, 정말 국민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세계적으로 봐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짚고 넘어가면 된다. 죄는 강하게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고, 대승적으로, 또 미래 지향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대기업이라고 무작정 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이념이 다를 수도 있는데 적폐라고 몰아붙이지 말고, 국민들을 껴안고 가야 한다. YS가 남긴 말을 다시 생각해볼 때다. 통합과 화합이다.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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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나 2018-12-30 14:29:36
다른 건 다 차치하고 태극기 집회에 대한 의견을 보니,한심한 생각이 든다. 본인이 태극기 집회에 한 번 참석한 적 있는지? 그들과 대화 한번 한 적 있는지?
태극기 집회는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시민들의 집회이고,
그들의 신념과 희생정신을 폄하하지 말라. YS가 과연 애국자였는지?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운동권자였는지?
정권을 잡고 싶어하는 야당 당수만이 아니었는지?
현 정권과 같은 종북이 아니었는지? 그 집권 당시 멸치값이 엄청 비쌌던 걸로 기억난다.

김선생 2018-12-22 16:43:28
간만에 좋은 글을 읽었습니다
한선생님 말씀대로 지금은 김영삼대통령 같은 리더의 큰 철학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사리사욕을 버리고 국민과 국가를 생각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