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텔링] 국민감정 어긋난 판결, 모든 게 판사 책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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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텔링] 국민감정 어긋난 판결, 모든 게 판사 책임일까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8.12.31 1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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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따라 판결할 수밖에…자극적 보도 집중하는 언론 책임론도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31일 <시사오늘>과 만난 한 변호사는 “판사는 법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의적인 판단으로 유·무죄를 판단하거나 형량을 조정할 수 있는 재량권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뉴시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단골 이슈’ 중 하나는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의 출소를 막아달라는 청원입니다. 2020년 12월로 예정된 조두순의 출소가 2년여 앞으로 다가오자,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다시 사회로 돌아온다는 데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건데요. 이미 청와대가 두 차례에 걸쳐 “안타깝지만 법치주의 원칙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조두순 출소 금지는) 현행법상으로 불가능하다”고 답했음에도 동일한 내용의 청원이 지속적으로 등록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조두순 사건에 대한 청원을 모아 보면, 불안감과 분노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조두순에 대해 판결을 내린 판사의 신상 공개를 요구하기도 하고, 아예 파면을 요청하는 청원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판사 자녀가 똑같은 일을 당해봐야 한다는 식의 선을 넘은 발언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판사가 턱없이 낮은 형량을 선고했으니, 조두순이 사회로 돌아오게 된 것은 판사의 책임이라는 논리죠.

하지만 정말 조두순 판결이 판사의 잘못이나 실수였을까요. 한 번 되짚어 보죠. 당시 검찰은 조두순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습니다. 그러자 조두순 변호인 측은 조두순이 만취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며, 감형을 요구했습니다. 조두순 판결 당시 우리 형법 제10조 제2항은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2018년 12월 18일 ‘감경할 수 있다’로 개정)’고 돼있었습니다. 만약 만취 상태라는 변호인 측 주장이 사실이라면, 판사는 법에 따라 ‘반드시 감형해야 할’ 의무가 있었죠.

결국 판사는 법에 따라 감형을 할 수밖에 없었고, 12년 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리고 검찰 또한 이를 받아들여 더 이상 항소하지 않았습니다. 조두순에게 너무 낮은 형량이 선고된 것은 판사의 잘못이라기보다, 심신미약이 인정되면 무조건 감형을 하도록 하는 법 자체의 문제가 제일 컸습니다. 굳이 ‘책임자’를 찾는다 해도, 판사보다는 항소를 포기했던 검찰 쪽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볼 수 있었죠.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 역시 지난 2016년 TV조선 <강적들>에 출연, “검찰이 무기징역으로 항소했어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럼에도 당시 여론의 비판은 판사에게로 집중됐고, 지금도 판사 개인에게 모든 책임이 떠넘겨지는 실정이죠.

이 같은 사례는 아직까지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12월 29일, 서울행정법원은 ‘근무 중 성매매 경찰관 해임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는 이유로 집중 포화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근무 중에 성매매를 한 경찰관을 법원이 구제해줄 수 있느냐’며 판사에게 비난을 퍼부었죠.

그러나 이 역시 오해에서 비롯된 반응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좀 더 뜯어보면, 법원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판결을 내렸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는 총 두 사람의 경찰공무원이 등장합니다. 두 사람 모두 경찰공무원이고, 근무 중에 성매매를 하다가 적발된 점도 동일합니다. 불과 이틀 새 발생한 일이니, 시점도 거의 같죠.

하지만 A씨는 해임 처분을 받았다가 이의 제기를 통해 강등 처분으로 감경됐습니다. 반면 다른 B씨는 해임 처분을 받은 후 똑같이 이의 제기를 했는데도 수용되지 않고 그대로 해임됐죠. 이러자 B씨가 ‘같은 죄를 저질렀는데 누구는 강등되고 누구는 해임되나. 억울하다’면서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던 겁니다. 이러면 법원은 평등 원칙에 따라 ‘B씨에 대한 해임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삼권분립의 원칙이 있으니 법원이 ‘A씨도 해임하라’고 판결하는 것은 행정부에 대한 월권이 되고, 평등 원칙은 지켜야 하니 법원은 B씨에 대한 해임 처분을 취소해서 공평성을 지켜줄 수밖에 없는 거죠. 재판부도 “두 사람의 비위 행위 시기가 근접하고 형태도 비슷한데 B씨만 해임 처분을 받을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고요. 그러니까 이 사건에서도 법원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었던 겁니다. 오히려 비판받아야 할 쪽은 근무 중 성매매를 하다 적발된 사람의 해임 처분을 강등으로 바꿔준 A씨의 행정청인 셈입니다.

31일 <시사오늘>과 만난 한 변호사는 “판사는 법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의적인 판단으로 유·무죄를 판단하거나 형량을 조정할 수 있는 재량권은 많지 않다”며 “애초에 법이 불합리하거나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못한 것까지 판사에게 뒤집어씌워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공부를 안 하고 자극적인 기사만 쏟아내는 기자들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고 덧붙였습니다. 2018년의 끝자락에서 한 번 고민해 봐야 할 대목인 것 같습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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