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석 “한국교회 ‘함석헌 정신’ 배척…결국 부패하고 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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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의석 “한국교회 ‘함석헌 정신’ 배척…결국 부패하고 타락”
  • 최신형 기자
  • 승인 2011.06.21 15: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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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의석 한나라위원장함석헌, 1956년 에 기독교 비판…오늘날 교회모순 집약교리·교권 벗어던진 채 ‘자속(自贖)신앙’ 강조…성경 위 성령 강조정통교단, 함석헌 이단 규정…“함석헌 존경하지만 지금도 글 안 써”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최신형 기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말한 함석헌 선생. 함석헌은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인 1901년 3월 13일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나 1989년 2월 4일 별세하기까지, 이 땅의 사상적 은사였다. 일제강점기 시절엔 민족의 정체성을 찾는 ‘독립운동가’의 길을, 박정희 군부독재 정권 시절엔 ‘민주화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때문에 우리는 함석헌을 가리켜 암울한 시대를 밝힌 민족적 은사라고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목회자의 길을 걸었던 예수의 사도였다는 사실을 종종 잊고 지낸다.

그의 씨알(민중)사상과 비폭력 저항운동의 중심엔 ‘예수의 정신’이 있었다는 얘기다. 군부독재 시절, 보수 개신교로부터 이단의 낙인이 찍힌 채 교회 밖에서 예수의 삶을 실천한 한국의 간디 함석헌. 2011년 우리는 왜 ‘함석헌 정신’을 주목해야 하는가. 매우 궁금했다. 그래서 함석헌의 예수정신을 연구하고 있는 심의석 전 한나라당 성북갑 위원장의 성북구 자택을 13일 찾아갔다. 함석헌의 씨알 정신, 그리고 한국교회에 대한 비판은 그렇게 시작됐다.

노자·공자·석가 공존한 종교다원주의 실천…한국교회 ‘패권성’ 지적
“전두환한테 아부했던 목사들, 민주화되니 자기들 권력 위해 떠들어”

 

▲ 심의석 전 한나라당 성북갑 위원장. ⓒ권희정 사진기자


-함석헌 선생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개신교의 장로가 함석헌 사상을 연구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함석헌 선생이 <사상계>에 ‘한국의 기독교는 무엇을 하려는가’라는 글을 기고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가 정확히 1956년이었죠. 내가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니까. 당시 함석헌의 글 때문에 <사상계>가 많이 팔렸어요. 그만큼 함석헌의 글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강렬했습니다. 나도 ‘참된 예수의 길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기 시작했죠.”

한국의 간디라 불리는 함석헌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의 인생은 격동한 민족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평양 고등보통학교 3학년 때인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함석헌은 반성문을 요구하는 일본인 교장의 제의를 거부, 2년간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함석헌은 1921년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설립한 오산학교에 편입해 졸업한 뒤 1924년 일본 동경고등사범학교에 입학, 우치무라 간조의 무교회주의를 접하게 된다.

정통 장로교 집안에서 자란 함석헌에게 신앙의 전환점이 된 시기였다. 그는 1934∼35년 동인지 <성서조선>을 통해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연재했다. 또 함석헌은 이승만 정권 시절 반독재 투쟁을 본격화하며 10월 유신 이후 수차례 투옥당하기도 했고, 1970년 함석헌이 창간한 <씨알의 소리>는 1980년 전두환 정권의 탄압으로 강제 폐간됐다.

그러나 자유와 민주를 향한 그의 열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85년 민주쟁취 국민운동본부 고문이었던 함석헌은 비폭력 평화사상이라는 씨알(민중)사상을 제창했다. 노자, 공자, 석가 등의 이론을 접한 시기이기도 하다. 때문에 함석헌 앞에는 동서양의 문명과 사상을 섭렵한 평화주의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1956년 이후로 함석헌 선생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습니까.

“본격적으로 함석헌 선생과 관계를 맺은 것은 김용준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를 통해서죠. 1970년대 당시 김 교수는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해직된 상태였고, 난 해동화재해상보험(주) 대표이사로 있었습니다. 내가 직원들의 교양강좌에 김 교수를 초빙하려고 접촉을 시도했어요. 김 교수가 맨 처음 하는 말이 ‘내가 해직된 교수라는 사실을 모르고 전화를 한 것 같다. 내가 강의를 하면 뒤탈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하더라고요.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고 말하자, 김 교수가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김 교수의 <내가 본 함석헌>에도 그 내용이 나오더라고요. 해직교수 8년 동안 강의한 적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난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교통비도 두둑하게 줬다고 하더군요(웃음).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함 선생과 관계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인연이라면 인연이죠.”

-관심이 있다는 것과 학문을 연구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보는데요. 왜 함석헌 선생과 관련된 글을, 그것도 기독교 사상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합니까.

“함석헌 선생이 서거한 후 김용준 교수가 <씨알의 소리> 2대 발행인을 맡은 적이 있었는데, 내가 그때 운영위원장이었습니다. 일종의 판매 직책을 맡은 거죠. 이후 함석헌 기념사업회 이사까지 역임하면서 함석헌 진영의 핵심 멤버인 ‘장기려 김동길 안병무’ 등과 교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함석헌 전집을 접하게 됐는데, 책 내용이 함석헌의 비폭력 저항의식에 맞춰져 있었어요. 중요한 것은 비폭력 저항의 근간에는 기독교 사상이 내재돼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기독교 사상보다는 민주화 저항을 주목하더군요. 왜 그럴까하고 유심히 보니까 기독교 내부에 함석헌과 관련된 글을 쓰면 배척당하는 분위가 팽배한 것 같았어요. 함석헌을 ‘한국 기독교 역사상 가장 독창적’이라고 추켜세웠지, 실제 글은 안 쓴다는 거죠. 그래서 한 15년 전부터 내가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근데 난 신학 전공자가 아니잖아요. 중간 중간 벽에 부딪히는 거야. 다른 사람들이 쓰겠지 하면서 중도에 포기했어요. 그러나 신학자들이 지금도 잘 안 써요. 그래서 내가 다시 쓰려고 합니다.”

-함석헌 선생에 대한 글을 쓰는 궁극적인 목표가 있을 것 같은데요.

“요즘 케이블 TV의 기독교 방송을 보면 목사들이 이런 얘기를 해요. ‘쇠퇴하고 있는 유럽의 교회를 한국의 교회가 살려야 한다’고. 말이 됩니까. 어떻게 부패한 한국교회가 유럽 뿐 아니라 세계의 교회를 살릴 수 있겠습니까. 내가 함석헌 선생의 글을 통해 하고 싶은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바로 함석헌의 정신을 전파해 한국 기독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더 나아가 한국교회를 살리는 것, 그뿐입니다.”

심의석 전 한나라당 성북갑 위원장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제13회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 공직생활을 한 뒤 해동화재해상보험(주) 대표이사, 국민연금관리공단 상임감사, 한나라당 성북갑 지구당 위원장을 역임했다. 심 전 위원장은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의 기수였던 YS의 민주산악회에 합류하며 반독재 투쟁의 한 가운데 섰다.

 

“함석헌이 강조한 예수 정신은 ‘자속신앙’”

-함석헌 선생이 강조한 참된 예수의 길은 무엇이었습니까.

“한마디로 자속(自贖)신앙입니다. 예수가 인간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갔다는 게 대속이라면, 함석헌은 한발 더 나아가 인격의 자주성을 살려 개개인이 직접 십자가를 짊어지는 삶, 즉 인격의 변화를 주장했습니다. 십자가를 짊어질 수 있는 인격이 완성돼야 참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거죠. 그렇지 않겠습니까. ‘심의석’의 죄를 난데없이 예수가 대신 짊어질 수 있습니까. 또 함석헌은 성경을 고문서로 읽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사실이지만, 성경은 저자의 양식과 지적수준 등에 의해 쓰여지지 않았겠습니까. 오늘날 창세기를 쓴다면, 빅뱅이론이나 진화론 등을 염두에 두고 썼겠죠.”

-함석헌 선생의 글이 왜 지금도 우리에게 유효하 다고 보십니까.

“함석헌 선생이 한국 기독교에 기여한 공로는 기독교의 약점을 매우 논리적으로 비판한 데 있어요. 더 나아가 비판 속엔 대안이 있습니다. 함석헌의 글은 누구나 다 읽어봐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가 왜 거꾸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함석헌 선생은 독립운동가, 민주화운동가, 기독교운동가, 민권운동가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시대적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것을 모두 포괄한 사상이 예수 정신이라고 보십니까.

“바로 그거죠. 성경을 저술한 시기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창궐하지 않았습니까. 당연히 신화시대의 패러다임에 맞춰서 성경을 썼겠죠. 함석헌이 주장한 것은 신화의 껍질을 벗겨내고 그 신화의 메시지를 생각해보라는 겁니다. 성경이 마지막 보루가 아니고 성경 위에 성령이 있다는 것이죠. 문자적인 성경보다는 그 위에 있는 성령의 역사를 따르는 것, 그것이 참된 신앙이라는 거죠.”

-함석헌 선생이 글을 쓰면서 한국 교회 등을 비판했던 시기는 사실상 개신교의 양적 부흥시기와 맞물려 있습니다. 당시 보수 개신교는 함 선생의 신앙을 어떤 시선으로 봤습니까.

“이단이라고 규정했죠. 함석헌 선생이 교회 밖에서 성경을 가르친다는 것을 문제 삼았어요. 보수 기독교는 당시 함석헌을 강단에 세우지 말라며 전국 교회에 공문을 보냈습니다. 오산학교의 설립자인 남강(南崗) 이승훈 선생이 함석헌의 무교회주의 모임에 나갔다가 제명당하지 않았습니까. 김용준 고려대학교 교수도 천안 중앙교회 집사였는데, 함 선생의 신앙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쫓겨났습니다. 그 여파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죠.”

-지금도 ‘함석헌 비토’가 기독교 내에 팽배합니까.
 

 ▲심 위원장은 전두환한테 아부했던 목사들이 민주화가 이뤄지니 자기들 권력을 위해 정부비판에 나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학대학교 교수, 종교연구가, 목사 등을 만나면 함석헌을 존경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글을 쓰지는 않아요. 아마도 교수나 목사 직분에서 쫓겨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죠. 지난 1992년 당시 변선환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가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한 뒤 쫓겨나지 않았습니까. 그 분은 교회 밖에서 함석헌의 신앙을 가르친 적이 없는 데도 배척당한 거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왜 수많은 신학대학교 교수나 목사 등이 함석헌의 글을 비밀로 읽느냐는 거예요. 함석헌의 글이 불온서적입니까.”

실제로 변선환 감리교신학대학 학장은 지난 1991년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한 뒤 같은 해 5월 금란교회(김홍도 목사)에서 감리교회 법정최고형인 출교 처분을 받았다.

그로부터 4년 후인 1995년 8월 8일 변 학장은 이단이라는 멍에를 쓴 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변 학장이 세상을 떠난 이후 종교학자들은 그의 토착화 신학이 “기독교의 배타적 우월주의를 거부하며 종교해방신학을 추구하는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함석헌 선생이 개신교에서 배척당한 뒤 스스로 그 권력에 맞서 싸우지는 않았습니까.

“함석헌 선생은 철저한 비폭력주의자입니다. 자기가 죽으면 죽지, 맞서 싸우고 자신의 힘을 세력화하는 데 쓰지 않아요. 생각해 보세요. 기성교회와 싸울 힘이 있겠습니까. 그분이 기성 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예수와 교회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미워서, 싫어서 비판한 게 아니에요.”

 

“한국교회 ‘종교다원주의’ 확산 중”

-함석헌 선생은 ‘퀘이커교’로 알려져 있습니다. 복음주의 신학을 받아들인 보수 개신교와는 전혀 다른 종파인데요. 함 선생은 왜 퀘이커교의 신앙을 받아들였다고 보십니까.

“함석헌 선생이 처음부터 퀘이커교는 아니었어요. 그분은 9살 때 정통 장로교에서 학습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일본의 무교회주의자인 우찌무라 간조를 만났어요. 하지만 함석헌은 무교회주의 역시 고정된 채 역사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봤습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은 채 끊임없이 신앙적 진화를 했다고 볼 수 있죠. 근데 이 부분에서 하나의 사건이 발생합니다. 함석헌이 1960년대 초 천안 씨알농장에서 일하는, 서울대 사범대 출신의 여인과 동침을 하는 스캔들이 일어났어요. 함석헌 스캔들 이후 무교회주의자들은 물론, 유영모 등 가까운 사람들도 전부 함석헌을 떠났어요. 진짜 외톨이가 된 거죠. 그때 한국의 퀘이커 책임자가 함석헌에게 입문을 제안했어요. 함석헌이 퀘어커에 입문하자마자 일약 세계적인 퀘이커 지도자가 됩니다. 퀘이커는 당시 3번이나 함석헌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대했죠.”

1650년대 영국의 조지 폭스에 의해 만들어진 퀘이커(Quaker)는 기성 교단의 제도나 형식 등에서 자유로운 개신교의 한 종파다. 퀘이커는 목사 등 인도자 없이 묵상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유명하고 비폭력주의와 양심적 병역거부를 통해 사회개혁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일부 보수교단은 퀘이커가 기성 교단과는 달리 구원 예정설과 원죄를 부인하는 것을 문제 삼으며 주류 신학은 아니라고 평가한다.

-아직도 보수 개신교는 기독교, 유불도교, 인도철학 등을 접목시킨 함석헌의 사상을 ‘종교적 다원주의’라며 폄훼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시대 때 성경을 쓴 사람들은 동양의 노자나 공자 등을 몰랐잖아요. 스페인을 세계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시대였지 않습니까. 그만큼 당시 세계를 보는 눈이 좁았던 셈이죠. 그러니 다원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겠습니까. 함석헌은 같은 하나님이 인도에서는 석가모니를 통해 부흥을 일으켰고, 중국에서는 노자나 공자 등을 통해 진리를 가르쳤다고 본 거죠.”

-여전히 개신교 내부에는 종교다원주의를 배격하는 정서가 강합니다.

“아니요, 지금은 다릅니다. 내가 나가는 교회의 목사도 종교다원주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종교의 교리는 다르지만, 같이 공존해야 한다는 정서가 강한 셈이죠. 실제 우리 교회는 매년 인근 지역의 가톨릭과 불교 등과 함께 공동바자회를 열고 있습니다. 예전만큼 종교다원주의를 배척하는 상황은 아닌 거 같아요. 보수꼴통이 아니면, 누가 지금 시대에 다원주의를 거부합니까.”

-각 종교가 대립하지 않고 공생과 상생을 추구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에는 동의하더라도 예수 이외의 구원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여전히 논쟁거리가 아닌가요.

“종교다원주의의 배척은 가톨릭보다 개신교가 더 심합니다. 산 정상에 오르는 길이 한쪽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지 않겠습니까. 석가모니를 통해 속죄를 받든지, 예수를 통해 속죄를 받든지 매한가지죠. 함석헌이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했을 당시에는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적었지만, 지금은 신학교수들의 토론 모임에 가면 종교다원주의는 대세입니다. 보수꼴통이 아니고서는 종교다원주의를 배척하지 않죠.”

-왜 정통 개신교는 그동안 종교다원주의를 배척했을까요.

“사도행전에 보면 ‘예수의 이름이 아니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한 구절이 있습니다. 함석헌은 이렇게 말했지요. ‘그때 성경을 쓴 사람들은 지중해 연안 이외의 세상에 대해서 알았겠느냐’고 말했어요. 동양의 공자, 노자, 석가 등이 존재하는지, 또 남미 지역에 뭐가 있었는지도 모르던 시절인 거죠. 세계는 우주로 가고 있는 데, 단지 성경구절 그대로 해석해서야 되겠습니까.”

“한국 교회 썩었다…예수정신 실종”

-강남 대형교회 등은 이미 사회적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했습니다. 한국 개신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개신교는 가톨릭의 부패 이후 개혁운동으로 나온 게 아닙니까. 근데, 지금의 한국 개신교는 과거 가톨릭보다도 더 썩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이유가 뭡니까. 예수와의 만남을 통해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라는 거죠. 그것이 종교가 인류문화 역사에 기여한 부분입니다. 그것이 본질적인 신앙 아닌가요. 그런데 한국교회는 부자가 되기 위해, 건강하기 위해 등등 기복신앙을 너무 많이 가르칩니다. 인류가 도덕적으로 타락하지 않기 위해 예수를 믿는 것인데, 한국 교회는 이와는 반대로 가고 있는 셈이죠. 성경에 많은 돈을 버는 방법이나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비법이 나와 있습니까. 예수가 그런 것을 가르치던가요. 성경을 객관적으로 봐야합니다.”

-한국교회가 부흥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기복신앙의 강조였습니다. 때문에 한국교회가 기복주의 자체를 배격하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교인의 기복주의와 교회의 대형화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기복주의와 교회의 대형화는 동전의 양면이 아닐까요. 교회가 진리로 세상을 이기려고 하지 않은 채 세력화만 꾀하고 있습니다. 최근 개신교가 들고 일어났던 수쿠크법이 그렇게 중요한 일입니까. 교회는 자신들 모르게 힘을 합쳐 목소리를 내는, 세력화에 감염돼 있습니다. ‘우리를 건들면 교인 수를 가지고 선거판을 흔들겠다’는 일종의 협박을 하고 있는 셈이죠. 당장 손해가 나도 진리로 세상을 이기려고 해야 합니다.”

실제로 대표적인 보수 교단인 한기총은 지난 2월 17일 이명박 정부가 당시 추진했던 수쿠크법(이슬람채권 면세)이 국회에 통과될 경우 낙선운동을 하겠다고 정부여당에 경고했다. 수쿠크법은 2009년 9월 기획재정부가 외화자금 유치를 위해 추진했으나, 개신교가 강하게 반발하며 법안 자체를 표류했다. 수쿠크법 이듬해 12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서 통과됐지만 이후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부결된 바 있다.

-왜 개신교인들은 교회의 부패에 대해 비판을 하지 않을까요.

“직관적인 판단이지만, 교인이 목사를 비판했다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목사를 세우고 다스리는 것은 하나님인데, 어떻게 사람이 목사를 비판하느냐는 인식인 거죠. 교회를 다니다보면, 교회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러나 비판을 하면 입을 막아요. 예수는 진리로 세상을 이겼지, 진리 이외의 세력 등으로 세상을 이기지 않았습니다.”

-한국 개신교의 대표 기구인 한기총 등은 그동안 보수 정치세력의 지지를 표명한 바 있습니다. 교회의 정치적 발언 등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심 위원장은 함석헌이 강조한 예수 정신은 자속신앙이라고 전했다

“불쌍한 생각이 들어요. 독재정권 때 권력에 아부했던 목사들이 민주화 시대가 되니까 자기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떠들고 있습니다. 독재정권 시절, 교회 지도자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조찬기도회에 가서 전두환을 민족의 지도자라고 추켜세우고 돈을 받아가지 않았습니까.

당시 내가 교회총회에서 ‘목사들은 교회에서 월급을 받는 데 왜 거기에 가서 돈을 받느냐. 뭐가 무서워 정부에 아부를 하느냐’고 말한 적이 있었어요. 그랬더니 지도자급 목회 지도자들이 내 말을 반박하기 시작하더군요.

총회에서 시국선언을 발표한 뒤 그 이튿날 택시를 타고 강남에 있는 총회장으로 가고 있는데, 라디오 연속극에서 만해 한용운의 독립운동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내가 택시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근데, 내가 총회에 도착하니까 젊은 목사들이 ‘심의석 장로의 말이 맞다’며 시국선언을 한다는 거예요. 민주화운동을 했던 목사들은 오히려 지금 조용히 지내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예수처럼 인류위해 자기 생명 바쳐야”

-독재정권 시절 전두환한테 머리를 조아렸던 목사들이 왜 기득권을 위해 목소리를 낸다고 보십니까.

“원래 체질이 그런 사람들이죠. 강자한테 쏠리다가 권력이 민주화되니까 교단의 세를 위해 위세를 부리고…. 강하면 아부하고, 약하면 권력을 뒤흔들고….너무 안타깝습니다.”

-한국교회의 문제점인 헌금 문제를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는데요. 사실 건축헌금 십일조 감사헌금 선교헌금 주일헌금 등 한국교회만큼 헌금의 종류가 많기도 쉽지 않잖아요. 특히 십일조는 구약시대 세금제도에 불과한 거 아닙니까.

“신약이 구약을 많이 뜯어고쳤잖아요. 구약이 율법을 강조한 데 반해, 신약은 율법의 기반 위에서 사랑을 강조했습니다. 예수가 엄청난 일을 한 거죠. 신약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금을 내고, 그 헌금을 예수살렘 교회에 전하겠다는 얘기만 있어요. 우리가 헌금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신약을 보면 알 수 있잖아요. 결국 한국교회의 헌금은 신약이 아닌 구약의 제도를 따르고 있는 셈이죠. 신약이 구약을 뜯어고쳤듯이 지금의 헌금제도 역시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교회의 개혁을 위해 종교인에 대한 세금 부과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소득이 있다면 세금을 내는 것이 당연하지요. 종교단체나 종교인의 비과세가 세법에 규정돼 있습니까. 정부당국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세금부과의 주체는 정부인데, 이 문제를 건드는 순간 표가 떨어지니까 눈치만 보고 방관하고 있는 거죠.”

-교회에서 장로 직분을 수행하고 있는데, 상당한 의사결정권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실제 현실은 어떻습니까.

“원래 출석하던 교회에서 하도 견딜 수가 없어서 지금의 교회로 오게 됐습니다. 통상적으로 장로의 정년퇴임은 70세인데, 난 65세 때 장로직을 그만뒀습니다. 지금은 상근장로가 아니라 그냥 이름만 장로인 셈이죠. 근데, 장로가 아무리 힘이 있다고 해도 목사의 부정은 막기 힘듭니다. 그게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대형교회 내해서 행해지는 자기 개혁의 부정은 비(非)기독교인들에게 부정적으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개혁할 수 있는 방법적 대안은 무엇입니까. 함석헌 정신의 계승인가요.

“예수의 대속의 의미를 생각해보세요. 만약에 예수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라고 했다면,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았겠죠.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리를 지키기 위해 예수가 고초를 당한 거 아닙니까. 교회나 목사도 그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인류를 위해 자기의 생명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 교회나 목사가 있다면, 초대교회 때처럼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함석헌 선생이 기독교도 낡고 때가 묻었기 때문에 새 종교가 나와야 한다고 역설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죠. 그 새로운 예수를 기다리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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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 2012-03-06 20:44:33
이율배반 아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