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은 예뻐서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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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은 예뻐서 좋겠다"
  • 박지순 기자
  • 승인 2009.09.11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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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 권력이다
 

‘여자의 피부는 권력이다.’ 어느 화장품 광고의 카피 문구다. 이런 격언도 있다. ‘미(美)는 거죽 한 꺼풀(Beauty is only skin deep.)’ 미는 피부 껍데기만으로 평가되지만 그 미가 권력이란 말이다. ‘얼짱’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연예계에서만 통용되다가 지금은 정치권에서 오히려 더 많이 쓰이고 있는 것 같다.

얼굴 하나로 먹고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연예인에게 미가 권력이라는 사실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지만 정치권에까지 미가 권력으로 득세하고 군림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시작한지는 꽤 됐고 지금은 정치를 하려면 얼굴 생김부터 봐야할 만큼 정치적 선택의 필수이자 최우선 고려요소로 흔들림 없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가 예상했던 대로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나면서 앞으로 치러질 국내 선거에서도 일본의 전례에 따라 미가 이전보다 위력을 떨칠 것이란 말들이 돌고 있다. 일본 중의원 선거는 반세기에 걸친 자민당의 장기집권이 막을 내렸다는 결과보다는 민주당 대표대행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가 등용한 ‘오자와 걸’들의 선전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은 미는 권력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정치인이다.     © 시사오늘

 
일본 중의원 선거 여성 당선자 54명, ‘여성 자객’ 신조어 탄생
 
여성 당선자 수는 모두 54명으로 일본 선거 역사상 최고 수치였고 처음으로 여성 의원 비율이 10%를 넘어 11.3%를 기록했다. 이 중 오자와 걸은 무려 40명이다. 오자와 걸들은 ‘미녀 자객’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데다 나이까지 젊은 미모의 여성들이 자민당의 전직 총리와 10선 급 의원 등 원로들을 무너뜨린 데서 나온 말이다.

일본 국민들이 자민당의 구태의연한 정치 행태에 염증을 느껴 민주당을 선택했다고 하지만 미녀 자객 당선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빼어난 미모 이외에는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일 요소는 없는 것이 냉정한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신문 지면에 얼굴이 자주 오르내렸던 후쿠다 에리코(福田衣里子, 29)와 아오키 아이(靑木愛, 43)는 각각 자민당의 규마 후미오(久間章生, 68) 전 방위상과 공명당의 5선 의원 오타 아키히로(太田昭宏, 63)를 누르고 당선됐다.

두 미녀 자객의 사진을 본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예쁘다”를 연발했다. 예쁘니까 후보자에게 호감이 가고 어떤 일을 하는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알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미모가 없으면 유권자의 선택에서 일단 ‘열외’된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듯하다.

한국의 정치 문화는 일본의 흐름을 따르는 경우가 일반적이고 일본에 비해 미국의 정치가 선진적이라고들 한다. 미국의 선거에서도 미가 유권자들의 판단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의원 평가 제1요소는 ‘텔레포닉’(방송+사진)
 
미국 유학파인 한나라당 윤상현 의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미국 정치에서는 외모가 ‘제1의 판단요소’라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윤 의원은 상하원 선거가 끝나면 의회에서 ‘Congress’라는 소식지를 발행해 당선자 중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선정·발표하는데 ‘Telephonic(텔레비전과 사진의 합성어)’을 가장 먼저 고려한다고 말했다.

영상과 사진을 통해 전달되는 정치인의 외모가 선거에서의 당선은 물론 정치인으로서 클 수 있는지 여부도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윤 의원은 텔레포닉에 이어 ‘말’과 ‘지적 능력’이 3요소 중 나머지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권자들이 선거 후보자들을 처음 대하는 장(場)은 선전 벽보를 통해서라며 벽보에 기재된 경력을 보기 전에 얼굴을 먼저 보게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윤 의원은 “미모가 유리하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다”며 “여성이 여성을 싫어하고 남성에게 표를 주는 경향이 있어 미모의 여성 후보자가 미모 때문에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케네디 방송 출연 후 200만 표 얻어 당선
 
윤 의원의 지적처럼 미국 정치에서 외모의 중요성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가장 존경받는 미국 대통령 중 한 명인 케네디는 선거전이 한창이던 1960년 9월 첫 TV토론 출연을 계기로 200만 표 이상을 자신에게 움직이게 해 닉슨을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반면 라디오 토론을 청취한 유권자들은 상대적으로 닉슨에게 지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케네디와 닉슨의 표차가 11만 2,000여 표였던 점을 감안하면 결국 케네디가 수려하게 생긴 자신의 얼굴을 방송에 드러낸 것이 당선의 결정적 요인이었던 셈이다.

현재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고 육영수 여사를 연상시키는 외모로 덕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윤 의원은 대체적으로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지가 좋다”라고 전제한 뒤 “박 전 대표의 ‘관상’은 품위가 있으면서 아버지의 강인한 의지를 물려받아 위엄까지 갖췄고 ‘누님으로서’ 좋아하는 분”이라고 말했다.
 
나경원, 조윤선, 김은혜 미로 권력 얻어. 추미애, 김영선이 원조
 
얼짱으로 통하는 국내 정치인을 꼽으라면 단연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을 들 수 있다. 나 의원은 얼마 전 한 여성 잡지의 패션 모델로 나서 ‘미모를 살렸다’거나 ‘전문 모델보다 낫다’는 긍정적 평가와 ‘국회의원이 천박하다’, ‘국회의원 그만두고 이 참에 모델로 나서라’는 부정적 평가를 동시에 받았다. 

나 의원은 전직 전여옥 의원에 이어 한나라당 대변인에 임명됐고 초선 의원 시절 약 3년을 대변인으로 보냈다. 전 의원이 거칠고 직선적 입담으로 유명세를 치렀다면 나 의원은 탁월한 미모가 시청자들의 호감을 자아냈고 한나라당의 남성 중심적, 수구적 이미지를 탈바꿈시키는데 톡톡히 역할을 했다는 것이 거의 일치된 견해다.

그러나 나 의원실 정희장 보좌관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미모는 정치인의 인지도를 높이는 한 가지 요소는 될 수 있어도 선거에서의 판단 기준은 아니”라고 말했다. 정 보좌관은 “의원실이 자체적으로 여론 조사를 실시한 결과 소속 정당의 정책과 후보자의 능력이 (선거에서의) 판단 기준이라고 밝혀졌다”며 나 의원이 미모로 덕을 보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 15대 총선을 통해 정치계에 입문한 추미애 의원은 미녀 정치인의 원조로 통한다.     © 시사오늘


나 의원에 이어 한나라당 대변인이 된 조윤선 의원도 일각에서는 얼짱 국회의원으로 이미지를 탈바꿈한 한나라당이 미모를 또 다시 활용하고자 중용했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조 의원실 정희정 보좌관은 “조 의원은 미모가 없어도 성공할 수 있는 분으로 능력이 뛰어나다”고 항간의 소문을 정면 반박했다.
 
지난 주 청와대 인사에서 승진 기용된 김은혜 대변인도 미모가 권력으로 연결된 대표적 여성 정치인이다. 방송 앵커였던 김 대변인은 방송을 통해 구축한 대중적 호감을 권력의 중심인 청와대로 공간적 이동을 시켰다고 볼 수 있다.

원조 미모 여성 정치인은 따로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국회 환경노동위원장)과 한나라당 김영선 의원(국회 정무위원장)이 그들이다.
 
나란히 15대 국회에 입문한 이들은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미모의 추 의원을 영입하자 신한국당이 그에 대한 대항마로 김 의원을 영입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에 대해 김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억측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지난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미모가 정치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고 인정한 바 있다.

케네디 대통령의 예가 보여주듯 미모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정치적 무기가 될 수 있다. ‘서울 대통령’으로 불리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당내 기반이 취약한데다 초선 의원을 지낸 일천한 정치 경력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서울 시장 후보로 발탁돼 상대였던 강금실 후보를 여유 있게 누르고 당선됐다.
 
▲ 오세훈 서울시장은 미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권력을 얻는 방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 시사오늘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섰던 무소속 정동영 의원과 박희태 대표의 사퇴로 한나라당 대표로 취임한 정몽준 의원 역시 귀공자 풍의 외모 덕을 누리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오세훈, 홍정욱, 유정현 등 수려한 외모 덕에 ‘등극’
 
서울 노원병에서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를 누르고 당선돼 18대 총선 최대의 뉴스메이커였던 홍정욱 의원은 ‘남자 김태희’라고 불릴 정도의 잘 생긴 외모가 당선의 유일·절대 원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는 영화 배우 남궁원(본명 홍경일)의 아들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방송인에서 정치인으로 전격 변신한 한나라당 유정현 의원도 미는 권력임을 입증한 경우다.

미로 권력을 누리는 정치인들은 공통적으로 국내외 명문대를 나왔다. 연예 권력과는 분명히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아직까지는 정치를 하려면 학벌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시대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미로 권력을 누리는 정치인만큼 학벌을 갖춘 이들은 넘쳐난다. 학벌은 예선이고 미가 본선인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권력이 미를 취한다고 했지만 이제는 미가 권력을 취하는 시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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