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공항] DJ ‘폭풍의 귀국’ 이뤄졌던 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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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공항] DJ ‘폭풍의 귀국’ 이뤄졌던 그 곳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9.03.12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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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제12대 총선 나흘 전 DJ 귀국…신민당 돌풍에 힘 실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미국 정치인과 언론인들에 둘러싸여 김포국제공항으로 귀국하는 DJ의 모습. ⓒ문화체육관광부 e영상역사관
미국 정치인과 언론인들에 둘러싸여 김포국제공항으로 귀국하는 DJ의 모습. ⓒ문화체육관광부 e영상역사관

민주화 세력에게 1985년 제12대 총선은 ‘기회’이자 ‘위기’였다. 전두환 정권에서의 첫 번째 국회의원 선거였던 제11대 총선이 야권 인사(人士)들의 정치 참여가 봉쇄된 상태에서 치러졌던 것과 달리, 민주화 세력이 대거 가세했던 제12대 총선은 ‘민의(民意)의 심판’을 기대할 수 있는 무대였던 까닭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두환 정권에게 집권의 정당성만 부여해주는 꼴이 될 우려도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가 채택하고 있던 중선거구제는 정부여당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제도였던 데다, 자칫 민주화 세력이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결과적으로 총선 결과는 전두환 정권의 정당성을 승인(承認)하는 것으로 평가될 공산이 컸다.

때문에 민주화 세력에게 제12대 총선은 그야말로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나 다름없었다. 이기면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더 치열하게 투쟁을 이어갈 힘을 얻게 되지만, 진다면 계속해서 민주화 운동을 이어나갈 동력(動力)을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이유로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신민당 초대 당수 이민우에게 서울 종로·중구 출마를 종용(慫慂)하면서,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중구를 시작으로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전략을 세운다. 한두 석을 더 얻어내는 ‘작은 승리’보다는, ‘신민당 돌풍’이 전국을 강타하도록 만들어 총선 승리뿐만 아니라 민주화까지 파죽지세(破竹之勢)로 이뤄내겠다는 의지였다.

YS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오랜 군부독재에 지쳐 있던 국민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고 민주화를 약속한 신민당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제12대 총선 엿새 전인 1985년 2월 6일 옛 서울고등학교 자리에서 열린 서울 종로·중구 합동연설회에는 10만 명에 가까운 인파가 몰리며 신민당 돌풍이 ‘태풍’이 됐음을 짐작케 했다.

「경희궁터, 옛 서울고교 자리에서 열린 마지막 합동연설회는 기록적인 7만 여 청중이 운집한 ‘정치의 봄’이었다. 개막 1시간 전부터 모여들기 시작한 인파는 운동장과 스탠드를 가득 메웠고, 일부 청중은 스탠드를 둘러싼 고목나무에까지 올라가 주렁주렁 매달리다시피 했다. (중략) 청중들은 마지막 연설회의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기울였고, ‘시원한 그 한마디’에 아낌없이 박수와 함성을 보냈다. 1985년 2월 7일 〈동아일보〉 ‘구름떼 청중 막판의 열변’」

그리고 선거 나흘 전인 2월 8일, 이미 태풍이 된 신민당에 ‘폭풍’을 더해주는 사건이 벌어졌다. 전두환 정권의 ‘내란음모 조작사건’으로 미국 망명을 택했던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것이다. 당시 <뉴스위크>는 DJ의 귀국을 커버스토리로 선정하면서, 이런 제목을 뽑았다.

DJ 귀국 소식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던 1985년 2월 <뉴스위크> 표지 사진. ⓒ김대중 기념사업회
DJ 귀국 소식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던 1985년 2월 <뉴스위크> 표지 사진. ⓒ김대중 기념사업회

‘A Stormy Homecoming(폭풍의 귀국).’

YS와 함께 ‘민주화의 양대 거두(巨頭)’였던 DJ의 귀국은 전두환 정권에게 치명타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전두환 정권에게 핍박받아 해외로 망명했던 민주화 투사가, 총선 나흘 전에, 자신을 보호하려는 미국의 저명인사 27명과 함께 돌아온다는 사실은 국민에게 한 편의 드라마처럼 받아들여졌을 테니 말이다. 결국 전두환 정권은 DJ가 불러올 파장을 걱정, DJ 부부를 김포공항에서 바로 동교동 자택으로 압송해 가택연금시킨다. <이희호 평전>은 당시 <뉴스위크> 기사를 인용해 당시 상황을 아래와 같이 묘사한다.

“한국 정부 당국은 김대중 씨와 부인, 그리고 미국인 고관들을 비행장의 출입제한구역으로 몰고 갔다. 거기서 50여 명이 넘는 사복 요원들이 야당 지도자를 수행원들과 분리시켜 끌고 갔다. 그들은 미국인 몇 사람을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고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김대중 씨를 엘리베이터에 처박았다. 김대중 씨와 부인은 흰색 마이크로버스에 실려 공항 뒷길을 통해 자택으로 압송됐고 자택에 도착한 즉시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반면 전두환 정권의 통제를 받았던 우리 언론은 ‘미국에서 신병치료를 하던 DJ가 귀국했으며, 전두환 정권은 그가 자택에서 계속 요양할 수 있도록 재수감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수준의 내용만을 보도했다.

「미국에서 신병치료를 해온 김대중 씨가 8일 상오 부인 이희호 여사 등 가족과 함께 김포공항 착, 귀국했다.
김 씨는 공항에 도착한 후 가족 및 일부 수행원들과 함께 마포구 동교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내란음모죄로 징역 20년 형을 복역 중 신병치료를 위한 형집행정지처분을 받고 지난 83년 12월 23일 도미했던 김 씨는 현재 18년 1개월의 잔여 형기를 남겨놓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앞서 “인도적 견지에서 김 씨가 자택에서 요양을 계속토록 하기 위해 재수감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김 씨 귀국과 관련, “김 씨는 현재 형집행정지 중일뿐만 아니라 정치풍토 쇄신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의해 정치활동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정치활동은 허용되지 않으나 통상적인 활동은 자유로울 것”이라고 밝히고 “김 씨가 이번 정부의 관용조처를 잘 인식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날 귀국하면서 자신의 신변안전 보호를 이유로 미국인 20여 명과 함께 도착했다.
1985년 2월 8일자 <경향신문> ‘김대중 씨 귀국, 동교동 자택 직행’」

하지만 전두환 정부의 희망과는 다르게, DJ의 귀국은 말 그대로 폭풍을 몰고 왔다. 몇몇 증언에 따르면, 이날 김포공항은 “김대중, 김대중”을 연호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뤘다. 비록 경찰이 DJ 부부를 곧바로 격리시키긴 했지만, DJ 귀국이 가져온 ‘상징성’까지 차단하지는 못했다.

실제로 야당 후보들은 유세장에서 예외 없이 DJ 귀국 소식을 전했으며, 덕분에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DJ가 한국으로 돌아온 지 불과 하루 뒤인 9일, 민정당 권익현 대표위원이 기자회견에서 “(야권 후보들이 YS와 DJ를 거론하는 것이) 득표활동에 유리하다는 관점에서 그러한 언동을 하는지 모르나 이는 10·26 이후의 혼란과 국가의 정치 경제적 위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있지 않다는 명백한 증거”라며 비난했을 정도였다.

결국 YS와 DJ의 결합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꿨다. 신민당은 지역구 50석에 전국구 17석을 더해 총 67석을 획득, 민한당을 제치고 제1야당으로 등극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제12대 총선 승리를 바탕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 민주화를 이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현재 김포국제공항의 모습. ⓒ시사오늘
현재 김포국제공항의 모습. ⓒ시사오늘

한편, DJ가 미국 정치인·언론인 등의 호위를 받으면서 귀국했던 김포공항은 1939년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의 비행 훈련장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태평양전쟁 기간에는 ‘가미카제 특공대’를 양성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전쟁 때는 미국 공군의 군용비행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던 김포공항은 1958년에야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 지금은 국내선 8개 노선과 국제선 3개국 5개 노선에서 연간 2500만 명(2017년 기준)을 실어 나르는 국제공항으로 도약했다. 문자 그대로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산증인’인 셈이다.

참고로 현재 김포공항은 서울특별시 강서구 방화2동과 공항동, 인천광역시 계양구 상야동에 걸쳐 있다. 위치상으로 김포와 전혀 관련이 없음에도 ‘김포’공항인 이유는 처음 공항이 자리 잡을 당시 행정구역이 ‘경기도 김포군 양서면’이었기 때문이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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