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구성된 헌재, 진보된 판결 이뤄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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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구성된 헌재, 진보된 판결 이뤄낼까?
  • 김주연 기자
  • 승인 2019.04.26 1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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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 18세선거권, 위안부 문제까지
시민사회에 영향 미칠 갖가지 현안들
변화된 시대상황 반영할 수 있을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주연 기자]

문형배(왼쪽), 이미선 헌법재판관이 정식 임명되면서 헌법재판소 인적 구성이 다양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새로 구성된 헌재가 앞으로 전향적인 판결을 내릴지 주목된다. ⓒ뉴시스
문형배(왼쪽), 이미선 헌법재판관이 정식 임명되면서 헌법재판소 인적 구성이 다양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새로 구성된 헌재가 앞으로 전향적인 판결을 내릴지 주목된다. ⓒ뉴시스

지난 19일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이 정식 임명됐다. 이로써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이 대통령과 여당, 그리고 대법원장이 추천한 판사들로 구성됐다. 기존의 헌재보다 보수적인 색채가 옅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헌재에서 위헌 결정을 하려면 재판관 6명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이에 따라 사형제 폐지나 국가보안법 등 오랫동안 논쟁이 이어져 온 사건부터 18세 선거권,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등 시민사회에 영향을 미칠 여러 현안까지 전향적인 판단이 내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래된 논쟁, 사형제 그리고 국가보안법 
과거 두 차례 합헌 결정이 난 사형제도에 대한 위헌 여부가 다시 헌재 판결을 앞두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사폐소위)는 지난 2월 형법 제41조 1항 등 사형을 규정한 법률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사폐소위는 “사형제는 죄를 범한 사람을 도덕적 반성과 개선을 할 수 있는 인간으로 보지 않고 사회 방위의 수단으로만 취급한다는 점에서 헌법과 양립할 수 없다”며 “사형제도 목적이 강력 범죄 예방이라고 하지만 다른 형벌에 비해 효과적인 범죄 억지력이 있다는 가설은 입증되지 않고 있다”면서 사형제를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헌재는 과거 두 차례 사형제의 위헌 여부를 판단한 적이 있다. 1996년 살인과 특수강간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정모씨는 법률의 위헌여부를 가려달라며 헌재에 소원을 냈다. 당시 헌재의 판단은 7대2로 합헌 결정이었다. 재판부는 “사형이 최소한 동등한 가치가 있는 다른 생명 또는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예외적으로만 적용되는 한 헌법에 위반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가 사형제에 대해 다시 합헌 결정을 한 건 2010년이었다. 남녀 4명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이 선고된 70대 오모씨가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했고, 이때 헌재는 5대4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불법 정도와 책임에 상응하는 형벌을 부과하는 것으로서 범죄자가 스스로 선택한 범죄 행위의 결과인 바, 사형이 범죄자를 사회 방위라는 공익 추구를 위한 객체로만 취급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면서 “가석방이 불가능한 절대적 종신형을 따로 두고 있지 않은 것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합헌 결정을 했다. 

그동안 사형제 폐지에 대한 여론은 다소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체 형벌 도입을 전제로 사형제 폐지에 동의하는 비율이 66.9%에 달했다. 대체 형벌로는 사면이나 가석방 없는 절대적 종신형이 적절하다는 의견(78.9%)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사형제의 경우 인권과 사회통제가 결합해있는 복잡한 사안으로 사형제에 대한 기존의 입장이 바뀌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6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사형제는 인권과 사회통제·사회질서를 위한 도구적인 수단의 선택이라는 두 가지가 결합해있는 문제다. 헌재 구성이 바뀐 것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사안이다”고 말했다. 또 “대체형벌에 대해서는 합의된 안이 없다. 사형제가 위헌이라면 절대적 종신형 역시 위헌으로 선언할 수 있다. 절대적 종신형 역시 인간의 존엄에 반하는 형벌이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확신 없이는 기존의 틀을 바꾸기 어렵다. 위헌이 날 가능성이 작다”고 설명했다. 

사형제만큼이나 오랫동안 논쟁이 돼 온 사안 중 하나가 바로 국가보안법 폐지문제다. 25일 고승우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회장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냈다. 고 회장은 1980년 강제로 해직된 언론인 중 한명이다. 그는 국가보안법 2조와 3조, 4, 6, 10조는 위헌이라며 헌재에 헌법소원 청구서를 제출했다.  

고 회장은 청구서에서 “국가보안법이 남북 민족의 소통을 막고 갈등을 조장하는 흉기로 작용하며 미래 세대에게 한민족 통일국가를 물려줘야 할 기성세대의 책무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국가보안법은 제정 당시부터 정치적 악용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일종의 한시법이자 형법에 우선하는 특별법적 성격으로 만들어진 법”이라며 “개인의 사상, 양심,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남북관계 보도에 있어서 언론의 자유, 취재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정보 접근권을 차단하고 있다”고 했다.

찬양·고무 금지 조항인 ‘국가보안법 7조’에 대해서는 이미 헌법 소원이 제기돼있는 상태다. 2017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모씨는 반국가단체 활동을 찬양하거나, 이적표현물을 소지 및 유포한 경우 처벌하도록 한 국가보안법 7조의 위헌여부를 확인해달라고 헌재에 청구했다. 8번째 제기된 헌법 소원이었다. 

국보법 7조 1항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것을 알면서 반국가단체 등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하거나 또는 이에 동조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5항은 이를 목적으로 문서·도화 등 표현물을 제작·소지·반포한 자는 처벌할 수 있다고 돼있다.

이씨의 신청을 받아들여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수원지법 김도요 판사는 결정문에서 “이 조항들로 인해 북한의 사상과 철학 등에 대한 정보가 대한민국 정부의 사상과 경쟁하고, 검증되거나 수용됨으로써 민주주의의 성숙과 평화통일의 기초를 쌓을 기회가 상실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보법 7조에 대해서는 지난 2015년에 합헌 결정이 난 바 있다. 당시 헌재는 결정 이유에 대해 “반국가단체나 그 동조세력에 의한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고 국가전복 시도 등을 사전에 차단해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안보 현실에 비춰 구체적 위험이 현존하지 않더라도 위험성이 명백한 단계에서 찬양·고무 등 행위를 규제하는 것은 국민의 생존과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를 국회와 법무부에 권고한 바 있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 유엔인권이사회, 국제앰네스티 등 해외 인권기구 역시 한국 정부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수차례 권고했다. 국제앰네스티는 “한국의 국가보안법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가 안보를 보장하지도, 보호하지도 못하고 자국민을 상대로 자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근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국가보안법을 재검토해야 할 때’라고 언급하면서 국보법 폐지를 반대하는 한국당 의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한상희 교수는 국보법 7조에 대해 위헌이나 헌법불합치로 판결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는 “국보법은 우리나라 민주화 과정에서 가장 많은 억압을 야기했던 법 중에 하나다. 유엔인권이사회 등 국제사회도 한국의 국가보안법을 비난하고 있고 수차례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만 국보법 폐지로 인해 벌어질 이념논쟁에 대해 헌재에서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7번째 심판, 선거연령 18세 하향조정
2017년 참여연대와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2018년 지방선거를 180일 앞두고 헌법재판소에 선거일 기준 19세 이상에게만 선거권을 인정하는 공직선거법제15조,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49조1항 등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 법률에 따라 2018년 지방선거일 6월 13일 기준 만19세에 이르지 못한 청소년들이 교육감 등의 선거에서 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은 평등권, 참정권 등에 위반한다는 것이다.

당시 소송대리를 맡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허진민 변호사는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정치적 판단능력이 없다고 보는 것이 문제다. 보통선거의 원칙에 따라 선거권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면서 “특히 교육감 선거는 교육감이 수행하는 업무 볼 때 직접적 이해관계 가진 청소년이 뽑아야 한다”고 했다.

선거연령과 관련해 2017년에 제기된 헌법소원은 벌써 일곱 번째다. 지금까지 6차례에 걸쳐 헌법재판소는 19세 이상의 국민에게만 독자적 정치적 판단능력을 인정할 수 있고, 교육적 측면에서의 부작용이 야기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논거로 현행 선거법 제15조의 선거연령 19세 이상을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2013년 6번째로 내린 합헌 결정에서 “헌법 24조에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선거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면서 “이를 근거로 입법자는 19세 미만 미성년자의 경우 독자적으로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정신적·신체적 자율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 선거권 연령을 19세로 정했다”고 했다. 또 “많은 국가에서 선거권 연령을 18세 이상으로 정하고 있으나 이는 국가마다 특수한 상황 등을 고려해 결정할 사항”이라며 “선거권 연령제한이 입법자의 합리적인 입법재량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없어 19세 미만의 선거권 등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합헌 이유를 밝혔다.

당시 6대 3의 합헌 결정에서 반대의견을 낸 박한철·김이수·이진성 재판관은 “병역법 등 다른 법령에서도 18세 이상 국민은 국가와 사회 형성에 참여할 수 있는 정신적·육체적 수준에 도달했음을 인정하고 있다”면서 “선거연령을 19세 이상으로 정한 것은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벗어나 18세에서 19세 사이에 있는 국민의 선거권 등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18세 선거권은 현재 국회에서 지정한 패스트트랙 안건에 선거법 개정사항으로 포함돼있다. 패스트트랙이 통과되면 헌재에서는 기각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민감한 사회현안, 한일 위안부문제 합의와 개성공단 폐쇄
2016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한국과 일본 정부의 위안부 합의가 자신들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당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위안부 할머니 29명과 사망한 할머니 8명의 유족을 대리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청구서를 냈다.

민변은 “정부는 이번 합의로 할머니들의 대 일본 배상청구권 실현을 봉쇄하는 등 헌법적 의무를 위반했고, 할머니들은 재산권,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 국가로부터 외교적 보호를 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2015년 12월 28일 일본이 책임을 공식 인정하고 위안부 피해자를 위해 10억엔을 지원하는 대신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불가역적으로 마무리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합의 발표 직후 유엔에 ‘위안부 강제연행은 증거가 없다’는 입장을 보내는 등 합의 이전의 주장을 반복했다.

헌재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또 하나의 사건은 개성공단 폐쇄 문제다. 2016년 5월 개성공단 입주기업 163곳은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을 상대로 개성공단 전면 중단조치가 위헌임을 확인해 달라는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이 보장하는 재산권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대응으로 2016년 2월 10일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헌법소원이 제기되자 개성공단 전면중단 결정은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한 통치행위라고 밝혔다. 또 전면중단 결정의 이유로 북한이 개성공단 노동자 임금을 핵 개발을 위한 자금으로 유용했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개성공단 전면중단 위헌 소송이 제기된 지 3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 판결을 하지 않았다. 새로 구성된 헌법재판소에서 개성공단 전면중단 조치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이 외에 종교인 과세 특혜, 사드배치 승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위헌 여부 등도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한상희 교수는 “헌재의 새로운 인적구성으로 볼 때 과거보다 입헌주의적인 결정, 즉 국민의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와 같은 개념을 더 우선하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귀담아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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