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게임중독 질병 판정 - 한국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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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게임중독 질병 판정 - 한국의 선택은?
  • 이병도 주필
  • 승인 2019.06.0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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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결정 국내 사회적 합의 시급
규제치료·업계보호 지향점 도출을
게임문화 건강해야 산업도 발전
국민 건강권과 게임산업 생존 과제
적극적 예방·치료 계기도 돼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게임사용장애·Gaming Disorder)으로 판정했다. 

게임중독을 마약 도박 등의 중독처럼 질병으로 분류하는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을 사실상 확정했다. 2022년부터 194개 회원국에 적용을 권고했다. 게임 이용의 지속성과 빈도, 통제력 상실 여부 등이 기준이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국내 파장이 크다. 

전세계 4위의 게임대국이자 콘텐츠 수출의 60%를 차지하는 한국에선 이번 판정의 국가사회적 영향력과 정책방향을 둘러싼 논란이 거셀 수 밖에 없다. 연간 매출이 14조원대에 이르는 국내 게임산업은 물론 게임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노력에도 엄청난 변화와 큰 바람이 예상된다. 

한국의 2017년 게임 수출액은 6조7000억 원에 이른다. K팝의 10배, 한국영화의 100배에 이르는 수출을 담당한다. 당장 국내에선 게임업계를 중심으로 대책위가 꾸려져 강력하게 반발하고, 부처별로도 입장이 크게 엇갈리는 반응이다. 의료계, 교육계도 저마다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번 WHO 결정은 게임중독으로 인한 폐해가 심각함에도 마땅한 기준과 제도 미비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온 현실을 고려할 때 반길 만한 일이다. 관련 의료기술 또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한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게임 등 인터넷 중독 인구는 4억 명을 넘어섰고, 국내 역시 성인의 1%가 게임중독 상태라는 것이 현실 진단이다. 

29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게임 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게임 애도사'를 하고 있다.ⓒ뉴시스
29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게임 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게임 애도사'를 하고 있다.ⓒ뉴시스

국내 파장 확산...반응 교차 

반향은 실제 크게 엇갈린다. 보건당국은 WHO의 결정에 따른 절차 작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부처와 관련 업계의 게임산업 타격 우려로 인한 반발도 결코 만만치 않다.

국내 게임업계는 또 다른 규제 태풍이 몰려오지 않을지 크게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확산되는 가운데 일명 '게임세' 도입부터 광고 금지, 경고문구 도입 등 새로운 규제들도 벌써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게임 과몰입이 개인과 사회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은 실로 심각하다. 수면 부족과 활동 부족에 따른 신체건강 문제는 물론, 사회적 고립, 공부와 직무수행 방해, 대인관계 갈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청소년들의 게임중독은 날로 확산되는 수준인 데다 이로 인한 범죄도 늘어나고 있어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반면, WHO의 새 분류 기준이 세계 4위 수준인 게임산업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도 적지는 않다. 국내 게임산업은 연매출 6조 5000억 원(한국콘텐츠진흥원)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또한, 게임을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스트레스 해소와 특정 인지능력 향상 등의 장점이 있는것도 사실이다. 

WHO의 결정에 따라 우리나라 게임산업은 향후 3년간 11조원 넘는 경제적 손실을 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된다. 피해액이 2023년 2조2064억 원, 2024년 3조9467억 원, 2025년 5조2004억 원 등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란 예측이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보고서다. 

WHO의 이번 결정은 성장산업으로 지목되고 있는 한국 게임산업의 미래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대응이 요구되기도 한다.

반응이 엇갈릴 수 밖에 없다. 의료계는 적극적인 예방·치료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지만 게임업계는 “국내 도입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제, 국민 건강권과 게임업계 생존을 고려한 최선의 대응책을 수립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이번 WHO 조치의 배경과 국내 파장에 대한 정밀 진단이 필요하다. 

WHO 판정 기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한 새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안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HO 총회 B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음주나 도박 등도 정도에 따라 질병, 혹은 범죄가 되는 것처럼 게임도 중독시 질병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의미다.

WHO는 게임중독 판정 기준을 지속성과 빈도, 통제 가능성에 초점을 뒀다. 게임 통제 능력이 손상되고, 다른 일상 생활보다 게임을 중요하게 여기며, 12개월 이상 게임을 지속하면 게임중독으로 판단키로 했다.

이번에 WHO가 게임이용장애에 부여한 질병코드(6C51)는 정신적, 행동적, 신경발달 장애 영역의 하위 항목으로 포함돼 있다. 게임에 과몰입해 통제가 안 되면 정신·행동·신경 장애를 일으킨다는 뜻이다. 

게임업계를 중심으로 WHO의 이번 결정에 반대하는 공동대책위까지 꾸려졌지만, 이 결정을 되돌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렇게 되면 유병률 같은 통계의 국제 비교가 가능해지고 예방 및 치료에 대한 연구가 축적돼 체계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정부도 질병코드 부여 가능성

이제, 각국은 WHO 권고사항에 따른 질병정책을 펴게 된다. 새 ICD안은 2022년부터 회원국에 효력이 발생하는데, 권고사항이라 반영 여부는 각국 정부에 달려 있다. 

우리 보건복지부도 WHO의 권고를 받아들일 방침으로 보인다. 정부는 협의체를 구성해 사회적 논의에 착수할 예정인데, 2025년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개정 시 게임 중독에 질병코드를 부여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렇게 되면 보건 당국은 관련 통계를 작성해 발표하고 예방과 치료를 위한 예산을 배정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게임업계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질병코드 부여에 부정적이다. 문화·예술적 생활에 참여할 권리를 제한하게 되고 게임산업의 성장에 큰 걸림돌이 된다는 논리다.

한국은 게임이 막대한 수출산업임에도 중독에 대한 우려 때문에 다른 나라에는 없는 갈라파고스 규제를 이미 받아왔다. 밤 12시만 되면 청소년들의 게임을 차단하는 '셧다운제도'와 온라인 게임 하루 결제한도 제한 등이 바로 그런 규제다.

게임업계 반발

이번 WHO 결정의 반향은 실로 크다. 

국제적으로 세계게임산업협회와 관련 단체들이 즉각 이에 반발하는 공동 성명을 냈다.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 11차 개정안에 ‘게임이용장애’를 포함하는 결정을 재고해 달라”는 게 성명의 요지다. 이들은 “WHO가 학계의 동의 없이 결론에 도달했다”며 “이번 조치가 의도치 않은 결과를 부를 수 있다”고 비판했다. 

국내 게임업계도 게임을 죄악시하는 과도한 조치라고 반발한다. 게임학회·협회·기관 등 88개 단체로 이뤄진 게임질병코드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준비위원회(공대위)는 성명서를 통해 강력한 유감과 더불어 도입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공대위는 성명에서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지정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공대위는 국회의원회관에서 출범식을 갖고 차후 국내 도입 반대운동을 펼쳐나간다는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청소년들이 문화적 권리인 게임을 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죄의식을 느낄 수 있고, 게임 개발자들의 자유로운 창작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 공대위의 주장이다. 

게임업계는 “WHO가 충분한 과학적 근거를 확보하지 못한 채 질병으로 분류했다”는 논리다. 업계는 게임을 알코올이나 마약처럼 취급해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고, 이를 빌미로 가뜩이나 촘촘한 정부의 규제가 더 강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은 만 16세 미만을 대상으로 한 ‘셧다운제’가 도입된 2011년, 게임산업이 마이너스 성장했던 전례도 있다. 

중독 폐해 심각

그렇지만, 게임중독을 정신질환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은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제기돼 왔고, 상당수 정신과의사나 뇌과학자들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게임에 중독되면 마약에 중독됐을 때와 유사한 뇌 구조 변형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 설문조사에서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과 관련해 찬성 49.4%, 반대 26.4%라는 결과도 있으니 결코 가벼히 볼 문제가 아니다. 다만, 영화, 음악처럼 게임도 개인의 문화적 취향에 관련된 영역인 만큼 국가의 개입이 지나쳐선 안 된다는 지적도 만만치는 않다. 

그러나, 게임중독이 사회문제가 된 경우는 사실 많았다. 게임을 모방해 사람에게 상해를 가하거나 게임에 빠져 어린 자녀를 방치하는 등 극단적 사례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콘텐츠진흥원의 지난해 조사결과를 보면, 10~65세의 67%는 최근 1년 사이 게임을 경험했으며, 이들의 하루 평균 게임 이용시간은 주중 90~96분, 주말 114~163분에 달했다. 게임 과몰입으로 인한 가정 내 불화가 적지 않고, 게임중독이 직간접적 원인이 되어 빚어지는 강력 범죄도 잇따르고 있다. 

게임에 몰입하는 자녀와 이를 제한하려는 부모 간의 다툼은 청소년기 자녀가 있는 가정에서 주요한 불화 원인이 돼 있다. 게임아이템을 사기 위한 절도, 횡령 등의 범죄도 있었고, 온라인 게임을 하다가 직접 현실에서 만나 치고받는 일도 벌어진다. 

자제력 상실 과몰입이 문제

무엇보다 자제력을 잃고 중독에 빠지는 게 문제다. 청소년 12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1.8%가 ‘게임 과몰입 위험군’으로 나타났다는 통계도 있다. 게임에 중독되면 감정조절을 제대로 못해 각종 사건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한마디로, 게임의 문제는 그 자체가 아니라 중독(과몰입)이다. 게임에 중독된 중학생이 나무라는 어머니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고, 30대 남성이 PC방에서 닷새 동안 온라인 게임에 몰두하다 돌연사한 사건도 발생했다. 인터넷 게임에 빠져 생후 3개월 된 갓난아기를 방치해 굶겨 죽인 20대 부부도 있었다. 극단적인 사례들이지만 게임 중독의 폐해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이처럼 게임의 사행성·폭력성으로 인한 폐해를 수없이 목격해 왔다. 특히 뇌가 성숙하지 않은 어린이·청소년을 게임 소비자로만 볼 경우의 부작용은 심각하다. 국내 게임이 유독 중독성이 높다는 지적도 업계는 귀담아들어야 한다. 

게임 자체는 질병이 될 수 없지만, 과몰입으로 인한 이런 부작용은 분명 치료해야 할 장애가 분명하다.

사실, 게임 속 아이템 구매에 사행성을 가미한 확률형 아이템 게임의 경우 도박과의 경계가 모호하다. 게임업계 역시 미래 산업으로 인정받으려면 자정 노력을 통해 건강한 게임 생태계를 만드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부처간 이견과 해묵은 갈등

이같은 악재 상황탓에 정부 부처 간에도 의견이 크게 갈리는 모습이다.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여성가족부는 질병코드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게임산업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은 반대입장으로 알려졌다. 

복지부의 반응은 ICD 질병 명단에 오르면 예방과 치료 예산을 배정할 수 있고, 게임회사에 공익기금 조성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게임산업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도 “국내 일부 의사들이 게임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WHO를 조직적으로 공략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같은 부처간 이견과 관련, 이낙연 국무총리가 “국무조정실이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합리적인 방안을 찾으라”고 주문하고 있는 상황이다. 

찬성이나 반대 의견을 떠나 국내 게임산업이 중독성 높은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는 점은 이번 결정을 계기로 반성해야 할 대목으로 보인다. 이미 일부 선진국들은 중독성 높은 게임 수입을 차단하고 있어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으로 판단된다.

게임중독을 둘러싼 논란은 사실 해묵은 논쟁거리다. 의견은 크게 의료계와 게임업계로 갈렸다. 의료계는 게임중독을 건강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의 하나로 꾸준히 거론해왔다. WHO가 이번에 게임중독을 ICD에 포함시킨 것도 이런 인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게임업계는 게임중독을 마약, 알코올 중독과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은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게임이 질환을 일으킨다는 인과관계가 규명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예상되는 부작용 등에 대한 과학적 근거도 확보되지 못한 상황"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한국중독정신의학회가 이미 게임을 알코올, 마약, 도박처럼 규정하는 내용의 ‘중독 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 개정안’을 지지했던 데 대해 게임업계는 “의학계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게임 사용자들을 환자로 만든다”며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판정의 긍정 효과

이번 WHO 판단의 실질적 효력도 긍.부정적 파장으로 엇갈려 관측된다. 

우선, 게임중독의 부작용을 효과적으로 치유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WHO의 결정은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게 한다. 

질병코드가 부여되면 정부는 관련 보건 통계를 작성해 발표하게 되며 질병 예방과 치료를 위한 예산도 배정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르면 2026년부터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공식 관리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게임업계도 시장위축 우려 등을 내세워 무조건 반대해서도 안된다. WHO의 조치는 게임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 위해 마련된 게 아니다. 질병 등록을 통해 국민 건강이 피폐해지는 것을 막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게임중독 관리가 게임산업 자체를 고사시킬 것이라고 보는 건 지나친 두려움이나 과장이다. 

질병 인정을 주장하는 쪽은 게임 등 인터넷 중독으로 인해 발생하는 자해, 범죄, 치료 등 사회경제적 비용이 연간 7조~10조원에 달한다며, 규제가 목적이 아니라 최소한의 보호장치라는 설명을 내놓고 있다.

판정의 부정 효과

반면, 부정적 효과 측면에서는 세계 4위 수준인 국내 게임산업을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미래성장동력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는 한국의 게임산업은 K팝으로 대표되는 음악산업과 영화산업을 합한 것보다도 많은 규모의 매출을 올리는 콘텐츠산업의 대표주자다. 이번 조치로 국내 게임산업이 곧바로 침체기로에 놓여선 안 될 일이다. 

게임산업은 이동통신 5G(5세대) 시대를 이끄는 핵심 고부가가치 성장동력이다. 글로벌 게임시장은 규모가 150조원에 달할 정도로 커졌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시장의 10%, 전체 콘텐츠 수출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게임시장 선점을 위한 글로벌 전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게임산업이 타격을 입으면 우리의 미래 먹거리산업 하나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게임중독의 질병 분류는 국내 게임업계의 생존을 위협하는 악재임이 분명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23~2025년 국내 게임업계가 입을 경제적 손실을 10조여원으로 추산했다. 8700여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게임중독세’를 비롯한 각종 산업 규제가 신설될 가능성도 크다. 게임 질병코드 도입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준비위원회가 “충분한 연구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것” 등을 이유로 들면서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게임=무조건 질병’도 경계돼야 

‘게임=폭력적’이란 선입견이 큰 우리 사회에서, 질병 인정이 이용자를 ‘잠재적 정신질환자’로 낙인찍거나 죄책감을 심어 업계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임업계의 반발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 인과관계나 과학적 연구가 분명하지 않은데도 성급한 질병 인정이 과잉의료를 촉발하고 나아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지적 또한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번 결정으로 '게임'이 무조건 질병을 유발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은 분명, 경계해야 할 부문이다. 정부와 게임업계가 힘을 모아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을 짜내야 한다.

정부는 아동의 문화·예술 선택권 제한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정책수립시 게임이 주는 긍정적 요소도 감안해야 한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전국의 초·중·고교생 15만3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게임 과몰입 및 위험군이 1.8%였고 게임을 건강하게 이용하는 게임선용군은 17.7%였다. 게임선용군의 자존감·삶의 만족도는 모든 유형집단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최근 제기되고 있는 ‘중독세’나 ‘중독치료 부담금’ 도입, 셧다운제(0~6시 청소년 게임이용 금지)의 모바일 확대 적용 등도 신중한 검토를 거쳐서 결정해야 할 일이다. 

중독 환경부터 개선을

사실, 그동안 우리 사회엔 게임에 대해 산업긍정론과 부작용으로 인한 폐해론이라는 대립구도만 있었다. 이번 WHO 결정을 게임산업 강국에 걸맞은 선진적 게임이용문화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부도 게임 자체에 겹겹이 규제를 입혀 중독을 막겠다는 단선적인 정책보다 청소년이 쉽게 게임중독에 빠질 수밖에 없는 환경부터 개선해야 한다. 

청소년의 게임중독은 가족구조 변화에 따른 가정 내 돌봄 공백, 과도한 학업 부담, 자투리 시간 이외의 놀이시간 부족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게임중독 예방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학교와 가정에서 게임중독의 위험성을 효과적으로 가르쳐 스스로 통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게임중독 예방 노력에 소홀한 채 게임 자체만 규제하려 하다가는 초가삼간만 태우고 빈대는 잡지 못하는 격이 될 수 있다.

질병과의 인과관계를 보다 과학적으로 분석해야 하고 국내 적용을 위해서는 보다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 진단기준을 명확하게 규정하면, 게임에 따른 사회적 논란도 불식시킬 수 있어 오히려 게임산업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산업 보호 방책 다시 세워야 

WHO의 새로운 기준이 당장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2022년부터 발효되고 국내에서 게임중독이 공식 질병으로 분류되기까지 필요한 절차를 밟다 보면 일러야 2026년에나 가능하다. 

정부나 관련 업계는 아직 국내 도입까지 많은 시간이 남은 만큼 각계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 합리적인 도입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여러 사회문화적 논란들을 조정하고 합의점을 도출하기 바란다. 

정부 내에서는 물론이고 보건의료 및 게임 업계 등 이해 당사자들 사이에 활발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 게임 중독의 폐해와 게임을 즐길 권리, 관련 사업에 미칠 파장 등을 두루 고려해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합의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복지부는 6월 중 관계 부처와 법조계, 시민단체, 업계 전문가들로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논의에 착수할 계획이다. 협의체가 제 구실을 하려면 내실 있는 연구와 과학적 근거 등을 토대로 생산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정책 시행까지는 아직 3년의 시간이 남은 만큼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 게임 폐인의 양산을 막되 게임산업도 보호할 수 있는 묘안을 찾는 것이 급선무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게임 강국 한국’의 이미지를 전세계에 각인시킨 수출 효자산업의 고사를 막기위한 실질적 방책을 다시 세우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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