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가 ‘까’를 만들고, ‘까’가 ‘빠’를 부추기는 지겨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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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가 ‘까’를 만들고, ‘까’가 ‘빠’를 부추기는 지겨움
  • 한설희 기자
  • 승인 2019.06.24 2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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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작용과 반작용의 굴레
문재인·김대중은 ‘심판론’으로, 박정희·운동권은 ‘신화’로 돌아오는 사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한설희 기자]

팬들의 지나친 사랑이 오히려 안티를 양산한다는 말은 정치권에도 적용되는 문장이다. 동시에 안티가 팬을 결집시키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굴레는 유권자들의 피해를 양산한다. ⓒ뉴시스
팬들의 지나친 사랑이 오히려 안티를 양산한다는 말은 정치권에도 적용되는 문장이다. 동시에 안티가 팬을 결집시키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굴레는 유권자들의 피해를 양산한다. ⓒ뉴시스

‘빠(팬)’가 ‘까(안티)’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팬들의 지나친 사랑이 오히려 안티를 양산한다는 말로, 절대적인 애정을 강요하면 도리어 미움을 초래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는 정치권에도 적용되는 문장이다. 특정 정치인 또는 정치 세력에 대한 지나친 충성심은 반대 세력의 반감을 자극하곤 한다. 

그러나 작용이 반작용을 만드는 것처럼, 반작용이 작용을 강화하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용은 또 다시 반작용을 형성하는, 지긋지긋한 무한의 굴레가 완성된다. 

정치권에도 이러한 굴레들이 여럿 있다. 그리고 ‘시시포스의 굴레’처럼, 평생을 굴레 속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은 유권자인 국민뿐이다.

 

작용이 만드는 반작용, 문재인 피로감과 외면 받는 민주평화당

41.08%의 득표율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1년차에 무려 83%의 지지율(한국갤럽 여론조사)을 기록했다. 일각에선 ‘문재인 신드롬’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취임 2주년인 올해 5월3일 발표된 동일 기관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는 40%를 돌파했다. 한국당과 민주당의 지지율 차이도 30%대로 격차가 줄었다.

여기에는 청와대에 대한 피로감 및 반감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여론조사 결과 민주당 지지층의 83%, 정의당 지지층 66%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한국당 지지층은 93%가 부정적이었으며 무당층(중도층)에서도 부정적 견해(53%)가 긍정적 견해(28%)를 앞섰다. 한국당이 전면 내세우고 있는 ‘문 정권 심판론’이 일부 중도층까지 효력을 발휘했다는 소리다.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지난 원내대표 선거에서 “문재인 정권 심판론을 선제적으로 무력화시켜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겠다”고 말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달 기자와 만난 PK지역의 한 의원도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반작용이 커졌다”며 “총선에서 한국당이 적어도 30~40%는 득표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예시는 문재인 대통령뿐만이 아니다. 

국민의당에서 떨어져 나온 민주평화당의 출범은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신격화와 함께 이뤄졌다. 평화당의 유일한 기반인 호남 지역 출생 대통령에 대한 집착은 이해할만 하지만, 정도가 너무하다는 비판론도 결국 따라오기 마련이다.

평화당은 최근 김대중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모위원회(위원장 최경환)를 조직하고 ‘김대중 아카데미’를 주최했다. “진짜 DJ 정신을 이어받은 정당은 민주평화당”이라며 내년 총선을 위한 세(勢)몰이에 여념이 없다. 

이들의 ‘DJ 찬양’이 과연 호남 지역의 득표율에 도움이 될까.

결과는 내년이 돼야 알 수 있다지만, 현재 한 자릿수만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지지율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호남은 20대 총선에서 다당제의 가능성을 열었지만,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선 다시 민주당에게 큰 힘을 실어줬다. 문 대통령에 대한 호남 지지율도 여전히 고공행진이다. 

이는 다당제에 대한 회의론보단 ‘호남정당화(化)’, 즉 호남을 정략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인들에게 보내는 경고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호남을 지역구로 둔 한 의원실 관계자는 이날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호남은 문재인 정부에게 호의적이다. 정부를 돕기 위해서 결국 민주당에 표를 행사하지, 호남정당을 세우려는 사람에게 표를 주진 않을 것”이라며 “호남을 지역구로 둔 전 바른미래당 의원들이 괜히 민주당에 복당 신청을 한 게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독재와 반민주주의의 상징인 박정희 신화는 한국당을 포함한 보수 세력이 떠받치고 있지만, 그로 인한 수혜를 누리는 것은 민주당이라는 점이 '적대적 공생관계'의 예시다.  ⓒ박정희대통령기념관
독재와 반민주주의의 상징인 박정희 신화는 한국당을 포함한 보수 세력이 떠받치고 있지만, 그로 인한 수혜를 누리는 것은 민주당이라는 점이 '적대적 공생관계'의 예시다.  ⓒ박정희대통령기념관

반작용이 부추기는 작용, 박정희 신화와 민주당 운동권 신화

팬이 안티를 만드는 것처럼, 안티도 팬을 결속시킨다. 

국제정치 이론인 ‘안보 딜레마’와 비슷하다. 한 나라가 방어 목적으로 군사력을 증강하면 이웃 나라는 안보에 위협을 느끼고 군사력을 증가하거나 도발하게 된다. 그러면 상대도 다시 군사력에 비용을 쏟는다. 반작용이 다시 작용을 만드는 악순환이다.

어떤 학자들은 이를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칭한다. 북한의 무력 도발이 있을 때마다 보수당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처럼, 의도치 않더라도 양 극단에 있는 쌍방이 사실상 서로 돕는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아이러니다. 

독재와 반민주주의의 상징인 박정희 신화는 한국당을 포함한 보수 세력이 떠받치고 있지만, 그로 인한 수혜를 누리는 것은 민주당이라는 것도 적대적 공생관계의 예시다.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은 지난 5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가 5·18민주화운동 관련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독재 세력에 대한 증오심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며 “그래야 독재에 대한 반발심이 강하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군사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군의 정치개입 정당화를 위해서라도 경제적인 성장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필요로 했다. 국가주도형 경제개발이 공산주의 못지않은 만큼 강한 국민 총동원체제를 구축하면서 인권을 유린하고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했다는 과거는 명백한 사실이다. 

즉 ‘보수의 집토끼’ 극우 지지층을 버릴 수 없는 한국당이 박정희 정권을 감쌀수록, 민주당은 반독재·반권위주의·친인권이라는 긍정적 프레임을 강화할 수 있기에, 오히려 한국당이 ‘박정희 신화’를 놓지 않도록 내심 종용한다는 말이 된다. 

이인영 원내대표가 5·18민주화운동 관련 망언 당사자들 징계를 촉구하면서 한국당을 향해 “한국당은 김영삼의 후예인가, 군사독재(박정희)의 후예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A냐 B냐 선택하라’는 양자택일의 함정에는 상대를 ‘독재자의 후예’로 낙인찍고 부전승(不戰勝)으로 민주주의의 유산을 가져가려는 전략이 깔려 있다. 문제는 민주당의 그러한 태도가 한국당이 끝내 낡은 프레임인 박정희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당이 주도해서 만드는 민주당 내 악순환도 있다. 바로 운동권 세력의 신화화다. ⓒ뉴시스
한국당이 주도해서 만드는 민주당 내 악순환도 있다. 바로 운동권 세력의 신화화다. ⓒ뉴시스

반대로 한국당이 주도해서 만드는 민주당 내 악순환도 있다. 바로 운동권 세력의 강화다.

황교안 체제의 한국당은 ‘경제 해결사’ 정당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운동권 세력을 적극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지난 18일 출발을 알린 한국당 경제대전환위원회에서는 “사회주의행 베네수엘라호 열차”, “운동권 이념에 갖힌 청와대”라는 비난이 쏟아져 나왔다. 황 대표 역시 취임 초부터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의 뿌리깊은 카르텔”을 지적하며 ‘좌파독재정부’라는 이념 공세를 펼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행 위키트리 부회장은 24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루이스 코저가 말한 갈등론의 제1법칙”이라며 “외적 갈등은 내적 통합을 항상 유발한다. 그걸 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자는 이달 초 민주당 내 비(非)운동권 의원들을 취재하면서 비운동권 출신들의 의사가 당 운영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과, 운동권 출신 의원들의 ‘반독재 도덕적 우월주의’가 점차 강경해져 사회 분열을 가져오고 있다는 현실을 언급한 바 있다.

어떠한 집단에도 결점은 있다. 민주당 내 운동권 세력에도 분명 문제가 존재할 테다. 그러나 실명을 공개하고 당 앞에 나서서 그런 지적을 하는 의원은 없었다. 황 대표 말대로 ‘카르텔’이 됐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더 큰 이유는 운동권 비판을 보수당, 특히 한국당만 도맡아 하는 데 있다.

김 부회장은 이를 “내부 결속과 반대되는 말을 한 사람은 ‘배신자 프레임’을 얻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결국 운동권과 관련해 한국당과 조금이라도 궤를 같이 하는 발언을 하게 되면, 반민주주의·친독재(친박정희)자가 되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국정 조사에서 임종석 전 비서실장의 ‘운동권을 비판하는 너(전희경 의원)는 우리가 고생한 80년대에 뭐 했느냐’식 발언은 이렇게 완성된 ‘우리 편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전선이다. 

지금처럼 ‘보수 vs 진보’ 이념 위주의 양당제 구도에서는 작용과 반작용이 커지고, 또 작용을 이기려는 반작용이 경쟁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다. 사진은 제360회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 불참 속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대한민국 헌법 개정안이 상정되는 모습.ⓒ뉴시스
지금처럼 ‘보수 vs 진보’ 이념 위주의 양당제 구도에서는 작용과 반작용이 커지고, 또 작용을 이기려는 반작용이 경쟁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다. 사진은 제360회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 불참 속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대한민국 헌법 개정안이 상정되는 모습.ⓒ뉴시스

작용↔반작용의 무한 굴레, 승자 독식구도 시스템 고쳐야 해결

강상호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는 이날 통화에서 “(작용과 반작용의 굴레는) 정당이 이슈에 집중하지 않고 진영 논리에 의해서만 싸우기 때문에 강화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나라 정치가 아직까지 다수결 구조에 집중돼 있는데, 이는 승자와 패자밖에 없는 이분법적 승자독식주의”라며 “경쟁적인 두 정당의 대결 구도에서 한쪽이 격해지면 다른 한쪽도 격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합의점을 찾기 쉽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요컨대 지금처럼 ‘보수 vs 진보’ 이념 위주의 양당제 구도에서는 작용과 반작용이 커지고, 또 작용을 이기려는 반작용이 경쟁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작용, 즉 특정 세력 찬양(문재인·김대중)은 ‘심판론’이라는 반작용을 불러온다. 반작용, 즉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일방적 비판(박정희·운동권)은 결국 ‘신화’로 되돌아온다.

작용과 반작용이 정치 사회를 점령하면, 정책에 대한 판단 없이 이전투구(泥田鬪狗)와 반감의 정치판이 열린다. 유권자는 누가 더 잘하냐가 아니라 누가 더 싫고 미운가의 기준에 따라 표를 던진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유권자에게 돌아온다. 시시포스의 굴레이자 형벌이다.

강 대표는 이러한 현상을 경계하기 위해서라도 개헌을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지금의 다수결·승자독식 정치구도를 바꾸고 합의제 정치문화’로 갈 수 있도록 새로 디자인해야 합니다. 합의제 민주주의에는 양대 세력뿐 아니라 이슈별로 다양한 세력이 뭉칠 수 있기 때문에 작용과 반작용이 완화될 수 있습니다. 헌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쪽 주장대로 촛불 시위가 ‘촛불 혁명’이었다고 가정해봅시다. 혁명의 의미는 혁명 이전은 ‘구체제(앙시앙레짐)’가 된다는 데 있습니다. 혁명 이후엔 새 체제가 들어서야한다는 뜻이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체제가 바뀌지 않았어요. 한국당과 민주당의 근본적인 갈등과 대결 구도는 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혁명’을 완성하기 위해서라도 권력 구조 시스템을 바꿀 때입니다.”

 

*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는 4월 30일~5월 2일 이틀에 걸쳐 유·무선전화 무작위걸기(RDD) 표본 프레임에서 추출한 성인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무작위 추출(집전화 RDD 15% 포함)해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실시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응답률은 16%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담당업무 : 통신 및 전기전자 담당합니다.
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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