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애국과 나의 애국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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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애국과 나의 애국은 다르지 않다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9.07.23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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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낙인찍기’는 자유로운 의견 표출 힘들게 해…열린사회로 나아가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해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뉴시스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해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뉴시스

칼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인류 역사는 닫힌사회와 열린사회 간 투쟁의 역사”라고 말했다. 또 “우리가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오직 하나, 열린사회로 가는 길이 있을 뿐”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는 열린사회를 ‘개인주의를 존중하고, 사회 구성원들의 합리적인 비판과 토론이 보장되는 사회’로 정의한다. 서로 상충하는 의견이 자유롭게 표출되는 사회만이 인류의 존속과 발전을 보장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비단 포퍼의 의견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구성원들이 자신의 생각을 제약 없이 표현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포퍼가 ‘열린사회의 적’으로 규정한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만 보더라도 ‘정(테제, Thesis)과 반(안티테제, Antithesis)의 충돌과 결합이 합(진테제, Synthesis)을 찾아내거나 최소한 긍정적 방향으로 질적 변화를 일으킨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최근 벌어진 한일(韓日) 간 갈등의 양상을 보고 있자면, 과연 우리 사회가 건강한 사회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현실화된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다양한 주장이 쏟아져 나왔다. 일본을 성토하는 목소리에서부터,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보복 조치가 이미 예상됐음에도 이렇다 할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았던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문제는 이런 다양한 의견을 대하는 정부여당의 태도다. 지난 20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1965년 이후 일관된 한국 정부의 입장과 2012년 및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부정, 매도하는 것은 정확히 일본 정부의 입장이며, 이런 주장을 하는 한국 사람을 마땅히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21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나서 “한국당이 한일전에서 우리 선수를 비난하고 심지어 일본 선수를 찬양하면 그것이야말로 신(新)친일”이라고 비판했다. 정부와 다른 입장을 내놓는 야당, 그리고 그 지지자들을 ‘친일파’로 낙인찍어버린 것이다.

특정 사안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아니, 달라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사건을 다방면에서 들여다볼 수 있으며, ‘통상적인 시각’과는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얻는다. 헤겔이 역사의 진보를 변증법적으로 해석한 것도, 포퍼가 ‘열린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상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스스로 옳다고 믿는 답 하나만을 ‘정답’으로 규정하고, 그에 부합하지 않는 답을 모두 오답 처리하는 것으로 모자라 ‘오답자’를 모두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우리 사회에서 친일파가 갖는 부정적 이미지를 감안하면, 사실상 이견(異見)의 여지를 차단해버린 셈이다. 한국전쟁 이후 오랜 기간 북한에 대한 ‘다른 접근 방식’을 ‘종북’으로 낙인찍고 대화의 여지를 차단해버렸던 역사를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다.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은 22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애국이라는 목표는 같지만, 방법은 다를 수 있다. 이게 애국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고 저게 애국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것”이라며 “견해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 민주주의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름을 인정해야 사회가 발전하고 화합할 수 있다. 모든 의견이 똑같은 것은 나라를 망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장 원장의 말처럼,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가려면 누군가의 입을 틀어막기보다는 누구든지 의견을 표출하고 모두가 토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와 생각이 다르면 친일파’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정부여당을 바라보며 씁쓸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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