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반공과 통일 사이…“대한민국 국시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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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반공과 통일 사이…“대한민국 국시는 무엇입니까?”
  • 조서영 기자
  • 승인 2019.07.28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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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유성환 “국시는 반공보다 통일”
1958·2005·2014년, 방황의 또 다른 형태
2019년, 지금 대한민국 국시는 무엇인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서영 기자]

대한민국은 언제나 ‘반공’과 ‘통일’ 사이에서 방황했다. 그 방황은 때로는 국시(國是) 논란으로, 때로는 통일전쟁으로, 또 때로는 진보정당 간 분열로 표출됐다.

나라가 해방된 직후에도, 한국전쟁 기간에도, 기나긴 독재 시절에도,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돼도, 대한민국은 반공과 통일 사이 논쟁에 휘청거렸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중국과 러시아의 KADIZ 침해, 일본의 경제보복에, 누군가는 ‘구한말을 떠올리게 한다’는 2019년. 대한민국은 다시금 나라의 방향을 고민할 시점에 서있다.

국시 논란은 한 발언에서 시작됐다. 당시 신한민주당 유성환 의원은 “우리나라의 국시는 반공보다 통일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유성환 전 의원
국시 논란은 한 발언에서 시작됐다. 당시 신한민주당 유성환 의원은 “우리나라의 국시는 반공보다 통일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유성환 전 의원

1986년, 유성환 “국시는 반공보다 통일”

먼저 시계를 33년 전으로 돌려 1986년 10월 14일 국회 본회의장으로 가보자. 국시 논란은 한 발언에서 시작됐다. 당시 신한민주당 유성환 의원은 “우리나라의 국시는 반공보다 통일이어야 한다”며 “통일이나 민족이라는 용어는 공산주의나 자본주의보다 위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45조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 한다’는 면책특권이 명시돼 있다. 그래서 서울지검공안부는 15일 이 발언을 담은 원고를 사전에 외부로 배포한 것은 면책특권을 받을 수 없다는 논리 하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로써 유 의원은 헌정 사상 최초로 회기 중 구속된 국회의원이 됐다.

당시 정구영 서울지검 검사장은 영장을 청구한 배경에 대해 “국회의원이 공공연히 북괴 주장에 동조한 용공이적행위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중대한 일”이라며 “유 의원의 발언은 학원가 및 사회일각에서 싹트고 있는 용공 좌경 성향을 부채질하고 국민들의 반공의식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됐다”고 설명했다.

유 전 의원은 2012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박정희 정권 때 ‘혁명공약 1호’로 반공을 국시로 내세웠는데 그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언젠가 내가 국회에 들어가면 이 나라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논란으부터 5년이 지난 1991년 11월에야 유 전 의원은 항소심에서 공소기각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1992년 대법원이 이를 확정하면서 유 전 의원은 무죄가 됐다. 이로써 그의 소신이었던 국가가 통일 국시의 손을 들어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5년이란 시간은 한 정치인이 정치적으로 타격을 받기에, 또 한 인간으로서 마음과 몸이 무너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양순석 당시 유 의원의 보좌관(민추협 사무부총장 겸 한국당 인재영입위원)은 28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당시 정민수 공안검사가 유 의원을 조사한 후 ‘유 의원이 진보주의자이자 좌파인줄 알았는데, 조사해보니 고급 반공주의자’라고 언급했다”며 한 일화를 소개했다. 이어 그는 “당시 1985년 서울 미문화원 점거 사건, 1986년 부산 미문화원 타격 사건을 거쳐 통일국시 발언이 정점에 이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유 전 의원이 말한 통일이란 보수와 진보, 우파의 자본주의와 좌파의 민족주의를 넘어 상위의 개념으로써의 통일”이라며 “유 전 의원은 반공을 통일에 비해 하위의 개념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2005년 7월 강정구 전 교수는 ‘6·25전쟁은 통일전쟁’는 내용의 칼럼을 기고했다. 사진은 강 전 교수가 2012년 7월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한일군사협정 관련 답변 및 면담 거부 새누리당 규탄, 협정폐기 촉구 공동기자회견' 모습이다.ⓒ뉴시스
2005년 7월 강정구 전 교수는 ‘6·25전쟁은 통일전쟁’는 내용의 칼럼을 기고했다. 사진은 강 전 교수가 2012년 7월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한일군사협정 관련 답변 및 면담 거부 새누리당 규탄, 협정폐기 촉구 공동기자회견' 모습이다.ⓒ뉴시스

1958·2005·2014년, 방황의 또 다른 형태 

시계를 조금 더 돌려 1958년으로 가자. 1958년 11월, 당시 자유당은 민주당이 제시한 통일방안이 진보당의 평화통일론과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국시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1월에 진보당 사건으로 조봉암이 체포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국시를 둘러싼 통일 논쟁은 가열됐다.

이와 관련 당시 민주당 조재천 대변인은 “국가보안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민주당을 위협하는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한국전쟁 직후 국회에서도 반공과 통일을 사이에 둔 국시 논란이 함께였다.

또한 2005년 7월 강정구 전 교수는 ‘6·25전쟁은 통일전쟁’는 내용의 칼럼을 기고했다. 그의 논문 <한국전쟁과 민족통일-전쟁의 통일을 넘어 평화와 화해의 통일로>에 따르면, “전쟁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남북분단을 저지시켜 민족통일을 이룩하려는 통일전쟁”이라며 “한반도 분단의 책임자는 미국”이라는 입장이 드러난다. 

검찰은 이에 대해 “북한의 주장과 아주 유사한 것”이라며 “북한을 찬양·고무한 행위”라고 봤다. 이에 2006년 강 전 교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2014년 12월 통합진보당이 해산된 이후, 진보정당으로 대표되는 정의당과 민중당, 두 정당이 함께할 수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바로 통일 노선에 대한 입장 차다. 지금의 진보정당 간 분열은 오래 전부터 있었던 NL과 PD의 갈등으로도 볼 수 있고, 혹은 정의당의 종북 딱지에 대한 선긋기로도 볼 수 있다.

2019년, 지금 대한민국 국시는 무엇인가?

다시 시간을 돌려 2019년 현재, 대한민국은 여전히 방황 중이다. 한 쪽에서는 “지금은 토착 빨갱이를 몰아내야 할 때”라며 반공을 외치고 있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언제 적 반공정신이냐”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한국 전쟁이 끝난 지 66년이 지나도 여전히 빨갱이·종북 프레임이 유효한 2019년을 살고 있는 당신들께 다시금 되묻는다.

"대한민국의 국시는 무엇입니까?"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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