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민의 의학이야기> 간 (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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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민의 의학이야기> 간 (肝)
  • 이창민 자유기고가
  • 승인 2011.12.2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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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창민 자유기고가)

초겨울 이른 아침. 온통 검기만 하던 세상이 어슴푸레 눈을 뜨니, 이내 눈이라도 내린 양 지천에 깔려 있던 하얀색 서리들이 서서히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한다. 꼼짝 않고 단단히 매달려 있던 처마 밑 고드름도 어느새 투명한 구슬 같은 물방울을 땅바닥으로 연신 떨구어 낼 즈음, 주인 할아버지가 정성스레 쑨 쇠죽을 외양간 여물통에 모락모락 김을 내며 남김없이 쓸어 내니 덩치 큰 누렁소가 그 큰 눈동자를 굴리며 우적우적 잘도 받아먹는다.

소. 우리 주변에는 각종 동물들이 참 많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소처럼 순하고 듬직한 동물은 없는 것 같다. 평생 일만 하다가 결국에는 그 몸뚱이마저 사람에게 바치는 소. 힘이 그렇게 센데도 불구하고 여간해서는 사람에게 덤비는 법이 없는 소. 그렇게 착하다 못해 심지어는 바보 같기까지 한 우직한 소. 이러한 소의 큰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괜스레 측은해 보이기까지 할 때도 있다. 우리 몸에도 소와 같이 듬직하고 무던한 친구가 하나 있다. 바로 간이다.

간. 오른쪽 갈비뼈 아래의 배에 위치하는 간은 명실상부한 우리 몸에서 가장 큰 장기이다. 무게 약 1.5 kg. 크기도 두 손으로 받쳐야 들 수 있을 정도의 넉넉한 풍채를 자랑한다. 간은 참 예쁘게도 생겼다. 붉은 색깔을 띠고 있으며 표면은 매끈하고 광택마저 나서 마치 잘 빠진 빨간색 스포츠카를 연상케 하며 그 표면을 만져 보면 탱탱한 탄력을 느끼게 된다.

그 크기와 모양에 걸맞게 간은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해치운다. 해독작용, 배설 기능, 인체에 필요한 연료생산, 비타민 대사, 혈액응고인자 생산 등등. 500가지가 넘는 일을 하니 우리 몸의 거의 모든 일에 관여하는 셈이다.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많은 일을 하는 간이지만 간은 너무나도 과묵하다. 과묵하다 못해 둔하기 까지 하다. 무던히도 둔한 간은 아파도 아픈지를 모른다. 어지간하게 간질환이 심해지기 전까지는 대개 눈에 띌 만한 증상조차 없다는 이야기다. 황달, 복수, 여성형 유방, 피부 혈관의 이상 등의 증상이 간질환시 나타나기는 하지만 이러한 증상은 이미 간질환이 너무 심해지고 나서야 발생하기 때문에 근본 치료가 상당히 어려워진다.

아마도 주변에서 간이 아파서 병원에 갔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연한 검사 결과로 간질환을 발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이 우직하고도 과묵한 간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증상이 없어도 정기적인 검사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간을 잘 보존하기 위해서는 평소 식습관이 중요하다. 간을 위해서는 생선, 우유, 두부, 달걀 등의 양질의 단백질을 먹고, 신선한 과일, 야채 등을 섭취하여 비타민, 무기질 등을 보충해주어야 한다. 반면 각종 인공첨가물이 들어가 있는 인스턴트식품, 과도하게 튀기거나 태운 음식, 과다한 지방식 등은 간에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략적으로 신선한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이 좋을 듯하다. 물론 과도한 음주, 흡연 등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간에 좋지 않다.

추운 겨울 밤. 퇴근 길. 한 아버지가 큰 걸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아버지의 손에는 잘 포장된 상자 꾸러미가 쥐어져 있다. 왠지 상자 꾸러미 안에는 어린 아들 생일선물이 들어있을 것 같다. 한 집안의 가장인 우리 아버지들의 초상이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들도 간을 닮은 것 같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위해 힘든 내색 없이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들. 하지만 둔한 것까지는 닮지 않았으면 한다. 자신의 몸을 챙기는 것이 결국 나의 가정을 챙기는 길임을 명심하시길 바란다. 병원은 아파서만 가는 곳이 아니고 아프기 전에도 정기적으로 가야하는 곳임을 상기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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