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과 한국교회>“함석헌은 군사독재와 싸우며 죽음을 개의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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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과 한국교회>“함석헌은 군사독재와 싸우며 죽음을 개의치 않았다”
  • 심의석 자유기고가
  • 승인 2012.11.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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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자기 십자가를 지라-6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심의석 자유기고가)

함석헌이 이렇게 비폭력저항의 길을 고집한 것은 폭력에 대한 최고의 대항책은 ‘내버려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폭력을 무서워하는 생각만 없으면 비폭력저항이야말로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미리 이겨놓고 싸우는 싸움이라고 말한다.

누가 사람을 죽여도, 죽는 사람이 만약 웃으면서 죽는다면, 죽이는 사람도 몇 사람 못 죽이고 그만둘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역사적 진실과 허구’(12-62)라는 제목의 글에서 어떤 사람이 면양 잡아먹는 이야기를 비유로 들어 이 진리를 증명한다.

“(어떤 사람이) 함경도에서 면양을 치려다가 실패를 했어. 일제시대 땐데. 그래서 안 되는 거 잡아먹기나 해야겠다고 잡아먹다가 몇 마리 잡아먹지 못 하고 그만 뒀대요. 왜? 이놈이 죽으면 더러 안 죽겠다고 버둥거려야 죽이겠는데, 이놈들 한 놈 죽여도 그만, 두 놈 죽여도 그만. 그러니까 그만 죽일 수가 없더라는 거야. 죽이려는 데 ‘왜 그래?’ 하고 나서니까, ‘그래, 저놈이 못 견디기는 못 견디는구나’ 하고 쾌감을 얻어서 더 잘 죽여. (그러니까) 폭력에는 아예 대항을 마세요. 마치 밥도 많이 먹으면 역해져서 못 먹는 모양으로, 그저 폭력을 마음대로 누리게 놔두면 제풀에 그만 실증이 나서 못할 거야요.”

그는 이 방법으로 예수가 이겼다고 믿는다. 기성 종교인들이 그를 죽이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피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는데도 그는 개의치 않고 평화를 누렸다. 마지막 할 일을 태연하게 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면서 섬김을 가르쳤고, 성찬예식을 행하면서 자신을 먹고 마셔 완전히 소화시키라 했다. 제자들을 위해 길게 기도했다. 그랬기 때문에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했다. 예수의 영이 와서 그가 가르치고 행한 진리를 제자들에게 상기시켰다. 그는 육신의 죽음을 통해서 영적으로 승리했다. 십자가는 승리했다. 20세기에는 이렇게 해서 간디가 이겼고 함석헌과 동시대를 살다 간 마르틴 루터 킹도 이겼다,

함석헌도 이들이 한 대로 군사독재정권과 싸우면서 죽음을 개의치 않았다.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러면 예수가 이겼듯이 자신도 이길 것을 믿었다. 그리하여 비폭력저항의 길을 누가 뭐라고 비난하든지 개의치 않고 자신만만하게 걸었다. 그가 정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이처럼 그의 생애가 증명한다. 뿐만 아니라 직접 그의 말로도 바른 말을 하다가 죽어도 좋다는 그의 의지를 천명한다. 그는 <사상계> 1965년 1월호에 ‘비폭력혁명’(2-33)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혁명은 군사쿠데타와 같은 폭력으로 해서는 성공할 수 없고 비폭력으로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취지의 글이다. 선거를 거쳐 박정희 정권(제3공화국)이 들어선 지 1년밖에 안된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에 이런 글을 쓰다니 그 용기가 놀랍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서두에서 이 글을 쓰는 심정을 이렇게 말한다.

“나는 ‘글’을 쓰려는 것이 아닙니다. ‘소신’을 말하고 ‘방안’을 내놓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여러분이 다 보는 앞에서 이 되지 못한 것을 영원의 제단의 불 속에 던져, 불꽃으로 살라,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치자는 것입니다. 그러기만 한다면 거기서 억억만만(億億萬萬)의 방사선이 폭발되어나가, 그 한 오리 한 오리가 여러분 하나하나의 혼속에 다 들어가, 거기서 또 불이 일어나 다 한 불로 붙을 것 같습니다. 나는 그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하는 기도입니다. 그 기도가 이제 이루어지지 않아도, 그 방사선이 알아볼 수 없이 미미한 것이어도, 반드시 가 닿는 데가 있고 천년 또는 2천년 후에 가서라도 꼭 이루어지고야 말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하는 하소연입니다.”

함석헌은 이렇게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하고 이 글을 쓴 것이다. 비폭력저항 때문에 그의 육신이 죽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우연이고 필연은 아니다. 정신적으로는 이미 십자가를 지고 죽어 다시 영적으로 살아난 것이다. 이만했으면 그는 기독교인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권고를 당당하게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함석헌이 기독교인에게 십자가를 지라고 권고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십자가의 의미는 자기가 지는 데 있지 남에게 져달라고 하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속죄는 예수의 십자가를 믿는 데서 시작되지만 내가 짐으로써 완성되기 때문이다. 예수의 제자들도 마지막에 십자가를 짐으로써 마침내 속죄의 경지에 이르렀다.
십자가는 예수가 처음으로 졌지만 그것을 예수 한 사람에게만 지우고 제자들이 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예수의 십자가도 결국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우리도 자기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해야 예수의 십자가가 역사상에 생생하게 살아남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쯤 함석헌의 권고에 따라 자기 십자가를 지겠노라고 용기 있게 나설 수 있을지? 십자가가 무엇인가? 남을 위하여, 공동체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제물로 내놓는 것 아니겠는가? 구체적으로는 부당한 권력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것 아니겠는가?  인간을 속박하는 부당한 권력의 실체는 시대상황에 따라 다르다.

예수는 자신을 희생하여 부당한 종교권력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켰다. 함석헌은, 간디나 마르틴 루터 킹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희생하여 부당한 정치권력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켰다. 그러면 앞으로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무엇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기 위하여서일까? 역시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등 각종 분야의 낡고 굳은 권력이 그 대상일 것이다.

하나님은 소돔·고모라 성에 의인 열 사람만 있으면 그 성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이 시대의 의인은 누구인가? 인간의 인격적 해방을 위하여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사람일 것이다. 오늘 우리나라에는 몇 명의 의인이 있으면 하나님이 맡기신 이 사명을 완수하게 될까? 당시 소돔·고모라 성의 인구가 얼마나 되었을까? 1만 명이었다고 가정하면 10명은 인구의 1/1000이다. 우리나라 기독교인은 신·구교를 합하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1천만 명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인 중 1만 명의 의인이 있을 수 있을까? 목사와 신부만 합쳐도 엄청난 수자일 텐데. 그러나 기독교계의 실정을 감안할 때 의인 1만 명은 불가능한 수자라고 말한다면 망발이 될까?

나는 이 글을 쓰는 이번 기회를 계기로 하여 오랫동안의 망설임에서 벗어나 남에게 져달라고 하던 십자가에서 내가 직접 지는 십자가로 그 지는 주체를 바꿔 생각하기로 한다. 십자가를 지면 육체적으로 죽지만 영적으로 부활한다. 예수는 십자가를 지고 육체로는 죽었지만 영적으로 부활하여 오늘까지 우리를 다스린다. 육체적으로는 비참한 생애지만 영적으로는 영생하는 생애다. 우리 속담에도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 않았던가? 예수가 십자가를 지지 않았다고 해서 육체로 영생할 것도 아닌 바에야, 그가 십자가를 진 것이 옳았느냐 지지 않은 것이 옳았느냐 하는 논의는 이미 결론이 난 것이다.
그런데도 예수를 믿는 우리까지도 그 좋은 십자가를 남에게는 지우려 하고 나는 지지 않으려고 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나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좋던 청·장년기에는 기회를 다 놓치고 70을 훌쩍 넘긴 노년에 와서야 십자가를 지겠다고 하는 것이 애석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나 삼손을 생각하면 용기가 난다.

그는 인생의 황금기를 드릴라 한 사람에게 매달려 살면서 허송세월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자기 나름의 십자가를 지고 죽어서 전비를 한꺼번에 청산하고 역사에 우뚝 서 있지 않는가? 예수 같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사도들 같지 못하고 함석헌 같지 못해도, 삼손 같은 사람이 될 길은 열려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 때까지 성령께서 항상 함께 하셔서 끝까지 십자가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기를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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