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민의 의학이야기> 충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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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민의 의학이야기> 충수2
  • 이창민 자유기고가
  • 승인 2013.01.2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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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창민 자유기고가)

 “어느 날 갑자기 명치 부위가 체한 듯이 살살 아파온다. 속이 울렁거리고 입맛도 없다. 이러한 증상이 지속되며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아픈 위치가 오른쪽 아래로 가더니 급기야 오른쪽 아랫배가 몹시 아프고 그 곳이 울리면서 아픈 통에 걸음을 걷기도 힘들다.”

전형적인 충수염의 증상이다. 정상적인 충수의 위치는 배의 오른쪽 아래 부분이 맞다. (왼쪽에 위치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매우 드물다.) 따라서 충수에 염증이 생기면 그곳이 아픈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위의 예와 같이 충수염 초기에는 엉뚱하게도 배의 오른쪽 아래 부분은 멀쩡한 채로 명치 부위만 아픈 경우가 많다. 더욱 가관인 것은 거의 대부분의 장염 증상이 충수염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모두 아시다시피 일반적인 장염 증상은 배가 전반적으로 사르르 아프고 설사를 하며 열이 나고 토를 한다. 이러한 증상만을 보고 장염이 아닌 충수염이라고 진단한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더도 덜도 말고 충수가 위치하고 있는 배의 오른쪽 아래 부위에만 통증이 있다면 의료인이 아니라 비의료인이라도 충수염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상기한 바와 같이 초기 충수염이 명치 부위 통증만 동반하거나 장염과 유사한 증상이 있는 경우, 오진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다고 모든 배 아픈 증상에 대해서 비교적 돈이 많이 들어가는 초음파나 CT 검사 등을 하자고 하면, 요즘 같이 불신풍조가 만연한 세상에서는 ‘돈만 밝히는 의사’라는 딱지를 달수도 있다. 여기서 의사들의 고민이 시작되고 나아가 환자와 의사 간의 갈등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충수염은 비교적 흔한 질병이다. 하지만 충수염의 진단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제 아무리 경험이 많은 의사라도 쉽지 않다. 이쯤 되면 하찮아보이던 충수가 은근히 사람들 간 갈등을 조장하는 듯 보인다. 게다가 누가 봐도 충수염인 듯 여겨지는 상황인데도 충수염이 아닌 경우도 있다. 실제로 충수염 의심 증상으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은 결과 의외로 충수염이 아닌 대장게실염, 장간막임파선염 또는 요로결석 등으로 판정되어 수술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충수염은 수술 외에는 치료 방법이 없다. 수술로 떼어낸 충수의 내부를 살펴보면 고름, 세균, 대변, 각종 찌꺼기, 돌 등등...  온갖 잡동사니는 모두 그 안에 들어있는 듯하다.

따라서 이렇게 더러운 것을 만지작거리는 수술이다 보니 다른 수술에 비해 수술 후 상처가 덧날 가능성이 많아진다. 수술 자체는 잘 마무리 되었어도 수술 후 상처가 덧나 사람들을 고생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 충수는 정말 이래저래 애물단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적어도 통증이 명치 부위에서 점차 우측 아래로 옮겨 갈 경우, 지체하지 말고 병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타의 상황에서도 배 아픈 증상이 심상치 않다면 한 번쯤 충수염을 의심해 병원에 방문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충수라는 놈은 우리에게 별 도움도 안 되는 것이 이래저래 사람들에게 고통과 불화만 초래하는 애물단지로만 여겨진다. 정말로 충수는 세속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에게 쓸모가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현재까지는 애물단지 충수를 변호해줄 만한 근거가 없어 보인다고 전편에 기술한 바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자그마치 약 2400여 년 전, 중국의 장자는 아래와 같은 아름다운 말로 충수를 변호해 주었다. 뒤늦게 이를 깨닫고 보니 절로 무릎을 치게 된다. 그러한 이치를 알게 되니 세상이 새삼 좀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쓸모 없음을 알아야 쓸모 있음을 말할 수 있지. 땅은 한없이 넓지만 사람에게 쓸모 있는 땅은 발이 닿는 만큼뿐일세. 그렇다고 발이 닿는 부분만 남겨 놓고 그 둘레를 모두 황천에 이르기까지 다 파 없애면 '그 쓸모 있다는 땅이' 그래도 정말 쓸모 있는 것일 수 있겠는가?” (오강남 풀이.『장자』현암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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