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치 50년 史>YS, 民山해체…"개혁정치 본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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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치 50년 史>YS, 民山해체…"개혁정치 본삼아"
  • 노병구 자유기고가
  • 승인 2013.07.07 0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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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민주산악회 해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노병구 자유기고가)

청천벽력 민주산악회의 해체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된 지 5일이 되던 1992년 12월24일이었다.

산악회 본부 간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최형우 회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사무실에 들어와서 “지금 김영삼 상임고문께서 불러서 다녀오는 길인데 오늘 날짜로 민주산악회 간판을 내리라는 하명을 받고 왔으니 섭섭하지만 오늘부로 간판을 내린다”고 선언했다.

우리 모두는 “이게 무슨 소리냐”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데 최형우 회장이 “민주 산악회는 사조직이고 우리의 1차목표인 상임고문이 대통령에 당선됐으니 이에 만족하고 김영삼 대통령 당선자의 이후 국정운영에 부담을 덜어 드리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임을 이해해 달라”고 설득에 나섰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월계수회의 국정폐해를 생각하고, 200여만 명에 달하는 민주산악회 회원들의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월권행위 등  각종 폐단을 미리 막으려는 대통령 당선자의 뜻이라고 최 회장은 역설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김영삼의 대통령 당선으로 한껏 고무되어 산악회 회원들은 모이는 곳마다 축제 분위기였다. 그 동안의 무용담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중앙과 지부할 것 없이 축하행사를 준비하던 때였으니 그 놀라움과 배신감이 오죽했겠는가.

길게는 32년을 김영삼 상임고문을 따라 군사독재와 싸우느라고 얼마 안 되는 가산마저 지부 운영을 위하여 털어 넣으며 천신만고 끝에 얻은 승리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수고했다는 위로의 말과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간판을 내리고 문을 닫으라니, 아무리 올바른 국정운영을 위하여 불가피한 조치라 하더라도 납득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는 간판을 내리고 사무실을 폐쇄했다.
적어도 대통령 취임을 하고 민주산악회 간부들과 지부장들만이라도 청와대로 불러 칼국수라도 들면서 민주화투쟁 과정의 감사와 위로의 말이라도 하고 국정운영을 위한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다음 간판을 내렸어야할 마땅한 도리를 팽개쳐 버린 것이다.

나는 그래도 당선된 지 사흘 만에 광명시 지부장으로서 회원들을 모아놓고 ‘당선 축하연’을 열었으니 천만다행이었다.

17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면 32년간의 군사독재에 대한 잔재를 털어내고 철저한 자유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정치개혁을 위해 자신의 손발을 잘라내는 엄격함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절차상 도리만 제대로 갖추고 해체했더라면 200여만 명의 회원들이 가족들과 이웃, 친지들에게 체면도 서고 또 얼마나 그간의 투쟁이 자랑스러웠을까?

당선되고 닷새 만에 간판을 내리면서 사조직을 없애고 공정한 정치를 하겠다는 김영삼 대통령의 애국적 결단이 이해는 하면서도 가슴에 비수를 꽂은 것처럼 아프고 쓰린 상처는 아물기가 쉽지 않아서 지금까지도 서운함을 토로하는 회원들을 종종 본다. 아쉽다.

박정희의 새마을운동, 전두환의 자유총연맹과 바르게살기운동이 아직도 전국조직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 조직은 군사독재의 유물이고 잔재인데 군정이 끝난 지금까지도 활보하고 있고, 그야말로 애국적이고 자발적 희생으로 참가했던 민주산악회는 민주화운동 단체에도 들지 못하고 그 그림자조차 없어진 것은 참으로 공평하지도 못하고 아쉽고 유감스럽다.

우리의 민주화는 박종철, 이한열 두 학생의 억울한 죽음과 이에 대한 국민적 항거로 대표되는 6·10 민주항쟁을 통해 이뤄졌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6·10 항쟁은 국내 민주화단체의 연합체인 국민운동본부가 주관했다

많은 민주화운동 단체가 이에 참가했지만 그 중 가장 큰 단체로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꼽는다. 그런데 그 민추의 창설은 김영삼의 민주산악회가 중심이 돼 김대중을 대리한 김상현의 측근들과 합해 결성한 것이다.

민주산악회가 민추의 시작이었고 민추의 대부분이 민주산악회였음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김영삼의 개혁의지는 확고했고, 공정한 정치를 하기 위해 사조직을 운영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의 방향은 불가피한 결단으로 보인다. 이런 공평무사한 김영삼의 충정에 국민과 역사는 박수를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의 손발인 민주산악회를 먼저 잘라 개혁정치의 본을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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