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농부는 농부대로 못살겠다고 거리로 뛰쳐나오고 음식점을 하는 사람들마저도 솥과 냄비를 들고 길거리로 나섰었습니다.
모두가 입만 열면 “어렵다” “죽겠다”는 말 뿐이었습니다. 주변이 아주 불안 했습니다.
가난해지면 나의 아들에게 산뜻한 옷을 입히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잃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습니다.
가난해지면 사랑하는 가족도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는데 그렇게 되지 않을까 두려움에 쫓겼습니다.
눈바람이 살 쏘듯이 들어오는데 철모르는 어린자식들은 밥 달라고 조르는데 밥을 주지 못하면 서러워 못 살 텐데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내려앉는 시절이었습니다.
살얼음판을 걸어오듯이 조심조심 걸어 왔었는데 더 어려워지고 있으니 입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름께나 알려진 연구소에서 쏟아내는 전망치를 듣고 있으면 눈앞이 다 캄캄해집니다. “절망은 몇 개인가의 것을 파괴 하지만 예상은 많은 것을 파괴 한다는” 프랭크린의 지적처럼 불길한 예상은 사람들을 공포분위기로 불어넣기에 충분합니다.
이렇게 어려울 때일수록 등 다독여주고 “설마 산입에 거미줄 치겠느냐”며 용기 불어 넣어줘야 합니다.
이 보다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고 말하고 네 옆에 내가 있다는 연대감과 귀속감을 불러일으키는 길만이 이 어려운 경제 난국을 해쳐나갈 수 있는 해법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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