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 히포’ 현주엽, “코드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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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히포’ 현주엽, “코드여 안녕!”
  • 최진철 기자
  • 승인 2009.07.13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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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코드를 떠나 섭섭하고 아쉽다”
90년대 한국농구에 화려하게 등장한 ‘매직 히포’ 현주협(34). 그가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20년 동안 누볐던 정든 코트를 뒤로한 체 이제는 지도자의 길을 향하게 됐다.
현주엽은 아쉬움과 서운함이 교차하는 가운데 지난 6월 25일 전격 은퇴를 발표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현주엽은 “섭섭하기도 하고 이제 좀 부담을 덜었다는 생각에 시원한 마음도 있다”며 “은퇴를 선택하기는 했지만 코트를 떠나면서 드는 아쉬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현주엽의 계약 기간을 1년 남기고 은퇴 결정에 팬들 또한 놀라게 했다.

잦은 부상과 외국인 선수 때문에 은퇴
 
농구선수로서 최고의 재능을 지녔던 현주엽은 왜 은퇴를 결정했을까. 이는 잦은 부상과 팀운, 그리고 프로화가 불러온 시대적 변화로 풀이된다. 대학시절까지의 정통 파워포워드이자 득점기계였던 현주엽은 프로에 오면서 점차 다재다능한 ‘올어라운드 플레이어’ 혹은 ‘도우미’ 타입의 선수로 변신했다.
 
특히 포인트 가드 못지않은 패싱력과 넓은 시야로 그는 ‘포인트 포워드’라는 새로운 포지션 개념을 창시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현주엽의 통산 어시스트는 5.2개에 이르며 KTF(현 KT) 시절이던 04~05시즌에는 무려 7.83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전체 2위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통산 7번의 트리플더블을 기록하며 주희정과 함께 국내 선수 역대 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대학 때부터 고질적이었던 무릎부상은 현주엽에게 운동능력과 함께 팀내 기여도까지 미치게 됐다. 프로데뷔첫해 평균 20득점을 돌파했으나 이후 해마다 떨어진 득점력은 LG 세이커스로 이적한 2006~2007시즌부터는 마침내 한 자릿수까지 떨어졌고, 마지막 해였던 2008~2009시즌에는 6.73점까지 하락했다.
 
빅맨으로서 가장 위력적인 무기인 포스트업 능력을 잃어버린 현주엽은 더 이상 위협적인 골밑 득점원이 아니었고 한때 찬사를 받았던 패스 능력은 본업을 망각하고 부업에만 치중한다는 비판의 도마에 올라야했다. 현주엽 역시 몇 년째 계속된 비판을 자신도 알고 해마다 변화를 공언했지만 정작 플레이스타일은 매년 제자리걸음이었다.
 
프로화에 접어들면서 내외곽을 겸비한 재능 있는 장신 포워드들이 대거 등장한 것도 현주엽의 입지를 위축시켰다. 공식 신장 195cm지만 실제로는 192~3cm 정도로 알려진 현주엽은 해가 갈수록 골밑에서 언더사이즈 토종 빅맨으로서의 한계를 드러냈다.
 
현주엽 이후 세대의 토종 장신선수들이 프로화에 맞추어 포지션을 변경하거나 슛 범위를 늘려서 나름의 생존법을 찾은 것과 달리, 현주엽은 자신의 플레이스타일을 고집하며 시대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지 못했다.
 
외국인 선수와 매치업 시키기에는 탄력과 높이에서 부족하고, 그렇다고 전문 포워드나 가드로 돌리기에는 외곽슛과 스피드가 부족했다. 자유분방하고 직접 공을 오래 가지고 있어야 진가를 발휘하는 그의 플레이스타일상, 우지원이나 문경은같은 슈터들처럼 식스맨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어울리지 않았다.
 
동시대를 풍미했던 서장훈이 노쇠한 지금도 건재한 득점력으로 자신만의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는 것과 달리, 현주엽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적극적인 '공격의지'마저 상실했고, 철저히 분업화된 프로농구에서 그의 다재다능함은 어느새 확실한 포지션 경쟁력이 결여된 '어정쩡함'과 동의어로 바뀌어있었다.
 
현주엽은 팀운도 따르지 않았다. 데뷔 첫해 서장훈과 다시 한 팀이 된 것은 팀의 에이스가 되기를 갈망했던 그의 프로생활이 첫해부터 꼬이기 시작한 빌미가 되었다. 이후 골드뱅크와 상무 제대 후의 KTF는 우승전력과는 거리가 있던 약체팀이었다.
 

 
2005년 여름 FA가 된 현주엽은 LG와 5년 계약을 체결했지만 '토털 농구'를 표방하는 신선우 감독이나 '플래툰 시스템'을 시도한 강을준 감독 같은 지도자들은 현주엽과는 궁합이 맞지 않았다.
 
자신이 중심이 된 팀에서 자유롭게 풀어줘야 진가를 발휘하는 현주엽의 플레이스타일은, 분업화된 시스템에서의 포지션 경쟁력을 요구하는 프로농구와는 조화를 이루지 못했고, 계속된 부상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이던 자신감을 빼앗아가며 결국 '계륵'으로 전락했다.
 
현주엽은 9시즌동안 통산 397경기에 출전해 평균 13.3점, 5.2어시스트, 4.1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플레이오프까지 포함한 통산 성적은 407경기에서 5389점, 리바운드 1674개, 어시스트 2095개. 플레이오프는 통산 4회 진출했으나 성적은 출전경기만 놓고 봤을 때 1승 9패에 그쳤고, 모두 첫 라운드에서 고배를 마시며 이제껏 한번도 PO 시리즈 승리를 경험해보지 못했다.
 
현주엽의 화려한 이름값이나 기대치에 비교하면 초라할 수밖에 없는 수치다.
그러나 현주엽은 자신의 농구인생을 괴롭혔던 부상으로 우승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목발을 짚고 마지막 은퇴 기자회견을 하면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현주엽은 회견장에서 “9년을 뛰었는데 우승을 한 번도 못 했다는 게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는 부분인 것 같다”며, “지도자 연수를 위해 미국 유학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제는 ‘매직 히포’로서의 화려한 플레이는 볼 수 없게 됐지만, 코드 밖에서의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볼 수 있기는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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